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36. 왕관 전쟁 #2(2)
절대 화폐의 완성.
그것은 이한의 힘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돈을 찍어내는 게 쉬울지 내 나름대로 연구를 해봤어. 그래서 나온 게 이거야.”
이한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금속으로 된 원판 여러 개가 소환되었다.
원판의 세부 형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나중에 록펠러가 원하는 고블린 달러의 형태를 갖출 게 분명했다.
“이것으로 찍어낸 것들은 전부 당신이 말한 블록체인 마법으로 연결이 될 거야. 그럼 이렇게 되겠지.”
이한이 허공에 떠 있던 원판 하나를 챙겨 종이 같은 것에 찍어보았다.
“이렇게 찍으면 마법 각인이 생김과 동시에 가상의 장부가 공유되지. 그리고 이것들을 서로 갖다 대면.”
원판으로 찍은 두 종이를 가까이 붙이자 두 종이는 일제히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군요.”
록펠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푸른빛을 띠는 종이를 보았다.
확실히 자신이 고안한 형태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이걸 나중에 당신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서 나한테 하나 넘겨달라고. 아무튼 이렇게 같은 원판으로 찍어낸 종이들은 서로를 인정하듯 푸른빛을 띠게 되지. 그 말인즉, 같은 원판에서 나왔다는 거야.”
“그럼 가짜는 어떻게 구별되는 겁니까?”
대답에 앞서 이한이 씩 웃어 보였다.
“가짜야 당연히 반응을 안 하든가, 아니면 비슷한 녀석이 나타나면 이렇게 변하는 거지.”
이한이 미리 챙겨온 다른 종이를 가져다 대자 본래 푸른빛을 발하던 종이가 갑자기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희미해졌다.
“이런 식으로 구별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엉뚱한 녀석이 진짜 행세를 할 수 없는 거라고.”
“저희가 가진 건 진짜밖에 없을 테니, 가짜가 낄 틈이 없겠군요.”
“그렇게 되는 거지.”
이한이 허공에 떠 있던 원판 여러 개를 록펠러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받은 원판을 가공해서 당신이 원하는 고블린 달러인지 뭔지를 만들어보라고. 그리고 원판 하나는 나한테 넘겨주는 거 알고 있지?”
약속은 약속.
록펠러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하려고 했다.
“당연합니다. 대신 그 원판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쓰십시오. 이게 제가 내거는 조건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건데, 그걸 떠나서 내가 엄청나게 많이 찍어내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거야 고블린 달러를 완성시킨 당신에게 주는 일종의 수고비 정도로 생각하겠습니다.”
“수고비치고 꽤 많을 텐데?”
“원하는 만큼 찍어서 쓰시길. 아마 쓰다가 지치시면 그땐 찍어내기도 싫을 겁니다. 그쯤가면 돈이란 게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럴 일이 과연 있을까?”
“해보시면 자연히 알게 되겠죠.”
떠나기에 앞서 이한이 다른 걸 물어보았다.
위조 방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블록체인 외에 다른 장치는 없는 거야? 마법적인 장치야 내가 고안해 놨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장치가 있다면 위조 화폐를 구별하는 데 좋을 거 아니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록펠러가 답해주었다.
“제가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특수한 염료를 새 차용증서에 적용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물리적으로 위조 차용증서를 구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미리 고안해 놨습니다. 그리고 이건 길드 회의를 통해 여러 길드원들의 아이디어를 종합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긴.”
“이중삼중으로 위조된 차용증서를 거를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시길.”
며칠 뒤.
리옹 길드 전체적으로 기존에 발행됐던 차용증서가 새 차용증서로 교체되는 작업이 진행됐다.
기존에 있던 차용증서들은 전부 길드에 속한 방코에서 새 차용증서로 교환될 수 있었고, 교환된 차용증서들은 다시 시중에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리옹 길드에서 말하길.
정해진 기한 내에 교환되지 않은 차용증서는 나중에 효력이 없거나 무시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아, 사람들은 방코 앞에 줄을 서면서까지 기존에 있던 차용증서를 넘기고,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새로운 차용증서를 가져갔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자.
시중엔 새 차용증서만 돌아다니게 됐고,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자 드디어 가짜 차용증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싱클레어 가문에서 멋모르고 찍어낸 위조된 고블린 달러가 어느 방코에 닿은 것이다.
“전부 달란트로 환전하겠습니다.”
황도에 위치한 어느 방코에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고블린 달러를 가지고 찾아왔다.
방코 주인이자 리옹 길드원이기도 한 그는 그가 건넨 고블린 달러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블린 달러를 가져다대고 진위 여부를 확인해 봤다.
‘진짜랑 똑같기는 한데, 뭔가 영 느낌이 안 좋은데.’
그는 습관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짜 고블린 달러를 그가 건넨 고블린 달러에 대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블린 달러가 가짜 여부를 알리는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웃긴 것은 이와 반대로 상대방 고블린 달러는 진짜를 알리는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그거 어디서 가져오셨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전부 가짜라서 하는 소립니다.”
“가짜요?”
사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싱클레어 가문에서 가져온 거라고.’
“그럴 리가요. 이건 진짜입니다.”
“진짜?”
“네.”
싱클레어 가문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힘을 철석같이 믿었던 그는 오히려 이 상황에서 당당해졌다.
“뭔가 잘못된 거 같군요. 가짜는 그게 가짜입니다.”
누굴 바보로 아나.
가당치도 않는 소리를 늘어놓는 그에게 방코 주인이 큰 목소리를 냈다.
“가짜는 네놈이 가져온 게 가짜고! 그딴 가짜는 여기서 안 받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슈.”
당황한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가게 안에 멋모르고 서 있다가 이내 가게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폭력을 행사하자 황급히 가게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날.
3황자의 지시로 제국에 있던 여러 방코에서 가짜 차용증서를 가지고 달란트를 챙기려 했던 3황자의 부하들은 전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격해져가는 2황자와의 전투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3황자는, 기대했던 부하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이를 믿기 힘들어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전부 위조된 화폐라 달란트로 교환될 수 없다니.”
“모르겠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위조된 걸로 알고 있는데, 방코에선 진짜 고블린 달러를 가져다 대더니 이내 가짜라고 하더군요.”
“같은 푸른빛을 내게 해놨는데 왜?”
“저희야 모르겠습니다.”
당장 군을 이끌어갈 군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리옹 길드의 차용증서를 위조하여 부족한 군자금을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위조 화폐를 활용할 수 없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바로 3황자였다.
“가서 가문 사람들을 불러와라.”
3황자의 지시에 머잖아 싱클레어 가문에 속해 있는 몇몇 마법사들이 그에게 찾아왔다.
“완벽하다고 들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마법사들은 돋보기까지 가져와 진짜와 가짜를 유심히 살펴봤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절대 구분할 수 없는 게 그들이 만든 가짜 고블린 달러였다.
“저희가 만든 건 보다시피 완벽합니다. 외관도 거의가 아니라 100% 완벽히 일치하고, 또 서로 가져다 댔을 때 푸른빛을 내게 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진짜 고블린 달러가 단순히 푸른빛만 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진짜와 가짜를 붙였을 때 진짜가 푸른빛이 아니라 붉은빛을 내는 거지?”
“그건…….”
“이유를 한번 말해봐라.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너희들만 믿고 큰형님을 보낸 나만 바보가 되는 거니까.”
만약 고블린 달러에 대한 위조가 불가능했다면 3황자는 결단코 1황자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가 가진 전력으로는 2황자 군을 상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나마 고블린 달러를 위조할 수 있어야만 1황자를 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부족한 군대야 위조된 화폐로 다시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저명한 마법사들도 진짜 고블린 달러가 어떤 식으로 구동되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기야 그들이 블록체인이라는 의미에 대해 알기나 할까?
“칼만 전하. 저희로서도 이게 어떻게 발현되는 방식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이걸 구현한 마법사를 직접 데려와야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희가 위조한 이 화폐는 외관적으로는 진짜와 완벽히 동일합니다. 단지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진짜와 가짜가 만났을 때 진짜가 가짜를 아주 쉽게 구별해 낸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 원리를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냐?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군이 무너질 텐데.”
한숨만 쉬던 마법사들이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다.
“이런 방면으로는 아자벨라 아가씨가 최고니, 이자벨라 아가씨를 부르셔서 한번 물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기까지 이자벨라를 부르라고?”
그녀는 최전선에 서서 싱클레어 가문의 부흥을 위해 교황군과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최전선이니 그녀가 빠진다면 상당한 전력 손실이 있을 터.
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3황자가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자벨라를 데려오너라.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교황군과 길드에서 고용한 용병 부대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3황자의 선봉대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자벨라는 때아닌 부름에 급히 전투를 중단하고 3황자가 있는 막사로 찾아왔다.
“절 급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위조가 실패했다.”
“네?”
3황자는 어제와 오늘 있었던 차용증서 위조에 관한 이야기를 이자벨라에게 해주었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가문의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자벨라는 뜻하지 않은 소식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위조가 전혀 불가능한 상태다. 어찌 된 영문인지 완벽히 복제했어도 진짜가 가짜 차용증서를 쉽게 구별한다고 하더구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죠?”
“나도 모르겠으니, 네가 한번 살펴보거라.”
3황자는 이자벨라에게 진짜와 가짜 고블린 달러를 주었다.
그리고 이를 한참이나 살펴보던 이자벨라는 예전에 록펠러와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그 사람. 너무 자신감이 넘쳤어.’
마법은 싱클레어 가문이 제일이었다.
그런 마법사 가문을 상대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건 그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자벨라는 록펠러에게 도움을 준 자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한이란 사람이 도와줬나 보네요.”
“이한?”
이한 이야기가 나오자 3황자가 바로 표정을 구겼다.
이한은 지금 2황자 진영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2황자만큼이나 골치 아픈 사내.
3황자가 똥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이한이 고안해 냈다고?”
“네, 그렇게 보여요. 그때 그 길드장이란 사람이 너무 자신 있어 했거든요. 그래서 그땐 그냥 그러려니 넘겼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한을 믿었던 거네요.”
“이한이든 뭐든. 어찌 됐든 그 고블린 달러를 위조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어.”
3황자는 정말 절실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큰형님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큭…….’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 마법인지 무조건 알아내야 돼. 그래야 위조된 차용증서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자 이자벨라는 그게 불가능함을 알려주었다.
“그건 힘들 거예요. 애당초 이한이 개입해서 도와줬다면 그들은 위조 자체가 절대 불가능한, 완벽한 차용증서를 만들어냈을지도 몰라요.”
“위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