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32. 증권거래소(1)
구둣가게 밥은 최근 들려온 소식으로 인해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 그럼 그게 다 휴짓조각이 된다는 말이야?’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대박 날 생각에 항상 행복에 젖어 있었다.
최소 수익금이 투자한 금액의 무려 4배였다.
운에 따라서는 5배, 8배, 10배까지도 가능한 대박의 꿈.
하지만 그 꿈은 어제 이후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내 집…… 내 육두마차……’
왜 그렇게 됐느냐?
자신이 투자한 무역선이 해적에게 나포된 것이다.
‘빌어먹을 해적놈의 새끼들. 건드릴 거면 다른 배나 건드리지! 왜 하필 내가 투자한 배를 건드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신대륙으로 향하는 어느 무역선에 투자한 지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사이 블랙라벨엔 세상에 없던 증권거래소라는 것도 생겨났고, 그 거래소가 생겨난 뒤부터 밥은 증권거래소에 들러 자신이 투자한 무역선에 대한 증권 가치를 매일같이 확인했다.
분명 엊그제만 해도 액면가의 4배였는데, 나포 소식이 쫙 퍼지고 나서는 그 가격이 바로 곤두박질치더니 액면가의 10분의 1의 가격이 됐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곧 휴짓조각이 될 거란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액면가의 10분의 1이야. 아예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갔어.’
이 기분은 분명 자신의 재산이 순식간에 10분의 1 토막이 난 것과 같았다.
한 것도 없이 자신의 재산 중 대부분이 허공으로 비산하여 사라진 것이다.
“에휴…… 내 팔자야.”
가게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던 밥의 귀에 익숙한 마차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밥의 가게에 낯익은 인물이 찾아왔으니, 그는 밥의 친구인 의상점 주인 벨이었다.
“이봐, 소식 들었어?”
밥은 대답할 힘조차 없었지만 그 없는 힘이라도 쥐어짜 내어 대답해 주었다.
“뭔 소식.”
“글쎄 자네가 투자한 모닝글로리 호가 있잖아.”
“해적에게 나포된 이야기라면 이미 알고 있어. 빌어먹을 해적 새끼들. 천벌이나 받아 뒤져 버려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럼 왜 모르겠어? 어제 그 소식이 쫙 퍼지고 나서 내가 가진 증권이 바로 똥값이 됐는데.”
밥은 답답한 제 가슴을 두드리며 이제 휴지나 다름이 없어진 자신의 증권을 꺼내 보였다.
“이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10분의 1 토막이 날 수 있냔 말이야!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벨도 밥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투자한 무역선만 돌아온다면.
정말 그 무역선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최소 4배 수익을 확정시킬 수 있었는데…….
땅이 꺼지라 한숨만 푹푹 내쉬는 밥을 보니 벨은 그를 따라 무역선 투자를 안 한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았어야지. 기어코 집문서까지 다 가져다 바쳐다가 대출까지 끌어다 썼으니, 쯧쯧쯧.’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 물음에 밥은 힘없이 답할 뿐이었다.
“나도 몰라. 집사람한테는 아직 말도 안 했어. 말했다간 알몸으로 쫓겨날 거 같아서.”
“그래도 말은 해야지.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던데.”
그러자 밥이 대번에 성을 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그걸 알려서 뭘 어쩔 거야? 당장 집이랑 가게를 방코에 전부 뺏기게 생겼다고 가서 말이라도 할까? 누가 대낮부터 마누라한테 뒤지게 얻어맞는 걸 보고 싶은 거야 뭐야!”
벨은 밥이 안타까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밥의 아내는 밥이 무역선에 투자한 날로부터 그대로 앓아누웠다고 한다.
대박의 꿈이 있긴 했지만, 워낙 위험한 투자인지라 그의 아내도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무역선 투자에 잘못 건드렸다가 패가망신한 녀석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런 거 보면 구두닦이 샘은 진짜 대단하단 말이야. 어째 그 망하는 무역선만 요리조리 피해서 돌아오는 무역선만 골라서 투자했는지. 하긴 그러니까 귀족처럼 큰 저택에도 살고 그러는 거겠지.’
“안타깝게 됐구만. 그러니 그때 적당히 했어야지. 내가 분명 말렸었는데.”
그러자 밥이 일어나 벨을 반쯤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그때 때려서라도 말렸어야지! 내가 예전부터 되는 일 하나 없다는 거 잘 알았으면 무조건 말렸어야지!”
“아니, 그때 자네가 내 말을 귓등으로라도 듣기나 했나? 다 무시하고 그 배에다 올인한 건 바로 자네였어.”
“하…… 이제 나 어떻게 하지? 나 어떻게 하냐고…….”
다시 풀썩 주저앉는 밥을 보니 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얼마야? 대체 얼마까지 떨어진 거야?”
“몰라.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가 10분의 1 가격이었어. 그것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더 떨어질 것 같더라고.”
벨이 여기저기서 들었던 내용이 있었는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낙심하진 말라고. 듣자하니 이번에 모닝글로리 호를 나포한 해적들이 해군에 잡혀간 부선장을 되찾으려고 아주 난리라던데.”
“총독이 퍽이나 좋다고 그놈들 요구를 들어주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인질 교환의 조건으로 나포한 선박들을 모조리 풀어줄지.”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얘기가 있긴 했는데…….’
어쩌면 어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증권 가격이 곧바로 휴짓조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앞서 벨이 말했던 것처럼 나포된 선박이 무사히 돌아올 가능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될 리가 없잖아. 여기 총독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데. 해적이랑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못까지 박은 사람이야.’
“아휴…….”
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혹시 모르니까. 증권거래소로 가보자고. 내가 볼 땐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자네 말대로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고. 총독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나포된 선박들이 운 좋게 풀려날지 누가 알겠어? 그럼 대박이라고! 아니면 최소 선박값은 건지겠지.”
“그런데 해적놈들이 나포한 무역선을 그냥 놔둘까? 배는 돌려줘도 그 안에 있는 화물은 가만히 안 놔둘 거 같은데?”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부선장을 무사히 돌려받으려면 걔들도 별수 있겠어? 화물도 건드리지 말아야지.”
“하긴 그렇겠지?”
“그보다 어서 가 보자고. 혹시 모르잖아.”
“그래그래, 자네 말이 맞아. 혹시 모르지. 한번 가 보자고.”
그렇게 둘은 벨의 마차를 타고 블랙라벨에서 유일하게 증권을 거래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은 새 무역선 투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나, 이미 무역선에 투자하여 그 시세를 날마다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뭔 놈의 사람들이 일도 안 하고 이런데 매일같이 처박혀 있는지.’
밥을 따라 증권거래소로 들어온 벨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심하기는.’
“가서 확인해 보자고.”
둘은 곧장 모닝글로리 호와 관련된 증권 가격이 적혀 있는 게시판으로 향했다.
실시간으로 매매 가격이 수정되는 게시판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10분의 1 토막이 난 밥의 증권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그대로라니.’
“어제 그대로야. 변한 게 없어.”
밥이 가리키는 곳을 보던 벨이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액면가 그 이상으로 거래되던 증권 가격이 나포 소식과 함께 저리 휴짓조각이 될 줄이야.
‘저 정도면 아예 사는 사람도 없겠군. 하긴 저런 걸 누가 들어가겠어? 야수의 심장이 아니라 드래곤의 심장이라도 저기 들어가는 건 힘들 거야.’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버틸 거야?”
그때.
증권거래소에 일하는 한 직원이 모닝글로리 호와 관련된 매매 가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벨의 물음에 대답조차 없는 밥은 오로지 매매 가격이 표시된 게시판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발. 제발 좀!’
하지만 그의 기대는 이내 산산이 조각 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10분의 1 가격이었던 증권 가격이 또다시 반토막이 나고 만 것이다.
“하…….”
맙소사.
잠시 머뭇거린 사이 10분의 1 토막이 난 증권 가격이 또다시 반 토막이 날 줄이야.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려는 밥이 요란한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증권거래소 직원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어느 무역선 투자자가 보였다.
예전에 자신과 함께 같은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름 모를 투자자였다.
‘저 사람도 나처럼 망했구나.’
자리에 주저앉은 투자자는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저 비참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
밥이 모를 수 없었다.
‘이러다 진짜 휴짓조각이 되겠어.’
방금 전 자신이 잠깐 갈등하는 사이.
누군가는 휴짓조각이 되려는 증권을 팔아 그래도 어느 정도 원금을 건졌었다.
‘그래. 이건 눈치 싸움이야. 더 이상 놔뒀다간 정말 휴짓조각이 되고 말 거야.’
어쩌면 10분의 1 가격으로 떨어진 증권 가격이 그나마 버텼던 것은 나포된 선박이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미련한 생각을 가진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버티고 있을 때 어떻게든 팔아야 돼! 이대로 휴짓조각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건져야 한다고!’
투자한 원금을 조금이라도 건져볼 생각에.
밥은 곧장 증권거래소 직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제 20분의 1 토막이 난 증권을 그대로 팔아버렸다.
“…….”
인생무상.
가지고 있던 증권을 다 팔고 나니 그간 무역선 투자로 허황된 꿈을 꿔왔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 한 순간의 꿈이었어. 다 꿈이었다고.’
대박은 무슨.
이 팔자에 무슨 대박이 있다고.
“에휴…… 내 팔자야.”
벨도 증권 가격이 반 토막이 난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증권을 팔려는 밥을 말리진 못하고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물어볼 수 있었다.
“이봐, 그걸 다 팔아버렸어?”
“방금 봤잖아? 진짜 휴짓조각이 되려는 거. 그전에 조금이라도 건져야지.”
벨도 할 말이 없었다.
자기도 밥과 같은 처지였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때.
밥이 판 증권 가격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뭔 일인가 싶어 둘이 게시판을 살피니 방금 전 20분의 1 토막이 났던 증권 가격이 어느 용감한 투자자로 인해 다시 10분의 1로 되살아난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저걸 들어가?’
밥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진심으로 들어간 거야? 저거 며칠만 있으면 휴지가 될 텐데?’
저걸 무턱대고 들어가는 야수의 심장이 있다니!
밥과 벨은 휴지가 되려는 모닝글로리 호의 증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어느 청년을 보았다.
낯익은 얼굴.
“이봐,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알아. 길드장 동생.”
누군가 했더니 그는 이곳 로스메디치 증권거래소의 주인인 록펠러 로스메디치의 셋째 동생,
조슈아 로스메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