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24화 (124/181)

§124화 28. 블랙라벨 유니온 #3(2)

“만에 하나. 이스마일에서 나서지 않고 그저 지켜볼 요량이라면. 우리도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소. 우리가 무슨 호구 새끼들도 아니고. 엄한 놈들이 우리 바닥에서 대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 꼬라지를 넋 놓고 지켜만 볼 수는 없지.”

리옹 길드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던 유니온 대표가 그 생각을 바꾼 것처럼 보이자 찾아온 방코 업자들이 현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홀란트에선 대놓고 사병 수를 늘리고 있던데. 아마도 워렌 공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다 예상한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그들을 몰아낸다는 건 주변 눈치도 있으니 어려운 일입니다. 총독께서 뭐라 할 공산도 크고요.”

“최근에 들었던 소문으로는 그 길드장이란 사람이 오스틴 총독과 자주 만난다고 합니다. 둘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안 봐도 뻔하죠.”

총독 이야기가 나오자 유니온 대표가 눈살을 구겼다.

‘여기 총독하고는 별로 엮이고 싶지가 않은데.’

해적질을 하던 과거가 있어 자신과 이곳 총독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개와 원숭이 정도의 관계라고 할까?

‘서로 합의 본 게 있어서 데면데면 지내고 있지만. 일이 틀어지면 분명 그쪽 편에 붙겠지. 오스틴 그놈은 분명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야.’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 총독하고는 별로 엮이기가 싫은데.”

유니온 대표와 총독의 관계를 모를 리 없는 방코 업자들이 약간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워렌 공이 오스틴 총독과 그리 친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오스틴 총독이 여기 일에 개입하게 된다면 어느 쪽에 붙을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분명 우리보단 길드 편을 들어주겠죠.”

모두가 공감했는지 너 나 할 거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니온 대표는 보란 듯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오스틴 그놈이 생각이란 게 있다면 그렇게 대놓고 그쪽 편을 들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누군데. 내 한마디면 여기 앞바다는 전부 피바다가 될 텐데! 그걸 총독이 원할 거 같습니까?”

블랙라벨이 제국의 제일 무역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악명 높은 해적단의 선장이었던 그가 노략질과 약탈 행위를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업으로 삼던 노략질을 멈추고, 보호비 명목으로 항구를 드나드는 배마다 세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바꾸었기에 블랙라벨에 평화가 찾아왔고, 이로 인해 블랙라벨이 제국의 제일 무역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없으면 그 어떤 배도 무사히 이쪽 항구에 접안할 수가 없는데. 총독이 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게 밉보이는 짓을 한단 말이오. 생각이란 게 있다면 내 눈치도 봐야지. 옛날 꼴을 안 보려면.”

유니온 대표의 말도 맞는 것이어서 여기에 동조하는 방코 업자들이 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적어도 블랙라벨에선 워렌 공의 입김이 워낙 세니, 총독께서도 별 힘은 못 쓸 거 같기는 합니다.”

“총독께서도 워렌 공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나마 중립은 유지하겠군요. 어찌 됐건 좋은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표정을 구긴 채 생각에 잠겼던 유니온 대표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귀찮은데 그냥 애들 데려가서 확 쓸어버려? 어차피 놈들이야 우리가 작정하고 나오면 그냥 밀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에 대한 고민은 잠시였다.

“말 나온 김에 차라리 이번 기회에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는 건 어떻겠소?”

그 제안에 모두는 반반으로 나뉘었다.

무력을 써서라도 그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찬성이었지만, 만약 일이 실패할 경우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그런 방식은…….”

“나는 찬성이오. 이렇게 대놓고 우리 업장을 뺏길 바에야 사병들이라도 고용해서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소.”

“그러다 그쪽에서 사병들을 더 고용해서 이쪽을 치면 그땐 어쩔 거요? 우리가 먼저 친다는 건 그쪽에도 명분을 가져다주는 건데.”

“총독이 가만히 있다 치면 우리끼리 치고받는 형식이 될 텐데. 그러다 도시가 어지러워지면 총독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겁니다. 그럼 문제를 일으킨 몇몇을 본보기로 잡아 가둘 텐데, 난 거기에 별로 잡혀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다른 방식은 안 됩니까?”

유니온 대표는 그들의 나약함에 혀만 찰 뿐이었다.

“쯧쯧쯧, 그렇게 약해빠져서야. 그래 가지고 무슨 자기 밥그릇을 지킨다고!”

그의 호통에 찾아온 방코 업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그런 식으로 해서 대체 뭘 얻겠소? 한심하기는.”

그러자 한 방코 업자가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고 저희가 사병까지 직접 고용해서 싸움을 거는 건…… 좀 많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도시 밖이었다면 또 모를까. 도시 안에서 대놓고 싸우는 것도 총독 눈에 굉장히 거슬릴 겁니다. 그 일을 총독이 묵인해 줄지도 의문이고요.”

“그럼 어쩔 건데? 저놈들이 우리 업장에 와서 대놓고 장사를 하는데, 그냥 넋 놓고 지켜볼 생각이오?”

“차라리 이스마일에 가서 확실한 답을 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워렌 공이 믿었던 것도 이스마일이 아닙니까?”

그 말에 유니온 대표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스마일 가문은 과거에 있었던 큰 사건으로 인해 그들이 직접 찾아오는 것 외엔 만날 길이 없었다.

“이스마일에서 직접 찾아오는 게 아니면, 따로 만날 방법은 없소. 그걸 떠나서 이스마일이 여기 일을 모를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계속 이런 식으로 기다릴 생각입니까?”

“하, 머리 아프게 계속 보채지만 말고.”

유니온 대표가 호통치듯 그들을 다그쳤다.

“당신들도 좋은 생각이 있다면 입이 달렸으니 말이라도 해보시오.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좋은 생각을 말해보라는 말에.

잠자코 있던 그들 중 하나가 갑작스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워렌 공. 차라리 이런 건 어떻겠소?”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어차피 이쪽 바다가 잠잠한 것도 다 워렌 공 때문이 아닙니까? 그럼 그걸 가지고 오스틴 총독 압박하는 겁니다. 옛날 꼴 보기 싫다면 여기서 주제넘게 장사하는 그들을 쫓아내라고 겁주는 것이죠. 그럼 총독이 길드 세력을 안 쫓아내고 배기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같은 생각이었다.

“그것참 좋은 생각 같습니다.”

“어차피 총독도 워렌 공 눈치를 보는 게 다 잠잠한 바다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깡패 새끼도 아니고. 차라리 그런 식이 나을 것 같습니다.”

유니온 대표도 나름 긍정적이었다.

‘나쁘지 않아. 여기 총독이 내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데. 차라리 그런 식이 나을 것 같군.’

“좋은 의견이요.”

분위기가 좋아지자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조셉이 유니온 대표 옆으로 찾아와 귓속말을 전했다.

“워렌 공, 제 생각도 같습니다. 참 좋은 생각 같습니다.”

하등 쓸모없는 부하 같으니라고.

표정을 구긴 워렌이 말했다.

“넌 왜 와서 지랄이야. 짜증 나니까 저기 옆에 가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괜히 옆에 와서 내 신경 줄이나 긁지 말고.”

“네…….”

“아니지. 곧 총독한테 갈 테니, 가서 마차나 준비해 놔.”

“네! 바로 마차를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조셉을 보낸 유니온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찾아온 방코 업자들을 향해 말했다.

“내 당장 가서 총독과 담판을 지을 테니. 맘 편히 기다리고 계시오. 조만간 좋은 소식을 물어다 줄 테니.”

그 말에 표정이 한껏 밝아진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이 있었다.

잠시 후.

유니온 대표, 워렌 드라군은 자신의 화려한 마차를 타고 블랙라벨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오스틴 총독이 머물고 있는 흑색의 성을 찾아갔다.

흑색의 성은 절벽 해안에 지어진 요새 같은 성으로, 한때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그의 해적선단이 쉴 새 없이 함포사격을 했을 정도로 사연이 아주 깊은 곳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가 평화롭게 마차를 타고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때야 네가 죽냐 내가 죽냐의 싸움이었는데.’

그 어떤 제지도 없이 성안으로 들어선 유니온 대표는 곧장 오스틴 총독을 찾아가 그와 만남을 가졌다.

평소에도 좋은 사이는 아니었기에 그를 맞이하는 총독의 모습은 그저 쌀쌀맞기만 했다.

왔냐는 말 한마디도 없이 총독은 넓은 탁자 위에 펼쳐진 해도 위에서 모형으로 만든 전함들을 움직여보고 있었다.

“크흠!”

들으란 듯이 크게 헛기침을 내뱉은 유니온 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자.

그제야 반응을 보이는 오스틴 총독이 몸을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서로 모른 척 지내자면서 여긴 왜 온 거요?”

톡 쏘아붙이는 말에 유니온 대표가 자연스레 표정을 구겼다.

“누군 좋아서 찾아온 줄 압니까? 다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온 거지.”

그가 다가오자 총독은 이전과 다르게 많아진 모형 전함들을 움직여 눈에 거슬리던 어느 해적선단을 쓱 밀어버렸다.

“이놈의 해적 놈들. 치워도 치워도 도무지 없어지질 않아. 어디서 계속 튀어나오는지. 깡그리 잡아다가 크라켄의 먹이로 던져줘야 하는데.”

그 말을 좋게 들을 리 없는 유니온 대표가 표정부터 무섭게 했다.

“어째 나 들으라고 한 소리 같습니다만?”

“그쪽 들으라고 한 소립니다. 그런데 해적이오? 해적도 아니면서 왜 그리 발끈하시오.”

씩 웃는 총독의 입매에 주먹이라도 꽂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를 참아내는 유니온 대표가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지었다.

‘참아야지. 이젠 어엿한 육지 사람인데.’

“제가 무슨 해적입니까? 그 일 때려치운 지가 언젠데. 지금은 유니온 대표요. 나름 제국의 귀족이란 말이요.”

총독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였다.

“아, 해적질하던 사람이 꽤 출세했구만. 그래, 여기까진 뭔 일로 찾아왔소. 일개 귀족 따위가 시간 약속도 안 잡고 무례하게 날 찾아오기까지 하고. 분명 급한 일이시겠죠? 뭐 들어봤자 시답잖은 일이겠지만.”

총독은 책상 근처로 옮겨 쌓여 있는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름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찾아온 이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 총독에게 무람없이 다가간 유니온 대표가 퉁명스럽게 말을 붙였다.

“거 듣자 하니. 여기 웬 버러지들이 나타났다고 하던데.”

“버러지? 무슨 버러지들이 말이오.”

다 알면서 시치미 떼기는.

“그 있잖소. 길드 소속 놈들. 그 새끼들은 상도덕도 없어. 여기가 누구 업장인데 감히 찾아와 장사나 하고 말이야.”

화가 나 씩씩거리는 유니온 대표와 다르게 총독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상도덕은 무슨. 무한 경쟁 시대에 방코 업자들끼리도 서로 경쟁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러자 총독이 정리하던 서류 뭉치를 손바닥으로 내려친 유니온 대표가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오!”

“경쟁? 경쟁은 다른 놈들이나 하는 거고! 여긴 엄연히 우리 업장이란 말이야! 세상에 엄한 놈들이 찾아와 대놓고 우리 업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총독이란 사람이 왜 가만히 있는 겁니까! 당장에라도 가서 놈들을 쫓아내야지!”

그러자 표정을 구긴 총독이 대꾸했다.

“그게 내 알 바입니까? 어차피 나야 누가 와서 장사하든 세금만 잘 받아먹으면 그만인데.”

“지금 그렇게 나온다 이 말입니까?”

예전에 막돼먹던 그 모습을 총독이 어찌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그는 육지 생활에 찌든 그저 그런 은퇴 해적에 불과했다.

“아무튼 난 그쪽 일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소. 따질 거면 그쪽 가서 따지시고, 여기서 계속 소란을 피울 거면 내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겠소.”

“하하…….”

유니온 대표가 누런 이가 확 보일 정도로 씩 웃어 보였다.

“내가 병신같이 조용히 있다고 해서. 옛날 그 막 나가던 피가 어디로 간 게 아닌데. 지금 그따위로 나오겠다 이 말입니까?”

“지금 날 협박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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