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38. 아즈락 골드마인(1)
몬테펠트로 영지에서만 돌던 금광석에 대한 이야기가 대륙 전체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 이야기는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종족인 고블린들에게 전달되었다.
고블린방크를 움직이는 핵심이자 주요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는 원탁회의에서.
몬테펠트로 영지와 관련된 안건이 올라왔다.
원탁회의는 고블린들 중에서도 고블린방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단 세 명만이 참석할 수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가 바로 골드만이었다.
외알 안경을 쓴 골드만은 제국의 한 영지에 관련된 보고서 내용을 읽으며 깊은 침음성을 흘렸다.
“흠…… 이게 말이나 돼?”
마찬가지로 같은 보고서를 읽어 내리던 두 고블린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땅 아니었나?”
모건이 말하자 제이피도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었던 거지. 이런 노른자 땅이 이제까지 잘도 살아 있었군.”
그들은 원탁회의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이었다.
그리고 종족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한 고블린들이기도 했다.
일전에 오크들과 드워프들을 이간질시켜 전쟁을 일으킨 것도 바로 그들의 작품.
“이거 잘만 하면 먹을 게 좀 있을 거 같은데?”
“제국 땅이잖아. 따지고 보면 제국 건데 여기서 뭘 먹어.”
“에이, 무슨 소리. 보니까 여기 아즈락 골드마인이잖아. 몰라? 아즈락 골드마인?”
“그게 뭔데?”
“옛날 드워프 거였다고.”
“뭐? 여기가 옛날에 드워프 땅이었어?”
“그래, 드워프 땅이었지. 이걸 모르고 있었어?”
“내가 어떻게 알겠어.”
보고서 내용을 전부 훑어본 골드만이 보고서를 내린 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작업하자고. 무식한 오크 놈들하고 드워프 놈들하고 싸움 붙인 것처럼. 여기도 이간질시켜서 틈을 노려보자는 이 이야기야.”
그 말을 들은 모건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건 무식한 오크들이 아니잖아. 인간 놈들하고 드워프 얘기라고. 만약 서로 이간질시키려면 둘의 사이가 나쁘면 좋은 건데. 막상 그런 것도 아니잖아?”
제이피도 모건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아. 둘은 일단 동맹이야. 뭐, 사이가 엄청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저번에 토템전쟁 때도 드워프들은 인간들에게 찾아가 맥주를 구했어. 그만큼 서로 친하다는 소리지.”
그런 둘에게 골드만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쯧, 그래서 이걸 포기하겠다고? 이런 노른자 땅을?”
“아니,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작업 치기가 어렵다는 거지.”
“자네 생각은 어떤데?”
골드만의 물음에 제이피가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드워프 이놈들도 황금이라면 환장하는 새끼들이라. 더군다나 여기가 아즈락 골드마인이라고 해서 예전엔 드워프 땅이었는데. 이거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이 정도 양의 금광이 발견됐다면 드워프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은데?”
골드만이 동의했다.
“나도 그 생각이야. 이건 무조건 전쟁이야. 아무리 동맹이라도 그렇지 인간 놈이나 드워프들이나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둘 다 황금에 미친 놈들이니까.”
결국 셋의 생각은 인간의 제국과 드워프의 왕국이 서로 갈라져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맞춰졌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해먹냐는 건데…….”
“싸움은 좀 지독해질 거야. 서로 양보가 없겠지. 특히나 이런 금맥을 두고 싸우는 거라면 한쪽 나가떨어질 때까지 아주 지독하게 치고받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일단 말이 없어진 셋은 어떻게 하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해 봤다.
그러던 중 골드만의 뇌리를 스쳐 가는 게 있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돈이 궁해지겠지. 그럼 그걸 노리자고.”
“우리가 그쪽에 돈이라도 대자는 거야?”
“그렇지. 특히나 제국 쪽 자금 사정이 안 좋다고 들었어. 최근에 왕관 전쟁도 있었잖아.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제국이 가만히 있겠어? 제국도 그 땅을 뺏기기 싫으면 어떻게든 지키려 하겠지.”
두 고블린의 시선이 골드만에게 모아졌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돈이 궁해지면 놈들도 뭔가를 할 거 아니야.”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건이 목소리를 냈다.
“그렇군. 그렇게 되면 국채를 발행하겠군. 부족한 돈은 국채 발행밖에 답이 없으니까.”
“그렇지. 우리가 그 채권을 존나 사는 거야. 그리고 제국이 이기게 되면. 그 국채를 빌미로 놈들에게 그 노른자 땅에 대한 이권을 어느 정도 챙겨올 수 있겠지. 아니면 그 국채로 놈들을 우리 노예로 만들면 돼.”
“오호라! 그런 생각이 있었군.”
“어때? 나름 기발하지 않아?”
그러자 제이피가 의문을 표했다.
“아니, 그러다 드워프가 이기면?”
골드만이 표정을 구기며 대꾸했다.
“드워프가 이기면 안 되지.”
뭔가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제이피가 구긴 표정으로 말했다.
“드워프들도 돈이 많다고. 그런 놈들이 전쟁에서 쉽게 지겠어?”
모건도 목소리를 냈다.
“드워프가 이기면 제국이야 망하는 거잖아? 그럼 제국 국채는 전부 똥값이 되는 건데 우리가 그런 장사를 왜 하는 거야?”
하지만 골드만의 생각은 확고했다.
“드워프놈들은 절대 못 이겨. 놈들은 종족끼리 단합이 잘 안 되고, 또 맥주가 없으면 미친놈들마냥 폭동이나 일으키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잘만 행동한다면 제국이 이길 수밖에 없는 거라고.”
회의가 길어졌으나, 그들이 내놓은 답은 전쟁 도중 국채를 발행한 제국에게서 그 국채를 전부 사들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야만 그들에게서 국채를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은 아니지만 인간 제국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 어느 인간 방코에서 영주를 빚더미로 앉혀 영지를 먹었다는 거야.”
골드만에 말에 모건이 바로 반응했다.
“그게 몬테펠트로 영지 아니야?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 거기가 설마 거기였어?”
“그래, 난 그렇게 알고 있다고.”
“그놈 운도 좋군. 그런 노른자 땅을 영주 놈 대신 낼름 해 처먹을 줄이야. 아무튼.”
원탁회의를 종결하려는 골드만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번들거렸다.
“전쟁이 나면 제국에서 발행한 채권은 전부 다 사들이라고. 그래야 나중에 제국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까.”
* * *
몬테펠트로 영지.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소년기를 보냈던 추억의 장소.
록펠러가 다시 그곳에 돌아왔을 땐 어느새 결혼까지 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몬테펠트로 영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록펠러는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황금 들판을 바라보았다.
‘금맥전쟁이라…….’
소설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 록펠러는 자신의 고향이자 앞으로 로스메디치 가문의 마르지 않는 돈줄이 될 이 영지를 어떻게든 지켜낼 생각이었다.
‘결국 승자는 제국이 되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록펠러는 이 전쟁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순한 세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제국이 찍어낼 막대한 양의 국채를 갖게 될 놈들이 문제지.’
록펠러는 이번 금맥전쟁에서 고블린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전부 다 꿰뚫고 있었다.
‘전쟁은 항상 돈이지. 그리고 한 나라에서 그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두 가지지. 바로 국채와 약탈.’
하지만 제국은 약탈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약탈은 오크들과 몇몇 야만적인 종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제국처럼 어느 정도 국가의 틀이 잡힌 곳에선 부족한 돈을 충당하기 위해 나라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그것으로 부족한 돈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제국은 채권을 발행하는 후자였다.
‘여기 영주도 그렇게 망했지. 그리고 제국도.’
제국은 국채발행을 통해 드워프와의 전쟁에선 승리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찍어낸 막대한 채권으로 인해 훗날 고블린방크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예정된 미래였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되지. 인간이 그딴 고블린 눈치나 보며 사는 게 말이나 되겠어?’
하여 록펠러가 현재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금맥전쟁의 승리가 아닌 고블린방크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일이었다.
‘우선은 영지 사정부터 알아야겠어. 그리고 소설과 다르게 교단 세력도 끌어들여야겠고.’
몬테펠트로 영지에 도착한 록펠러는 곧장 영주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록펠러를 보고선 영주는 기분이 영 언짢아졌다.
반면 그와 함께 있던 오버시어 시론 마크는 전보다 더 위상이 높아진 그에게 정말 깍듯이 대해주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언젠간 고향 땅에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허리가 자연스레 숙여지는 오버시어와는 다르게.
영주는 빳빳이 고개를 세우고 아니꼬운 시선을 록펠러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 딸이 그의 가문에 시집간 것을 벼슬로 아는 모양이었다.
“자네가 제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나한테 존대 받을 생각은 하지 말게. 그럴 거라면 이 자리서 혀를 깨물고 자살할 테니까.”
영주는 나름 진심이었고, 그런 영주를 맞이한 록펠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나라도 그렇게 하긴 싫을 거야.’
어렸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묻히는 장례식장에서.
그는 건방지게 예의와 분수를 논했던 자였다.
어찌 됐든 록펠러는.
“오랜만입니다. 영주님.”
“신수가 아주 훤하군. 그래, 리옹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으니 당연히 신수가 좋겠지.”
“영주님께선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군요.”
“어차피 반쪽짜리 영주인데, 이런 나한테 뭘 원하는 겐가?”
“하하, 저도 영주님께 존대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미소를 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영주님 말고도 제게 존대할 사람은 이 제국에 차고도 넘치니까요.”
“흥, 말은 잘하는군. 그래, 잘 왔네. 온 이유야 대충 알겠고.”
영주 체스터는 록펠러가 무슨 연유에서 이런 변방의 땅까지 찾아왔는지 절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이곳의 영주였지만, 실질적인 영지의 주인은 바로 로스메디치 가문이었던 것이다.
영주는 가지고 있던 금광석을 꺼내 그것을 록펠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가 여기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내가 여기 영주라지만, 이런 게 나온 이상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거든. 그나마 자네가 승승장구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다른 곳에서 시비가 걸려 와도 수십 번을 걸어왔을 거야. 어쩌면 이미 개판이 났을지도 모르지.”
록펠러는 영주가 건넨 금광석을 유심히 살펴봤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나마 제가 승승장구해서 다행이군요.”
“듣자 하니 폐하의 재정고문이라면서? 그리고 무슨…… 재상이라고 했나?”
“네, 제국의 모든 화폐를 통제할 권한을 가진 뭐 그런 위치입니다.”
“잘도 풀렸군. 코흘리개 평민이 그 정도로 출세했으면 정말 브라보가 아니겠나?”
“그보다 영지 밖 움직임은 어떱니까? 최근 들어 수상한 움직임 같은 게 있었습니까?”
그 물음에 대해선 근처에 있던 오버시어가 답해주었다.
“다행히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 역시 영주님처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사방에 적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록펠러는 이해한다는 듯이 금광석을 영주의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럴 테니까요.”
영주가 그런 록펠러에게 물었다.
“그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어차피 자네 땅이니 자네가 알아서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