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29. 블랙라벨 유니온 #4(3)
제국 병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뛰어가는 조셉을 비추었다.
달려간 조셉이 선 곳은 다름 아닌 총독의 옆자리였다.
그러곤 무언가를 보고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모든 걸 알아차린 유니온 대표의 표정이 심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개새끼가!’
하지만 조셉의 배신을 알아차리기엔 너무나도 늦은 상태.
잠시 후.
포박된 상태로 총독과 마주하게 된 유니온 대표가 있었다.
둘의 모습은 마치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라고 할까?
두 눈만 부라리는 유니온 대표를 대신하여 승기를 머금은 총독이 입을 열었다.
“유감이오, 워렌 공. 내가 그렇게 무른 사람도 아닌데 어찌 다시 바다로 나갈 생각을 했소.”
“어떻게 네놈 새끼가 감히…….”
“조용히 육지에 처박혀 유니온 대표나 해 먹었으면 내가 이러지도 않았을 텐데.”
그 와중에도 워렌의 이글거리는 시선은 총독의 옆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자신의 부하에게 가 있었다.
하지만 워렌의 시선 따위야 가볍게 무시해 주는 조셉이 총독을 향해 말했다.
“저기에 실려 있는 금화로 나중에 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여기서 놓치셨다면 총독 각하께서는 두고두고 후회하셨을 겁니다. 후에 워렌 공이 사들인 배들은 전부 해적선이 될 테니까요.”
가볍게 웃어주는 총독이 포박된 유니온 대표에게 물었다.
“당신 부하가 그렇다고 하는데 어찌 들리시오?”
총독 따윈 거들떠도 보지 않는 유니온 대표가 자신을 배신한 조셉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야이 개새끼가 지금 누굴 배신해! 내가 네놈 새끼를 지옥에 가서도 크흡! 크으…….”
세차게 복부를 얻어맞고 차마 말을 잊지 못하는 유니온 대표가 힘없이 무너져내리자 이를 지켜보던 총독이 비웃음과 함께 자신의 콧수염을 매만졌다.
“안타깝게도 살아서 바다에 가긴 글러먹은 모양이요. 그리고 저기 마차에 실려 있는 금화들은.”
총독이 신호를 보내자 마차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 중 하나가 금화가 가득 찬 상자를 힘껏 열어젖혔다.
횃불 아래로 보이는 금화의 양이 상당했다.
“후에 불법적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니, 총독인 내가 회수하여 해적 놈들 소탕에 아주 요긴하게 써보겠소. 유니온 대표를 하면서 금화야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나름 섭섭지 않게 모아주셨군요. 아주 수고스럽게도.”
눈에 핏발이 선 유니온 대표가 총독을 매섭게 노려봤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 잘 가시오, 워렌 공, 아니, 해적 나부랭이.”
며칠 뒤.
사형을 선고받은 워렌 드라군은 교수대에 목이 걸려 죽었다.
그리고 그의 부하 조셉은 공석이 된 유니온 대표를 대신하여 록펠러를 찾아왔다.
“죽은 워렌 공을 대신하여 유니온 대표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친히 록펠러 가게까지 찾아온 조셉은 나름 결정을 내린 모양인지 처음부터 꽁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조셉을 향해 록펠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워렌 공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유감입니다. 설마 야반도주를 하다가 총독에게 잡혀 법정에 설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다 교수대에 걸릴 줄이야.”
역시나 저승길 노잣돈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걸 왜 주워 가서는.’
“아무튼 유감입니다.”
그 말에 오히려 조셉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유감이라니요. 폭군 같았던 저희 대표님이 가셔서 오히려 잘됐습니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내심 대표의 죽음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대표직에 있던 사람인데…… 유니온 사람들도 너무하군요.”
“그러니까 평소 잘했어야죠. 저나 아니면 유니온 사람들에게. 그건 그렇고 용건이 있어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찾아온 이유야 뻔히 보였지만.
모른 척 연기하는 록펠러가 의문을 드러냈다.
“그건 그렇고. 유니온 쪽에선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저희와 그리 살가운 관계도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유니온 대표가 죽고 나서 제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유니온 사람들을 찾아가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다들 이번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더군요. 그리고 대표까지 죽은 마당에 유니온이란 소속에 더 이상 목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어지는 말은 록펠러가 진정 원하던 바였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저희도 길드 소속으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다 같은 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서로 얼굴까지 붉혀서 뭐가 좋겠습니까?”
그 말에 록펠러는 잠시 고심하는 척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니온과 하나가 될 줄이야. 여기 싸움이 진흙탕 싸움이 될 거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유니온 측과 화해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록펠러가 이어 물었다.
“그런데 유니온 쪽 불만도 상당했을 텐데. 저희 쪽으로 편입되는 것에 따른 반대 의견은 없었습니까?”
“몇몇 있었습니다만. 애당초 승산이 없는데 유니온 쪽을 굳이 고집해서 저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조셉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새 길드장 선출 이후 길드원들 수입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디 그 지혜로 저희들 역시 부자로 만들어주십쇼. 저희 유니온의 바람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부자로 만들어달라.
록펠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부자라…… 제가 좋아하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유니온 사람들은 저희 길드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유니온 사람들은 길드 지침과 강령에 따라 행동해 주시고, 또 제가 이끄는 방향대로 성실히 따라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리카르도가 생각에 잠겼다.
‘결국 두 방코 연합이 하나가 됐군. 설마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이후 악수를 하게 된 둘은 두 방코 연합의 통합을 공식적으로 알렸고, 이 이야기는 제국 내에서 큰 이슈가 됐다.
그렇게 두 세력을 하나로 통합시킨 록펠러는 몇 주 뒤 리옹의 게토 누오보에서 길드장 권한으로 길드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두 세력이 하나로 합쳐졌음을 선포하고,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비전에 대해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제국의 모든 방코들은 길드 혹은 유니온이란 이름으로 서로 그 힘을 분산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제국의 모든 방코는 길드라는 이름 아래 전부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되었고, 저희는 제국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처럼 제국 전역으로 힘차게 뻗어 나갈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 저희를 위협하는 세력이나 억압하려는 자들은.”
이어지는 말은 제법 의미심장했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겁니다.”
길드장의 선언과 함께 흥분한 기존의 길드원들과.
이번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신규 길드원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큰 환호 소리와 함께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리옹 길드 만세!”
“록펠러 만세!”
이후 다시 블랙라벨로 돌아온 록펠러는 두 세력의 통합으로 인해 생긴 어수선함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고, 그렇게 몇 주 뒤 통합의 어수선함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블랙라벨의 총독을 찾아갈 수 있었다.
“총독 각하는 왜 찾아가시는 건가요?”
총독을 찾아가는 길에 같은 마차에 탄 비서 엘리스가 의문을 표하자 록펠러가 대수롭지 않게 답해주었다.
“가서 총독과의 일도 마무리 지어야죠.”
“마무리라면…… 혹시 예전에 얘기하셨던 그 부분인가요?”
“네, 이자가 낮아도 너무 낮거든요.”
이제 총독에게 독점권을 요구할 이유가 없으니, 록펠러도 나름 배짱을 부리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저희에게 따로 독점권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예전 일 좀 정리하기 위해 다시 찾아가는 겁니다.”
“아…….”
창밖을 바라보던 록펠러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슬슬 여기 일도 마무리 짓고. 여긴 조슈아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블랙라벨은 제국 그 어떤 곳보다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나름 진국인 이곳에 록펠러 본인이 남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애당초 자신은 길드장이니 리옹에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또 셋째인 조슈아에게도 많은 경험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조슈아를 블랙라벨로 보내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여 자신의 비서에게 그리 말한 것이다.
“조슈아란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 물음에 록펠러가 엘리스를 쳐다보았다.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거야.’
“제 셋째 동생인데, 동생들 중에선 저와 기질이 가장 비슷합니다. 아마 여기로 온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처리할 일도 많을 테고, 또 만지는 돈도 그만큼 커지면서 나름 책임감도 생기겠죠.”
이후 엘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자신의 눈치를 보다 다른 걸 물어보았다.
“혹시 리옹으로 돌아가시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네, 원하신다면.”
잠시 뒤.
흑색의 성까지 찾아간 록펠러는 총독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오, 록펠러 공. 어서 오시오.”
이전과 확연하게 다르게 록펠러를 환대해 주는 총독이 그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며 마주 앉았다.
“소식이야 잘 들었소. 유니온 대표가 죽고 나서 유니온 쪽과 세력을 합쳤다지요? 전부 그 얘기로 떠들썩합니다.”
“네,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나도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뭐,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 나름 축하드리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진 어쩐 일로 찾아오셨소?”
찾아온 이유?
‘우리들 싸움에 솔직히 당신만 꿀 빨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블랙라벨의 총독인 그에게 너무 매몰차게 굴 생각은 없었다.
블랙라벨은 록펠러에겐 굴 없는 금광이었다.
잘만 키워 놓는다면 훗날 증권 거래가 활발해져 자신이 차린 증권 거래소에서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 터.
하여 기존의 조건만 약간 수정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유니온과의 출혈경쟁으로 총독께 너무 낮은 이자를 제안드린 것 같아 이를 수정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총독이 대번 표정부터 구기고 봤다.
“아니, 그렇다고 이제 와 말을 바꾸는 게 어딨소?”
“그래 봤자 기존의 3퍼센트입니다. 6퍼센트는 아니니 총독께서도 저희 입장을 잘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대출금 자체가 큰 총독에게 있어 1퍼센트의 이자도 많이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블랙라벨만 유독 높게 책정됐던 예금 이자도 다시 1퍼센트로 내릴 생각입니다. 대출 금리도 낮은 마당에 예금 이자 2퍼센트는 솔직히 좀 과하거든요.”
“아니, 내가 그 이자를 보고 돈을 맡겼는데. 이제 와서 그 예금 이자까지 낮추겠다는 겁니까?”
불쾌해진 총독의 언성이 높아지자.
록펠러도 길드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나름의 협의점이 필요해진 순간.
록펠러가 기지를 발휘하여 미래를 위한 독점권 하나를 얻게 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총독 각하에게만 대출 3퍼센트, 그리고 예금 1.5퍼센트를 제안하겠습니다. 다만 저희에게 증권 거래를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저희 가문에게 주십쇼. 그쪽에서 소정의 수수료를 떼어먹는다면 총독께 드리는 0.5퍼센트 예금 이자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증권 거래를 독점하게 해달라 뭐 이 말입니까?”
증권 거래소란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총독은 록펠러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네, 보통 증권 거래 자체는 지인을 통해서 하게 마련입니다. 누가 어떤 증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니 대부분 지인을 통해 증권 거래가 이뤄지고 있죠. 하지만 이 증권을 누구나 사고팔고 할 수 있는 거래소가 생기게 된다면, 누구나 할 거 없이 거래소로 찾아와 증권 거래를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저흰 그 중간에 생긴 수수료로 나름 이득을 볼 수 있겠죠.”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그 정도 조건을 드릴 테니. 총독께서도 그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저희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총독의 고민은 오래지 않았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내가 그쪽 가문에서만 증권 거래소를 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테니, 대신 이자 조건은 절대 바꾸지 마시오.”
그 말에 록펠러는 옅게 웃어 보였다.
“네, 물론입니다. 저희에게 독점권만 주신다면 이자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