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28. 블랙라벨 유니온 #3(3)
유니온 대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당장에라도 총독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협박? 나 같은 놈이 언제 협박하는 거 봤소? 협박은 돼먹은 놈들이 하는 거고, 나같이 막돼먹은 녀석은 그딴 것도 없지! 똑똑히 새겨듣는 게 좋을 거야. 이건 경고야. 경고라고!”
이에 질세라.
총독 역시 흉흉한 안광을 흩뿌리며 유니온 대표에게 기죽지 않고 맞섰다.
“이 사람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누구 앞에서 경고라니! 내가 여기 총독이야! 당신은 한낱 방코 연합의 우두머리고! 그럼 주제를 알아야지!”
유니온 대표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긴 다시 옛날처럼 되는 거야! 그걸 알고 지껄이는 거야 뭐야!”
“아니! 그렇게 서로 합의를 해놓고, 또 옛날로 돌아가자고? 지금 제정신이오!”
둘이 언급하는 그때 그 시절은 총독에겐 악몽 같은 과거였었다.
드라군 해적단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때 그 시절이 달갑지 않은 것은 육지 생활에 찌든 유니온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못할 것도 없지! 계속 그따위로 나오면 내가 가만히 있겠어!”
“하…….”
뒷골이 당기는 소리에 총독이 표정을 구겼다.
‘빌어먹을 해적 새끼. 그동안 오냐오냐 온갖 비위를 다 맞춰주니까. 이것이 정신줄을 놓고 내 머리 위까지 올라앉는군.’
그때.
소란을 듣고 찾아온 해군병사들이 총독의 집무실로 들이닥쳤다.
찾아온 해군병사들이 총독과 대치하고 있던 유니온 대표를 포박하려하자 이를 손으로 제지하는 총독이 말했다.
“지금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시는 거 같은데. 내가 말입니다. 소싯적 당신 뒤꽁무니만 쫓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육지로 기어 나온 사이, 상황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 이 말입니다.”
“뭐?”
육중한 덩치에 힘도 장사라.
유니온 대표는 자신을 포박하려던 해군병사들을 힘으로 밀치고 다시 언성을 높였다.
“진짜 옛날로 돌아가야 정신을 차리겠어!”
답도 없는 모습에 총독이 고개를 저었다.
해적 녀석이 육지 냄새를 너무 맡은 모양인지, 아니면 방코 연합의 수장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맡은 모양인지 바뀐 바다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답답하긴. 여길 보시오.”
총독이 자리를 옮겨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 앞에 섰다.
“눈구멍이란 게 있으면 저기 바다 위를 잘 보란 말이오.”
창가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 위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전함들이 떠 있었다.
안전한 해상 무역을 위해 그동안 소리 없이 커온 제국의 함대였다.
“저기 보이는 내 전함들이 보이시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컸지.”
자신감에 찬 총독이 입가를 길게 휘었다.
“당신이 육지 생활에 찌들고 방코 업자들하고 돈놀이를 하고 있을 동안. 내 군함들은 날로 그 규모를 키워왔다 이 말입니다.”
해적 생활을 정리하면서 유니온 대표는 바다 쪽에 가 있던 관심을 꺼뜨려 버렸다.
당장 육지 일도 신경 쓰기 귀찮은 마당에 무슨 바다 일까지 신경 쓴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현재 해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 있는지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태였다.
‘뭐야? 언제 저렇게 큰 거야?’
과거만 생각해 본다면 지금 해군 전함은 그 규모가 몇 배로 불어난 상태였다.
‘예전이야 비슷했지만 지금은…….’
앞서 총독을 상대로 언성을 높였던 것도 전부 과거의 자신만 믿고 한 행동이었다.
지금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제국 함대를 봤다면 그런 소리가 안 나왔을 터.
“…….”
말이 없는 유니온 대표를 향해.
승기를 잡은 총독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기 당신 눈구멍에 보이는 함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당신이 다시 바다로 나간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빡할 거 같소?”
총독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주었다.
“쯧쯧쯧, 어림도 없는 소리지. 정 물고기 밥이 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소. 대신 합의는 당신이 먼저 파기한 것이니 두 번 다시 이 땅에 발을 딛진 못할 거요. 물론 당신을 따라 육지로 나온 부하들도 마찬가지고. 그게 싫으면 합의한 대로 조용히 육지에 처박혀 살든가.”
뭐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바다 위에 떠 있는 제국 함대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에.
말을 아끼는 유니온 대표는 그저 표정만 왈칵 구길 뿐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아주 살판이 나셨군.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바다에 살 걸 그랬나?’
그사이 총독은 문 앞으로 걸어가 그를 내보내기 위해 직접 문까지 열어주었다.
그런 총독을 노려보던 유니온 대표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다.
‘이렇게 되면 완전 나가리인데.’
아무래도 총독을 협박하여 길드 세력을 몰아내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젠장할.’
“이번엔 그냥 가지만. 다음엔 어림도 없다는 걸 아시오.”
그 가당치도 않은 말에 총독은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흥, 어림도 없기는. 그리고 나 여기 총독이오. 당신 같은 사람이 약속도 없이 함부로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귓등으로도 안 듣는 유니온 대표가 통보하듯 말했다.
“다음에 또 봅시다.”
“그냥 앞으로 쭉 안 봤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고, 유니온 대표가 떠나 적막만이 감도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총독은 미리 숨겨놓았던 다른 손님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말하기가 무섭게 찾아왔군요. 저리 무식하게 찾아올 줄이야.”
그러자 집무실과 바로 이어진 옆방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진 수야 뻔하니. 예측하기도 쉽죠.”
바로 옆방에서 나오는 손님들을 향해 총독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주었다.
“숨을 데가 있어 다행이긴 했습니다만. 굳이 숨지 않으셔도 별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옆방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록펠러와 그를 따라온 엘리스라는 비서였다.
“그래도 이런데서 마주쳤다면 분명 좋은 이야기는 안 나왔을 겁니다. 오히려 더 난리를 쳤겠죠.”
공감한 모양인지 총독이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돈이 좋은 모양이군.’
“저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여기에 숙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깽판을 칠 인물인지라.”
총독이 그윽한 눈으로 록펠러의 옆을 차지하고 있던 비서를 쳐다보았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녀를 비서로 두고 있는 록펠러란 청년이 부러울 정도.
“유니온 대표의 출신이 출신인지라. 충분히 이해합니다.”
록펠러는 여느 귀족처럼 입가에 항상 여유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그런 록펠러를 상대하는 총독도 아까 전보다 더 느긋하게 대화에 임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총독은 아까 끊었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운을 뗐다.
“저런 막돼먹은 놈보단 당신 같이 예의 좀 아는 사람이 이 지역을 맡아주는 게 편하긴 합니다.”
총독도 어린 길드장에 대한 소문을 모르진 않았다.
리옹 가문 출신이 아니라 어느 평민 집안의 장남이었으며, 사업 수완이 매우 뛰어나 길드원들의 신임을 얻고 새 길드장으로 선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다만 몇 가지 거슬렸던 것은 어린 나이와 평민이라는 그의 출신이었다.
‘이 녀석도 별로 달갑진 않지만 그래도 그 막돼먹은 놈보다 훨씬 낫긴 하지.’
“무식한 해적 놈이 뭘 알겠습니까? 지 맘에 안 들면 다짜고짜 찾아와서 깽판이나 칠 생각을 하는데.”
여유를 잃지 않는 록펠러가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총독 각하께서는 저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는 게 좋겠군요. 저희는 저렇게 막돼먹진 않았으니까요.”
총독이 웃고 있는 록펠러를 눈에 담았다.
어린 것만 빼고는 영락없는 능구렁이였다.
저리 보여도 속은 여느 방코 업자처럼 시커멓다 이 말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솔직히 여기 일이야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특히나 방코 일에 관해서는 더더욱 손을 쓸 수가 없죠.”
록펠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이스마일 가문에 관한 얘기라면 대충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신 분이 정말 겁도 없이 찾아왔군요.”
그러면서 총독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겁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지워지고 말았다.
“저희가 여기서 무탈하게 장사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의 허락을 받은 겁니다.”
총독은 잠시간 눈가를 좁히며 록펠러란 청년에 대해 생각했다.
‘괜히 어린 나이에 길드장이 된 게 아닌 건가?’
잠시간 말을 아끼던 총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이스마일에서 암묵적으로 승인을 해줬다면. 결국 여기는 기존에 있던 방코 업자들과 새로 들어온 당신들과의 싸움이 되겠군요. 흠…….”
그가 눈가를 좁히며 이어질 일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유니온과 길드의 싸움이라……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일이로군요. 서로 데면데면 지내던 방코 업자들이 설마 여기서 세력 다툼을 하게 될 줄이야.”
“그 싸움의 승자는 바로 저희가 될 겁니다.”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총독이 의문을 표했다.
“그리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요? 이유야 바로 제 앞에 있지 않습니까?”
록펠러가 웃으며 쳐다보자 총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절 보신 겁니까?”
“네, 총독 각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실 건데. 당연히 저희가 그 싸움에서 이기겠죠.”
총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곳의 지배자는 바로 총독 각하이십니다. 만약 이스마일 가문에서 나서지 않는다 치면 여기 일은 누가 결정짓겠습니까?”
“…….”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스마일 가문에서 잠자코 있다 치면 여기 일을 결정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허허……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일이군요. 워낙 이스마일 가문이 깊게 개입해 있어서 제가 감히 그쪽으론 생각도 못 해봤습니다.”
그 말에 록펠러가 옅게 웃어 보였다.
“여기 일이야 당연히 총독 각하의 일인데. 누가 관여한단 말입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스마일 가문의 영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총독이 말을 아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기 싫으면 그쪽과 관련해서는 입조심 하는 게 좋긴 하지.’
“크흠! 그런데 제가 굳이 길드 쪽과 손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각 세력의 우두머리가 좋고 나쁨을 떠나, 실질적으로 제가 얻는 이득이 있나 물어보는 겁니다.”
노골적인 질문에도 록펠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 물론 있습니다. 만약 총독 각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신다면 보다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대출이요?”
록펠러가 자리를 옮겨 창가 쪽으로 가 섰다.
그러곤 창밖의 풍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저 바다 위엔 총독 각하께서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엔 드라군 해적단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언데드만으로 이뤄진 언데드 해적선단이 엄청난 골칫덩이로 남아 있죠.”
드라군 해적단이 잠잠해졌음에도 블랙라벨의 총독이 해군 전함을 계속 늘렸던 것은 그들보다 더한 세력이 바다 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전면전을 하려면 아직도 해군 전력이 많이 모자라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해군 전함들을 건조해야 하는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대출을 하라 이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저희야 땅 파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유니온보다 좋은 조건으로 총독 각하께 많이 우대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뭐 얼마나 많은 이자를 깎아주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딱 3퍼센트만 받겠습니다.”
3퍼센트라는 말에 총독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지금 3퍼센트라 하셨습니까? 본래는 6퍼센트가 아니었습니까?”
총독도 해군 전함을 늘리기 위해 유니온 대표와 협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였던 것은 대출에 따른 높은 이자였다.
해적질만 해 먹던 유니온 대표는 총독이 아주 건실한 채무자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양아치 근성을 못 버리고 기존 6퍼센트 대출 이자에서 더 많은 이자를 받으려 했었다.
어차피 총독이라 돈 떼일 일이 없기에 무조건 대출 이자만 높게 부른 것이다.
“네, 대신 블랙라벨에서 방코 사업의 독점권은 저희 리옹 길드에게만 주셔야 합니다.”
록펠러가 제안한 낮은 대출 이자는 엄청 끌리는 제안이었으나, 뒤이어지는 조건이 꽤나 거슬리는 것이었다.
“독점권을 달라 이 말입니까?”
“네, 저희 리옹 길드가 아니면 여기 블랙라벨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해달라 이 말입니다. 그럼 3퍼센트라는 낮은 이자로 총독 각하께서 원하시는 만큼 돈을 빌려드릴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