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50화 (150/181)

§150화 37. 화폐재무성 신설(3)

그 말에 놀란 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없는 돈으로 고블린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해달라니.

그것도 합법적으로 말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제안인지라 소란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런 소란 속에서도 록펠러의 말은 계속됐다.

“제가 폐하께 미리 설명을 드린 것처럼 오직 금화로만 제국의 재정 문제를 해결한다면, 나중에 제국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필요한 돈을 적절하게 수급할 수 없게 됩니다.”

록펠러가 한 말에 이의를 가진 자가 목소리를 내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금화야 필요한 만큼 찍어내면 그만이 아닙니까?”

“그럼 그 금화를 찍어내기 위해 필요한 금은 어디서 얻을 겁니까?”

“그거야…….”

그제야 귀족들은 금화로 이뤄진 화폐 체제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록펠러가 하려는 말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블린 달러는 그런 금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 시 필요한 만큼 발행하여 유통시키면 당장 필요한 돈을 수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되겠죠.”

록펠러가 강조하듯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그러나 이건 여기 계신 모두가 알다시피 나라에서 허락하지 않은 불법적인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애스틴 대공이 말한 것처럼 모두를 기만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국에 위기가 닥쳤을 시 이만한 화폐 시스템이 없기도 합니다. 화염전쟁처럼 구질구질하게 금화에 구리를 섞을 필요도 없죠. 안 그렇습니까, 폐하?”

이제 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 집중되었다.

‘왕관 전쟁으로 인해 테페즈나 싱클레어 모두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 그리고 국내외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황실 재정도 생각보다 튼튼하지 못하지. 이런 와중에 오크나 다른 이종족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제국에 큰 위기가 될 거야.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돈은 꼭 필요하지.’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만들 수 있을까?

하늘에서?

땅에서?

‘싫어도 택할 수밖에 없겠군. 한 가문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보단 더 큰 것을 지켜야만 하니까.’

로스메디치 가문에게 이미 화폐 통제권을 주기로 했으나, 그와 관련된 법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기에 황제는 대답에 앞서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그것을 허락한다면. 그대는 제국이 큰 위기에 닥쳤을 때 그대와 가문의 모든 걸 걸고 나와 제국을 도와줄 의향이 있는가?”

록펠러는 미소 속에 잔인한 탐욕을 감추고 답해주었다.

“물론입니다, 폐하. 제가 폐하께 요청하는 일은 제 개인의 사리사욕보단 결국 제국 전체를 위한 일입니다. 부디 이를 깊게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가 있기 전.

록펠러는 황제와 따로 만나 지급준비율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 지급준비율이란 것은 사람들이 방코에 맡기고 간 금화를 법적으로 얼마만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이었다.

본래는 사람들이 맡긴 금화의 100%를 방코에서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들이 맡긴 금화를 바로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맡긴 금화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또한 그들이 맡긴 금화 대부분은 방코 안에서 의미 없이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에서 정한 특정 비율만큼만 예치된 금화를 가지고 있고 그 나머지 금화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지급준비율이었다.

‘보유한 금화의 몇 배까지 가상의 돈을 찍게 해줄지는 모르겠군.’

가령 예를 들어 10% 지급준비율이라고 한다면 방코 업자는 고객들이 맡긴 금화의 10퍼센트만 가지고 있어도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남은 90%의 금화는 전부 대출하여 고리대금을 통한 이익을 보는 것이다.

‘아직 이 부분에 무지한 거 같으니 크게는 안 될 거야. 끽해야 두 배에서 세 배 정도가 되겠지.’

잠시 후 고심하던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좋다. 대신 세부 내용은 그대와 내가 따로 만나 정하는 게 좋겠구나. 그리고 이 특별 허가는 외부로 발설하는 걸 엄히 금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대들도 이 이야기에 대해선 앞으로 침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것은 황명이다.”

황명이란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

대놓고 사기를 치겠다는데, 이걸 또 숨기란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으나, 황제와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가문에서 주도하는 일이었기에 힘없는 그들로서는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모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그것을 승인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려주었다.

“내가 그리 결정한 것은 그게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에 그러하다. 정 불만이라면 나중에 제국에 위기가 처했을 때 그만한 돈을 대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나 역시 모두를 기만하는 걸 멈추겠다.”

제국을 살릴 정도로 자금력이 풍부한 곳은 사실상 리옹 길드가 유일했다.

그런 리옹 길드에 버금가는 귀족가도 없으니, 모든 귀족들은 침묵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확인한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일에 반대하는 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앞으로 이 이야기가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길 바란다. 만약 이 이야기가 제국민 사이에서 퍼진다면. 그 이야기를 퍼뜨린 자를 잡아 황명을 어긴 죄를 물어 엄히 다스리겠다.”

황제의 으름장에 몇몇 귀족들은 목울대로 침까지 삼켰다.

그런 귀족들을 보는 황제가 생각했다.

‘이게 나의 최선이다.’

황제는 제국의 안위를 위해 돈이 필요했고, 록펠러 역시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장사를 하고 싶었으니.

이번 일은 그 둘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록펠러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짓자.

이를 보다 못한 싱클레어 가주가 나섰다.

“폐하께서는 정녕 저자를 믿으시는 겁니까? 저자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제국의 위기를 들먹이며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황후 루시아가 엄하게 그를 다그쳤다.

“그대야말로 아직까지도 내 오라버니의 진의를 의심하는 것이냐?”

정말 아무것도 아닌 줄로만 알았던 어린 황후가 저리 말하니.

제아무리 싱클레어 가주라 할지라도 일단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판을 아주 제대로 깔아놨군. 그동안 존재감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황후가 저런 성격이라니…… 너무 방심했어. 설마 일이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황후 폐하. 제가 한 말이 불쾌하셨다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단지…….”

루시아도 록펠러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시끄럽다.”

어리지만 당돌한 황후를 의식한 황제도 자신의 아내를 챙기기 위해 목소리를 내주었다.

“내 옆자리에 있는 사람은 내 아내이자 제국의 황후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으니 이 시간 이후로 황후에 대한 무례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록펠러란 사람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를 공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았다.

천하의 싱클레어가 이리도 초라해질 수 있다니.

제국 역사상 이런 적이 없었거늘…….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자신도 바뀐 세상에 적응해야만 했다.

“제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부디 그 화를 거두어주십시오.”

그렇게 싱클레어 가주가 꼬랑지를 내리자.

이제 록펠러의 세상이 되었다.

감히 누구도 자신의 말에 토를 달 수 없게 된 곳에서.

록펠러는 아주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주었다.

“폐하, 폐하께 긴히 아뢸 게 있습니다. 고블린 달러는 제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몇몇 제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블린 달러를 신뢰하지 못한 제국민들 중 일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란트만 고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허락할 록펠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고블린 달러가 필요 없다면.

그것이 필요하게 만들면 그만.

“그래서 제가 폐하께 한 가지 제안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고블린 달러의 활성화를 위해서 앞으로 제국의 모든 세금은 고블린 달러로 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고블린 달러를 완성시키는 마지막은.

세상 모두에게 고블린 달러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세금을 앞으로 고블린 달러로만 내게 하라?”

“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국 내에서 고블린 달러는 더욱 큰 가치를 가지고 널리 쓰이게 될 겁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하려는 귀족들이 있었으나.

애당초 테페즈와 싱클레어 가문도 닥치고 있는 마당에 그들이 나설 자리 따윈 없었다.

거기다 아까 전 싱클레어 가주를 윽박지른 어린 황후까지 신경 쓰여 장내엔 오직 록펠러와 황제의 목소리만 돌아다녔다.

“거기서 문제는 없겠지?”

“하하, 폐하. 거기서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애당초 고블린 달러는 저희 리옹 길드에서 책임지고 전부 달란트로 교환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고블린 달러가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될 겁니다.”

황제가 살짝 갈등했으나, 그는 이미 이스마일의 가주와 결혼한 자였다.

문제가 생겨도 이스마일 가주가 있으니 크게 염려될 게 없다고 판단한 황제가 마지못해 승인해 주고 말았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앞으로 제국의 모든 세금은 달란트가 아닌 고블린 달러만 받겠다. 이를 널리 알리고 시행토록 하라.”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옅게 웃어 보이는 록펠러가 황제를 향해 가식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앞으로도 소인 록펠러 로스메디치는 폐하의 충실한 종으로서 제국 번영과 평화를 위해 성실히 이바지할 것을 다시 한번 맹세하겠습니다.”

할 말이 있어도 입조차 뻥긋하지 못하는 귀족들은 그제야 새 명문가의 탄생을 인정하고 말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국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로 군림해 있었던 검술명가 테페즈와 마법명가 싱클레어가 아래로 밀려나고, 그 위로 금융명가라 할 수 있는 로스메디치 가문이 우뚝 올라선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민이었다고 들었었는데…….’

‘날고 기는 평민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태생도 천한 사람이 저리될 줄은.’

‘말만 합하지 거의 대공 수준이군. 처음엔 거느린 영지가 없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저자가 당장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만 보더라도 이건 뭐 황제 다음이겠어.’

술렁이는 귀족들이 록펠러를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마지막 생각은 오직 이것이었다.

‘무조건 잘 보여야 돼. 저자에게 찍히면 끝이야.’

‘화폐 통제권까지 있으니 이건 뭐 황제나 다름없군.’

‘괜히 밉보이면 안 되겠어. 이참에 귀한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나?’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결혼은 했다고 했지? 그래도 내 딸이 예쁘니 한번 노려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귀족들의 생각이야 록펠러가 모를 리 없었다.

‘내 앞에서 거슬리지 않게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다. 여기서 내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니.’

자리에서 물러나는 록펠러를 유심히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테페즈 가문의 주인이자 아까 전 록펠러와 잠시 언쟁을 벌였었던 일라이저 테페즈였다.

그는 아주 흥미롭게 록펠러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영 별로였지만.’

적어도 황제 앞에서 제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그를 보니, 그도 처음 가졌던 생각을 자연스레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계속 보니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군. 적어도 싱클레어 녀석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

앙숙인 싱클레어 가주와 다르게 그는 금융 쪽으로 탁월한 실력을 가진 자였다.

즉, 친하게 지내면 얻을 게 많다는 소리다.

‘좋게 지내서 나쁠 게 없어 보이는군. 어차피 무를 숭상하는 우리 가문이야 돈만 밝히는 가문하고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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