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26. 블랙라벨 유니온(5)
리카르도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록펠러도 돈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무역선 투자에 관심이 없는 걸까?
“잘만 하면 대박을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무역선 투자는 전혀 안 하실 겁니까?”
록펠러가 옅게 웃으며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무역선 투자가 여기서 훌륭한 돈벌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투자 대비 상당히 고수익이죠. 하지만 무역선 투자는 일종의 도박입니다. 한순간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순간에 쪽박을 찰 수도 있는 그런 도박이죠.”
배가 중간에 난파를 당하거나, 아니면 선장이 도망을 치거나.
재수 없으면 해적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배가 물건을 싣고 돌아오지 않으면 곧바로 망하는 게 무역선 투자였다.
“저는 말입니다. 그런 애매모호한 도박보단 확실한 돈벌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록펠러가 검지까지 세우며 강조하듯 말을 이었다.
“단 1퍼센트라도 확정된 수익이 있다면 그것을 더 키워서 이익을 볼 생각은 있지만. 무역선 투자와 같은 너무 리스크가 큰일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록펠러는 이전에 한 말이 있어 이 말도 같이 해주었다.
오해가 없길 바란 것이다.
“뭐, 촉이 좋다면야 해볼 수는 있겠는데. 이 촉이 웬일인지 여기선 잠잠하군요.”
이어지는 미소.
그 미소를 본 리카르도가 살짝 좁힌 눈가로 물어보았다.
“보기보다 도박을 안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2황자 전하를 밀어주신다고 했기에 저는 도박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2황자 일은 좀 예외입니다. 그것도 도박이긴 하지만, 그건 나름대로 촉이 왔거든요.”
“촉이라…….”
참 편리한 말이었다.
촉이란 핑계가 말이다.
무언가 탐탁지 않아 하는 그를 상대로 록펠러가 말했다.
“개인적으론 도박이란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물론 도박이 때론 필요할 때가 있겠죠. 피할 수 없는 도박이라면 나름 배팅은 해보겠지만, 피할 수 있다면 굳이 도박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건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도박보단 확실한 걸 좋아합니다. 방금 전처럼 저희에게 돈을 빌리러 온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고 거기서 안정된 이자 수익을 얻는 걸 더 선호하죠.”
일확천금보단 작지만 확실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록펠러가 진정으로 원하는 돈벌이였다.
“대출 사업만 잘돼도 나름 고수익을 얻을 겁니다. 무역선 투자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사업이죠. 아마 대출 이자만 기존 6퍼센트보다 낮게 잡아도 방금 저 사람처럼 돈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겁니다. 그럼 저희는 거기서 재미를 보는 것이죠.”
대출 이자와 예금 이자의 차이.
그리고 거기서 얻는 확정 수익.
이해는 됐지만 리카르도가 문득 든 생각에 의문을 표했다.
“그래도…… 금리 차이에 따른 수익보단 무역선 도박으로 얻는 수익이 훨씬 크지 않을까요?”
말을 하면서 리카르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역선 투자가 제법 할 만하다 치면 자금력도 나쁘지 않으니 그가 말했던 것처럼 분산 투자를 이용해 고수익을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분산 투자를 통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면 무역선 투자도 나름 괜찮을 거 같다고 하신 거 같은데.”
“맞습니다. 어느 정도 가정이죠. 그리고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록펠러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 확신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만 했지, 정말 그렇게 되리라곤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걸 누가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확신할 순 없겠죠. 투자한 배들이 전부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만에 하나.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자신이 하는 말도 분명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면 전부 안 돌아올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운이 좋다면 투자한 배들이 전부 돌아올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전부 안 돌아올 수도 있겠죠. 이건 순전히 운에 따른 겁니다.”
“도박을 정말 안 좋아하시는군요.”
그 말에 록펠러가 오히려 반문했다.
“좋아할 필요가 있습니까? 오히려 확실한 돈벌이만 쫓아도 될 판국인데.”
록펠러가 간단한 설명을 위해 다시 목소리를 냈다.
“쉽게 가정해 봅시다. 저희가 대출 금리를 5퍼센트로 잡고, 예금 이자를 1퍼센트로 잡습니다. 그럼 그 차이인 4퍼센트의 확정 수익이 생기죠. 이것을 더 쉽게 풀어쓰면 누가 100달란트를 맡기고, 또 어떤 누군가가 그 100달란트를 빌려간다면 저흰 매달 4달란트라는 확정 수익을 얻게 됩니다.”
“4달란트라…… 생각보다 작긴 하네요.”
작다는 말에 록펠러가 진하게 웃어보였다.
“그래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가 고작 100달란트로 장사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가령 저희가 그 규모를 키워서 1만 달란트로 장사를 한다면 거기에 4퍼센트인 400달란트가 매달 수익으로 확정될 겁니다.”
리카르도는 대꾸하지 않고 록펠러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듣기로 했다.
“다시 그 규모를 더 키워서 예금되고 빌려준 달란트가 100만 달란트가 된다면 저흰 매달 4만 달란트라는 거금을 그저 가게 간판만 내걸고 얻게 되겠죠.”
“4만 달란트라…… 이건 확실히 크긴 하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저흰 규모가 클수록 좋은 곳이니까요.”
록펠러가 다른 예를 들기 위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반면 무역선 투자라고 합시다.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역선 한 대당 투자 비용이 대략 몇천 달란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배의 크기에 따라 가지각색이니 평균적으로 2천 달란트라고 치고, 투자 기간은 1년. 그리고 이에 따른 대박 수익은 건조 비용을 제외한 400퍼센트로 간단하게 계산해 봅시다.”
말이 길어진 탓에 잠시 숨을 고른 록펠러가 나머지 말도 잇기 시작했다.
“그럼 2천 달란트를 투자했다고 가정했을 시, 매달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대략 666달란트 정도. 여기다 배가 돌아오지 않는 리스크까지 충분히 감안한다면 기대 수익은 훨씬 더 낮아질 겁니다. 그래도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란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이만한 것도 없긴 하죠.”
“성공만 한다면야.”
“네 그렇습니다. 성공만 한다면야. 하지만 이런 사업과 제가 벌이는 대출 사업과는 극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리카르도는 그게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둘 다 고수익을 낼 수 있지만, 리스크라는 부분에서 확실히 달랐던 것이다.
“절대 망하지 않는 것과…… 망할 수도 있는 것. 뭐 그런 겁니까?”
“그렇죠. 한쪽은 규모만 키우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다 확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합니다. 반면 다른 한쪽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확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변동 폭이 너무 크죠.”
록펠러의 물음이 이어졌다.
“어차피 둘 다 고수익을 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시겠습니까?”
“그야 안정적인 게 낫겠죠.”
그제야 록펠러가 진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제가 직접적인 무역선 투자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어차피 그쪽 도박이야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고, 저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최대한 안정적으로 장사만 하면 되는 겁니다.”
요점은 리스크였다.
무역선 투자가 워낙 핫하다 보니 리카르도도 무역선 투자에 다시 혹하긴 했으나, 록펠러가 강조하는 안정적인 수익에 있어서는 확실히 록펠러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갈대로군요. 록펠러 공의 생각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한 방이 있는 무역선 투자가 은근히 끌리긴 합니다.”
록펠러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도박을 좋아하시는군요?”
뜻밖의 말에 리카르도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리카르도를 향해 록펠러는 나름 생각해 뒀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제가 여기서 대출 사업만 벌일 건 아닙니다. 저도 돈에 환장한 녀석인데 고작 대출 사업에 만족할 순 없겠죠.”
방코 업자에게 가장 큰 수익 창출은 바로 대출 사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업만 하지 않겠다고 하니 리카르도는 그가 무슨 사업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무언가 다른 걸 준비하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직접적인 무역선 투자는 아닙니다.”
“그럼 어떤 걸 준비하시는 겁니까?”
“여기선 무역선 투자가 나름 핫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그럼 거기에 맞춰 사업을 진행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감도 안 잡히는군요.”
록펠러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애당초 무역선 투자는 투자금액이 너무 커서 개인이 혼자 하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리카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록펠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초기엔 무한책임이라고 해서 개인 혼자 투자를 다 하고, 그 책임까지 다 떠맡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워낙 리스크가 크다 보니 유한책임이란 게 생겨났죠. 말 그대로 투자를 나눠서 하고, 그 리스크까지 같이 나눠 갖는 형식이 된 겁니다.”
록펠러는 과연 무슨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까?
리카르도는 그가 한 말 속에서 답을 찾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가 투자를 한 만큼 수익도 나눠 가져야 하는데, 이걸 표기하는 방식이 필요해진 것이죠. 여기서 그 권리가 표시된 증권이 나오게 됐고, 투자한 사람들은 이걸 자기가 투자한 만큼 나눠 갖게 됩니다. 나중에 배가 돌아오면 자신이 어느 정도 투자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 증권이란 게 어딘가에 투자를 했다는 권리 증서인데. 어떤 투자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투자를 철회하고 이걸 다시 돈으로 바꿔 나가게 되면, 그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딱 필요한 만큼 투자금을 모았는데, 여기서 일부 자금이 빠져나가게 되면 당연히 그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선박 건조 비용이라든지, 선원들에게 줄 급여 같은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증권이란 것을 돈으로 바꿀 순 없지만, 대신 다른 투자자에게 파는 걸 제국 황실에서 허락해 줬습니다. 이렇게 되면 투자금 자체는 그대로 보존되니 배는 예정대로 출항할 수 있게 되고, 또 투자자 중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증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돈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죠.”
록펠러가 물었다.
“그런 증권거래가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 블랙라벨입니다. 그런 곳이기도 하니 다른 곳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재밌는 사업 하나를 구상할 수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말하시는 겁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황실에서 개인 간 증권 거래는 허락해 줬다고. 그럼 그 증권 거래는 보통 어디서 하게 될까요?”
리카르도가 알고 있기론 공식적으로 증권을 사고파는 곳은 없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 남에게 넘기는 형식이 대부분.
“그런 데가 있었습니까? 그냥 개인 간 거래로 끝나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죠. 아직 그런 데는 없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 사고 싶다고 하면 그 사람한테 팔아넘기는 게 대부분이니까. 아니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뭐 이런 방식이었죠.”
록펠러가 은연중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증권 거래를 함에 있어 꽤 번거롭다고 생각할 겁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권을 빨리 처분하고 싶어도 그것을 사고 싶은 사람이 어딨는지 당최 알 수 없으니까요. 또 반대로 증권을 사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어디서 사야 할지 또 난감해하고 있을 게 뻔합니다.”
그제야 리카르도는 그가 구상하고 있다는 사업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설마 증권 거래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열 생각입니까?”
“이제야 맞히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아직 이곳에 없는 게 바로 증권거래소입니다. 시스템 자체적으로 너무 미흡하다 보니 증권이란 게 생겨났어도 아직 거래소라는 곳은 생겨나지 않았죠.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증권거래가 활발하면 활발해질수록 이를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욕구는 무조건 생겨나게 될 겁니다.”
리카르도는 부정하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그렇게 될 게 뻔했으니까.
“그런 욕구가 있다면 저희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풀어주는 게 나름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소정의 수수료 정도는 당연히 저희야 챙겨야겠죠. 저희야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은 록펠러가 추구하는 수익 창출 방식과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리스크가 제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