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23화 (123/181)

§123화 28. 블랙라벨 유니온 #3(1)

리옹 길드장이 블랙라벨 유니온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그가 직접 블랙라벨에 가게를 연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사이 길드장을 따라 블랙라벨까지 찾아온 리옹의 길드원들은 홀란트 지역에 하나둘씩 방코 가게를 열며 기존에 있던 방코 업자들을 서서히 위협하기 시작했다.

한때 악명 높은 해적이었던 유니온 대표만 믿고 손가락만 빨고 있던 란스타드의 방코 업자들은 암세포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는 리옹 세력을 도저히 지켜만 볼 수 없어 결국 무리를 지어 유니온 대표를 찾아가게 됐다.

“아니, 워렌 공. 믿고 맡겼더니 이게 대체 뭡니까. 저들을 당장 쫓아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우리 앞에서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저 암덩어리 같은 놈들이 우리 손님들을 다 가져간단 말이오!”

“우리도 나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아니면 이자라도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해주시오! 이러고 있다간 기존에 있던 손님들까지 전부 다 뺏기게 생겼소! 우리도 살아야 할 거 아니오!”

우르르 물려온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을 보며 유니온 대표직을 맡고 있던 워렌 드라군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아니, 이스마일은 왜 아직도 그놈들을 놔두는 거야. 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이 순간에도.

유니온 대표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이스마일의 숨은 의중이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유니온 대표가 찾아온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으나.

당장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지만 말고 당장 대책을 강구하시오! 그대가 우리 대표가 아니오!”

“아니, 쫓아낼 방법이 없다면 워렌이 잘하는 힘으로 하면 되잖소!”

“한때 해적질 해 먹던 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오!”

그러자 듣다 못한 유니온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거대한 해적칼을 뽑아 들었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 우악스러운 모습에 당장에라도 유니온 대표를 잡아먹을 듯이 덤벼들던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누굴 호구 거시기로 아나! 다들 적당히 하시오. 나도 그놈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한차례 그 성깔을 드러낸 유니온 대표가 거친 콧바람과 함께 자리에 앉자.

나름의 살 길을 찾아보려고 하는 어느 방코 업자가 한 발자국 나서 그에게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놓을 해결책이 없다면. 그럼 이자라도 우리가 알아서 조정할 수 있게 해주시오.”

가당치도 않는 요구였는지 유니온 대표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저놈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자를 왜 건드려. 그게 우리 돈줄인데.’

그 시선이 곱지 않을 걸 보니, 어디 한번 더 지껄여 봐라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 곱지 않은 시선이야 성질 포악한 유니온 대표를 향해 감히 목소리를 낸 그가 어찌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그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유니온이란 소속에 묶여 이자를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없으니, 있던 손님들까지 홀란트에 있는 리옹 세력에게 다 뺏길 판국이오.”

그러자 그 요구를 귓등으로도 안 들은 유니온 대표가 퉁명스럽게 따져 물었다.

“그렇게 제멋대로 당신 혼자 이자를 조정할 거면, 유니온엔 왜 있는 겁니까? 그냥 나가서 혼자 장사나 하시지.”

“유니온에 속하지 않으면 애당초 장사를 못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래서 지금 불만이라는 거야 뭐야?”

그가 사정하듯 말했다.

“아니, 워렌 공. 지금 불만이라는 게 아니라 우리도 어떻게든 살자 이 말이오. 이러고 있다간 진짜 다 굶어죽게 생겼소!”

그 말에 동조한 몇몇 방코 업자들이 다 같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저 사람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당장 이자라도 어떻게 해주십쇼. 진짜 떠나는 손님들 중 열에 아홉은 전부 다 이자 때문에 떠나간다 이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거긴 금화 보관료도 안 받습니다. 금화 보관료도 안 받고 오히려 예금 이자까지 주는데 어떤 미친놈이 우리에게 금화를 계속 맡기겠습니까?”

그가 이어 말했다.

“애당초 안 되는 게임입니다. 우리도 그들과 맞서 싸우려면 최소한 그들 방식은 따라가야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유니온 대표가 코웃음부터 치고 봤다.

“흥, 이 사람들이 단단히 미쳤구만. 뭐, 이자를 낮춰? 그리고 금화 보관료를 안 받아? 허허…… 이런 미친.”

거구의 몸을 일으키는 유니온 대표가 손가락질로 모두를 가리켰다.

“그런 미련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니! 아직도 거기서 죽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그들 방식대로 한다는 건 결국 우리 스스로 예정된 수익을 차버리는 꼴이 될 텐데. 생각들이 왜 그리 짧은 겁니까?”

유니온 대표가 이어 말했다.

“이자를 낮춘다는 건 다들 알다시피 우리한텐 당연히 손해가 될 테고. 그리고 예전부터 쭉 해오던 금화 보관료를 받던 사업을 철회하는 건, 그 수익조차 우리 손으로 날리는 게 아닙니까? 그런 미련한 짓을 어떻게 해.”

그 말에 반박하기 위해 어느 방코 업자가 나섰다.

“그래서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저들은 기존에 있던 우리 손님들까지 싸그리 다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뒀다간 란스타드에서 장사하는 방코 업자들은 전부 다 파리만 보게 될 겁니다!”

“맞소! 지금도 파리만 보고 있는데!”

“대책을 좀 강구하시오! 나름 대표가 아니오!”

아우성치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니온 대표가 말했다.

“허허, 그것 참 기다려 보라니까.”

유니온 대표도 답답했는지 자신의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레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이 바닥은 당신들 대표인 내가 아니라 이스마일 가문 관할입니다. 그래서 내가 뭘 어찌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그 이스마일은 대체 뭐하고 있단 말이오! 우리가 이렇게 말라죽게 생겼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뭘 했냐 이 말이오!”

“아, 글쎄! 그분들도 다 뜻이 있으니까 가만히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슨 얼어 죽을 뜻! 당장 우리가 말라 죽게 생겼는데!”

어느 방코 업자의 말에 동조한 몇몇 방코 업자들이 성난 목소리를 냈다.

“여기 있는 우리가 다 죽고 그들이 움직인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이스마일만 믿을 생각입니까! 그들은 움직일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벌써 한 달입니다! 이스마일이 움직였다면 저기 저 파렴치한 리옹 길드장은 예전에 객사했어야 합니다!”

“이거 이스마일도 포기한 거 아닙니까? 그냥 놔두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

그러다 한 방코 업자가 얼핏 들었던 소문에 대해 말해주었다.

“떠도는 소문 중에 그런 게 있습니다. 리옹 길드에선 이번에 2황자 전하를 민다고 하던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스마일 가문 측에서 여기 일을 묵인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나도 들었소. 그런 소문이 있긴 하던데.”

“나도 듣긴 했습니다. 아니, 1황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래 밀기로 한 3황자도 아니고, 웬 2황자를 민다기에 뭔 미친 소린가 했지.”

그 소문에 대해 유니온 대표도 안 들은 건 아니었다.

“아니, 그 미친 소리를 대체 누가 믿습니까? 나도 듣기야 했는데 세상에 싱클레어 가문은 무슨 병신 핫바지입니까? 그런 놈들을 놔두게.”

“아니, 진짜 그렇다면 그땐 어쩔 생각이오!”

“이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다니까…….”

표정을 구긴 유니온 대표도 나름 걱정되는 게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그런 소문이야 듣긴 했는데.’

워낙 개소리라 무시하려고 했던 소문.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이스마일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는 했다.

‘아니,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돈줄인 우리가 이렇게 됐는데도 가만히 있는다고?’

“우린 이스마일의 돈줄입니다.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런데 이스마일 가문이 자기 손으로 제 돈줄을 자를 것 같습니까?”

그 말이 한심하게 들렸는지 제 가슴을 두들기던 어느 방코 업자가 반박해 주었다.

“그럼 새 돈줄을 찾은 모양이지! 어디 우리만 돈줄입니까? 어차피 리옹 길드에서 2황자를 지원하겠다는 건 이참에 싱클레어가 아니라 이스마일 쪽에 붙어먹겠다는 소린데! 그러면 이스마일에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게 전부 설명이 되지 않소!”

뭐라 대꾸하지 못한 유니온 대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거…… 뭔가 남의 발 냄새처럼 스멀스멀 풍겨오는 냄새가 딱 그쪽 같은데. 정말 그런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원래 있던 돈줄이었는데. 그런 돈줄을 버리고 새 돈줄과 결탁을 한다고? 그것도 오래 전부터 싱클레어 가문하고 붙어먹어서 믿을 수도 없는 것들하고? 이것도 영 이상한데.’

그때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그의 부하 조셉이 그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워렌 공, 제 생각에선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을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마일 가문에서 잠잠한 것도 수상하고.”

그 말에 유니온 대표가 표정을 구겼다.

“그럼 그쪽에서 우릴 버렸다는 거야 뭐야?”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길들이던 두 개새끼의 개싸움이면 옆에서 잠자코 지켜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개싸움? 아니, 그래도 우리가 키우던 개새끼인데. 남의 개새끼랑 싸움 붙여놓고 이걸 가만히 지켜만 본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싸우다 이긴 개새끼를 다시 길들일 생각인지.”

“그럼 상대방 개새끼 주인은 어쩌고?”

“집 나온 개새끼라면 뭐 신경이야 쓰겠습니까?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겠죠.”

“뭐?”

“생각해 보십쇼. 집 나온 개새끼가 다른 개새끼랑 싸움이 붙었는데 그걸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그래도 애지중지 키우던 개새끼인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둔다고? 그리고 사냥터에 데리고 나가면 그래도 일은 곧잘 하던 놈인데도?”

“뭐 주인이라도 물고 도망쳤나 보죠.”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누가 니 멋대로 지껄이라고 했어?”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워렌 공께 조금이라도 조언을 드리기 위해.”

“그렇다고 개새끼 이야기를 해? 시끄럽고 저쪽으로 가 있어. 괜히 헛소리 나불거려서 내 신경줄이나 긁지 말고.”

“네…….”

떠나가는 부하와 맞물려 유니온 대표는 제게 찾아와 아우성인 유니온 소속 방코 업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난 그들은 당장 살길을 만들어 달라며 자신에게 찾아와 아우성이었다.

‘다들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군. 하긴 그놈들 오고 나서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지.’

유니온 대표가 되기 전에는 그는 한 바다를 누비던 악명 높은 해적선의 선장이었다.

배신과 뒤통수치는 게 일상이었던 세상.

그런 곳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남았던 자신의 촉이 감히 말하건데…….

‘평화로운 육지 생활에 너무 찌든 거 같군. 아직도 바다를 누볐다면 이건 십중팔구 발 냄새였을 텐데.’

“뭐…… 확실한 건 아니겠지만.”

그가 운을 떼자 모두들 조용히 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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