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38. 아즈락 골드마인(2)
영주의 물음에 록펠러는 대답에 앞서 우선 영지 전체를 둘러보고 싶어 했다.
“우선 영지부터 살피고 싶군요. 영주님께서 제 길잡이가 돼주셨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같이 산책이나 가주시죠.”
때마침 할 일도 없겠다.
눈꼴 시린 녀석이지만 그래도 제국의 실세란다.
잘 보여서 좋을 건 없기에 영주는 못내 져주는 척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누구 부탁인데 감히 거절하겠나? 좋네. 내가 안내하도록 하지. 자네도 날 따라오게.”
영주의 부름에 오버시어는 냉큼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록펠러는 영주와 오버시어를 데리고 영지 외곽으로 각자 말을 타고 산책을 나갔다.
영지 외곽을 돌던 그들은 머잖아 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에 멈춰 선 뒤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영지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없던 곳에 언덕이 생기고, 본래 있던 언덕이 사라진 곳.
말에서 내린 록펠러가 주변을 훑자 덩달아 내린 영주와 오버시어가 있었다.
록펠러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훑던 영주는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던 금광석 하나를 발견하고선 입을 열었다.
“저번 폭우 때 여기까지 쓸려 내려온 모양이군. 이걸 받아보게.”
영주가 손에 든 금광석을 록펠러에게 던져주었다.
“자네가 좋아하는 걸세.”
영주가 던진 금광석을 받아든 록펠러가 그것을 살피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됐다.
“금광석입니까?”
“그래, 전에 대격변 이후로 이 영지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거지. 아마 자네도 이 영지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우리들처럼 돌아다니다가 하루에 몇 개는 주울 수 있을 걸세. 그만큼 많이 굴러다니거든.”
황금, 그것은 인간을 매료시키는 가장 치명적인 금속이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 돌덩이에 관심 갖는 외부인은 없었습니까?”
“없었겠나? 당연히 있었지.”
“하긴 이런 게 발견됐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도 자네 땅이라 멀쩡한 걸세. 이게 내 땅이었어봐, 이 영지가 조용할 날이 있었겠나?”
“그것참 다행이군요. 이 땅이 영주님 땅이 아니라 바로 제 땅이라서 말입니다.”
같이 있던 오버시어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영주님께서 빈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 금광석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서 정말 여러 사람들이 영주님께 왔다 갔습니다.”
“별의별 미친 새끼도 많았지. 뭐 어차피 트집 하나 잡아서 어떻게든 해 처먹으려는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내 땅이 아니라 자네 땅이라고 하니, 그냥 수긍하고 돌아가더군. 아마 사이즈가 안 나온 거겠지.”
록펠러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한창 잘나갈 때라 그런 것 같습니다.”
록펠러는 손에 든 금광석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1온스의 금을 생산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을요.”
웬 생뚱맞은 소리를 하려는 걸까?
“비용? 그딴 걸 내가 알겠나? 그냥 뭐 대충 많이 들겠지.”
영주도 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노동과 약품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은연중 미소를 띤 록펠러가 말했다.
“1온스의 금을 생산하려면 평균적으로 37시간의 노동과 물 5,300리터, 그리고 청산가리 수 리터가 필요합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는 공식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 밖에도 연금술사들이 쓰는 방법이 따로 있는데, 이건 그들만의 비밀인지라 저희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도 적잖은 노동과 여러 화학약품을 쓴다고 하더군요.”
록펠러의 말에 영주가 제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 정도로 개고생을 해야 금을 얻는 거였나? 하긴 그 정도는 되니까 비싼 거겠지. 자네도 알고 있었나?”
영주의 물음에 오버시어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도 그 정도 비용이 드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고생을 해야 금을 얻는군요.”
영주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금에 환장하는 거 아니겠나? 만약 이런 돌덩이에서 금을 만드는 것조차 쉬웠으면 누가 그런 것에 가치를 부여하겠나? 안 그런가?”
“그건 영주님 말이 맞습니다. 생각보다 흔한 것이었다면 그런 가치까지는 부여되지 않겠죠.”
이렇듯 금 1온스를 생산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록펠러는 그런 금을 기반으로 태어난 고블린 달러라는 것을 제 뜻대로 찍어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바로 진정한 마술사지.’
하지만 고블린 달러도 완전한 건 아니었다.
우선 달란트를 기반하고 있으니, 그 달란트의 근본이 되는 금이 많아야만 고블린 달러도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의 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블린 달러는 애당초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어찌 보면 하늘이 내게 주신 축복이지.’
“저는 항상 의심하고 있습니다. 신께서는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항상 제게 해보았죠.”
그 말에 불쾌감을 느낀 영주가 있었다.
“자네는 지금 우리가 같잖다고 신성모독까지 할 생각인가?”
같이 있던 오버시어도 록펠러가 한 말이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사제가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다면 정말 큰일 날 소리였어.’
만약 이 자리에 교단과 관련된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문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만큼 록펠러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한데 교단의 눈치를 안 볼 정도면야…… 확실히.’
“부디 교단과 관련된 언급은 조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게 소문나 봤자 좋을 게 있겠습니까?”
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힘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록펠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두 분께서 별걱정을 다 해주시는군요. 그래도 저는 제가 이렇게 축복받은 것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긴 했어도, 이렇게 잘 되는 걸 보니 제가 교회에 한 일이 나름 의미가 있었나 봅니다.”
영주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돈을 쏟아부었는데 요한 님께서 가만히 계시겠나? 내가 교황 성하라면 요한 님이 나설 것도 없이 자네에게 뭐라도 해줬을 걸세. 듣자 하니 리옹 대성당도 자네가 지어줬다면서?”
“정확히는 증축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돈은 전부 제가 대줬죠.”
“그렇게 돈이 많다면, 차라리 여기다 좀 쓰지 그러나? 여긴 너무 변방이라 사람들이 관심도 안 가져서 그 어느 곳보다 요한 님의 가르침이 필요한 곳인데.”
록펠러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안 그래도 제가 여기까지 내려온 것은 이곳을 제 거점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몬테펠트로 영지는 리옹이나 황도에 버금갈 정도로 번성한 곳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영주와 오버시어가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린가?”
“다 듣지 않았습니까? 방금 했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럼 여기다 뭐라도 한다는 소린가?”
“물론이죠. 우선 영주님이 앞서 바란 것처럼 여기다 크고 멋진 성당을 지을 생각입니다. 제가 모르긴 해도 법황청에 약간 못 미칠 정도로 그런 성당을 짓는다 치면, 교단에선 이곳을 리옹 교구로부터 분리시킨 뒤 새로운 교구로 임명할 겁니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몬테펠트로 영지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놀란 영주가 확인 차 되물었다.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인가?”
“그럼 제가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여긴…… 소외받는 변방인데.”
“이유야 확실하죠. 제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고. 그리고…….”
록펠러가 짓는 미소의 이면에는 나름의 꿍꿍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땅이 성역이 되어야 교단의 비호를 받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요한 님이 계신 곳에 헛짓거리를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그자는.”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지엄한 교단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하여 그런 이유로 저는 이곳에다 굉장히 큰 성당을 지을 생각이고, 그리고 이 일은 영주님이나 다른 모두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아무리 반쪽짜리 영주라지만.
자신의 영지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주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교단의 비호를 받는다면 확실히…… 영지 방비에 대한 걱정거리가 많이 줄어들겠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딸아이만큼은 정말 시집을 잘 보낸 것 같군.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자네 동생보다 자네한테 보낼 걸 그랬어.”
그 말에 록펠러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결혼은 이제 질색이다. 안 그래도 엮인 여자만 셋인가 그런데.’
“그건 아닙니다. 영주님 따님이야 애당초 관심도 없었고, 저는 여자라면 이제 질색합니다.”
영주가 의문을 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조만간 데려와야 할 여자가 둘이나 됩니다. 상황이 이런데 제가 여자를 좋아하겠습니까? 뭐 둘 다 상태가 나쁘지 않긴 한데…… 뭔가 징그럽더군요.”
“원래 남자가 능력이 좋으면 결혼도 여러 번 하는 걸세. 자네처럼 젊고 유능한 청년이 있는데 다른 가문에서 가만히 있겠나?”
말을 하면서도 영주는 제국의 또 다른 실세라 할 수 있는 두 가문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테페즈나 싱클레어에서도 관심을 보였을 거 같은데?’
“어차피 결혼이야 형식적인 것이니, 자네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받아들이게. 사랑? 자네는 그런 게 있다고 보나? 설사 있어도 그 좋은 감정은 3년이면 없어질 걸세. 그건 내가 장담하지.”
영주의 말이야 귓등으로 흘려듣는 록펠러가 다시 말 위에 올랐다.
‘3년이 아니라 몇 개월이면 치정싸움으로 사라질 거 같은데.’
“대충 둘러봤으니 이제 돌아가시죠.”
그런 록펠러에게 영주가 아까 듣지 못했던 답변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아까 물어봤다가 안 해준 답변이 있지 않나? 여기다 성당을 지어 교단의 비호를 받는 것이야 자네가 가진 계획 중 일부일 것 같은데. 그거 말고 다른 계획도 있는 겐가?”
“물론 있습니다. 교단의 비호를 받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저희 나름대로 여기다 방비를 해야겠죠. 이전에 있었던 토템전쟁에 대비했던 것처럼 요새를 더 확장하여 견고하게 짓고, 또 리옹에서 대규모로 마석탱크를 사들일 계획입니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자신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저렇게 밀어붙이는 걸 보니 새삼 그의 힘이 느껴졌다.
“마석탱크면…… 한두 푼짜리가 아닐 텐데. 하긴 자네라면 푼돈 정도는 되겠지.”
“저야 그쪽 지분을 가지고 있어 통상적인 가격으로는 가져오지 않을 겁니다. 더 할인된 가격으로 가져오겠죠.”
“그거야 뭐.”
“돈이야 제가 댈 테니. 영주님께서도 여러 군데 알아봐주시죠. 좋은 용병 부대가 있다면 거리낄 것 없이 다 부르셔도 좋습니다. 아는 인맥, 없는 인맥까지 다 동원하란 소립니다.”
정말 그렇게 했다간 금고에 구멍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금고 자체가 없어질 판국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나?”
그 물음에 오히려 록펠러가 정색했다.
“제가 장난치는 걸로 보이십니까?”
“그건 아닌데…… 아니, 적도 없는 판국에 벌써부터 그리 부산을 떨 필요가 있나 해서 물어보는 것이야.”
어차피 곧 터질 일.
록펠러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제가 장담하는데. 이 땅에 곧 드워프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드워프들이?”
“영주님도 이 땅에 오래 계셨으니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여기가 본래 아즈락 골드마인이라고 해서 예전에 드워프들이 버리고 간 땅이라는 것을요.”
“그 이야기야 듣긴 했는데…… 그런데 드워프들이 온다고?”
황금이면 사족을 못 쓰는 건 인간이나 드워프나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라 하면 딱 두 가지입니다.”
록펠러가 바로 말을 이어주었다.
“바로 황금하고 맥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