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15화 (115/181)

§115화 26. 블랙라벨 유니온(2)

블랙라벨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록펠러가 창밖으로 보이는 항구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수많은 함선들이 즐비한 저곳이 바로 블랙라벨 유니온의 본거지이자 제국 최대의 항구도시인 블랙라벨이었다.

‘배가 많긴 많네.’

항구가 가득 찰 정도로 정박되어 있는 배들은 대부분 무역을 위해 건조된 무역선들이었다.

‘한탕 제대로 해 먹으면 첫 항해에서 배를 건조시킨 비용을 뽑는 것도 모자라 돈방석에 앉는다고 하지.’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역선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긴 빌려줄 돈이 없어서 아주 난리라던데.’

그런 곳인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리옹 길드가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마일만 없었다면 진작 우리가 먹었겠지.’

블랙라벨 유니온이라 불리는 또 다른 방코 연합은 그들이 뒷배로 두고 있는 이스마일 가문의 힘만 믿고선 여태껏 그 어떤 경쟁자도 없이 블랙라벨의 이익을 저 혼자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애당초 게임이 안 될 거야. 구시대적인 방식으로는 이자를 전문적으로 이용하는 우리 방식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블랙라벨로 찾아간 록펠러는 미리 보내놨었던 리카르도와 다시 만나게 됐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카르도는 록펠러보다 며칠 일찍 도착하여 그들이 장사할 가게를 알아본 상태였다.

이스마일의 수장이 리옹 길드장을 위한 가게를 알아봤다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결정은 확실히 내린 모양이군.’

록펠러는 리카르도와 만난 직후 그가 어느 정도 결정을 내렸음을 알게 됐다.

제 손으로 가문의 돈줄을 끊을 생각이 없다면야 자신이 시킨 대로 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가게는 어디 쪽으로 알아보셨습니까?”

“기존에 있던 방코 업자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홀란트 쪽에 가게를 알아봤습니다.”

“홀란트요? 홀란트라면…….”

“항구와 꽤 가까운 곳입니다. 유동 인구가 특히나 많은 곳이니 자리는 썩 나쁘지 않으실 겁니다.”

블랙라벨의 사람들이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란스타드라 불리는 방코 거리였다.

이곳은 리옹의 게토 누오보와 비슷한 곳으로 수많은 방코 업자들이 활발하게 대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긴 서로 얼굴을 안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록펠러가 수긍한 듯 보이자 리카르도는 자신이 구한 가게로 록펠러를 안내해 주었다.

“여깁니다.”

록펠러는 마차에서 내려 리카르도가 구한 가게를 직접 살펴봤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위치였다.

가게를 다 살펴본 록펠러가 물었다.

“블랙라벨은 전부 이스마일 가문이 관여하고 있다던데. 그들의 허락은 구하신 겁니까?”

“구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암묵적인 승인이 아니었을까요?”

“암묵적인 승인이라…….”

“그리고 가게 용도를 물어보는 질문에 여기서 방코 장사를 하겠다고 하니, 대놓고 코웃음을 치더군요. 아마 장소가 달라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은 란스타드에서 장사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말을 마친 록펠러는 항구와 밀접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거리 위를 살펴보았다.

상인에서 선원, 그리고 일반 사람들까지.

리카르도의 말대로 유동인구가 제법 많은 지역이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영업하고 있는 가게를 보니 잡화점이나, 의상점, 구두수선집 등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에 사람은 많으니 장사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겠군요. 오히려 잘됐습니다. 저희가 죄인도 아닌데 굳이 방코 거리만 고집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록펠러의 말에 리카르도는 대답 없이 고개만 수그렸다.

“그럼 가게 간판을 올리고 장사를 시작해 보죠.”

그러자 리카르도가 우려를 표했다.

아직 준비도 안 된 것 같은데 대뜸 장사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아직 다른 길드원들이 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장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네, 그들이 오기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죠. 그리고 제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해야 그들도 마음 놓고 제 옆에서 장사를 하지 않겠습니까?”

리카르도는 록펠러가 타고 온 마차를 살펴봤다.

타고 온 마차도 한 대였고 리옹에서 가져온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여기서 방코 장사를 하시기엔…… 가져오신 자금이 너무 작으신 거 아닙니까?”

보통 돈 장사를 하려면 자본금이 아주 많아야 했다.

그래야 많은 돈을 빌려주며 장사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나름 신박하다면 신박한 것이었다.

“굳이 번거롭게 많이 가져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저희 같은 사람들이야 신용을 앞세워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인데요.”

그 말에 리카르도도 나름 느끼는 게 많았다.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한다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런 리카르도에게 록펠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은 길드장 직함만 믿고 한번 밀어붙여보죠. 정 돈이 딸린다면 곧 찾아올 길드원에게 빌리거나 아니면 리옹에서 가져와도 됩니다. 하지만 제 느낌에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거 같군요. 여긴 워낙 굴러다니는 돈이 많은 곳인지라 그 돈으로 장사하면 될 거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게 ‘뱅크 오브 로스메디치’라는 가게 간판이 올라가고 록펠러와 리카르도는 블랙라벨이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곳에서 방코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사람들은 잡화점, 의상점 등, 일상 가게만 있던 곳에 난데없이 돈놀이를 하는 방코 가게가 문을 열자 여기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거기다 가게 문을 연 사람이 리옹에서 제법 알아주는 길드장이라고 하자 그 소문은 삽시간에 홀란트 지역 전체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이봐, 그 얘기 들었어?”

홀란트에서 의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벨은 기이한 소문을 듣고선 근처에서 구두 가게를 하고 있던 밥에게 찾아가 들었던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 무슨 얘긴데 그리 호들갑을 떠는 거야.”

“그 있잖아. 란스타드 말고 여기서 문을 연 방코 가게.”

“아, 거기? 거긴 왜?”

“글쎄 거기다 돈을 맡기면 세상에 이자를 준다고 하나 봐.”

그동안 블랙라벨 유니온과 거래를 해오던 그들에게 있어 예금 이자란 것은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뭐? 이자를 준다고? 이자를 왜 줘. 본래 이자는 우리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우리가 돈을 맡기면 거기서 이자를 주는 모양이야. 우리가 돈을 빌려줬으니 거기에 이자를 주는 방식이래.”

난데없는 소리에 밥은 의심부터 했다.

“그거 사기 아니야? 무슨 이자를 준다는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자를 왜 줘.”

그가 이어 말했다.

“원래는 방코에다 금화를 맡기면 보관료를 받잖아. 이자는 안 준다고.”

“사기는 무슨! 거기서 누가 장사하고 있는지 얘기 못 들었어?”

벨의 물음에 밥은 들었던 소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얼핏 들어보니 무슨 길드장인가 그런다던데?”

“그래, 잘 알고 있네.”

“아니, 진짜 길드장이 맞는 거야? 난 웬 정신 나간 녀석이 여기다 방코 가게를 열길래 그냥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아니, 리옹 길드장이라잖아! 리옹 길드장 몰라?”

“아니, 알지. 그 사람을 왜 몰라. 예전에 한 번 보기까지 했는데.”

“지금 그 사람이 여기서 장사하고 있다니까?”

“진짜야? 근데 왜? 아니, 리옹 길드장이면 리옹에서 장사하면 그만이지 여긴 왜 온 거야?”

“나야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진짜 사기꾼 아냐?”

“아니, 진짜 길드장은 맞다니까. 이거 다 확인한 내용이야. 나 말고 진짜 여러 사람이 찾아간 모양이던데, 진짜 길드장이 맞다고 하나 봐.”

“진짜 리옹 길드장이라고?”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그는 곧장 소문의 방코 가게로 찾아가 가게 주인의 얼굴만 보고 곧바로 나왔다.

그러곤 자신을 따라온 의상점 주인 벨에게 다짜고짜 목청을 높였다.

“에이 이 사람아! 내가 길드장 얼굴을 아는데 저 사람 아니야. 이 사람들 다 사기 맞았네, 사기 맞았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헵토랑 크리스는 다 맞다고 했는데.”

“에이, 그건 헵토랑 크리스가 잘못 본 거겠지. 내가 아는 길드장은 저렇게 안 생겼어. 저런 새파란 애송이가 아니라고.”

“설마 자살한 이전 길드장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전 길드장이 자살했다고?”

“이 사람이! 설마 이전 길드장에 대해 말하는 거면 진작에 자살했어! 이미 뒤져서 이 세상에 없다고.”

“세상에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대체 언제?”

“정확히는 모르겠고, 자살한 지는 좀 된 거 같은데? 저 길드장이 워낙 일을 잘하니까 이전 길드장이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을 한 모양이야. 난 그렇게 들었거든.”

“그래? 근데 리옹 길드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렇게 새파란 녀석이 길드장이나 되고.”

“그래도 일은 아주 잘한다고 하나봐. 길드장이 바뀌고 나서 수입이 크게 늘었대.”

“뭔 재주가 있어서 그런 거야?”

“나야 모르지. 방코 일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

“허…….”

그러다 그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니, 저 사람이 진짜 길드장이면 대체 무슨 배짱으로 여기다 장사하는 거야? 여긴 블랙라벨 유니온에 속한 방코 업자가 아니면 아예 장사를 못 하잖아?”

“그래서 저기다 장사하는 거잖아. 란스타드엔 못 들어가니까.”

“블랙라벨 유니온과 대놓고 싸우자는 거야 뭐야?”

“그런 거겠지. 아니면 뭐 하러 길드장이나 되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장사를 하겠어.”

“허허…… 배짱이 너무 대단한 거 같은데?”

“그거야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돈을 맡기면 이자를 준다고 하나봐. 그래서 크리스는 저 길드장이 쫓겨나기 전에 이자라도 받아먹을 생각으로 돈을 맡긴 모양이야.”

“뭐어? 저기다 돈을 맡겼다고?”

“그래, 돈 맡기면 이자를 준다는데 굳이 안 맡길 이유가 없잖아? 솔직히 말해서 란스타드에 돈을 맡겨봤자 보관료밖에 안 내는데 어떤 놈이 란스타드에 돈을 맡기겠어. 다 여기다 맡기지.”

대화를 나누던 둘은 곧 록펠러가 바라는 대로 생각하게 됐다.

“하긴 길드장이면 신용은 확실하겠네. 여기서 쫓겨나도 맡긴 돈은 리옹 길드에서 챙겨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크리스가 대뜸 돈을 맡긴 거겠지. 어차피 맡긴 돈이야 어떻게든 찾을 수 있으니까.”

“하…… 그럼 자넨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고민 중이야. 어떻게 할지 자네와 의논 좀 해보려고 찾아온 거지.”

“세상에 이자를 준다라…… 이거 놓치기 너무 아까운데?”

“리옹에서는 여기와 다르게 전부 이자를 받는 모양이야. 아니지, 리옹 길드에 속한 방코에선 전부 다 이자를 준다고 하나 봐. 여기와 완전 달라.”

둘의 고민은 오래지 않았다.

구두 가게의 주인인 밥은 나름 결심이 섰는지 확인 차 다시 물었다.

“진짜 길드장 맞는 거지?”

“아니, 맞다니까.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겠어. 그리고 조만간 리옹 길드에 속한 방코 업자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인가 봐. 그런 소문이 아주 파다해.”

“그래? 흠…….”

“왜? 돈이라도 맡겨볼 생각이야?”

“아니, 길드장인 게 확실하다면 안 맡길 이유가 없잖아? 이자까지 주는 마당에 굳이 돈을 썩힐 이유가 없다고.”

“그거야…… 그렇지.”

“일단 조금이라도 맡겨봐야겠어. 나중에 이자를 주는지 안 주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고.”

그렇게 둘은 약간의 돈을 챙겨 곧장 록펠러의 가게로 찾아갔다.

다시 찾아간 그곳은 미리 와 있던 손님과 록펠러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찾아온 손님을 보니 둘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곳 홀란트에서 제법 크게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귀족이었으니까.

“나야 굳이 리옹까지 안 가서 좋긴 한데. 록펠러 공께선 너무 배짱 좋게 장사하시는 거 아닙니까? 세상이 이리 흉흉한데.”

두 가게 주인이 가져온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큰돈을 덜컥 맡기는 어느 손님이 록펠러에게 묻자, 록펠러는 그저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제국법 그 어디에도 저희가 여기서 장사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희가 여기서 장사를 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내 돈이야 그쪽 길드가 보장하는 거라 걱정은 안 되지만, 그래도 그쪽 걱정은 됩니다. 여긴 이스마일 가문의 관할이 아닙니까? 록펠러 공께서 이스마일 가문에 대해 모르진 않으실 테고.”

“프레릭 공께서 절 걱정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어 록펠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안 드십니까? 저희가 여기서 장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스마일 가문의 암묵적인 승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의외로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여 찾아온 그도 수긍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런 거라면야…….”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당분간 이곳에 머물 생각이니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절 찾아오시면 됩니다.”

“응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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