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27화 (127/181)

§127화 29. 블랙라벨 유니온 #4(2)

무능한 유니온 대표가 꾸미는 일을 이스마일에서 가만히 놔둘 이유가 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유니온 대표를 두고.

모여 있는 유니온 소속 방코업자들은 저들끼리 살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나도 찬성입니다. 차라리 그냥 죽여 버립시다. 그게 속 편할 거 같소.”

“이스마일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실력 좋은 암살자라도 고용하면 그만입니다.”

“찬성이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꼬라지하고는! 그러다 실패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질 겁니까?”

“맞습니다. 피 보는 일은 좀 피합시다. 우리가 무슨 마법사요?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식은 피해야죠.”

“그런 것보단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제가 볼 땐 그런 방식은 아닙니다.”

물론 아우성치는 그들에게도 좋은 의견은 있었다.

다만 이 자리서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여긴 이미 글러먹었어. 내가 뭔 정이 남아 있다고 여기에 계속 붙어 있는지 모르겠군. 떠나도 진작 떠났어야 했는데.’

이제까지 그들이 블랙라벨 유니온에 속해 있었던 것은 블랙라벨이라는 좋은 장소에서 장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리옹 길드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마당에 굳이 유니온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맞는 거 같은데.’

“무슨 좋은 생각 없습니까?”

거기다 대표라는 사람이 출신이 출신인지라 너무 막돼먹고 무능했다.

한심할 지경.

‘여긴 아니야. 타고 있는 배에 구멍이 났어. 같이 있다간 사이좋게 뒤질 각이지. 그렇다면 다 같이 뒤지기 전에 나라도 사려야 하는 게 맞지 않겠어?’

“큼! 거 답도 없고. 예금 이자라도 시원하게 준다 치면 뭐라도 해보겠는데. 지금 상황에선…….”

답답한 심정은 모두가 같은 모양인지 그들 모두는 일제히 말도 없어진 유니온 대표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 미련한 해적 새끼가 뭘 어떻게 해줄 거 같지도 않고.’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유니온 대표의 책임이 컸다.

초반부터 빠르게 대처했다면 상황이 이렇게나 악화되지는 않았을 터.

‘머저리 같은 놈이 힘만 믿고 저 자리를 꿰찼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애당초 여기 빌붙어서 얻어먹을 게 없다면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게 좋겠지.’

“난 돌아가겠소. 만약 뭐라도 결정이 나면 통보 좀 해주시오.”

한 사람이 떠나자 모여 있던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전부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유니온 대표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갑작스레 바뀐 이스마일의 태도였다.

‘대체 왜…….’

말도 없어진 유니온 대표를 향해 그의 부하 조셉이 다가왔다.

“워렌 공,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그도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알게 모르게 느꼈었다.

“당장에야 그런 사람이 없긴 하지만. 이거 승산이 없다치면 여기 있는 능구렁이 같은 방코 업자들이 리옹 길드 쪽으로 붙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찾아오는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을 리옹 길드에서 막을 이유가 있을까?

“거기서 막을 이유도 없고, 저희와 완전 대판 싸우려고 시비까지 걸었으니 오히려 환영할 게 뻔합니다.”

조셉은 제 머릿속에 깃든 불안한 생각을 차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 다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도 별생각이 없는 유니온 대표의 머릿속엔 오로지 이스마일이 했던 경고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애당초 이스마일이 우릴 버렸다면…….’

“이해가 안 돼. 왜 우릴 버린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조셉이 의문을 표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신 겁니까?”

“이스마일에서 여기 일에 관여했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라고 하더군.”

“그런 식이요?”

“내가 말했잖아. 차라리 죽여 버리자고.”

“아…… 근데 그걸 이스마일에서 막은 겁니까?”

이스마일 가문 자체가 워낙 신비주의다 보니 그들이 연락을 취하는 방법이 전음 같은 방식이라는 것을 조셉이 모르지 않았다.

그 일을 유니온 대표가 숨겼던 것도 아니고, 이따금씩 그들과 관련된 일을 자신에게 말해줬으니까.

“그럼 다 끝난 거 아닙니까?”

“크흑…… 대체 왜 우릴 버린 거야. 우리가 그동안 밉보인 것도 없는데.”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유니온 대표가 주먹을 말아쥐자 이를 본 조셉이 그가 안 보이는 곳에서 표정을 구겼다.

‘버린 이유야 알 것도 같긴 한데. 사실대로 말했다간 혓바닥이 뽑힐 거 같고.’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스마일조차 그런 식으로 나왔다면 오히려 저희가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유니온 대표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위험해. 내가 위험하다고.’

이스마일의 일 처리 방식이야 그가 모를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짐을 챙겨 바다로 도망치든가 아니면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짓을 멈춰야 했다.

‘어떡하지? 이러다 진짜 내 모가지가 댕강 날아가는 거 아냐?’

저도 모르게 몸을 떠는 유니온 대표가 근처에서 나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곳에 시선을 주었다.

그곳엔 자신의 부하 하나가 어지러운 방안을 설렁설렁 정리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눈살을 구긴 유니온 대표가 이전에 록펠러에게 받았던 금화 한 닢을 떠올렸다.

저승길 노잣돈으로 받았던 그 금화.

다행히도 아직 가지고 있었다.

‘재수 없게 이걸 왜 가져왔지?’

유니온 대표는 자켓 주머니에 있던 금화를 꺼내 들었다.

“워렌 공.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조셉은 이상한 해동을 하는 유니온 대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니온 대표는 손에 들린 금화를 냅다 던져 버리며 말을 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미쳤다고 저승길 노잣돈을 들고 있었군.”

뱃사람은 미신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오랫동안 해적질을 해왔던 그에게 있어 미신이란 것은 나름 의미 있었다.

그렇게 금화 한 닢을 내던진 유니온 대표를 보고 조셉도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이내 말을 붙였다.

“워렌 공. 만약 이스마일이 저흴 버렸다면 저희도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유니온 대표가 반응을 보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스마일이 버렸으면 우리야 이미 끝난 건데.”

“어쩐지 길드 쪽에서 너무 배짱 좋게 나온다고 했습니다.”

“살길을 찾아야 돼. 농담이 아니라 당장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셉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 일을 때려치우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고 해도…….’

조셉도 이전과 다르게 크게 증강된 해군 병력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전성기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해군 전함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안 돼. 거긴 이제 승산이 없어. 그리고 난 이제 처자식까지 있는 몸이라고.’

“여기 일을 때려치우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유니온 대표가 수긍했다.

“바다 일은 다 정리했잖아. 전에 총독을 찾아간 것도 그냥 떠보려고 한 거였고, 이미 바다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육지 생활에 너무 찌들어 있으니까.”

“그럼 뭘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어차피 저희가 여기서 길드와 치고받는다고 해도. 딱히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 저희들 방식대로 하자니.”

“그건 이스마일에서 막을 거야. 내가 그 어린놈의 모가지를 비틀기 전에 이스마일에서 날 죽이겠지. 독살이든 뭐든 말이야.”

“그럼 큰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살길을 찾고 있잖아, 이 새끼야!”

조셉은 그의 일이 마치 제 일인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살길을 계속 찾아보았다.

‘무슨 좋은 수가…… 그래. 어차피 끝난 판이면 차라리 그게 낫겠어.’

“워렌 공. 차라리 그런 거라면 이건 어떻습니까?”

조셉이 무슨 좋은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자 유니온 대표가 급히 관심을 가졌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는 거냐?”

“사실 좋은 수라기 보다는…….”

“말 흐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당장 살길을 못 찾으면 너나 나나 정말 끝장이니까.”

“그게…… 어차피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조셉이 보기엔 이것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였다.

“차라리 길드 쪽에 편입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저희는 이전처럼 방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거고, 또 이스마일에서도 어차피 그쪽 편을 들었으니 저흴 죽이진 않겠죠.”

“뭐?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유니온 대표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지금 누구 밑으로 기어 들어가라고!”

“하지만 워렌 공! 그것 말고는 저희에게 살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워렌 공이 싫다고 해도 이미 저희 구성원 중 일부는 길드 쪽에 편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기선 답이 없고, 또 싸워도 승산이 없으니 저흴 버리고 그쪽에 붙겠죠.”

“그 새끼들이 그러면 내가 가만히 놔둘 거 같아? 나 천하의 워렌 드라곤이 배신자 새끼들을 가만히 놔둘 거 같냐고!”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조셉도 표정을 구긴 채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어차피 반대하실 거 같아서.”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새파란 애새끼 밑으로 들어가란 말을 할 수가 있냐 이 말이야!”

유니온 대표가 이어 소리쳤다.

“자존심이 있어야지! 어떻게 내가! 한때 대해적 소리를 듣던 내가 그딴 애새끼 밑으로 들어가!”

“그럼 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차피 싸워봤자 승산이 없는 건 워렌 공도 잘 알고 계실 테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바다로 돌아가실 것도 아니잖습니까?”

“이 새끼가!”

화를 참지 못한 유니온 대표가 조셉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조셉을 향해 유니온 대표가 목청을 높였다.

“내가 죽어도 그 짓은 못 하지! 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머리 숙인 건 이스마일로 충분해! 그리고 나 워렌 드라곤은 원래 바다 사람이었어. 바닷놈이 육지에 있어도 너무 오래 있었군.”

승산이 없는 건 바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한때 블랙라벨의 앞바다를 피와 화염으로 물들었던 과거가 있어 그는 다시 한번 바다로 나갈 생각을 했다.

‘그래, 그 총독 놈도 굉장히 거슬렸는데. 이참에 다시 바다로 나가야겠어. 그럼 이스마일은 관여하지 않겠지. 어차피 이건 방코 일과도 무관할 테니까.’

“이 빌어먹을 육지 생활도 이제 청산할 때가 됐군. 나란 녀석이 본래 바다하고 체질이 맞다는 걸 그 동안 잊고 있었어. 뱃놈은 영원한 뱃놈이지. 무슨 놈의 육지 생활.”

씩씩거리는 워렌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자신의 부하를 향해 소리쳤다.

“조만간 여기 일을 다 정리하고 바다로 나갈 테니. 넌 가서 해적의 섬으로 갈 수 있는 배나 한 척 구해봐. 가서 내 이름을 걸고 싸울 용맹한 해적 놈들을 다시 소집해야겠군. 그리고 여기서 번 돈으로 해적선들을 잔뜩 사 모으는 거야. 다시 예전의 내가 되는 거지.”

다시 해적이 될 생각에 유니온 대표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조셉은 여러 감정이 섞인 눈으로 그를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며칠이란 시간이 지나고.

유니온 대표로서 그동안 축적해온 모든 자산을 금화로 바꾼 워렌 드라군은 여러 마차에 그 금화들을 싣고 어두운 밤 항구로 떠났다.

늦은 밤인지라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웠고, 그런 도시를 바라보는 유니온 대표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두 번 다시 못 볼 곳인데도 별 느낌이 없군. 그래, 여기가 내 고향이 아니었던 거지.’

“배는 준비해 놨겠지?”

그가 탄 마차엔 그의 부하인 조셉도 함께 있었다.

“네, 워렌 공이 지시하신 대로 전부 준비해 놨습니다. 지금 항구로 가시면 밀수업자 하나가 저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워렌이 표정부터 구겼다.

“워렌 공은 무슨. 이제 다시 해적이 된 마당에. 그냥 옛날처럼 불러. 선장님이라고.”

“네…… 선장님.”

“흥, 여기도 이제 작별이군. 아마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겠지.”

그렇게 항구에 도착한 그의 마차는 갑작스레 나타난 제국 병사들로 인해 그 진행이 막히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당황한 워렌이 창밖을 살피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뭐야? 저 병사들은 뭐냐고.”

그러자 잽싸게 마차 밖으로 나간 조셉이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 새낀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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