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33.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3)
마차를 타고 록펠러와 함께 방코로 이동 중이던 그녀가 자신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록펠러에게 아까 전 베르키스 주교와의 대화 내용을 가지고 의문을 표했다.
“록펠러 공께서도 나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어떤 식으로 베르키스 주교 각하를 도와주실지는 의문이네요.”
본래라면 비서인 그녀가 감히 질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를 개의치 않는 록펠러가 웃으며 받아주었다.
‘일반적인 비서가 아니지. 리카르도 본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여자가 진짜일 수도 있고. 정답이야 알 수 없어. 이건 소설에서도 안 나오는 내용이니까.’
“표정이 계속 불편하시던데, 그게 궁금하셨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네, 일반적으로는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던데요?”
이스마일 가문이 교단에게 배척당한 것처럼.
베르키스 주교 역시 방코 일과 관련하여 교단 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 인물이었다.
“아마 교단 내에서 방코를 감싸는 교인은 거의 없을 거예요. 있다면 베르키스 주교 각하가 유일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서는 방코 업자들을 두둔하시다가 결국 안 좋게 되셨잖아요? 제가 알기로도 대주교 자리에서 주교 자리까지 내려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네, 맞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록펠러 공께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서요.”
록펠러는 대답에 앞서 다른 걸 물어보았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보다 아시는 게 참 많으시군요. 그 나이대 여자라면 이런 쪽으론 관심이 별로 없으실 텐데.”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었어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다라……
참 편한 둘러대기였다.
‘그래, 나도 잘 써먹는 거지.’
“그러시군요. 하긴 당신처럼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오빠를 두셨으니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아는 게 많으니 당연히 궁금하신 것도 많으시겠죠.”
록펠러는 그녀가 궁금하던 것을 답해주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어떤 식으로 주교 각하를 도와줄 것인지 의문이시겠죠?”
“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어요. 답이 안 보이거든요.”
록펠러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럴 겁니다. 제가 아직 행동으로 보인 건 아니니까요. 그럼 당연히 의문일 수밖에 없겠죠.”
“무슨 좋은 수가 있는 건가요?”
“좋은 수라기보다는 그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다음 말을 잇기 전에 록펠러의 얼굴에서 진한 미소가 묻어나왔다.
“그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원초적인 욕망이요?”
“네, 바로 돈에 대한 탐욕이죠.”
돈에 대한 탐욕은 교인이라면 분명 멀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이것을 멀리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돈에 대한 탐욕이라…… 하지만 독실한 교인이라면 분명 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본래는 그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설령 독실한 교인이라도 말입니다.”
그녀는 록펠러가 한 말을 곱씹어보았다.
확실히…….
‘아무리 멀리하려고 해도 교회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돈이 싫어도, 결국 그 돈이 필요한 게 교인이 갖는 모순이었다.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베르키스 주교 각하뿐만이 아니라 몇몇 교인들도 방코에서 주는 이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자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바로 교회인데, 그 교회에서 최근 들어 이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인가요?”
“네, 솔직히 교인 입장이라고 해도 이자라는 게 나한테도 좋으면 그만이거든요. 예전이야 어쨌든, 당장 나한테 좋으면 그만이란 소립니다.”
확실히 최근 들어 록펠러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선 교단의 고위 사제들도 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간단합니다. 과거 이자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방코 업자들만 득을 보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교단 입장에서는 감히 신의 힘으로 장사를 하는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자라는 것이 오로지 나쁜 면만 가지는 게 아니라, 예금 이자라는 좋은 면도 갖게 된 것이죠.”
“그럼 그 예금 이자 때문에 교단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건가요?”
“전부는 아닙니다. 아직 몇몇 교인들은 이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은 이자 수익으로 교회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예로 블랙라벨에 있을 당시 절 찾아오셨던 하만 대주교 각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하만 대주교 각하라면…… 네, 그때 찾아오신 건 알고 있어요.”
“하만 대주교 각하께서도 제가 주는 예금 이자에 관심이 참 많으시더군요. 아마 그때 당시 예금 이자로 하만 대주교 각하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유니온과 통합함에 있어 교회 세력은 크나큰 걸림돌이 됐을 겁니다. 교단에서 개입하는 것만큼 귀찮고 어려운 일이 또 없거든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니온에서 블랙라벨 교구에 바친 성금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만 대주교가 유니온의 편을 들지 않고 길드의 편을 들어준 것은 그만큼 록펠러가 제시한 예금 이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지금 한두 분씩 늘어나고 계십니다. 솔직히 공짜로 돈을 불려준다는데 그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저라도 먼 거리를 달려와 교회 재산을 맡기고 싶을 겁니다. 신뢰야 이미 검증됐으니 무조건 빨리 맡길수록 좋은 것이죠.”
그 말에 그녀가 우려를 표했다.
생각보다 교단이란 곳이 그만큼 고지식한 곳이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교단에선 아무 말도 안 나올까요? 본래는 이자를 싫어했잖아요. 그것도 끔찍하게요.”
“신의 힘으로 교회를 돕는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
“솔직히 그런 것들도 교인들이 해석하기에 따라선 충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겁니다. 어찌 됐든 예금 이자란 것은 그들에게도 좋은 것이니까요.”
그녀가 뭐라 해도 결국 지금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다.
베르키스 주교야 그렇다 치더라도 블랙라벨에 위치한 하만 대주교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나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예금 이자를 쥐고 있는 록펠러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입김도.
“저를 찾아오는 모든 교인들을 예금 이자의 노예로 만들 생각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자율은 제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제게 밉보이거나 아니면 제 뜻과 다르다면.”
록펠러가 물었다.
“제가 많은 이자를 제안하겠습니까?”
고개를 젓는 록펠러가 말했다.
“결국 많은 이자를 받으려면 제가 한 말을 가벼이 흘려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가진 생각입니다.”
록펠러의 말을 듣게 된 그녀는 나름 생각이 깊어졌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문제라고 생각했던 교단을 록펠러가 말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스마일 가문 출신의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이 왕관 전쟁에 나가 이기는 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녀의 미묘한 시선이 꽤 오랫동안 록펠러에게 머물렀다.
34.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 #2(1)
늦은 밤.
록펠러가 업무를 보고 있는 방코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이 찾아왔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쓴 그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자를 데리고 방코에 찾아왔는데, 신기한 점은 그를 보고도 록펠러의 조수로 있던 리카르도가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록펠러 공께선 2층에 계십니다. 절 따라오시죠.”
리카르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에게 예를 보이며 록펠러가 있는 2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둘은 머잖아 비서와 함께 있던 록펠러 앞에 설 수 있었다.
“누구…… 십니까?”
록펠러가 늦은 밤 소식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 정체불명의 손님에게 의문을 표하자 그를 2층으로 데려온 리카르도가 록펠러에게 고개를 숙여 사죄를 했다.
“그동안 록펠러 공을 속여서 죄송했습니다.”
“네에? 지금 무슨…….”
말을 마친 리카르도가 정중하게 물러나 섰고, 그 자리는 후드의 남자가 대신하게 됐다.
어안이 벙벙해진 록펠러가 계속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슬슬 나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록펠러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여자치고는 무거운 음색이었다.
“옆에서 줄곧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비서까지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자.
록펠러는 스스로를 엘리스라 소개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설마…… 여기서 정체를 밝히려는 건가?’
놀라운 일이었다.
이스마일은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다.
하여 누군가에게 그들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정체를 밝혔다는 것은 그만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 리가…….’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으나.
아무래도 그들은 이제껏 숨겨왔던 정체를 밝히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과연 저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게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비서인 당신이 절 계속 지켜봤다니…….”
록펠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당황한 기색 그대로 자신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던 엘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엘리스 양,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도 그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표정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실비아 이스마일입니다. 돌아가신 리카르도 오라버니를 대신하여 현재 이스마일 가문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스마일의 실질적인 주인입니다.”
다 알면서도 록펠러는 모르는 척하기 바빴다.
“실비아 이스마일이요? 그게 누굽니까? 저는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러자 록펠러를 찾아온 후드의 남자가 부드러운 어조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래전 제 외가인 이스마일 가문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정말 어렵게 살아난 제 동생입니다. 비록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같은 이스마일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서로 남매처럼 의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아마 가문 사람들은 그녀가 쌍둥이 형인 리카르도인 줄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로서도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후드를 벗고 그 얼굴을 드러내 주었다.
새하얀 피부.
긴 은발에 깊은 눈.
‘설마…….’
그는 로맨스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일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그는 제국의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이었다.
‘제국 2황자인 크리스찬 이스마일인가? 은발에다가 저 깊은 눈을 보면 완전 이스마일 가문 사람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