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36. 왕관 전쟁 #2(3)
“이한이 마법으로 어떻게 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마법은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했단 말이냐?”
“원리까지는 저도 모르죠. 제가 그쪽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저도 알아낼 길이 없어요.”
“…….”
3황자의 표정이 굳어지자 그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위조를 하려는 게 부족한 군자금 때문이라면 최선은…… 다른 식으로 돈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떠오르는 곳은 단 하나였다.
고블린 방크.
리옹 길드가 가지고 있는 자금력에 대적할 곳은 오직 그곳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쪽 자금을 끌어다 쓰는 건 왕관 전쟁의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야.’
“그렇다고 해서 고블린 방크에서 돈을 빌리게 되면 황제 폐하가 노하실 거예요. 결국 이기더라도 의미가 없을 테고요.”
그것을 모를 리 없는 3황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왕관 전쟁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서도 인간 외의 종족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었다.
이는 훗날 타 종족의 내정간섭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러했다.
‘빌어먹을…….’
고블린 달러를 위조하여 2황자 군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알아낼 길은 전혀 없는 것이냐?”
“저나 가문에서 고안해 낸 마법이 아니라, 이한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마법이라면 그 마법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이한이 그리 대단하단 말이냐?”
3황자는 싱클레어 가문 출신이었으나 마법적 재능만 가지고 있을 뿐 마법적 지식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조언을 얻고자 그녀를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에 가까웠다.
“네,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죠. 저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법을 구현하니까요.”
“크흑…….”
아무래도 마법의 힘을 활용하여 리옹 길드의 차용증서를 위조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법은 가히 절대적인 힘.
세상 모든 걸 마음대로 이룰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해왔거늘.
오늘 이날 처음으로 그 마법의 한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럼…….”
3황자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주변에 있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다른 의견은 없느냐? 더 좋은 방법. 위조가 불가능하다면 부족한 군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
그 물음에 싱클레어 출신의 장수가 입을 열었다.
“당장 끌어들일 수 있는 자금은 없습니다. 아니면 가문의 미래를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쓸 수 있겠지만, 전세가 기운 이상 싱클레어 가주님께서 그걸 허락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주님 입장에서도 그건 도박에 가까우니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그럼 다른 의견은?”
“예전에 유니온이 살아 있었다면 그쪽으로 돈줄을 살릴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건 무립니다. 사라졌으니.”
“유니온 외에 그 정도 자금을 댈 귀족 가문이야 몇 군데 있긴 하지만 2황자군이 워낙 기세 좋게 나와서 전부 관망세로 돌아가 저희를 도와줄지는 의문입니다.”
“칼만 전하. 아무도 모르게 고블린 방크에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저희가 고블린들에게 돈을 빌렸다는 걸 어찌 알겠습니까? 잘 숨긴다면 별 탈 없이 넘어갈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이 자리에 불려온 이자벨라는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것은 불가함을 밝혔다.
“그건 제가 반대에요. 왕관 전쟁이 끝나게 되면 전부 한 명의 폐하 밑으로 귀속될 거예요. 그 황제 폐하가 칼만 전하가 되는 건 저도 바라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만 전하께서 고블린들에게 휘둘리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크리스찬 전하가 황위를 물려받는 게 낫겠죠.”
칼만도 같은 생각이었나, 이것은 자신의 미래와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돈 없이는 군을 이끌 수 없다. 당장 돈이 급한 마당에 나보고 죽으란 말이냐?”
“아니면…….”
제국 역사상 왕관 전쟁에 참여한 황자들은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죽었다.
하지만 일부 황자들은 죽는 게 두려워 제국에서 멀리 도망치거나 아니면 승자에게 무릎을 꿇고 한평생 갇혀 사는 조건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경우가 있긴 했다.
“크리스찬 전하께서는 그래도 라이얀 전화와 달리 성격이 유순하고 들었습니다. 더 이상 싸움이 깊어지지 않고, 항복하는 조건으로 크리스찬 전하에게 자비를 구한다면.”
그녀 역시 트리니티 테페즈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저희야 이번 왕관 전쟁에서는 패하게 되겠지만. 어쩌면 전하도 살고, 제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왕관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솔직히 좋아할 사람은 저희와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다른 종족들이니까요.”
“크리스찬이 날 살려줄 것 같으냐?”
“그거야 크리스찬 전하만이 알고 있겠죠. 아니면 이 상황이 더 길어지기 전에 물어보기라도 하시든가요.”
“…….”
이후 말이 없어진 3황자는 홀로 남아 깊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3황자는 자신의 뜻이 담긴 서신을 2황자 진영에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돌아온 서신을 읽고 3황자는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과 함께 2황자로부터 목숨을 부지받는 조건으로 한평생 특정 영지에 갇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서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의 승리로 왕관 전쟁이 끝나자.
제국에선 새 시대가 열렸다며 모두들 좋아하였고, 그런 그들 중에는 2황자가 이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두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2황자가 이길 줄 알았던 록펠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승전보가 담긴 편지를 읽어 내렸다.
‘고블린 달러를 위조하려다 실패한 직후 바로 꼬랑지를 내렸군.’
3황자가 항복하는 시나리오는 이전에는 없었다.
록펠러가 기억하기론 3황자 칼만은 생각보다 치졸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길드의 차용증서를 무리하게 위조하며 군을 유지시키다 결국 한계치에 다다라 왕관 전쟁에서 패하고 만 것이다.
‘그땐 2황자도 자비 없이 죽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좀 의외군.’
왕관 전쟁에 참여한 황자를 살려두지 않는 것은 훗날 있을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크리스찬이 그러하지 않고 칼만을 살려둔 것은 이후에 있을 새 시대에 싱클레어 가문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록펠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겠지.’
어찌 됐든 제국의 세 명가에서 나온 황자들이 왕관 전쟁에 참여했고, 그 승리자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교단과 리옹 길드가 지지한 이스마일 가문 출신의 황자가 되었다.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
애당초 2황자가 이겨야만 로스메디치 가문이 제국 화폐의 모든 통제권을 가져올 수가 있었다.
보통이라면 절대 주지 않겠지만, 자신은 이미 이스마일의 여자와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스마일에서도 굳이 안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안 주는 게 그들 입장에선 손해였으니 록펠러는 아무 걱정도 없는 상태였다.
‘어쩌면 실비아랑 결혼한 게 내 인생에 있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군.’
다만.
제국 명문가 출신이고 아름답기까지 했으나, 딱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었다.
“저희가 이겼나 보네요.”
시도 때도 없이 귀신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무리 자신의 아내라지만 너무 섬뜩했던 것이다.
“내가 뒤에서 나타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미안해요. 이미 습관이 돼서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말만 안 했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경우가 많지?”
“앞으론 정말 조심할게요.”
“조심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절대 그렇게 하지 마. 가끔씩 보면 식겁하단 말이야. 내가 무슨 소드마스터라도 되는 줄 알아? 난 일반인이야. 그냥 돈이나 만지는 일반인이라고.”
“미안해요.”
잠시간 아내와 티격태격하던 록펠러는 그녀에게 자신이 받았던 편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조만간 황제 즉위식이 열리는 모양이야. 그리고 약속대로 내 누이동생을 데려가 혼인할 생각인 것 같고.”
이전까지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민 집안이었던 로스메디치 가문은 왕관 전쟁 이후 제국의 귀족가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가문이 됐다.
교단, 또는 새 교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모자라 왕관 전쟁의 승자인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을 교단과 함께 유일무이하게 지원한 가문이었고, 또한 가문의 누이동생을 새 황제가 황후감으로 찍어놨으니 아무리 신출내기 귀족 가문이라 할지라도 그 위세가 도무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는 그랬다.
제국 역사상 3대 명가에 견줄 새로운 가문이 탄생했다고.
바로 ‘금융명가 로스메디치’가 말이다.
“축하드려요.”
“축하하긴 뭘. 내가 좋으면 당신도 좋은 거고, 또 당신이 좋은 거면 나도 좋은 거지.”
“그런데 당신은 일이 이렇게 될지 정말 몰랐던 거예요?”
그녀는 늘 품고 있었던 궁금증을 그에게 던져보았다.
그러자 록펠러는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해주었다.
“당연히 몰랐지. 그냥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을 뿐인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말을 마친 록펠러는 제 앞에 있던 편지들 중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온 편지를 들어 올렸다.
‘시기가 좀 이르긴 한데.’
시기가 이르다고 한들.
어차피 예정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슬슬 놈들이 움직이겠지.’
드워프들은 이미 군을 다 움직여놓고, 나중에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오래 전부터 자기들 땅이었는데, 그 땅을 제국에서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하여 금맥전쟁 이전에 승기를 잡은 건 바로 드워프였다.
제국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미리 전진 배치시켜 놨던 드워프 군을 움직여 몬테펠트로 영지를 그대로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후 몬테펠트로 영지의 가치를 알아본 제국의 반격으로 인해 그 유명한 금맥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건 금맥전쟁인가?’
고블린 달러는 새 황제가 즉위하고 제국 화폐의 모든 통제권을 로스메디치 가문에 넘김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블린 달러의 신뢰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금화가 뒷받침되어야만 했다.
‘고블린 달러의 완성이 아니라 패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막대한 양의 금화는 무조건 필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몬테펠트로 영지는 아무에게도 내줄 수 없는 땅이기도 하지.’
록펠러는 그 꿈이 작지 않았다.
자기 나이라고 해봐야 고작 스물이 갓 넘은 정도였다.
당장 제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의 힘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세울 수 있었지만, 대륙 전체적으로 퍼져 있는 수많은 이종족들과 타 세력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제국을 벗어나 드워프나 엘프, 그리고 오크나 고블린까지 그 모든 종족들을 내게 무릎 꿇기 위해서라도 고블린 달러는 영원한 패권을 가져야 하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들은 각자 그들만의 고유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특히나 두각을 드러낸 종족은 바로 고블린이었다.
그들은 두카트라 불리는 순금 함량이 제법 높은 금화를 앞세워 대륙 전체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륙 공용 화폐가 고블린의 금화인 두카트가 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엄청났던 것이다.
‘고블린들이 가진 통화 패권은 머잖아 내게 넘어올 거야. 그리고 제국을 포함한 모두는.’
록펠러가 가진 원대한 꿈.
그는 소드마스터도, 대마법사도 아니었으나.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 발아래서 설설 기게 되겠지. 결국 세상은 권좌가 아닌 금융으로 지배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