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22화 (122/181)

§122화 27. 블랙라벨 유니온 #2(4)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어떻게…….’

록펠러는 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당황해선 안 돼. 소설 내용은 틀린 게 없어.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그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당장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당황하지 말고 오로지 내가 아는 사실에 맞춰 생각해 봐야 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스마일의 가주, 리카르도의 쌍둥이 여동생은 예전에 죽은 게 맞아.’

그럼 이 상황은 어떻게 봐야할까?

록펠러는 소설 속 주어진 사실들만 생각했다.

‘녀석의 이명이 천의 얼굴이라 여장이나 남장을 하는 건 아주 자유로울 거야. 그래서 따로 등장을 했다면 동일인물로 보는 게 맞아. 하지만…….’

문제는 그런 리카르도도 있고, 또 그의 여동생도 같이 있다는 점이었다.

‘둘이 같이 있는 경우는 대체 무슨 경우지? 분명 둘 중 하나는 리카르도가 맞을 텐데?’

록펠러는 자신이 조수로 거둔 그가 이스마일의 가주라는 점에는 한 치의 의문도 달지 않았다.

그는 소설 속에서 묘사된 그대로였으며, 또한 그간 있었던 일들은 그가 가주일 경우에만 설명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굳이 가주가 아니었어도 이스마일쪽 사람이었으면 전부 설명이 되긴 해.’

“일단 들어오시죠. 급히 할 말이 있어 찾았습니다.”

그러자 리카르도가 자신을 데려온 동생을 향해 말했다.

“밖에서 기다려. 금방 끝날 거야.”

“네, 그럼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록펠러가 나섰다.

“굳이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리카르도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록펠러 공께서 다소 불편해하실 것 같은데…….”

“저야 괜찮습니다. 밤이 깊어 숙녀분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가게 밖은 사병들이 있어 안전합니다.”

“그래도 아리따운 동생분이신데, 제가 그렇게 대할 순 없죠. 너무 큰일은 아니니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록펠러의 호의에 리카르도의 여동생이 말했다.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리카르도의 여동생을 가게 1층에 남긴 둘은 곧바로 2층으로 향했다.

잠시 후.

따로 자리하게 된 록펠러는 그들에 대한 의문은 잠시 접어둔 채 아까 이스마일과 만났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이스마일과 만났습니다. 갑자기 절 찾아왔더군요.”

“이스마일과 만나신 겁니까?”

말을 하면서 록펠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의 반응을 살펴봤다.

애당초 표정 관리를 잘하는 사람인지라 여기서 그의 속내가 드러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반응을 보면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아까 만난 사람은 이스마일 쪽이 맞는 건가?’

“네, 그런데 거기서 별 이야기는 없었고. 저희가 싱클레어 쪽과 어떻게 되는지 옆에서 지켜보겠다고만 했습니다. 그 외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고, 이야기한 것도 그게 전부입니다.”

그 말에 리카르도는 제법 싱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군요.”

생각보다 별 시답잖은 일로 그를 찾은 것 같아 록펠러는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찾아온 쪽이 이스마일인지는 저도 좀 헷갈려서. 그래서 거기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눠보려고 늦은 밤 찾아가게 됐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어쩐지…… 하지만 제가 이미 여러 군데 이야기를 해놨으니, 혹여나 누가 찾아왔다면 분명 그들이 맞을 겁니다.”

“그런가요?”

“네, 저도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뭐,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하긴 그들 말고 따로 찾아올 사람들이 없긴 하죠.”

“혹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접근했냐고요? 솔직히 목소리만 들리더군요. 누군지 얼굴은 안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싱클레어 방식은 아닙니다. 그건 테페즈 방식도 아니고요.”

“그렇긴 하죠. 저도 들은 게 있긴 한데, 그런 식은 언제나 이스마일 방식이라 들었습니다.”

“그럼 이스마일쪽 사람들이 맞지 않을까요? 다른 쪽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접근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적어도 싱클레어와 테페즈는 그들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곳인지라.”

“그렇다면 그렇게 보는 게 맞겠군요.”

방금 전 대화를 통해 록펠러는 아까 만났던 자의 정체를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보다 괜한 일로 호들갑을 떤 것 같군요.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생각에 따라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인지라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신 부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만난 김에 록펠러는 데려온 여동생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아까 찾아온 건 이스마일 쪽이 맞아. 그건 그렇고 저 여자는 뭐지? 진짜 친동생은 아닐 거 아니야.’

“그런데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왜 말을 안 해주셨습니까? 저렇게나 미인인데.”

리카르도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꾸해 주었다.

“제가 동생에 대해선 말씀을 안 드렸군요. 딱 하나 있는 동생입니다.”

“동생분이 꽤 미인이더군요. 아까 보고 좀 놀랐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오해라도 할까 봐 록펠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뭐랄까…… 너무 똑같이 생기셔서.”

말을 하면서 록펠러는 리카르도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하지만 건조한 그의 표정에서 얻을 건 별로 없어 보였다.

“저희가 쌍둥이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동생분하고는 평소에도 같이 지내시는 겁니까?”

“아니요. 평소엔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절 찾아온 건 동생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해서요.”

“그렇습니까?”

이번엔 리카르도가 웃으며 물었다.

“평소와 다르게 제 철부지 동생에게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과 다르게 여자에 관심이 없는 분인 줄 알았거든요.”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니면 제 동생과 함께 일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정말 마음에 드신다면요.”

“네? 갑자기 무슨…….”

“말했던 그대로입니다. 제 동생도 마냥 놀 수만은 없어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거든요. 오빠인 제 입장에서도 애먼 곳에서 일하는 것보단 이런 데서 비서 일이라도 하는 게 좋아 보여서요.”

그런 리카르도를 향해 록펠러가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딱히 동생분께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도 진지하게 말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여유가 되신다면 제 여동생도 비서로 한번 써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을 뿐입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하게 칙칙하게 행동하는 저보단 싹싹하게 행동하는 여비서가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부재했을 때 록펠러 공을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필요하고요.”

무슨 의도일까?

록펠러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주라서 슬슬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싶다 이건가? 그래서 자기 외에 다른 녀석을 내 옆에 심어두는 거고.’

정작 거슬리는 것은 상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여동생이라는 점이었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 여자 대체 정체가 뭐지?’

“흠…… 요즘 일손이 많이 딸리긴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동생분이 미인이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일손이 좀 그래서.”

정체를 알기 위해선 가까이 붙이는 게 상책이긴 했다.

‘어차피 이스마일 사람이라면 내 옆에 놔두고 날 지키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런데 동생분께선 방코 일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겁니까?”

리카르도가 웃으며 답해주었다.

“제가 이쪽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 동생도 이쪽 일에 관심을 가져 이 일에 대해 아주 모르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진 않겠지만, 당장 부려먹어도 나쁘지 않을 정도는 될 겁니다.”

“그런가요? 그럼 일단 면접이라도 봐야겠군요. 늦은 밤이라 굉장히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실례가 되진 않을 겁니다. 오빠인 제 입장에선 맨날 빈둥빈둥 놀고 있는 동생이 늘 걱정이었거든요. 오히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밑에서 제 동생을 데려오겠습니다.”

록펠러가 알았다고 하자 리카르도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제 동생을 데려왔다.

“비서를 구하신다고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리카르도와 그의 여동생을 번갈아 쳐다보던 록펠러는 둘의 체형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란성 쌍둥이라지만 서로 체형이 얼추 비슷하긴 하네. 애당초 리카르도가 남자치곤 체격이 작은 편이라고 했으니까.’

이스마일의 가주, 리카르도는 보통의 남자들와 다르게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거기다 곱상한 외모를 지닌 미청년의 이미지를 가진 자였다.

다르게 보면 여장도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

‘저기다 슬라임 파우더로 만든 가슴 보형물을 얹히고, 화장을 하면…… 괜히 천의 얼굴이 아니긴 한데…….’

“일자리를 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말을 하면서 록펠러는 다시 그의 여동생을 쳐다봤다.

다른 여자들보다 조금 큰 키에 가슴 크기는 적당했으며, 머리칼과 눈동자는 쌍둥이라 그런지 리카르도와 아주 판박이였다.

만약 남장을 한다고 했을 때 딱 리카르도 정도로 모습을 바꾸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동생이란 사람도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라 남장을 해도 그렇게 무리는 아니겠어. 어차피 이스마일 쪽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고 다니는 거야 밥 먹듯이 하는 거니까.’

“간단하게 물어보죠. 방코 일은 어느 정도 아십니까?”

록펠러의 물음에 리카르도의 여동생이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락없는 여자였다.

“방코 일이요? 방코 일은…….”

그때 리카르도가 눈치를 주자 그의 여동생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해볼게요!”

록펠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도 이스마일쪽 사람이라면 저것도 다 연기하는 거겠지.’

“말하신 것과 전혀 다릅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안다고 하시길래 기대는 했었는데.”

그 말에 리카르도가 반응을 보였다.

“보기엔 이래도 옆에 두시면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럴까요?”

“저를 닮아 일은 빨리 배울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딱히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우선 일손이 부족하니 써보도록 하죠. 내일부터 이곳에 나오시면 됩니다.”

그러자 표정이 한껏 밝아진 그녀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정말요?”

“네, 내일부터 편히 나오시면 됩니다.”

이어지는 그녀의 반응이야 아랑곳하지 않는 록펠러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때 여동생이 죽었다고 한 건 리카르도가 제 입으로 말한 거였어. 그렇다면 애당초 그 리카르도란 사람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군. 어차피 소설에선 리카르도란 가주에 대해 자세히 다루진 않았으니까.’

그때 누가 살았고, 죽었는지에 대해선 록펠러에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거기서 누가 살았든, 지금 이스마일의 뜻은 자신을 살려두는 것에서 이미 확인한 상태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스마일에선 그 사람으로 변장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조차 변장한 사람에 맞춘다고 하지. 그렇게까지 해야 절대 안 들킨다고 하니까.’

록펠러의 시선이 자신 앞에 서 있는 두 남매에게 향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들 중 하나는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가 맞을 거야. 이스마일의 가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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