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35. 왕관 전쟁(1)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의 왕관 전쟁 참전 소식과 함께 제국의 다음 주인을 가리기 위한 왕관 전쟁이 시작되었다.
2황자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다수는 그의 참전 소식을 듣고선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는지 찾아봤으나, 그나마 소문이 돌고 있던 리옹 길드를 제외하고선 그 어느 곳도 2황자에게 지지를 표명한 곳이 없었다.
지지하는 세력이나 군대 없이는 왕관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에 모두는 2황자가 객기로 참전했을 거란 예측을 하였고, 실제로도 왕관 전쟁은 2황자를 무시한 1황자와 3황자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다.
“한심하군.”
왕관 전쟁 초기.
테페즈 가문의 막대한 후원에 힘입어 가장 유력한 차기 황제로 손꼽히는 1황자가 2황자의 참전 소식을 듣고 내뱉은 첫 마디였다.
“자금 지원이야 길드에서 해준다지만, 대체 군대도 없이 어떻게 이기려고. 그리고 교단은 또 어떻게 할 건데?”
1황자는 아주 가끔 만났었던 2황자, 크리스찬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이교도의 모습을 지우려 했는지 아니면 진실로 독실한 신자였는지는 몰라도 사리분별도 못 하는 바보 동생은 아니었다.
‘아니면 정말 뭔가가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런 게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야. 크리스찬에겐 아무 것도 없어. 설령 뭐가 있다고 해도 교단은 어쩔 수가 없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교단이란 게 바뀌지 않는 이상.
교단에선 이교도와 관련된 2황자의 승리를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설령 교단을 무시하고 황좌에 오른다 해도 그땐 교단하고 전면전이 될지도 모를 일.
‘그럼 왜 참전한 거지? 죽고 싶어 하는 바보도 아닐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군.”
그런 1황자의 말에 같이 있던 트리니티 테페즈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 생각이 있겠지. 설마 아무 계획도 없이 참전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더군다나 왕관 전쟁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살며시 눈가를 좁힌 1황자가 자신이 놓친 게 있는지 계속 생각해 봤다.
그러다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이한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과 이한이 각별하게 지낸다는 첩보가 있었지.’
각별한 사이.
어쩌면 그를 믿는 건 아닐까?
‘하지만 군대도 없이 이길 순 없어. 설령 이한이 대단하다고 해도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 없다면 그렇게 막 나가진 않겠지. 그 녀석도 거칠긴 해도 생각 없이 막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혹시 이한 때문은 아닐까?”
1황자가 내뱉은 물음에 트리니티가 긍정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확실히…… 이한이 있으면 골치 아프긴 하지. 하지만 이한 때문에 내가 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때 같이 있던 참모진 중 하나가 그에게 조언 같은 걸 해주었다.
“라이얀 전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람들을 보내 크리스찬 전하를 조용히 처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그러기엔 대치하고 있는 칼만이 너무 신경 쓰였다.
장수 하나도 아까운 상황.
“크리스찬도 생각이 있다면 이미 숨었겠지. 그리고 이한이 붙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 어려워. 당장 칼만을 신경 쓰기도 바쁘니까.”
그의 앞에는 자신의 군대와 3황자 군대가 나와 있는 지형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강 구도로 배치되어 있는 이 전력에서 무언가를 빼내 2황자를 치러 간다는 것은 1황자 입장에선 다소 곤란한 일이었다.
“차라리 칼만하고 서로 합의보고 같이 크리스찬을 잡으러 간다면 모를까. 하지만 칼만이 그럴 것 같지는 않고.”
트리니티 역시 동의했다.
“아마 그쪽도 같은 생각이겠지.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하는 걸 은근히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번 왕관 전쟁은 나와 칼만의 싸움이 되겠지. 설마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2황자가 나중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1황자가 확인 차 자신 앞에 있던 참모진들에게 물었으나, 그들은 침묵으로 긍정할 뿐이었다.
‘그나마 거슬리는 게 있다면 길드 세력인데…….’
그때 만났던 젊은 길드장이 떠오르자 1황자는 씁쓸한 표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사실 길드에서 작정하고 2황자를 밀어준다면 예기치 못한 일에 휘말릴 수 있었으니까.
“길드는 아직 조용하지?”
그 물음에 답한 것은 길드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자였다.
“길드에서 딱히 무얼 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아, 최근에 리옹 대성당을 증축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하더군요.”
“길드에서 크리스찬을 밀어주면 골치가 아파지는데…….”
트리니티가 말했다.
“그쪽 길드장이 그랬잖아. 2황자 쪽을 밀려는 건 그들도 바라는 게 있어서라고.”
“하지만 블랙라벨 유니온과 관련된 일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조용히 있으면 좋은 거지. 아직 다른 움직임은 없잖아.”
무언가가 생각난 1황자가 참모진에게 물었다.
“혹시 주변 용병 부대의 움직임은 있었나?”
1황자의 물음에 참모진 전원은 일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자신과 칼만에게 밉보일 짓을 용병 부대가 어찌한단 말인가?
그나마 2황자에게 승산이 있고, 아니면 길드에서 거절 못 할 액수를 제안한다면 또 모를 일.
하지만 그런 것도 없으니 1황자는 이번 왕관 전쟁에 참여한 2황자가 계속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용병 부대의 움직임이 없다면 길드에서도 작정하고 밀어주는 건 아닌 것 같군. 내가 만약 그쪽 길드장이었고 정말 크리스찬을 밀어줄 생각이 있다면 당장 용병 부대부터 알아봤을 테니까.’
“용병 부대가 조용하다는 건 길드도 나설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트리니티가 한 가지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스마일이 두려워서 도와줄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2황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한이 크리스찬과 친하기도 했으나, 애당초 이한은 돈을 받고 리옹 길드장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한이 있어서 그러긴 힘들 거야. 만약 이한이 돈을 가진 길드장 편을 든다면 크리스찬이나 이스마일도 어쩌진 못할 거야.”
이한 이야기가 나오자 트리니티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겠네. 그때 확실히 길드장 편에 섰으니까.”
“어쩌면 그것보다 길드에서 크리스찬의 눈치를 안 본다는 게 더 맞겠어. 이한을 믿고 있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럼 그때 얘기한 게 사실일까? 유니온과 통합 때문에 도와주는 척한다고 했었잖아.”
“그러면 좋은 거지.”
그때 한 장수가 허겁지겁 뛰어와 막사 안에 있던 모두에게 소리쳐 밖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라이얀 전하! 상대 진영에서 마법 포격으로 선제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2황자보단 당장 자신과 으르렁거리며 대치하고 있는 3황자 칼만이 문제였다.
괜한 곳에 신경 쓴 자신을 자책하는 1황자가 모두의 관심을 3황자에게 다시 집중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선 칼만부터 잡는다. 미리 얘기했던 대로 흔들기와 전방위 포위 공격을 시작해. 여기서 승기를 잡아야 다음 전투에서도 유리해질 수 있다.”
* * *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실 건가요?”
록펠러는 자신의 아내이자 비서이기도 한 실비아의 물음에 이렇게 답해주었다.
“우리야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서 힘을 기르는 게 맞아. 괜히 그들을 자극해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알아서 전력을 낭비하고 있는데, 우리 입장에선 무조건 좋은 거라고.”
왕관 전쟁에 참여한 황자들 중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황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기에 2황자가 걱정되는 실비아는 초조한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답은 아니에요. 지금이야 당장 싸움의 결판이 나지 않겠지만. 결국 양강 구도로 대치된 두 진영 중 어느 한쪽으로 전세가 급격히 기운다면 승패도 금세 갈릴 거예요.”
“걱정하지 말래도. 그렇게 쉽게 안 끝날 거야.”
확신하듯 말하는 록펠러에게 그녀가 의문을 토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 내 촉이 아주 좋다고. 그 촉이 말해주는데, 이번 왕관 전쟁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있어.”
그러자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신 촉이 좋다고 해서 세상 모든 일을 맞힐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자 록펠러는 단호히 답해주었다.
“아니. 내가 가진 촉은 절대적이야. 애당초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온 것도 전부 다 그 촉 때문인데.”
마음에는 영 안 들었으나 그녀 입장에선 그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건 길드장인 그의 입장에서 그가 원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조건 2황자가 왕관 전쟁에서 이겨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설마 교단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죠?”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그런 것도 있지.”
“교단에서 그렇게 쉽게 입장을 바꿀 수 있을까요?”
록펠러는 법황청으로 떠나 간간이 좋은 소식을 보내오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자금력이 풍부해진 베르키스 주교는 한때 좋았던 교황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켰고, 또한 이전에는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몇몇 고위 인사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전부 다 이자를 꽉 잡고 있는 록펠러 덕분이었다.
‘나와 그 사람에게 밉보이면 높은 예금 이자야 꿈도 못 꿀 테니까.’
놀라운 것은.
교단 내부도 나름 썩어 있어 돈에 환장하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미 소설에서 읽어서 교단이 썩어 있는 거야 잘 알고 있었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돈을 밝힐 줄이야.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니까.’
특히나 높은 예금 이자에 흔들린 교인들은 이자를 배척하려는 교리도 잊은 채, 이미 그 혜택을 받고 있던 몇몇을 핑계로 록펠러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록펠러에게 휘둘려 전부 베르키스 주교의 뜻을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쪽으로 그들의 입장을 바꾸었고, 그런 이유로 교단 내에서 베르키스 주교의 입지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자체적인 세력도 꾸릴 정도.
‘주교 각하께서 궁무처장의 자리도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알게 되겠지.’
“기다려 봐. 어차피 발만 동동 구른다고 딱히 해결되는 건 없으니.”
세상 편한 소리를 하는 자신의 남편에게 그녀는 불만이 많았다.
“자기 집안일 아니라고 너무 느긋하시네요. 제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를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걱정하지 말라니까. 전부 잘되고 있으니까.”
록펠러를 지그시 노려보던 그녀가 이내 그 표정을 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럼 믿을게요. 어차피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떠나간 자신의 아내에게 록펠러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저리 못 믿어서야. 하긴 나라도 촉이 좋다고 까부는 녀석을 좋게 보진 않을 거 같긴 해. 하지만 어쩌겠어? 내 촉은 사실인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선 전혀 무지하지도 않고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 펼쳐질 세상도.
‘전부 내 손아귀에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