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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117화 (117/181)

§117화 26. 블랙라벨 유니온(4)

인생무상.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밥이 답답한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다 부질없어. 다 부질없다고.”

“아니, 그래서. 장사도 안 하고 이러고 있는 거였어?”

밥이 언성을 높였다.

“지금 가게 일이 눈에 들어와! 예전에 내 밑에서 일하던 놈이 지금 벼락부자가 됐다는데!”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있으면 쓰나. 가게 장사는 해야지.”

“다 부질없다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200달란트였어. 그런데 내 밑에서 일이나 하던 녀석이 꼴랑 20달란트로 나보다 더 큰 부자가 됐는데 일할 맛이 나겠냐고!”

“허허, 그래도 이 사람이.”

대화를 하던 도중 벨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구두닦이였던 샘이 투자한 액수였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아니, 무역선 투자가 고작 20달란트로 되는 거였어? 내가 알기론 못 해도 수천 달란트나 됐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러자 밥이 나서서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랬었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래, 그게 맞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나도 투자했지. 무역선 투자가 고수익이란 건 다들 알고 있었던 거고.”

“그런데 그 방식이 몇 년 전부터 크게 바뀐 모양이야.”

“방식이 바뀌었다고?”

“바뀌었지. 예전엔 진짜 돈 많은 부자들만 무역선에 투자할 수 있었는데, 이게 워낙 도박이다 보니 부자들도 그 책임을 다 지기 싫어진 거야.”

“그렇긴 하지. 그러다 투자한 선박이 좌초되거나 선장이 도망가기라도 하면 그땐 끝장이잖아? 투자금 회수도 당연히 못 할 거고.”

“그래서 그 책임을 적당히 지려고 투자금을 낮춘 거야.”

“투자금을 낮췄다고?”

“어, 투자금을 낮췄대.”

“그럼 배는 어떻게 만들어? 그게 한두 푼짜리도 아닌데.”

“그래서 저 혼자 투자하던 방식에서 같이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뀐 거지.”

“아, 같이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뀐 거였어?”

“그래, 그래야 책임도 나눠 가질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래서 그런 식으로 바뀐 거지.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투자를 받은 모양이야.”

“그걸 구두닦이 샘이 들어갔고?”

“그래, 그렇다니까?”

“아니, 그래도 나는 그쪽 투자는 돈깨나 있는 사람만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어설픈 사람은 안 끼워주는 줄 알았어.”

대답에 앞서 밥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후…… 그렇게 방식이 바뀐 뒤로 얼마를 투자하든 관계가 없어진 모양이야. 딱 투자한 만큼 이익을 나눠 갖는다고 하니까. 들어보니까 무슨 증서를 준다고 하던데?”

“증서?”

“그래, 투자한 만큼 증서를 주는 모양이야. 이걸 사람들이 주식이라고 하던데.”

“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아무튼 그것 때문에 평생 구두닦이나 할 줄 알았던 샘이 대박이 난 거지. 참…… 인생.”

밥은 땅이 꺼지라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벨이 목소리를 냈다.

“이봐, 계속 그렇게 있지만 말고. 차라리 자네도 투자나 해보는 게 어때?”

“뭐? 투자?”

“그래, 샘도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됐다면서? 그러면 자네는 또 못할 게 뭐야?”

그 말에 밥은 고개부터 저었다.

“에이 그래도. 그거 하다가 전 재산 말아먹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들에게 무역선 투자는 그런 것이었다.

“그 짓거리 하다가 예전에 잡화점 하던 루가 야반도주했잖아.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선박 투자를 안 하면 돈은 못 벌 텐데. 계속 그렇게 한숨만 쉴 거야?”

밥은 대꾸 대신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그래, 생각해 보니 자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그 코흘리개 샘도 고작 20달란트로 대박 친 거였잖아? 그럼 나도 20달란트 정도 투자하면 대박 날 수 있는 거 아냐? 어차피 소액 투자도 가능한 마당에. 나도 못 할 것도 없지.”

그런 밥을 보며 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모은 돈 다 날려 이 사람아. 자기 입으로 루 이야기를 했으면서 또 저런다. 20달란트가 어디 개집 이름인 줄 아는 모양이야.’

그런 벨의 생각을 알 리 없는 밥은.

오직 일확천금의 환상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에야! 나도 샘처럼 못 되란 법은 없지. 내가 오늘!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보겠어.”

그렇게 외친 밥은 가게 문을 닫고 곧장 록펠러가 있는 방코로 향했다.

그런 밥을 뒤에서 지켜보던 벨은 그저 혀만 찰 뿐이었다.

‘망하려면 뭘 못하겠어. 선박 투자가 그리 가벼운 것이었다면 다들 부자가 됐겠지.’

“쯧쯧쯧.”

잠시 후.

록펠러 가게로 찾아온 밥은 불과 얼마 전에 맡겨 놓은 금화를 다시 찾으려 했다.

그러자 록펠러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금 돈을 빼시면 아직 이자 기간이 다 차지 않아서 정상적인 이자 지급은 힘듭니다. 그런데도 돈을 굳이 찾아가시는 겁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그딴 코딱지만 한 이자 받아 봤자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어서 내 돈이나 돌려주시오.”

“돈을 돌려드리는 거야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어디다 쓰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역선에 투자할 생각이오. 듣자 하니 주식을 사면 된다고 하던데.”

“아, 무역선에 투자하실 생각이시군요. 대박이 나면 정말 크게 난다고 들었습니다.”

은연중 미소를 감춘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흠…… 일단 60달란트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구두닦이 샘은 그 당시 영혼까지 끌어모은 20달란트로 대박을 쳤었다.

물론 지금 투자한다고 해서 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샘보다 조금 더 많이 투자한다면 나름 재미 좀 볼 거 같았다.

‘20달란트씩 세 군데 투자하면, 적어도 하나는 돌아오겠지. 그럼 최소 4배 수익이니까 어쨌든 이익이야. 성공만 한다면 말이지.’

그러다 또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지.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왜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이왕 하는 거 그냥 인생을 걸어보자고. 놈도 인생을 걸었었는데,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그냥 200달란트 전부 돌려주시오.”

밥이 200달란트 상당의 고블린 달러를 전부 록펠러에게 돌려주자, 이를 확인한 록펠러가 그에게 200달란트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이 말도 해주었다.

“배짱이 아주 크신 분이군요. 만약 더 큰 투자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찾아와 저와 상담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더 큰 투자라니.”

록펠러가 사람 좋은 미소로 말을 이었다.

“대출에 대해 말한 겁니다.”

“대출? 그거 이자가 세잖소. 달에 6퍼센트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저흰 5퍼센트입니다.”

“5퍼센트?”

“네, 그 정도로 낮게 받아야 란스타드에 있는 방코 업자들과 경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물론 5퍼센트도 적은 이자는 아니죠. 하지만 그 돈으로 투자를 하시든, 뭘 하시든, 저희는 일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희야 이자만 받으면 그만이니까요.”

“그거야 뭐 당연한 소리를.”

“그리고 이건 순전 제 생각입니다만.”

이제부터 말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정말 대박을 노리실 거라면 대출까지 끌어당기셔서 크게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대출.

그 위험한 말에 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건드리다가 X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러다 망하면 진짜 X 되는 거 아니오?”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애당초 선박 투자가 도박입니다. 너무 리스크가 큰 바람에 무한책임에서 유한책임으로 바뀔 정도죠. 하지만 그 열매는 달콤하다 못해 천상의 기분을 누릴 정도랍니다. 그렇겠죠. 리스크가 큰 만큼 돌아오는 과실도 클 테니.”

“허허…….”

“투자한 선박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보통 기다리는 시간이 최소 6개월에서 많으면 2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속삭임은 꽤나 달콤해 보였다.

“어떤 식으로 투자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6개월에서 2년 정도 이자만 낼 생각으로 버티시다가 배가 돌아온다고 치면 최소 4배 이상은 남겨 드실 테니, 그렇게 투자해 보시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이왕 대박을 노릴 거라면 록펠러의 속삭임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밥이 약간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의상점 주인 벨이 난리를 쳤다.

“아니, 이 사람아. 지금 대출까지 받으려고? 지금 제정신이 아니지?”

“가만히 있어 봐 이 사람아! 자네가 대출받나? 내가 받지.”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미 200달란트만 해도 엄청난 거라고. 자네가 평생 모은 돈이 그 정도인데, 거기다 대출까지 받아?”

지켜보던 록펠러가 적당한 밀당을 위해 이 말도 던져주었다.

“만약 이번 투자가 실패하실 경우, 어느 정도 감당은 하셔야 할 겁니다. 저희야 투자에 대한 책임은 안 지니까요.”

그러자 밥이 나섰다.

“그건 압니다! 아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도 모르고 대출까지 끌어당길 거 같습니까? 괜한 걱정 마시오.”

벨은 밥이 진정 미쳤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야! 번 돈은 다 날려도 대출만큼은 안 된다고! 그러다 루처럼 야반도주나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록펠러가 다시금 끼어들었다.

“저희도 가진 재산 내역을 따져보아, 딱 감당하실 정도만 빌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너무 많은 돈을 빌려준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저흰 딱 적당히만 빌려드리니까요.”

록펠러는 ‘적당히’ 말을 강조하듯 말했고, 밥의 입장에선 그 단어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그래 저쪽에서도 적당히 빌려주는 거잖아. 진짜 일이 잘못돼서 내가 도망치면 그땐 어쩌려고?’

“그럼 얼마나 땡길 수 있습니까?”

록펠러는 대출을 권할 뿐이지만, 결국 그것을 결정하는 건 돈을 빌리는 당사자였다.

‘걸려들었군.’

“그전에 가지고 계신 재산 내역을 다 알아야 합니다. 근처에 있는 가게는 세를 들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본인 명의로 직접 가지고 계신 겁니까?”

밥은 당당히 말했다.

“그거 내 가게요. 내가 가진 건 없어도 집이랑 가게 정도는 가지고 있지.”

“우선 집과 가게에 대한 등기권리증을 전부 확인하고 싶군요. 그리고 주변 시세도 알아봐야 하니 당장 대출은 힘들고 며칠 뒤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시세는 내가 잘 알고 있소.”

“하하, 죄송하지만. 부동산 시세는 저희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서 대출액이 정해질 겁니다. 저희도 리스크를 짊어지는 건 싫거든요.”

“알았소. 내가 당장 대출한 건 아니고. 그냥 알아보기만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말을 마친 밥은 자신을 만류하는 벨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간 둘을 확인한 록펠러가 피식 웃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리카르도가 말을 붙였다.

“무역선에 대한 투자가 확실한 것도 아닌데, 너무 낙관적이군요. 저러다 실패하면 감당이 안 될 거 같은데…….”

록펠러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여러 배에 분산 투자를 한다면 수익률이 워낙 높으니 제가 볼 땐 손해는 아닐 거 같습니다. 그중에 하나만 무사히 돌아온다 쳐도 나쁘지 않으니…… 뭐 이것도 장담할 수 없는 거지만.”

“성공한다면야 그 수익률이…… 4배에서 그 이상까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꽤 높죠. 그래서 유한투자인 주식이 생겨난 거 아닙니까? 투자금이 워낙 크다 보니 혼자서 하기엔 무섭고, 그렇다고 안 하기엔 아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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