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26. 블랙라벨 유니온(3)
대화를 마친 그가 가게 밖으로 나가자 이를 지켜보던 두 가게 주인 중 하나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같이 온 벨이 당황하여 갑자기 가게 밖으로 나간 밥에게 물었다.
“아니, 돈 맡긴다면서 갑자기 왜 나온 거야?”
밥은 떠나가는 귀족 출신의 사업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맡겨보려고. 방금 봤잖아? 프레릭 공이 여기다 돈을 맡기고 간 거. 내가 저 길드장은 몰라도 프레릭 공은 진짜 잘 알거든. 그 사람, 절대 돈을 허투로 쓸 사람이 아니야. 분명 믿고 있는 거라고.”
“아니, 이 사람아! 내가 계속 말했잖아. 진짜 길드장 맞다니까?”
“그래서 제대로 해본다 이 말이야. 이까짓 몇 달란트로 누구 코에 붙이겠어. 진짜 이자만 준다면 제대로 맡겨야지.”
그렇게 다시 구두 가게로 돌아간 밥은 쌈짓돈까지 전부 챙겨와 록펠러 가게를 다시 찾아왔다.
자꾸만 들락거리는 그들의 얼굴을 봤으면서도 록펠러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그들을 맞아주었다.
‘계속 의심한 모양이야. 이해는 해. 다들 저렇게 행동했으니까.’
“어서 오세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록펠러가 운을 떼자 돈을 챙겨온 구두 가게 주인이 불쑥 말을 붙였다.
“여기가 금화를 맡기면 이자를 주는 데가 맞습니까?”
딱 원하던 손님이었다.
록펠러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군.’
“네, 맞습니다. 저희 가게에 금화를 맡기시면 매달 1퍼센트씩 이자를 챙겨드리고 있습니다.”
돈 벌 생각에 찾아온 밥의 얼굴도 미소가 피어났다.
“매달 1퍼센트나요? 그럼 100달란트를 맡기면…….”
“매달 1달란트씩 공짜로 받는 겁니다. 1,000달란트면 달마다 10달란트가 되겠군요.”
손가락을 펼쳐 대충 셈여림을 해보던 구두 가게 주인이 놀란 마음에 숨을 들이켰다.
‘200달란트에 1퍼센트 이자면……. 세상에, 매달 2달란트가 공짜로 들어오는 거잖아?’
2달란트면, 한 달 최소 생활비의 2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헛! 세상에……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네, 저희 리옹 길드에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어보는 건데, 혹여나 돈을 떼일 염려는 없겠죠?”
그 물음에 록펠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전혀 없습니다. 블랙라벨이 무너져도 맡기신 돈은 무사할 겁니다. 저희 리옹 길드가 살아 있는 한은 말이죠.”
밥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돈이 나서 우리한테 이자를 주는 겁니까?”
“저희도 여러 가지 사업을 하지 않습니까? 그 이익에 일정 부분을 돌려드리는 겁니다. 어찌 됐건 저희에게 돈을 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게 내가 여기다 돈을 빌려준 꼴이 되는 겁니까?”
“네, 그런 거죠. 아니면 저희가 뭐하러 이자까지 챙겨주겠습니까?”
나름 수긍한 모양이지 고개를 주억이던 밥은 록펠러에게 200달란트를 맡기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밥은 손에 들린 이상한 차용증서를 제 머리 위로 펼쳐보았다.
고블린의 초상화가 그려진 이상한 차용증서였다.
“리옹 길드에선 금화보관증으로 이런 걸 주는 모양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의상점 주인 벨이 밥이 들고 있는 고블린 달러를 알아보았다.
“리옹 길드에선 금화보관증으로 그걸 주는 모양이야.”
“그래? 여긴 다 제각각이잖아.”
“거긴 아닌가 봐. 다들 그걸 쓰고 있더라고.”
“여기에 숫자가 적힌 걸 보니, 이거 돈처럼 써도 되겠는데?”
“그거 돈처럼 써도 될걸? 어차피 그 금화보관증에 주인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오 그래? 꽤 신박한데?”
“다들 그 소리를 하더라고. 뭔가 내 느낌이지만 리옹 길드가 여기 있는 블랙라벨 유니온보다 시스템적으로 더 위에 있는 느낌이야. 더 발전된 거 같다고.”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매달 1퍼센트씩 이자 받을 생각에 싱글벙글해진 밥이 근처에 있던 벨을 이끌었다.
“가자고.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내가 한턱 쏠게.”
“이 사람이 공짜 돈 벌었다고 그렇게 좋아하면 쓰나.”
“세상에 공짜 돈보다 좋은 게 어딨겠어? 모르긴 해도 공짜 돈이 최고라니까.”
“그렇긴 하지. 그보다 란스타드 쪽은 이제 큰일 나겠어. 여기서 이자를 주니, 기존에 금화 보관료를 내면서 금화를 맡겼던 사람들이 전부 다 이쪽으로 몰릴 거 아냐?”
벨의 말에 밥은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다들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세상 누가 금화 보관료를 내면서까지 자기 금화를 맡기겠어? 어차피 블랙라벨 유니온이나 리옹 길드나 다 거기서 거긴데. 난 차라리 잘됐다고 봐. 이제까지 이스마일 가문만 믿고 여기서 배짱 장사를 하던 놈들이니 당해도 싸지. 그냥 이참에 싸그리 망하거나 아니면 방코 시스템 좀 저렇게 바꿨으면 좋겠어.”
“나도 그 생각이야.”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록펠러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말았다.
블랙라벨 유니온에서 하지 않는 예금 이자를 준다고 하니,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전부 다 란스타드에 있는 방코에 찾아가 자신들의 금화를 찾고 록펠러 가게로 몰려든 것이다.
“정말 소문대로 이자를 주는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매달 1퍼센트씩 챙겨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것참 신기하군요. 어디선 금화 보관료를 못 뜯어서 안달이던데. 그 돈독 오른 란스타드 놈들. 누가 안 잡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저희는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록펠러는 마주한 손님을 향해 미소로 말을 이었다.
“저희는 항상 고객들의 편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자리를 비켜서자 그 뒤에 서 있던 다음 사람이 록펠러와 마주 보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왔소. 여기다 금화를 맡기면…….”
“네, 이자를 드리고 있습니다. 매달 1퍼센트 이자입니다.”
그가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의심의 목소리를 냈다.
“듣자 하니…… 여기 주인이 리옹 길드장이라고 하던데. 맞는 겁니까?”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록펠러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오직 미소만 보였다.
“네, 제가 그 길드장입니다. 신원은 확실하니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소문이 거짓이라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릴 이유가 없었다.
나름 수긍하던 그도 곧 가져온 금화를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고블린 달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록펠러는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금화를 받았고, 이를 지켜보던 리카르도는 나름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리옹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몸 밖에 없던 사람이 길드장이라는 신용을 내세우며 순식간에 엄청난 금화를 모은 것이다.
‘어차피 돌려줄 금화이긴 한데…….’
문제는 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이 가게에 맡겨 놓은 금화를 찾아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저런 식으로 돈을 모으고 그다음에 대출 사업을 키우면…….’
예금 이자 1퍼센트.
대출이자는 알 수 없지만 기존 6퍼센트보다 낮은 5퍼센트로 잡는다 치면, 그 차이만큼 돈을 벌게 된다.
‘흠…….’
록펠러가 했던 말처럼 남의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저 놀랍군.’
그날 하루도 예금 이자를 받으려는 손님들로 인해 북적거렸던 록펠러의 가게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조용해질 수 있었다.
이제 한산해진 가게 안에서.
록펠러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가게 정리를 하고 있던 리카르도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사람들 좀 상대했더니 많이 힘들군요. 어제만큼이나 바쁜 하루였습니다.”
조용히 가게 안을 정리하던 리카르도는 금고에 있을 많은 금화들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처음…… 록펠러 공께서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땐.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심부터 들었거든요.”
리카르도가 운을 떼자 씩 웃어 보이는 록펠러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게 좀 놀라웠습니다.”
휘어진 입가는 그대로.
록펠러는 자신을 대견스레 쳐다보고 있던 리카르도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사업할 돈이 아니라 믿음과 신용뿐입니다. 그들이야 뭘 알겠습니까? 어차피 저희 금고 안에 얼마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건데.”
그런 록펠러에게 리카르도가 다음 단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금고 안에 금화가 제법 쌓인 거 같은데, 대출 사업은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입니까?”
예금 이자를 생각해 본다면 금고 안에 있는 돈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돈을 움직여 수익을 창출해야만 록펠러의 사업 역시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
그 말에 록펠러는 가게 안에 있는 금고로 찾아가 예치된 금화의 양을 대략 훑어보았다.
그러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블랙라벨은 리옹과 다르게 대출 사업이 더 활황인 곳입니다. 그래서 어설픈 자금력으론 대출 사업을 절대 벌일 수 없죠. 만약 주제도 모르고 나섰다간 몇 번의 고액 대출로 금고가 텅 비게 될 테니까요.”
그 말에 리카르도는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블랙라벨은 선박 건조 비용이나, 신대륙 무역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즐비한 곳인지라 다른 곳보다 대출액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 어설픈 자금력을 가진 방코 업자가 쉽게 대출 사업을 벌일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 블랙라벨이었다.
“하지만 며칠간 노력 끝에 금고에 쌓인 금화들을 보니 당장 내일부터라도 대출 사업을 벌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일부터라도 사병들을 고용하고 정식으로 대출 사업을 벌여봐야겠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길드원들도 여기 일에 합류하게 될 텐데. 그때가 되면 정말 재밌겠군요. 저 혼자 있어 아직 란스타드의 방코 업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얼마 못 갈 겁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말라죽을 테니까요.”
참으로 무서운 자였다.
아무것도 없이 찾아와 벌써부터 란스타드의 방코 업자들을 위협할 정도까지 성장했으니까.
리카르도는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봤다.
‘정말 독보적인 자로다. 돈과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 * *
며칠 뒤.
의상점 주인 벨은 어떠한 소식을 듣고선 구두 가게 주인인 밥을 찾아갔다.
찾아간 밥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런 밥에게 찾아온 벨이 말을 붙였다.
“아니, 이 사람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자 받는다고 좋아 죽더니. 왜 죽을상이야?”
“후…… 말도 마. 지금 엄청나게 스트레스받고 있으니까.”
“무슨 스트레스? 설마 그 방코가 망하기라도 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아니, 그럼 이자를 안 주겠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거기 방코 일은 아니야.”
“그럼 뭐야? 뭔데 그러는 거야?”
다시 한숨을 내쉬던 밥은 엊그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며칠 전에 선술집에서 한잔하고 있었어. 자네도 알잖아? 요즘 내가 이자 받는 일로 엄청 들떠 있는 거.”
“당연히 알고 있지. 그날도 기분 좋아서 한턱 쐈잖아?”
“그래, 그땐 그랬었지. 진짜 멋도 모르고 그랬던 거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자 받는 일로 좋아라 하던 그에게 갑자기 나는 놈이 나타난 것이다.
“대체 뭔 일인데? 자세히 말해봐. 사람 궁금하잖아.”
“자네, 샘을 알고 있나?”
“샘? 자네 가게에서 일하다 쫓겨난 그 구두닦이?”
“그래, 구두닦이. 내가 기분 좋아라 술을 퍼마시고 있는데 놈이 옆자리에 붙는 거야. 그것도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옷을 입고 말이야.”
“뭐? 비싼 옷?”
“그래, 비싼 옷. 너무 비싸서 귀족들만 입는 그런 옷 있잖아. 실크로 돼서 화려한 거. 세상에 그놈이 그런 옷을 입고 나타났다니까?”
“아니, 대체 뭔 일인데 그래? 무슨 대박이라도 터진 거야?”
“맞아. 그 대박이 터진 모양이야.”
“설마 투자한 선박이 대박 쳐서 돌아온 거야?”
“그렇다니까? 무역선에 투자해서 대박 한 번 치면 최소 4배는 남겨 먹는 모양이야. 근데 그놈이 그보다 더 위험한 곳에 투자해서 세상에 8배씩 두 번이나 먹었나 봐.”
“대체 뭘 투자한 건데?”
“마석파우더인가? 아무튼 엄청나게 희귀한 건데 이게 신대륙에서 엄청나게 발견된 모양이야. 놈이 글쎄 거기다 영혼까지 끌어서 투자를 했다는 거야. 한 20달란트 정도.”
“20달란트면 그놈 전 재산이잖아?”
“그래, 그땐 그게 전 재산이었겠지. 그런데 그 투자가 잘 풀려서 8배씩 두 번이나 먹었다는 거야. 그리고 여러 군데 투자를 해서 지금은 몇천 달란트나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뭐? 몇천 달란트씩이나? 그게 가능해?”
“그러니 꼴랑 2달란트로 만족해야 하는 내 속이 안 뒤집히고 배기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