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33.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2)
록펠러의 말에 베르키스 주교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로 짓자고?”
“네, 새로 짓는 겁니다. 정확히는 증축이 맞을 거 같습니다.”
둘이 있는 곳은 ‘리옹 대성당’이라 불리는 리옹 교구의 중심 교회였다.
다른 교구에 지어진 교회 건축물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져 크게 흠잡을 데가 없는 곳이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증축을 한다 해도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록펠러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단순히 돈이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돈?
록펠러에게 돈이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있는 그의 힘이자 권력이었다.
“그동안 주교 각하께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동안. 저와 리옹 길드는 하나의 연합체로서 크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모든 길드원들이 합심하여 저를 지지하고 있고, 또 블랙라벨의 일도 잘 풀린지라 여기서 리옹 대성당을 증축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베르키스 주교의 입장에선 대성당을 증축하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돈이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록펠러가 이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그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 증축까지 하게 된다면 확실히 교단의 이목을 잡아끌 수 있겠군.’
나름 수긍하게 된 베르키스 주교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도와준다면야 나야 뭐 말릴 것까지는 없네만. 그래도 정말 괜찮겠나? 그게 한두 푼짜리 사업이 아니라서 그렇네.”
그 말에 록펠러는 오직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주교 각하와 요한 님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돈이야 무슨 대수겠습니까? 돈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마시고, 리옹 대성당을 지금보다 더 크게 지어 주교 각하의 위상을 널리 알리셨으면 좋겠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띤 베르키스 주교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게 자네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네.”
“증축은 바로 진행하시죠. 길드에서 자금을 마련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때 무언가가 생각난 베르키스 주교가 록펠러에게 다른 걸 부탁하였다.
“자네만 괜찮다면 이왕 증축하는 김에 요한 님이 그려진 벽화 같은 것도 그리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제가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야 환영입니다.”
“듣자 하니 황도에 안드로라는 아주 훌륭한 예술가가 있다고 들었네. 신앙심도 깊고, 수많은 걸작들을 배출한 제국의 거장이라는 소문이 자자해. 그 사람을 불러 벽화 일을 시키고 싶네만.”
“저도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본 거 같습니다. 신이 내린 재능에 여러 방면으로 박학다식하다고 하죠. 그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요한 님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여기 신도들이 아주 좋아할 걸세. 마음속에 둔 요한 님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겠나?”
“맞습니다.”
그러다 록펠러는 무언가가 생각나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보았다.
‘어디서 이런 게 있던 거 같은데.’
“주교 각하. 방금 생각난 건데 이건 어떻겠습니까? 벽화를 그릴 때, 그 벽화를 천장에 그려 넣고 거기에 천국으로 인도하는 요한 님과 주교 각하, 그리고 저와 같은 일반 신도들을 그려 넣는 겁니다.”
나름 좋은 아이디어였는지 베르키스 주교가 좋아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천장 전체에 벽화 그림을 그려 넣는다라…… 아주 훌륭한 생각이네. 벽화 작업은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베르키스 주교가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 사이.
록펠러는 그다음 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퍼주는 것도 전부 다 이유가 있는 거지.’
록펠러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리옹 대성당을 증축시키고, 또 교단 내에서 그의 입지를 높이려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교단의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게 자신의 이익과 상당히 부합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교단의 수장이 되어야 내가 그리는 그림이 보다 완벽해지거든.’
안드로라는 화가는 리옹 대성당으로 찾아와 천장 벽화를 그릴 테지만, 록펠러는 왕관 전쟁 이후의 제국 사회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당근도 원 없이 줬겠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주교 각하. 곧 있으면 왕관 전쟁입니다. 교단이야 곧 다가올 왕관 전쟁하고 전혀 무관하겠지만. 만약 주교 각하께서 잘되어 더 높은 위치에 오르신다면 제 나름대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록펠러가 운을 떼자 잠시간 행복에 젖어 있던 베르키스 주교가 그에게 시선을 주며 의문을 표했다.
“내가 잘되면 부탁할 게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주교 각하를 이렇게까지 도와드리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지금 현 상황에서 제가 바꿀 수 없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베르키스 주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게 뭔가?”
대충 보아하니 쉬운 부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하긴 그 정도 되니까 교회 증축 비용도 선뜻 대준다고 하지 않았겠나?
‘쉬운 부탁은 아닐 거 같긴 한데. 일단은 들어봐야겠지.’
잠시 숨을 고른 록펠러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그에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어?’
“경우에 따라서는 나름 큰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교단에서 현재 이교도로 낙인찍은 이스마일에 대한 탄압을 멈춰주시고, 또 그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교단에서 힘 좀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록펠러와 함께 왔던 그의 비서 엘리스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록펠러에게 잠시 머무는 사이.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짓는 베르키스 주교가 있었다.
“그 일이야 이미 끝나지 않았나? 교단의 탄압이야 진작 끝났고, 가문 간의 전쟁도 오래전에 정리된 걸로 알고 있는데.”
록펠러의 요구는 베르키스 주교 입장에선 다소 곤란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내가 나서서 딱히 해줄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정말 그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문하는 록펠러에게 베르키스 주교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자네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겠네. 그건 내가 어떤 위치에 올라도 해줄 수 없는 일이야.”
베르키스 주교는 그가 바라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단이 어떤 곳인데. 특히나 그런 이교도 집단에게 절대 자비가 없는 곳인데, 자네가 바란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네. 그건 어려운 일이야. 아니, 절대 불가능하지.”
“교황 성하가 되셔도 절대 불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래도 힘들 것 같은데…….”
말꼬리를 흐렸던 그가 다시 그 말을 번복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니지. 그 정도 위치까지 오른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게 없긴 하겠군.”
교단의 수장이 된다는 건 교단 모두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뜻했다.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니, 말도 안 되는 것도 쉽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
교황의 뜻이 곧 교단의 뜻이었으니까.
“솔직히 그 정도 위치까지 오르면 날 지지하는 세력들도 제법 있을 테니, 제아무리 교단이 고지식하다고 한들 그렇게 어려운 일은 또 아니겠군.”
“그럼 주교 각하께서 교황 성하가 되신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겠군요?”
“뭐 일단은 그렇네.”
말을 하면서도 베르키스 주교는 크게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애당초 내가 교황 성하가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내가 볼 땐 이스마일이 이교도의 탈을 벗는 것보단 내가 교황 성하가 되는 게 더 어려워 보이는데.”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죠.”
록펠러는 확인차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주교 각하께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제가 주교 각하를 교황 성하의 자리에 앉혀드린다면. 주교 각하께서는 제가 바라는 대로 이스마일 가문을 예전의 위치로 돌려주시겠습니까?”
대답에 앞서 베르키스 주교는 다른 의문이 생겼다.
‘하등 관계도 없을 거 같은데.’
“굳이 이스마일 가문을 살릴 이유가 자네에게 필요하나?”
그 물음에 록펠러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이스마일 가문의 부활은 제게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우선 이스마일 가문이 살아나야만 제가 밀기로 한 2황자 전하가 교단의 걸림돌 없이 황좌에 오르게 될 테니까요.”
이전 기억을 되살린 베르키스 주교가 다소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2황자를 아직도 밀 생각인가?”
“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주교 각하께서도 생각해 보십쇼. 이미 테페즈나 싱클레어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1황자나 3황자가 황좌에 오른다고 해서 저희가 득을 볼 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되겠습니까?”
짧게 생각해 보던 베르키스 주교가 공감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쟁쟁한 두 황자를 제치고 지지 세력도 전무한 2황자가 과연 왕관 전쟁에 나가 이길 수 있겠나?”
그 말에 록펠러가 진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지지 세력이 왜 없습니까? 리옹 길드의 수장인 제가 있고, 또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실 주교 각하께서도 저처럼 2황자 전하를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주교 각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거 재밌군. 내가 2황자를 지지한다고? 그것도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서?”
“네,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주교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현 교황이신 펠리스 3세 교황 성하께서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잇기도 전에 베르키스 주교가 좋지 못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거야 알지만 나도 교단 내에서 그다지 지지 세력이 없네. 아니, 전무하다고 하는 게 맞겠군.”
“지지 세력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뭐 자네가 내 지지 세력을 강제로 만들어줄 생각인가?”
농담처럼 묻는 질문에.
록펠러는 꽤 진지한 투로 답해주었다.
“네, 물론입니다. 교단 내에 없는 주교 각하의 지지 세력이야 제가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무슨 수로?”
“그거야 제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주교 각하께서는 오로지 저와의 약속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스마일에 대한 교단의 입장을 전부 바꿔달라 이 말이지? 이스마일이 예전처럼 부흥할 수 있게.”
“네, 맞습니다. 그래야 제가 원하는 대로 제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질 테니까요.”
“흠…….”
잠시간 고심하던 베르키스 주교가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좋네.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못해줄 건 없지. 자네와의 약속, 요한 님 앞에서 맹세하겠네. 만약 자네가 날 그 위치까지 끌어다 준다면. 나도 자넬 위해 힘 한번 써보겠네.”
그런 둘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엿듣고 있던 록펠러의 비서이자 정체 모를 그녀는 나름대로 느끼는 게 많았다.
이스마일도 아닌 자가 이스마일의 부흥을 위해 이토록 일을 해줄 줄이야.
물론 그도 바라는 게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도 그는 하늘이 내려주신 이스마일의 은인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