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21화 (121/181)

§121화 27. 블랙라벨 유니온 #2(3)

떠나가는 유니온 대표를 보면서 록펠러는 문득 찾아오지 않는 이스마일 가문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알아서 찾아온다는 이스마일은 지금까지 조용하군.’

이스마일 가문은 다른 가문들과 다르게 은밀하면서도 조용한 가문이었다.

구성원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대놓고 정체가 까발려진 이스마일 출신의 황자를 제외하고선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귀신같은 가문이었다.

‘결정은 이미 내렸을 텐데.’

애당초 이번 일도 이스마일이 알게 모르게 관여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적 선장 출신에 개망나니라 소문난 유니온 대표가 저리 확신을 가지고 조용히 돌아갈 순 없을 테니까.

‘중간에 개입은 했겠지.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으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록펠러가 근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리카르도를 향해 말했다.

“휴, 소문대도 유니온 대표는 우악스러운 면이 있군요. 해적 출신이라고 해서 대충 감은 잡고 있었지만, 저리 막돼먹은 사람인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리카르도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별일 없어 다행입니다.”

“그보다 이스마일은 소식 하나 없군요. 제대로 연락한 건 맞습니까?”

그 물음에도 리카르도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워낙 조용한 가문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실수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애당초 저희가 여기서 영업하는 걸 탐탁지 않아했다면 진작 움직였을 텐데…….”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록펠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말했다.

“알아서 연락이 오겠죠.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차분히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록펠러가 일을 보기 위해 움직였고, 그런 록펠러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리카르도는 잠시 자리에 서 있다 이내 자기 앞에 놓인 찻잔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가게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던 록펠러는 스산한 기운에 눈을 뜨고 말았다.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창문을 열어놨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니, 창문이 훤히 열려 있었다.

‘분명 닫아놓은 거 같은데?’

그 순간.

“쉬…….”

목덜미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으며 귀신같이 그의 뒤를 잡아낸 누군가가 있었다.

“…….”

누굴까?

유니온 대표가 고용한 암살자?

아니면 그들?

목울대로 침을 삼키는 록펠러가 넘겨짚듯 물었다.

“혹시…… 이스마일입니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록펠러는 선 채로 얼어붙어 있다가 이내 자신의 목덜미를 괴롭히던 금속 느낌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뭐지?’

화들짝 놀라 목덜미 근처를 만져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당황하여 뒤를 쳐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방 안은 자신 혼자였다.

‘과민…… 반응이었나?’

그럴 리가.

아까 전 목덜미에 닿았던 금속 느낌은 진짜였고, 귓가에 닿던 소름 끼치는 목소리 또한 거짓이 아니었다.

전부 경험했던 사실이었다.

‘왔군. 대체 언제 오나 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록펠러가 터벅터벅 걸어가 자신이 자주 앉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방금 전과 다르게 느긋한 자세로 이 방에 있는 누군가를 불렀다.

“오셨군요. 이스마일 쪽에서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나올 줄이야.

“…….”

침묵 속에서 잠시간 말을 아끼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며칠간 조용히 지켜봤는데 역시나 남다른 분이시군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리카르도가 아니었다.

괜히 천의 얼굴이겠는가?

‘근데 왜 여자 목소리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찾아온 이가 리카르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자유롭게 바꾸는 거야 이스마일 출신이면 다 하는 거라서…….’

“목소리만 들으면 여자분 같군요.”

찾아온 이가 리카르도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가문에 속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록펠러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리카르도의 뜻이 곧 가문의 뜻이었고, 가문의 뜻이 찾아온 그의 뜻이기도 했으니까.

‘어차피 누가 찾아와도 상관없겠지. 대화 내용은 같을 테니.’

닫았던 창가의 문이 활짝 열리며 차가운 밤공기가 들이닥쳤다.

록펠러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그의 목덜미에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중요한가요?”

“맞습니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록펠러는 이내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사실 진짜 여자인지, 아니면 목소리만 흉내 내는 남자인지 확신할 수가 없는 게 이유이기도 했다.

“크흠! 찾아오신 이유야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화가 빠르겠네요.”

록펠러가 먼저 운을 뗐다.

“저희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길드 회의까지 참석하셔서 그 내용을 엿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흰 싱클레어 가문과 상관없이 2황자 전하를 밀어드릴 생각입니다.”

“…….”

“그리고 여기 일은 그 일의 연장선으로, 저희의 힘이 커져야 2황자 전하도 힘을 받으실 테니. 여러모로 이스마일 쪽에선 좋은 일이 되겠군요.”

“그게 과연 좋은 일만 될까요?”

록펠러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물론 블랙라벨 유니온이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저희가 모르진 않습니다. 훌륭한 돈줄이겠죠.”

“잘 아시네요.”

“그럼 이렇게 되는 게 좋겠군요. 저희가 무탈하게 이쪽 방코 연합을 먹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돈줄은 계속 유효할 테고. 또 2황자 전하를 밀려고 하는 저희들도 그 힘이 더 커질 겁니다.”

“…….”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던 록펠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리카르도는 아닌 것 같은데?’

리카르도가 아니면 누굴까?

같은 가문 사람?

‘그냥 내 느낌이지만……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그사이 생각을 마친 정체불명의 상대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싱클레어 가문과 함께해오던 당신들을 저희가 어떻게 믿나요? 그러다 다시 싱클레어 가문으로 돌아가면 그만인데.”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지금이야 무방비지만 그때 가서 싱클레어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그 말에 록펠러가 씩 웃어 보였다.

“하하, 그건 옆에서 지켜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말이죠?”

“조만간 싱클레어 가문에서도 저흴 찾아올 겁니다. 곧 왕관 전쟁이니 도와달라고 하겠죠. 그때 저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잘 지켜보시면 될 겁니다. 아마 기존에 알고 있던 리옹 길드라면 싱클레어 가문의 요청을 당연히 거절할 수 없겠죠.”

“지금은 다르다는 소린가요?”

“지금은 다르죠. 제가 있으니까요.”

“당신이 있어서 다르다?”

“네, 제가 있으니 분명 다를 겁니다. 예전의 리옹 길드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제가 있음으로 해서 리옹 길드는 분명 달라졌고, 또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일 겁니다.”

“그럼 속는 셈 치고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죠.”

무언가 떠나려는 느낌이 들자, 록펠러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붙잡았다.

“아, 그렇게 가지 마시고.”

“더 할 말이 있으신가요?”

“만약 제 말대로 된다면, 이스마일 쪽에선 여기 일에 더 이상 관여 안 하는 걸로 해줬으면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희가 블랙라벨을 어떻게 하든 일절 신경 쓰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

한동안 말이 없던 상대는 이내 그 침묵을 깨뜨리며 이스마일의 뜻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요? 찾아오신 분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문의 일을 결정할 권한은 없으신가 보군요.”

“결정할 순 없어도 조언이야 가능하죠.”

“아…… 그러시군요.”

“다음에 보게 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명심하세요. 저흰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요.”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찌 됐건.

오늘 밤 록펠러를 찾아온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그렇게 떠나갔다.

‘리카르도 말투는 아닌데. 확실히 아닌 거 같은데…… 아니면 연기를 했나? 아니지. 굳이 저렇게까지 연기를 할 필요는…….’

이스마일 가문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방금 전 목소리와 부합되는 인물이 있는지 록펠러가 한번 생각해 봤다.

‘이스마일 가문에서도 여자 구성원이 있을 순 있겠지. 한데…… 그렇게 비중 있는 역할의 여자 캐릭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한 명이 떠오르긴 했다.

‘이름이 실비아였나? 리카르도의 쌍둥이 여동생이 있긴 했는데…….’

문제는 죽었다는 것.

이교도로 낙인찍힌 가문의 몰락과 함께 그의 쌍둥이 여동생이 비참하게 죽었다고 소설 속에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건 아닌 거 같고…… 그럼 이스마일 가문에 속한 비중 없는 배역인가?’

아니면 이스마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

‘그럼 큰일인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라면 정말 큰일이기에 록펠러는 급히 가게 밖으로 나와 자신이 고용한 사병들과 함께 리카르도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대충 떠보면 알 수 있겠지.’

어차피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게 리카르도의 사람이라면 리카르도가 그 일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서둘러 리카르도가 묵고 있는 숙소 앞에 도착한 록펠러가 3층 높이로 지어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행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그곳은 리카르도가 블랙라벨에 머물기 위해 구한 숙소였다.

미리 알고 있던 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세차게 두들기니, 잠시 후 잠옷 차림의 여인이 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다.

“…….”

굽이치는 은발에 호수같이 깊은 눈.

영락없는 이스마일 가문의 사람이었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방 주인은…… 어디 갔습니까?”

당황한 록펠러와 다르게 잠옷차림으로 그를 상대하는 그녀는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토마스 오라버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토마스 오라버니요?”

“네, 제가 동생이거든요. 아, 일하시는 가게의 주인분이시구나. 얘긴 많이 들었어요.”

잠옷 차림이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하여 예를 보였다.

“엘리스 마르텔이라고 합니다. 록펠러 공에 대한 이야기는 토마스 오라버니께 많이 들었어요.”

“동생치고는…… 너무 닮으셨는데.”

“아, 저흰 쌍둥이거든요.”

그에게 여장하는 취미가 있었던가?

‘천의 얼굴이니 가능하긴 한데…… 하긴 체형도 호리호리해서 여장조차 완벽하다고 했었지.’

시선을 내리니 상의 위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리카르도에겐 분명 없는 것이 맞았다.

‘저런 거야 충분히 흉내 낼 수 있지. 가슴 보형물을 구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록펠러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뭐라 말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밤엔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그게……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그분께 쌍둥이 여동생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토마스 오라버니가 이런 얘길 잘 안 하니까요.”

“동생분과 같이 왔다는 소리는 전혀 못 들었는데…… 동생분께선 여긴 어쩐 일로?”

“저는 잠깐 놀러왔어요. 토마스 오라버니가 블랙라벨에 있다기에 호기심에.”

“그보다 당신 오라버니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당장 할 얘기가 있는데.”

“글쎄요. 잠이 안 온다고 밖으로 나간 거 같은데…….”

“이 밤에 밖으로 나갔다는 겁니까?”

“네. 가끔 그러실 때가 있어요. 좀 별나죠?”

둘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모르는 척 연기하는 록펠러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일이 급해서 그런데,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한번 나가면 늦은 새벽이 돼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서요. 아니면 제가 기다렸다가 록펠러 공께서 왔다 가셨다고 전해드릴까요?”

“…….”

딱히 할 말이 없어진 록펠러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왜 쓸데없이 여장을…….’

이유야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리카르도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일이야 자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모르겠군. 그 여자가 리카르도인지도 잘 모르겠어.’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초조한 기색이 짙던 록펠러에게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그가 찾던 리카르도였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록펠러가 놀란 것은 그를 따라온 여동생의 존재였다.

‘뭐야? 진짜 여동생이 있었어?’

같이 온 그녀는 아까 전 자신이 봤던 그녀가 분명 맞았다.

“같이…… 오셨군요.”

“네, 급하게 오라버니를 찾는 것 같아서 제가 오라버니를 찾아서 데려왔어요.”

자신의 조수가 예쁜 여동생을 데려온 건 문제가 아니었으나, 정작 문제가 되는 건 그녀의 존재 자체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소설에선 죽었다고 했던 인물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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