§154화 38. 아즈락 골드마인(3)
황금과 맥주.
전부 드워프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그중에 황금이 이 땅에 있습니다. 인간 제국과는 동맹관계라고 해도 그들이 과연 이 땅을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한때 자기들의 영토였는데. 명분이야 만들려면 얼마든 만들 수 있죠.”
영주도 그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으나, 록펠러처럼 확신하진 못하고 있었다.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어찌 안단 말인가?
“드워프들이라…….”
말꼬리를 흐리는 영주에게 록펠러가 말했다.
“이 부분은 확실하니 어느 정도 염두에 두시고 영주님께선 미리 대비하시면 됩니다.”
“대비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그런데 드워프들은 부자잖아? 만약 드워프들이 쳐들어온다면 쉽지는 않을 것 같군.”
드워프가 돈이 많다는 말에 록펠러도 부정하진 못했다.
“돈이야 많겠죠. 생각보다 종족끼리 단합이 잘 안 돼서 문제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 제국엔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더군다나 왕관 전쟁도 끝났겠다. 이처럼 제국이 쉽게 뭉치는 날도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실소유주는 제가 되니, 생각보다 불협화음도 별로 없을 거구요.”
“교단까지 합세하고 황실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그리 나쁘진 않겠군.”
“그러니 영주님께선 영지 방비에만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지원이야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까요.”
“알겠네. 여긴 내 지배 구역이기도 하니 자네 말대로 해야지.”
며칠 뒤.
몬테펠트로 영지에선 대대적인 건설 공사들이 진행되었다.
길드의 막대한 지원 아래 리옹에 지어진 대성당과 맞먹는 크기의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또한 국경 근처에 위치한 요새는 이전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제국을 포함한 대륙 전역에 퍼져 있던 용병부대들이 돈의 부름 앞에 너도나도 할 거 없이 몬테펠트로 영지로 찾아왔다.
새로운 성당이 건설되는 장소에서 록펠러는 아주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바로 피터 사제장이었다.
“자네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보다 신수가 훤하군. 뭘 그리 잘 먹었길래 얼굴색이 좋은 겐가?”
“피터 사제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피터 사제장님이야말로 얼굴색이 좋으시군요.”
피터 사제장은 제국 변두리에 지어지려는 새로운 성당을 보고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 자네가 생각했다면서?”
“제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 교회의 힘이 너무 못 미치는 것 같아 제가 성하께 특별히 청하여 이곳에 새로운 교구를 신설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피터 사제장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변방에 신경을 쓴단 말인가?
그나마 이곳 출신인 그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을 일.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훔치는 피터 사제장이 록펠러를 향해 말했다.
“자네가 이 땅의 보배일세. 자네가 있어 이 땅은 앞으로도 영원히 번창할 걸세.”
“하하,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저야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정말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아, 그리고 이건 아직 결정된 바는 아니지만.”
록펠러는 미소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야 좋은 거지.’
“이곳에 새 교구가 신설된다면, 제가 교황 성하께 따로 요청 드려 피터 사제장님을 이곳 교구의 주인으로 만들고 싶은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피터 사제장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아니, 나를?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설마 제가 여기서 사제장님께 농담이나 하겠습니까?”
교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사제장의 신분이 아니라 더 나아가 주교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그게 신의 뜻이라면 응당 받아들여야겠지. 그렇게나 해준다면 나도 자넬 위해 뭐든지 해주겠네.”
“그런 의미에서 앉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사제장님께 보답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예전에 저와 약속한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생각해 보니 저도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런 말씀을 드린 겁니다.”
“이미 자네가 준 성금만으로도 충분하네. 이건 너무 분에 넘치는 영광이야.”
“그래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 너무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말아주십쇼.”
“되지 않아도 좋다네. 단순히 말뿐이라도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성하께서도 그리 명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정말 좋겠어.”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곧 다가올 위기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용병부대까지 고용했다면서?”
“네, 그 소식이 어째 교회까지 닿았나 봅니다.”
“흠…….”
피터 사제장도 최근 들어 영지에 나도는 소문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대격변 이후 이 땅이 갑자기 금싸라기 땅이 됐단다.
“그 금광석인지 뭔지가 왜 갑자기 나오는지 모르겠어.”
“나쁘게 보면 나쁜 거고, 좋게 보면 좋은 일이죠.”
“그거야 그렇겠지. 흠…… 그래도 자네가 이 땅의 실질적인 주인이 아닌가?”
“그렇긴 하죠. 지금 와서 완전히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급한 게 아니니 나중에 천천히 가져올 생각입니다.”
“자네가 맘만 먹으면 그냥 가져올 수도 있을 거야. 뭐 그런 부분이야 내가 알아서 신경 써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영주님께서도 다른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있으면 큰일 나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가만히 안 둘 건데.”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무튼 자네야 바쁘겠어. 여기 신경 쓰랴 또 요새 쪽도 신경 쓰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어.”
“다행히도 나중에 저와 결혼하기로 한 처자들이 그런 방면으로 전문가라.”
“그러고 보니 결혼도 했다면서?”
“소식이 어째 여기까지 닿았나 봅니다.”
“자네 결혼 소식이야 카터를 통해 들었네. 늦었지만 축하하네.”
“결혼이야 뭐…… 조만간 또 할 것 같은데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또?”
“네, 두 가문에서 무조건 해달라고 하더군요. 거절하기가 뭐해서 일단은 알았다고 했습니다.”
“흠…….”
짧게 고심하던 그가 조언 같은 걸 해주었다.
“자네 같은 사람이야 결혼은 여러 번 하는 게 맞겠지. 이런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가문과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겠죠.”
말을 마친 사제장은 록펠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우연히 예전에 있었던 토템전쟁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땐 분명 드워프들을 상대로 한 맥주 사업에서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드워프 하니까 지금 생각난 건데. 예전에 자네 추천으로 맥주 사업을 하지 않았나?”
사제장이 우연히 내뱉은 말에 록펠러도 이전에 했던 맥주 사업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 전쟁이 나면 다른 곳에서 맥주를 구하겠지만.’
어디 맥주에 이름이나 있겠는가?
제국에서 팔면 제국 맥주고. 다른 곳에서 팔면 그곳 맥주가 아니겠는가?
‘이건 전쟁과는 별개지. 그리고 만약 이걸로 놈들을 종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거야.’
“아, 그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는 드워프들을 상대로 맥주를 팔아 재미를 많이 봤었죠.”
피터 사제장이 아쉬움을 금치 못 했다.
“이번에도 재미를 봤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지. 그래도 적이 될 게 뻔한데.”
그 말에 록펠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보다 맥주 생산 설비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생산 설비야 아직도 살아 있긴 하지. 간간히 맥주를 만들어서 교회 재정을 충당하고 있었네. 예전에 드워프들을 상대할 때만큼 크게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나쁘진 않아.”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다시 시작해 보죠.”
그 말에 피터 사제장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맥주를 다시 생산하자고?”
“네, 그때 가서 또 팔아야 할 거 아닙니까? 드워프들과 전쟁이 난다면 드워프들이야 어차피 맥주를 원할 거고. 그 맥주를 저희가 공급한다면 돈이야 또 벌 수 있겠죠.”
피터 사제장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말이 이상하군. 놈들하고 전쟁을 벌이면 서로 적이 아닌가? 지금 적에게 맥주를 팔라는 말인가?”
“어차피 저희가 안 팔면 다른 곳에서 판 맥주를 드워프들이 사갈 겁니다. 그럼 저희 입장에선 당연히 손해죠. 그걸 저희가 팔 수도 있는 건데, 엉뚱한 사람들이 이익을 보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는군. 적에게 좋은 걸 하자니…….”
“적에게 좋은 걸 하자는 게 아니라, 어차피 전쟁과는 별개로 따로 돈을 벌자는 말입니다.”
“허허…… 자네가 하는 말이야 대충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 땅을 지켜야 할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나야 좀 당황스럽군.”
“그런 의미에서 보시면 안 됩니다. 전쟁이야 전쟁이고, 사업은 사업이죠. 모든 건 철저히 나눠서 봐야 합니다.”
“그러다 드워프들의 힘이 빠지지 않으면 그땐 어쩔 건가?”
“나중에 여기 맥주 사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여기 맥주로 놈들을 구워삶을 수 있다면 전쟁이 더 격해졌을 때 분명 좋게 작용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공감이 가는군. 여기 맥주로 종속을 시키면야 나중에 수가 틀려지면 공급을 안 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럼 대혼란이 찾아오겠죠. 저희에겐 또 좋은 일이 될 겁니다.”
“그런데 드워프놈들이 여기 맥주라는 걸 알고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런 걸 알면 애당초 거래도 안 할 거 같은데.”
미소 속에 음흉함을 감춘 록펠러가 말했다.
“제국 맥주를 드워프들이 좋아하진 않겠죠. 하지만 맥주에 이름이라도 적혀 있습니까? 제국 밖에서 이름만 바꿔 팔아도 드워프들은 아마 모를 겁니다.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보다 그동안 맥주 사업을 계속 해오셨다면 새로운 맥주도 개발하지 않으셨습니까?”
“다행히도 그때보다 더 좋은 맥주를 개발해 놨네. 그 당시보다 맛이 더 좋아졌지.”
“그럼 다행이군요. 같은 맥주로 장사를 한다면 드워프들도 바로 알아차릴 테니까요.”
“맛이 좀 달라져서 아마 모를 거야. 여기 맥주가 상당히 개선됐거든.”
“그거 좋군요. 그럼 맥주 이름이 따로 있는 겁니까?”
“맥주 이름?”
사제장은 록펠러의 물음에 제 뺨을 긁적이며 답해주었다.
“아니, 딱히 있는 건 아니네만. 그냥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나왔으니 몬테펠트로 맥주라고 팔고 있었네.”
“그런 이름으로는 놈들을 구워삶기 힘들 겁니다.”
“그럼 뭐 좋은 이름이라도 있나?”
잠시 고심해 보던 록펠러가 이름 하나를 지어냈다.
“캬스는 어떻겠습니까?”
“캬스?”
“네, 뭐 그냥 그런 이름이 떠오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