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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132화 (132/181)

§132화 31. 다른 길(2)

찾아온 두 마법사는 말을 아꼈다.

그가 허풍으로 떠드는 게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리옹 길드와 싱클레어 가문은…… 서로 좋은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그녀가 아쉬움을 드러내자 록펠러가 받아쳤다.

“좋은 사이라…… 네, 한때는 그랬었죠. 저희가 그쪽의 충견으로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상황이 변했죠. 적어도 지금부터는 전혀 새로운 관계가 될 겁니다.”

“새로운 관계요? 어떤 관계를 말하시는 거죠?”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수평적 관계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럼 지금까진 아니었다는 건가요?”

“잘 아시는 분께서 제게 묻는 겁니까? 그전까지는 당연히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었습니까?”

제국 굴지의 마법명가와 동등한 관계를 원한다니.

그것도 돈이나 만지는 고리대금업자들의 집단이.

제이슨은 화가 치밀었지만 그녀가 직접 대화를 하고 있어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그사이 이자벨라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와 이렇게 갈라서게 되면 그쪽도 좋을 게 없을 텐데요?”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마 그렇겠죠. 적어도 지금까지 도움을 받았던 부분이 있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게 지속되리란 생각은 안 듭니다.”

이것 역시 무언가를 준비한 듯 보이자 제이슨과 이자벨라가 서로 눈빛을 빠르게 교환했다.

싱클레어 가문이 테페즈 가문보다 다혈질적인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익에 있어서는 절대 양보가 없는 집단이었다.

때론 무력행사도 서슴지 않았으니, 제이슨이 힘을 보일 때라 생각했는지 그녀에게 의중을 묻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방안의 공기가 너무 싸늘했다.

‘그때 그 느낌이야. 이스마일과 마주쳤을 때랑 똑같아.’

그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곳에 그들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 돼.”

그녀는 무언가를 하려던 제이슨을 결국 말로써 제지하고 말았다.

“아가씨. 왜 말리시는 겁니까?”

그가 항변하자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방에 다른 사람이 있어. 제이슨은 아직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이요?”

제이슨이 다시 방안을 살폈다.

정말 그녀의 말처럼 무언가 미묘한 기류가 방 안에 흐르고 있었다.

‘이건 이스마일의 기운이야.’

“아…….”

역시 가문의 직계는 다른 모양이었다. 자신이 놓친 부분을 그녀는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억지로라도 힘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제이슨은 구긴 표정으로 다시 록펠러를 찾았다.

“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군.”

록펠러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 이스마일 가문이 알게 모르게 개입해 있다고요.”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애당초 저희가 유니온과 전면전을 하고 그들을 흡수통합 하면서 왜 잡음이 없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 물음에 답한 것은 이자벨라였다.

“그들의 허락이라도 구했나요?”

“정확히는 그들이 허락한 거죠. 왜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이스마일 측에선 예전의 영광이 그리웠던 것이죠. 그리고 저흰 좀 더 큰 집단으로 발돋움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니, 별문제 없이 유니온을 저희 쪽으로 흡수통합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록펠러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만큼 이스마일 세력과 끈끈하게 엮여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제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걸 그들이 원하겠습니까? 그렇진 않겠죠. 그러니 여기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아마 그쪽도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이스마일은 절박하니까요.”

이스마일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어도 한때는 제국 굴지의 명문가 중 하나였었다.

당장 왕관 전쟁을 신경 쓰기도 바쁜 마당에 잔존해 있는 이스마일 세력과 또 다른 대립각을 세운다는 건 싱클레어 입장에서도 부담되는 일.

하여 그녀는 이 일을 슬기롭게 해쳐 나가기 위해 애를 써보았다.

“유니온 세력도 와해된 마당에 굳이 이스마일 가문과 계속 엮여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스마일 쪽은 교단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방코 일을 계속 하시려면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셔야 할 겁니다.”

록펠러가 웃었다.

“그래서 저보고 그들을 배신하라는 겁니까?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으면 그쪽에서 책임지실 겁니까?”

“신변의 위협을 느끼신다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런 게 아닙니다.”

신변의 위협이라니.

이건 어디까지나 선택인데.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이스마일 가문을 고집하는 건 어디까지나 제 선택입니다. 이제까진 싱클레어 가문과 함께했다면. 지금부터는 이스마일과 함께하는 것이죠.”

이자벨라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는 이해할 수 없네요.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저흴 버리고 그들을 계속 고집하시는 건가요? 차라리 테페즈 가문이라면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일은…….”

몰락한 이스마일을 왜 고집하냐고 묻는 질문에.

록펠러는 은연중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답해주었다.

“곧 왕관 전쟁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2황자 전하가 이기신다면 또 모를 일이죠.”

생뚱맞은 소리에 이자벨라가 당황했다.

왕관 전쟁에 나오는 2황자라니.

“크리스찬 전하가 왕관 전쟁이요?”

금시초문 같은 말이었다.

2황자가 참전한다는 소문조차 없었으니까.

이자벨라가 제이슨에게 시선을 주자 제이슨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는 뜻이었다.

“그럴 리가.”

록펠러는 느긋한 자세로 다리를 꼬며 미소를 보였다.

“아니면 저와 내기하시겠습니까? 2황자 전하가 왕관 전쟁에 참전할지 안 할지를 말입니다.”

“참전한다 해도 크리스찬 전하께선 목숨을 잃으실 텐데요?”

왕관 전쟁은 황실의 오랜 전통으로 이 싸움에 참전한 황자는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황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니 제 목숨이 아까운 황자들은 왕관 전쟁에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목숨을 잃다니요. 참전해서 이기면 그만인데.”

“무슨 수로 이긴다는 거죠? 이길 수가 없을 텐데.”

“죄송하지만 왕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솔직히 황자 전하들이 무슨 힘이 있어 왕관 전쟁에서 이기겠습니까? 전부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그들을 황좌에 앉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잠자코 있던 제이슨이 나섰다.

“2황자 전하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이번에 있을 왕관 전쟁에서 당연히 2황자 전하가 이기실 겁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확신이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보더라도 2황자는 애당초 참전조차 불확실한 사람이었다.

“어리석군. 가망도 없는 일에 우릴 버리고 이스마일을 택하다니.”

“그건 제 선택인 겁니다. 제 선택을 가지고 남이 왈가불가할 문제는 아니죠.”

2황자를 민다는 건 너무 뚱딴지같은 소리였기에 이자벨라는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해 봤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2황자를 밀어줘서 이기게 되면 얻을 게 많긴 하겠네.’

황위에 오른 황자가 자신을 챙겨준 세력들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지 세력도 전무한 2황자라면 더더욱 그럴 터.

‘길드의 자금력이야 충분할 테니 돈 때문에 2황자가 곤란해하진 않을 거야. 문제는 교단인데…….’

“교단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가요? 이스마일은 이미 이교도 세력으로 낙인찍혀 설사 2황자 전하가 왕관 전쟁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황위에 오를 순 없을 겁니다. 제국이 교단과 갈라서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요.”

“그것 역시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생각해 둔 바가 있다고요?”

록펠러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또 같은 말을 하게 되는군요. 황좌에 누군가를 앉힌다는 건 바로 저희 같은 사람들의 일입니다. 교단에서 2황자 전하를 안 좋게 본다고요?”

록펠러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교도 세력과 엮여 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예전 일이죠.”

록펠러가 짓는 미소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자신감.

“두고 보십쇼. 2황자 전하가 황좌에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저는 그분을 황좌에 앉힐 생각입니다.”

말을 하면서 록펠러는 제 말에 감동할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이 정도까지 말하는데 와서 절도 안 하는 건가?’

“그리고 그분을 처음부터 밀어준 제 세상이 펼쳐지게 되겠죠. 적어도 저는 그분께 바랄 게 많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 부탁을 어렵더라도 들어주시겠죠. 의리라는 게 그리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대단한 포부를 가진 길드장이었다.

제이슨은 너무 허황됐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기가 막히는군. 차라리 그런 열정이라면 우리와 함께 3황자 전하를 미는 게 어떻겠나?”

제이슨의 말에 록펠러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3황자 전하는 이미 붙어 있는 지지세력들이 많아 제가 낀다고 해서 크게 얻을 건 없어 보입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도박을 이어나갈 생각이니 그리 아시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곳에 배팅을 한 정신 나간 길드장.

제이슨은 할 말이 많았지만 그녀가 함께하고 있어 말을 아꼈다.

반면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너무 확신하고 있어 그 가능성에 대해 짚어본 것이다.

‘왜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텐데.’

그는 일개 평민이었다가 두 방코 연합의 수장이 된 자였다.

나름 의미 있는 일을 앞서 일궈냈기에 그녀는 마냥 그의 생각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 아닐까?’

잠시 여러 생각을 해보던 그녀가 그를 회유하기 위해 다른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중에 2황자 전하가 당신과의 의리를 저버린다면요?”

“의리를 저버린다고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건데.”

“흠…….”

록펠러가 알고 있는 2황자는 절대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독실한 교인으로서 가슴속에 항상 신을 품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무도 안 믿습니다. 그때 가서 무슨 일이 생겨 2황자 전하가 말을 바꿀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생각도 하신 분이 너무 낙관적으로 세상일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저도 보험은 들어둘 생각입니다.”

“보험이요?”

그녀가 묻지 않았어도 이미 다 생각해 둔 바였다.

아무리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보험은 필요한 법.

“네, 제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주 예쁜 여동생이 있거든요.”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그녀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동생을 데려가야 할 겁니다. 그럼 나중에 가서 말을 바꿀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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