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35화 (135/181)

§135화 32. 증권거래소(2)

그는 록펠러를 대신하여 블랙라벨에 남게 된 ‘뱅크 오브 로스메디치’의 새 주인이었다.

“대체 뭔 생각이야? 저걸 사들이다니…….”

“모르겠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돈을 버리고 싶어 환장한 거야 뭐야?”

호기심이 생긴 둘은 조슈아가 이후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길 봐. 이번엔 다른 걸 사들이고 있어!”

“미친 거 아니야? 저 배들은…….”

조슈아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적에게 나포됐다고 소문난 몇몇 무역선의 증권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니까 전부 최근에 해적에게 나포됐다는 선박들인데?”

“그래, 전부 휴짓조각이 되냐 마느냐에 놓인 증권들인데 저걸 사들이고 있다니.”

“저걸 왜 사는 거야? 곧 있으면 휴짓조각이 되는 건데…….”

그러다 둘은 무언가가 떠올라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해적에게 나포됐다는 배들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길드장 동생이잖아. 그럼 어디서 무슨 소식 같은 거 들은 거 아니야? 나포된 무역선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뭐 그런 거.”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어. 돈을 날릴 생각이 없다면 저러면 안 되지.”

“맞아. 당연히 안 되지. 분명 뭔가 있는 거야.”

둘만이 아니었다.

증권거래소에 있던 수많은 투자자들이 나포됐다는 무역선의 증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던 조슈아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글쎄 모르겠어. 길드장 동생 같은데 이미 다 끝난 증권을 전부 사들이고 있어. 그것도 헐값에 말이야.”

“저 휴지들을 아예 긁어모으는군.”

“왜 저러는 거야? 난 이해가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겠어. 왜 저러는 건지.”

그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조슈아는 헐값이 된 몇몇 증권들을 갈고리로 쓸어 담듯 전부 사들일 수 있었다.

그 바람에 휴지가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던 몇몇 증권 가격이 빠르게 오르긴 했으나, 원체 희망이 없다고 알려진 것들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넋 놓고 지켜볼 뿐이었다.

다만 눈치 빠른 몇몇은 조슈아를 따라 같은 증권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나, 조슈아가 워낙 많이 사들여 그들은 그보다 더 높은 가격에서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휴짓조각이 됐던 모닝글로리 호의 증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벨이 목소리를 냈다.

“이봐, 자네가 판 증권 가격이 저렇게 오르는데 계속 가만히 있을 거야?”

“알아. 나도 지금 고민 중이야.”

“자네가 판 가격보다 무려 4배나 올랐어. 저걸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아니겠지?”

“하…….”

밥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액면가의 20분의 1 토막이 났던 자신의 증권이.

어느 길드장 동생의 기행으로 인해 액면가의 5분의 1 토막까지 다시 오른 것이다.

‘미치겠군. 왜 내가 파니까 오르고 지랄이야 지랄은!’

“왜 세상은 나한테 지랄인지 모르겠어. 요한 님은 대체 어디 가신 거야?”

그 말에 벨이 반응을 보였다.

“아니, 멀쩡한 요한 님은 왜 찾고 그래?”

답답한 밥이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내가 답답해서 그래. 왜 내가 파니까 이 지랄 났는지 모르겠다 이 말이야!”

“그래서 살 거야? 안 살 거야?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고.”

“몰라. 내가 저걸 어떻게 알겠어.”

벨이 우려를 표했다.

“그래도 길드장 동생이 저렇게 사들일 정도면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니야?”

밥도 벨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지만.

딱 한 가지가 걸렸었다.

자신이 판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도무지 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저러다 또 반토막이 나면…… 하…….”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밥에게 벨이 입김을 넣기 시작했다.

“이봐. 저기 있는 사람들을 봐.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전부 저 휴짓조각이 된 증권들을 사들이려고 아우성이야.”

“그래서 뭐 어쩌자고?”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사야지! 저거 봐. 또 가격이 오르고 있어!”

그사이 조슈아로 인해 올랐던 증권 가격이 또다시 오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또 오른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잠시간 괴로워하던 밥이 이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거래소 직원에게 달려갔다.

자신이 판 증권을 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내가 미쳤지! 그때 왜 팔아가지고!’

그때 팔지만 않았더라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나마 발 빠르게 움직여 더 오르려는 자신의 증권을 다시 사들인 밥이 좋지 못한 표정으로 벨에게 돌아왔다.

밥이 돌아오자 벨이 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다시 사긴 한 거야?”

“샀지. 빌어먹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이 말도 안 되는 걸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잠깐 사이.

잘못된 판단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라도 배가 돌아온다면 그나마 본전은 건질 테니까.”

아쉽긴 했으나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밥이 축 처진 어깨로 거래소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둘은 거래소 밖에서 마차에 오르고 있던 조슈아 로스메디치를 보게 됐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겠지?’

자신의 전 재산, 아니,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아마 확실할 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밥은 마차에 오르려던 조슈아를 잡아 잠시 대화를 청했다.

“모닝글로리 호는 무사히 돌아오는 겁니까?”

조슈아는 자신을 불러 세운 구둣가게 주인 밥을 보게 됐다.

“모닝글로리 호요?”

“네, 지금 그 증권을 사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조슈아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네에? 그게 무슨 소리야. 다 알고 사신 거 아닙니까?”

“아, 그건 아니고. 그냥.”

말을 하면서 조슈아는 총독과 만난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록펠러의 부름을 받고 블랙라벨로 떠난 조슈아는 록펠러가 남긴 빈자리를 맡게 되었다.

“자네가 록펠러 공의 동생인가? 듣자하니 셋째라고 하던데.”

총독이란 자를 처음으로 만난 자리.

그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기에 조슈아는 좋은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네, 제가 로스메디치 가문의 셋째인 조슈아 로스메디치입니다. 둘째 형님과 넷째 동생과 다르게 큰형님을 따라 방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네. 자네 이야기는 록펠러 공에게 자주 들었네. 일을 제법 잘한다면서?”

“하하, 그건 아닙니다. 일은 큰형님이 더 잘하시죠. 저야 큰형님 옆에서 보고 배운 거밖에 없습니다.”

나름 수긍했는지 고개를 주억이던 총독이 말을 이었다.

“그보다 우리의 관계는 대충 들었겠지?”

“네, 군함 건조 비용을 저희 쪽에서 낮은 이자로 빌려준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거래소 독점권도 알고 있을 테고.”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서로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다른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 몇몇 무역선들이 해적들에게 나포돼서 말이야. 이게 골치야.”

블랙라벨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는 일이 있어 조슈아도 여기저기서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나 증권거래소를 맡은 뒤로부터는 해적과 무역선 이야기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는데, 총독 각하께서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총독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그놈들이 뭐라 하든, 다 무시하고 쓸어버렸을 텐데.”

그가 예전 성격대로 못 하는 이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안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겁니까?”

“이유야 있지. 거기서 나포된 선박들 중에 내 지인이랑 가문 사람들이 투자 좀 했거든. 그게 문제야.”

그제야 조슈아는 총독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시군요.”

“그래서 그놈들 요구 조건을 안 들어주기도 뭐하고 아주 골치 아프게 됐어.”

나름 고개를 끄덕이던 조슈아가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돈 좀 벌 수 있겠는데?’

어느 무역선이 해적에게 나포됐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해당 무역선과 관련된 증권은 똥값이 되게 마련이었다.

그 똥값이 된 증권들을 사들였다가 나중에 나포된 선박이 풀려났다는 이야기가 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똥값이 됐던 증권 값이 다시 폭등하겠지.’

총독이 생각을 바꾸어 해적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다면 나포된 무역선들이 전부 풀려나와 똥값이 됐던 증권들이 다시 정상 가격을 되찾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여기서 조슈아는 돈의 냄새를 맡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저 사람이 해적들과 타협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총독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계속 고민 중이네. 그냥 예전처럼 하자니 내 주변에서 투자한 금액이 워낙 커서 말이야.”

말을 하면서도 총독은 중간중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마도 타협하지 않을까 싶네. 예전 같았으면 그런 것도 없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놈의 무역선 투자가 뭔지 이놈저놈 할 거 없이 죄다 투자를 해놔 가지고.”

그렇게 회상을 마친 조슈아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밥이란 사람을 보게 됐다.

“저도 총독 각하께서 나포된 선박을 살리기 위해 해적들과 딜을 할 거 같아 나름 배팅을 한 겁니다.”

“확실한 거 아니었습니까?”

“확실하다라…… 세상에 그런 게 있을까요? 정답은 총독 각하만이 알고 계시겠죠.”

근처에 있던 벨이 나섰다.

“아니, 그럼,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렇게 사들이신 겁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그래도 그렇게 하실 거 같아서.”

“해적들이 멀쩡히 배를 보내도 그 안에 있는 화물들은 또 모르는 건데, 그건 생각 전혀 안 하셨습니까?”

그 말에 조슈아가 웃으며 답해주었다.

“어차피 저야, 배만 멀쩡히 돌아와도 이득이니까요.”

그 말에 벨과 밥은 할 말을 없었다.

설령 나포된 선박이 화물도 없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해당 증권을 워낙 똥값에 사들인 조슈아 입장에선 무조건 이득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조슈아와 대화를 마친 밥이 주저앉았다.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혹해 또다시 휘둘리고 만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밥을 보고서 벨도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증권 투자는 하면 안 돼. 절대 안 된다고.’

“이봐.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되겠어? 남들이 보니까 어서 일어나라고.”

하지만 밥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였다.

“난 망했어. 이제 어떻게 해. 사고팔고를 대체 몇 번이나 한 거야.”

그런 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조슈아가 위로차 이 말을 남겨주었다.

“그래도 높은 확률로 배는 돌아올 거 같은데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화물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당장 해적들이 원하는 건 잡혀간 부선장인데.”

“그런데 당신은 아무 걱정도 안 되는 겁니까? 보니까 증권을 아주 많이 사던데.”

그 말에 조슈아는 록펠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록펠러 형이 그랬었지. 잃을 각오가 없으면 딸 수도 없다고.’

“제 딴에서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조슈아는 자신의 배팅이 잘못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

‘만약 총독이 다른 생각을 해도 내가 해적들하고 딜을 하면 되니까.’

배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준다고 하면.

해적들 입장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어찌 됐건 내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 같은데.’

“힘내세요. 다 잘 풀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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