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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139화 (139/181)

§139화 34.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 #2(2)

록펠러는 그를 바로 알아보진 못했다.

그와 초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서로 초면인 것 같은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제국의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입니다. 록펠러 공에 대한 이야기는 실비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연기해 주는 록펠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설마 크리스찬 전하셨던 겁니까?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2황자와 악수를 나누던 록펠러가 돌연 자신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럼 이분은…….”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이 현 이스마일의 주인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를 대신하여 몰락한 가문을 이끌고 있는 가엾은 동생이기도 하죠.”

표정 연기를 하느라 바쁜 록펠러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 자리에 끼지 못하는 리카르도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럼 저분은 대체 누굽니까? 제가 조수로 거둔 것 같은데.”

여태껏 리카르도라 생각했던 자신의 조수에 대한 정체를 묻자, 이에 대한 답은 실비아가 대신해 주었다.

“저희와 같은 가문 사람입니다. 저를 대신하여 가끔씩 돌아가신 리카르도 오라버니 역할을 맡아주고 계시죠.”

“그럼…… 저 사람은 당신의 진짜 오라버니가 아닌 겁니까?”

여기서 리카르도란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없었다.

“네, 제 오라버니는 이미 오래전에.”

뒷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2황자가 나섰다.

“이스마일은 비밀이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흉내 낼 수 있죠. 실비아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리카르도를 흉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인데요?”

“남자라 해도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건 이스마일이 갖는 천부적인 재능이니까요.”

“아…… 그런 게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보군요. 저야 처음 알았습니다.”

“저희에 대해 너무 깊게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일에 대해 알아봤자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록펠러가 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신 이유가 뭡니까? 갑자기 부담스럽게 정체까지 밝히시고…….”

록펠러의 시선이 스스로를 이스마일의 가주라 소개한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러자 그녀가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계속 당신을 지켜봤어요. 그리고 이제 충분히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서 제가 크리스찬 오라버니를 여기까지 불렀습니다. 당신이 바라고 있는 것과 저희의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죠.”

그녀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록펠러가 모를 리 없었다.

“제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이건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2황자 전하와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또 비서였던 당신이 설마 이스마일의 가주였을 줄은…… 그런데 이거 일이 잘못되면 제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까?”

“아니요. 걱정하시는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그럴 리가. 가주인 당신을 알고 있는데 문제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자 그녀는 약간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답해주었다.

“그때 저와 내기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시나요? 제가 지게 되면 절대 배신하지 않기로 서로 내기했던 것 같은데.”

록펠러는 예전에 리카르도와 했던 내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토마스 분과 한 내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토마스 분은…….”

“그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

“예? 그게 가능한 겁니까? 분명 남자였는데…….”

“제 이명이 천의 얼굴이에요. 누구든 변신하여 연기할 수 있죠. 그게 설령 남자라도 말이죠.”

“아…… 그렇게 된 거군요.”

여기서 록펠러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진짜 여자일까?

아니면…….

‘솔직히 모르겠어. 지금 한 말이 진짜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애당초 여자가 지금까지 남장을 했다는 건데.’

록펠러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그녀가 말했다.

“제 재량으로 자리는 마련해 드렸으니, 이제 두 분이서 대화를 나눠보시는 게 어떨까요?”

크리스찬도 목소리를 냈다.

“저 역시 소문의 당신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실비아에게 여러 이야기는 들었어도 어떤 분인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록펠러가 물었다.

“저분께 제 얘기를 들으셨다면…… 대충 어떻게 소개한 겁니까?”

그 물음에 크리스찬 황자는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굉장히 잇속에 밝으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은 알았지만, 너무 적나라한 게 문제였다.

‘포장은 안 한 건가?’

“너무 솔직하게 소개했군요. 뭐 어느 정도 맞습니다. 일단 손해는 안 보죠.”

록펠러가 약간 원망이 담긴 시선을 그녀에게 흘렸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표정이란 게 없었다.

“일단 앉으시죠.”

그래도 비서의 직책을 다하는 실비아가 둘을 위해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두고, 2황자와 마주 보고 있던 록펠러가 살며시 운을 뗐다.

“찾아오신 이유야 대충 짐작이 됩니다. 왕관 전쟁에 나가실 겁니까?”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서 2황자는 별다른 지지 세력도 없이 왕관 전쟁에 나가게 된다.

그가 믿었던 것은 오직 하나.

‘이한뿐이지.’

이한을 믿었기에 아무런 지지 세력도 없는 2황자가 왕관 전쟁에 나가 이길 수 있었고, 결국 교단의 방해마저 뿌리치며 황좌에 앉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교단과 불미스러운 일은 많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교단이야 내가 잡을 테니까.’

“만약 나가신다면 여기까지 온 이유야 뻔하겠죠. 제 의사를 확실히 알기 위함이 아닙니까?”

2황자는 부정하지 못했다.

“정확합니다. 저는 왕관 전쟁에 나가기에 앞서 록펠러 공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이때 2황자의 시선이 근처에 있던 실비아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실비아가 추천해주더군요. 왕관 전쟁에 나가더라도 록펠러 공과 한 번쯤은 만나야 한다고.”

실비아는 대답 없이 2황자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사이 록펠러가 목소리를 냈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전하와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정말 절 지원해 주실 생각이 있는 겁니까?”

“이미 저분을 통해 들으셨을 텐데요? 제 의사야 뻔한 거 아닙니까.”

“네, 하지만 계속 의문이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후보들도 있는데, 굳이 저를 택하신다는 게 납득하기 힘들었거든요.”

2황자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지 않습니까? 아니면…… 록펠러 공께선 그저 저희가 두려웠던 겁니까?”

가당치도 않은 물음에 록펠러가 단칼에 잘라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 역시 바라는 바가 있어 전하를 밀어드릴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단, 서로 간의 조건이 맞다면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2황자가 모를 리 없었다.

2황자는 걱정하는 기색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절 밀어주신다면, 나중에 제가 이겼을 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제야 록펠러는 입가에 미소를 드리울 수 있었다.

‘바라는 거야 아주 많지. 하지만 핵심은 단 하나.’

“우선 제가 아는 크리스찬 전하께서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맞습니까?”

그 말에 2황자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당신과 한 약속이 있다면. 제 모든 걸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사람이란 게 말로는 무얼 못 하겠습니까? 하여 이 조건부터 걸고 싶군요.”

“어떤 걸…… 말입니까?”

“제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전하의 배필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이입니다.”

록펠러가 한 말의 뜻을 2황자가 모를 리 없었다.

‘예상이야 했지만.’

잠시간 말이 없던 2황자는 이내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는 록펠러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록펠러의 누이동생에 대해선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가 설령 반신불구라도 무조건 데려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부디 좋은 여자였으면 좋겠군.’

2황자가 근처에 있던 실비아에게 시선을 주자 그녀도 납득한 모양인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스마일의 부활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야 충분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둘을 보며 록펠러가 목소리를 냈다.

“전하의 입장에선 한때 평민이었던 제 누이동생을 데려가는 게 탐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 신의 뜻이라면 저는 기꺼이 당신의 누이동생을 제 아내로 맞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저는 전하가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런 걱정이라면 전혀 안 하셔도 됩니다.”

록펠러는 이 자리에 없는 루시아의 의중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누이동생의 인생에서 제국의 황후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남자가 못생긴 것도 아니고, 앞으로 황제가 될 사람인데. 루시아가 싫어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모를까. 루시아에겐 분명 좋은 일이 될 거야.’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건이 하나 더 있다는 말에 2황자와 실비아가 사뭇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는 록펠러 로스메디치.

그는 무(無)에서 시작하여 저 자리까지 올라온 자였다.

절대 쉬운 조건은 아닐 터.

“거기서 또 있다는 겁니까?”

“앞서 내건 조건은 서로 간의 신뢰 구축을 위한 겁니다. 그리고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대체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2황자가 록펠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제발 어려운 부탁이 아니길 빌었다.

‘부디 말도 안 되는 부탁은 아니어야 할 텐데.’

록펠러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중요한 거지. 이것이야말로 고블린 달러를 완성시킬 마지막 화룡점정이 될 테니까.’

“만약 전하께서 왕관 전쟁에서 이기신다면 분명 다음 황제 폐하가 되실 겁니다. 그렇다면 제국의 뜻이 곧 전하의 뜻이 되겠죠.”

록펠러가 말했다.

“여기서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입니다. 제국의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할 권한을.”

이 순간 록펠러의 눈빛은 무섭게 살아 있었다.

“전부 제게 주십쇼.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저희 로스메디치 가문이 그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입니다.”

그 말에 2황자나 실비아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

그가 했던 말은 다르게 보면 제국이란 나라를 자신이 주무를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라의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할 권한을 주는 것은…… 그건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입니다. 아니, 절대 들어줄 수 없죠.”

그러자 록펠러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고수했다.

“그렇다면 유감이지만 저 역시 전하를 도와드릴 수가 없겠군요.”

여기서 문제가 터질 줄이야.

가만히 지켜보던 실비아가 나섰다.

“제국의 화폐를 완전히 통제할 권한을 달라는 것은 당신이 황제를 대신하여 제국을 지배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록펠러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며 웃어 보였다.

“그럴 리가요. 단순히 화폐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겁니다. 제가 언제 이 나라의 법을 만들겠다고 했습니까? 법은 황제 폐하가 만드는 것이죠. 저같이 고리대금업이나 하는 방코 업자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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