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30화 (130/181)

§130화 30.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2)

록펠러의 제안에 샘이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대출이 전부 상환되면 저택 명의는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저희가 명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투자가 하고 싶었던 샘은 이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겠습니다.”

“좋은 선택이군요. 부디 부동산 투자가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희 둘 다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둘의 대화를 뒤에서 소리 없이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약간의 배 아픔을 느끼고 있던 벨과 밥이었다.

대출을 통해 저택까지 사들이는 샘을 두고 둘은 느끼는 게 참 많았다.

잘나가는 녀석들은 뭘 해도 잘나간다고.

한낱 구두닦이였던 꼬맹이가 이젠 저택까지 사들일 줄이야.

‘잘나간다더니 진짜 잘나가는 모양이야.’

‘예전에 내 밑에서 일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렇게 커가지고.’

잠시 후.

방코 가게에서 나온 벨이 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샘이 아주 잘나가는 모양이야. 소문이야 듣긴 했는데…….”

벨의 말에 밥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겠지. 무역선 투자로 진짜 떼돈을 벌었다는데. 마차부터 다르잖아. 우리 같은 평민이 어떻게 육두마차나 넘볼 수 있겠어?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런데 저택 투자가 돈이 좀 되는 모양이야? 나는 금시초문인데.”

돈이 되면 뭐 하나?

애당초 투자할 여력조차 없는데.

“그게 돈이 되면 뭐 할 거야. 거기가 무슨 한두 푼 하는 데도 아니고. 어차피 다른 세상 이야기야. 우리가 관심 가질 필요는 없어.”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보다 구두닦이 샘이 하루아침에 벼락 출세를 했어. 진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 누가 샘이 저렇게 될 줄 알았겠어?”

밖으로 나온 둘은 가게 앞에 멈춰 서 있는 육두마차를 보게 됐다.

잘 먹인 명마 여섯 마리가 끌고 있는 마차는 벨의 것보다 더 화려하고 값비싸 보였다.

벨은 샘의 것으로 추정되는 육두마차를 보고선 제 마차가 하염없이 작아지는 걸 느꼈다.

‘같이 서 있으니 내 마차만 초라해지는군. 저것도 싼 게 아닌데…….’

“어서 가자고……. 여기 있어 봤자 인생한탄만 하겠어.”

그 말에 밥이 빠르게 동조했다.

“그러자고. 여기 있어 봤자 뭐 한다고. 그나저나 부러워 죽겠어. 나도 잘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록펠러의 가게엔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이전에 록펠러 가게에서 대출을 일으켜 마차를 구입했던 루라는 남자였다.

그는 의상점 주인 벨이 자신과 비슷한 마차를 사들이자 이에 자극을 받아 더 큰 마차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록펠러 공은 어디 갔습니까? 마차 대출 건으로 긴히 대화 좀 나누고 싶은데.”

비서 엘리스는 급히 록펠러를 호출시켜 그와 만나게 했다.

록펠러와 마주한 자리에서 루는 급히 대출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출 좀 받아서 지금 것보다 더 큰 마차로 바꾸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가 타고 다니는 마차만 해도 말 네 마리가 끄는 사두마차였다.

일반적인 평민이 타고 다니기엔 다소 부담되는 마차였고, 유지비 역시 만만찮게 들고 있었다.

그가 더 좋은 마차로 바꾸려고 하자 록펠러가 당연히 의문을 표했다.

“아니, 일전에 오셔서 마차와 관련된 일로 대출을 받으셨는데, 이제 와서 또 마차를 바꾸시는 겁니까? 시간도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그 말에 잡화점 주인 루가 반응을 보였다.

“아니, 글쎄. 내가 사두마차를 뽑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거 개나 소나 다 사두마차를 끌고 다니니 내가 쪽팔려서 사두마차를 못 끌고 다니겠습니다.”

그 말에 록펠러는 옅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평민들에게 마차 대출을 허용하니 그들이 분수에도 안 맞는 사두마차를 너도나도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벌이나 신용이 괜찮은 몇몇 평민들은 마차 대출 외에 더 큰 집으로 이사가거나 새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전부 방코에서 빌린 돈으로 말이다.

루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주변에 한두 대면 이해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장사하는 벨도 사두마차로 바꾸는 걸 보고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이는 내가 벨보다 나은데 왜 같은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건지.”

방코 대출로 집이라도 사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차는 오로지 값비싼 소모품에 불과했다.

유지비 역시 많이 드는 사치품.

“그리고 요즘 들어 사두마차가 너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대출이 가능하다면 육두마차로 바꾸고 싶은데. 어째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시군요.”

좋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대출을 권하는 게 아니라 ‘네 주제부터 먼저 알라고’ 일침을 놓는 게 맞았다.

하지만 록펠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말려도 저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 대출을 받을 테니까.’

그렇다면 굳이 다른 방코에 보내는 것보다 자신의 방코에서 빌리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육두마차가 타고 싶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까지야.’

“좋습니다. 일단 장부 좀 살펴보겠습니다. 추가 대출이 가능한지 살펴봐야 하거든요.”

그 말에 루가 말했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건 다시 팔 생각이니. 어느 정도만 나오면 됩니다.”

“그럼 손해가 좀 있으실 텐데요?”

“그 정도야 당연히 감수해야죠. 내가 마차를 두 대나 끌고 다닐 건 아니니까.”

그렇게 장부와 그의 신용, 더 나아가 그의 벌이 상태까지 확인한 록펠러는 그에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장부를 보니 충분히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출이야 당연히 가능하지만 저 사람은 앞으로 마차에서 살 생각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육두마차는 저 사람 능력으로는 너무 과분한 마차가 될 게 뻔했다.

“그런데 정말 육두마차를 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좀…… 무리 같아 보이는데.”

그러자 잡화점 주인 루는 웃으란 듯이 이렇게 답해주었다.

“정 능력이 안 되면 집이라도 팔아 거기서 먹고살 작정이오. 무도회가 끝나면 전부 다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이젠 사두마차로 재미를 못 보니, 육두마차라도 끌어야 재미를 보지 않겠소? 하하하!”

무도회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었다.

하긴 그곳에 찾아오는 여자들이 생전 처음 본 남자의 재력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나마 비싼 마차라도 끌고 다닌다면 그것으로 어림짐작이라도 하겠지.

‘겉으로 보여지는 게 중요하겠지. 특히나 마차 같은 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내는 거니까.’

“그러시군요. 하지만 명심하십쇼. 이걸로 마지막 대출이 될 겁니다. 그 이상은 무리일 것 같으니 나름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쇼.”

듣지도 않는 루는 오늘 당장 마차를 바꿀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좋았어. 오늘부터 확실히 재미 좀 보겠어. 이제 나도 육두마차를 타는 남자야.’

육두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찾아갈 생각을 하니.

루는 신이 나서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차는 뭐라 해도 말 여섯 마리가 끄는 게 제 맛이지. 그리고 요즘 여자들도 눈이 높아져서 사두마차로는 꼬시기 힘들다니까. 안 그렇소. 거기 있는 비서 아가씨?”

루가 록펠러와 함께 있던 엘리스에게 묻자, 엘리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얼마 후.

대출을 받은 루가 신이 나서 떠나가자.

그런 루를 측은하게 보고 있던 엘리스가 근처에 있던 록펠러에게 물었다.

“제가 보기엔 저분께선 좀 과분한 마차를 끄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무리가 아닐까요?”

그 말에 록펠러가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무리겠죠. 제가 봐도 사두마차로도 충분한데, 육두마차까지 가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정도면 아마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 겁니다.”

“그런데도 대출을 해주셨네요?”

“그거야.”

록펠러가 그녀를 보며 진하게 웃어 보였다.

“저 역시 나름 의도한 바이니까요. 애당초 마차 대출이란 걸 처음 내놨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의도하고 그 상품을 내놨다는 게 맞겠군요.”

엘리스가 신기한 듯 쳐다보자 록펠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본래 사람들은 제 분수에도 안 맞는 집과 마차를 원하고 있죠.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걸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대출 하나 없이 집과 마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그 사람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흰 그런 그들의 탐욕을 은근슬쩍 도와주는 것이죠. 대출이라는 아주 훌륭한 상품으로 말입니다.”

엘리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 게 과연 좋은 걸까요? 그들에겐 분명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요?”

“당연히 부담으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그것조차 그들의 선택일 뿐입니다. 저흰 단순히 그 일을 도와줬을 뿐인데, 그런 저희를 원망하면 안 되겠죠.”

록펠러가 물었다.

“그런 것보다 오히려 저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저들이 행복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행복이요?”

엘리스는 떠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사두마차에서 육두마차를 타고 다닐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선했다.

‘나중에 가면 분명 후회할 테지만…….’

“나갈 때는 좋아 보이긴 했네요.”

록펠러는 만족감과 함께 웃어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겁니다. 어차피 저들이야 자신의 미래 가치를 담보로 당장의 행복을 사 가지 않았습니까? 저흰 그걸 도와줬을 뿐이고요. 그거면 되는 겁니다.”

그 말에 엘리스가 다른 걸 물어보았다.

“저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록펠러 공께선 큰돈을 버시겠네요? 정말 무리해서까지 대출을 해주진 않으시잖아요?”

“맞습니다. 대출금 회수만 잘 된다면 그들의 욕망을 알게 모르게 채워주면서 저 역시 많은 돈을 벌게 되겠죠.”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두 방코 연합을 통합시킨 직후 제가 시작한 일이 바로 대출 사업의 확대입니다. 방코의 주된 수입원이 대출 사업이라는 건 모르지 않으시겠죠?”

“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실 줄은 몰랐어요. 너무 공격적으로 대출을 해주시길래…….”

“집과 마차.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원체 비싸 쉽사리 이룰 수 없는 것들이죠. 그래서 이 부분부터 들어간 겁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사들이기 위해선 무조건 대출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리고 설사 저희 도움 없이 그걸 이룰 수 있다고 해서. 본인 안에 내재된 그 욕망을 쉽게 억누를 순 없을 겁니다.”

그 욕망에 대해 엘리스는 모르지 않았다.

“그 욕망이란 게 분수에 안 맞는…… 그런 걸 말하시는 건가요?”

록펠러는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네, 사람들은 본래 분수에 안 맞는 걸 정말 좋아하죠. 설사 저희 도움 없이 집을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 욕심에서는 더 크고, 더 좋은, 그리고 더 좋은 지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건 대출 없이는 이루기 힘든 경우가 정말 많죠.”

결론적으로 누가 됐든 대출은 받는다는 소리였다.

“저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많은 돈을 빌려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계속 일하게 되겠죠.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일들을 바랐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들의 선택이었으니까.”

엘리스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제 분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좀 더 편히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좀 다르겠네요? 그 사람은 빚이 적거나, 아예 없으니 계속 일만 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름 자유롭겠죠.”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죠.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빚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평생 그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겠죠. 결국 따지고 보면 그들이 평생 노예처럼 일하는 것은 그들이 분수에 안 맞는 걸 원하기 때문입니다.”

록펠러가 강조하듯 검지를 세웠다.

“그리고 저흰 그런 분수도 모르는 사람들 덕분에 돈을 버는 겁니다. 그들이 대출을 일으킨 만큼, 저희의 수익이 되어 돌아오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