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26. 블랙라벨 유니온(2)
적진 한복판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말에 길드원 전체가 크게 술렁였다.
“록펠러 공께선 블랙라벨에 가서 방코 장사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재차 확인하는 물음에 록펠러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그러자 한 길드원이 의문을 표했다.
“그쪽 사람들이 굳이 기존에 거래하던 곳을 버리고 록펠러 공과 거래를 하겠습니까?”
록펠러는 자신 있는 투로 답해주었다.
“당연하죠. 블랙라벨 유니온보다 대출 이자를 낮춰서 돈을 빌려준다면 그들 입장에서 저희와 거래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쪽은 아직도 금화 보관료를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예금 이자는 없다고 하죠. 그러니 이스마일 가문만 가만히 있다 치면 블랙라벨 유니온에 속한 모든 방코 자금은 저희 쪽으로 몰릴 겁니다.”
이어 록펠러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된다면 블랙라벨에서 태평하게 장사하고 있던 방코 업자들은 전부 파리만 날리게 되겠죠. 그럼 저희의 승리입니다.”
“그래도 그쪽 손님들이 기존에 거래하던 곳과 의리를 끝까지 지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록펠러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돈 문제에 있어서 의리 따윈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그딴 의리. 제가 주는 이자에 전부 무너질 겁니다.”
회의장은 한동안 소란에 휩싸였다.
길드장의 제안에 저들끼리 의견을 나눈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
록펠러가 목소리를 냈다.
“반대 의견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조용히 거수하여 주십쇼.”
그때 한 길드원이 거수하자 록펠러가 그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반대 의견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록펠러 공께선 혼자만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닙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적진 한복판에서 장사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같이 갈 생각입니다.”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그곳만큼 대출 장사가 잘되는 곳도 없을 겁니다. 한탕 제대로 하실 거면 저와 함께 가시죠. 저 혼자 가는 것보단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스마일이 저희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땐 누군가 피를 볼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대해 책임지실 겁니까?”
발언권을 얻지 못한 어느 길드원이 묻자 록펠러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답해주었다.
“만약 이스마일 쪽에서 저희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움직인다 해도 그 첫 번째 타깃은 바로 제가 될 겁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께서는 오직 저만 보고 따라오셔도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 없으십니까?”
목숨이 무슨 여러 개라도 되는지.
배짱 좋게 말하는 길드장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하는 길드원들은 없었다.
“반대 의견은 없는 것 같군요. 그럼 절 따라 블랙라벨에 가실 분은 없으십니까? 이 자리서 거수하여 주십시오.”
그 말에 몇몇 길드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들은 돈은 있지만 마땅히 빌려줄 곳이 없어 평소에도 골머리를 앓던 이들이었다.
“더 없으십니까?”
다시 묻는 말에 주변 눈치를 보던 몇몇 길드원들이 조용히 거수를 하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나름 돈 욕심이 생긴 자들이었다.
그렇게 스물이 넘어가는 길드원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자 록펠러는 입가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저 정도면 나쁘진 않지.’
“좋습니다. 그럼 블랙라벨 유니온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서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으신 분들께서도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가 총칼을 쥐는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결국 방코의 싸움이라는 건 자금력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잘돼서 블랙라벨 유니온이 사라지거나 저희 쪽으로 흡수된다면. 저희 리옹 길드의 위상은 전보다 더 높아지게 될 겁니다. 어쩌면 테페즈나 싱클레어 가문처럼 무소불위의 세력으로 발돋움하여 제국 전체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릅니다.”
록펠러의 표정엔 대단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록펠러가 회의장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회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셋째 조슈아와 눈을 마주치게 됐다.
록펠러가 옅게 웃어 보이자 동생 조슈아도 따라 웃었고, 둘은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희의가 끝나자 록펠러는 자신을 찾아온 조슈아와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록펠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회의 전에 얼굴 좀 보려고 했더니.”
록펠러의 말에 조슈아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늦게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줬다.
“루시아가 호기심이 많잖아. 촌구석에서 벗어난다고 여기저기 막 들쑤시고 다니는데, 그거 챙겨주느라 오는 시간이 좀 지체됐어.”
“카터 아저씨는 같이 안 온 거야?”
“카터 아저씨는 안 오시겠대. 형이 알아서 잘한다고 관심이 별로 없으신가 봐.”
“그래? 하긴…… 그런데 루시아는 어딨는데? 같이 왔다면서?”
“밖에 있는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길드원이 아니라서 회의 때 참석은 못 하잖아.”
록펠러는 막둥이 루시아를 보기 위해 조슈아와 함께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해산하는 길드원들과 맞물려 회의장 밖은 매우 소란스러웠지만, 그런 와중에도 록펠러는 자신의 동생들이 타고 온 마차만은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었다.
“록펠러 오라버니!”
마차의 문이 열리며 전보다 더 성숙해진 루시아가 록펠러에게 달려와 안겼다.
“루시아! 진짜 많이 컸구나! 그사이 이렇게 컸어?”
이전과 다르게 많이 무거워진 막둥이를 보니 록펠러는 흐르는 세월이 빠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엄청 무거워졌는데?”
“어머! 그건 실례라구요!”
안았던 루시아를 놓아준 록펠러가 옆에서 웃고 있던 조슈아를 찾았다.
“그보다 몬테펠트로 영지는 어때? 영주님은 뭐 하시고?”
“영주님이야 그냥 있지. 근데 요즘 문제가 생겼어.”
“문제? 설마 금광석?”
“어, 그게 문제야. 영주님은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걸 원치 않으셔서 영지민 입단속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소문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렇겠지. 금광석이 나왔다는 건…… 거기다 예전엔 대륙에서 제일로 소문난 금광지대였으니까.”
아직 시기적으로 드워프와 전쟁할 때는 아니었다.
금맥전쟁은 왕관 전쟁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이었으니까.
그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루시아가 록펠러를 향해 말했다.
“록펠러 오라버니! 여긴 정말 크네요! 사람도 많구요. 저 록펠러 오라버니의 뜻대로 여기서 살고 싶어요!”
둘의 대화를 듣지 못한 루시아는 리옹이란 도시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제국 변방에 위치한 조그마한 영지에서 나름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한 도시로 왔으니 루시아가 보인 반응이야 당연했다.
그러자 조슈아가 볼멘소리를 냈다.
“나는 어떻게 하고 너까지 여기서 산다는 거야?”
“조슈아 오라버니는 맨날 잔소리잖아요! 전 여기가 더 좋아요. 사람도 많고 도시도 크고. 앞으로 여기서 록펠러 오라버니랑 같이 살래요.”
그런 루시아의 말에 록펠러가 웃어 보였다.
“그게 루시아한테도 좋을 거야. 루시아도 언젠간 시집을 가게 될 건데, 그런 촌구석에만 있을 순 없잖아?”
“하…… 이 오빠를 버리고 가네. 내가 너 어렸을 때부터 똥 기저귀 다 갈아줬는데.”
“그건 레오 오라버니구요!”
고향에 홀로 남겨진 셋째를 위해 록펠러가 말했다.
“조금만 참고 있어. 여기 일이 끝나면 그쪽 일도 신경 써야 하니까.”
록펠러가 조슈아 어깨 위에 손을 얹어주었다.
“그때까지 네가 잘 지켜줘. 거긴 영주님 땅도 아니고, 바로 우리 땅이잖아. 거기서 나온 금도 다 우리 거라고.”
“걱정하지 마. 그냥 해본 소리야.”
“나중에 가면 형이랑 자리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때까지만 지루하더라도 참고 있으면 돼.”
“알았어. 영지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영주님도 나름 잘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 * *
길드 회의가 끝나고 동생들과 함께 길드 본부로 돌아온 록펠러는 가게를 지키고 있던 리카르도에게 자신의 동생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제 동생들입니다. 이름은 조슈아와 루시아입니다.”
록펠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슈아와 루시아가 리카르도에게 인사를 건넸다.
“편지를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전 조슈아 로스메디치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루시아 로스메디치예요.”
느닷없는 동생들의 등장에 리카르도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그 기색을 지우고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전 토마스 마르텔입니다. 편히 토마스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록펠러는 리카르도의 정체에 대해선 두 동생에게 알리진 않았다.
혹시라도 두 동생이 실수한다면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이제 레오 오라버니 보러 가야겠다.”
“나도 같이 가. 레오는 잘 있는 거야?”
조슈아의 물음에 록펠러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루시아랑 같이 레오 좀 보고 올게.”
“오늘 저녁 식사는 잊지 말고. 신경 써서 준비했으니까.”
“알았어!”
그렇게 두 동생이 떠나가자 록펠러가 한숨을 돌리며 리카르도를 찾았다.
“오랜만에 동생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군요. 그보다 저번에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스마일 가문 말입니다.”
“간신히 연락은 됐습니다. 조만간 찾아온다고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여기 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그쪽과 어떻게 연락하신 겁니까? 그렇게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데는 아닐 텐데.”
그 물음에 리카르도는 적당히 둘러댔다.
“광고를 내니 그쪽 사람들이 알아서 연락을 주더군요.”
“그런가요? 흠…… 그쪽은 듣는 귀도 많다고 하던데. 저희 쪽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 말에 리카르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둘 중에 하나는 결국 버려야 하는 건가?’
가문의 돈줄이냐.
아니면 가문의 부활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리카르도는 이미 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쯤 되면 나도 반쯤 미친 거 같군.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곳에 배팅을 하게 되다니.’
“연락은 됐으니 그냥 기다리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들도 가만히 있진 않겠죠. 소문대로 듣는 귀가 많은 곳이니.”
그런 리카르도에게 록펠러는 회의 내용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래도 일정을 미룰 순 없습니다. 오늘부터 블랙라벨 유니온과 전면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눈가를 살며시 좁힌 리카르도는 입을 다문 채 록펠러의 다음 말을 들었다.
“조만간 블랙라벨 쪽으로 움직여 거기서 방코 장사를 할 생각입니다. 전쟁이죠.”
대단한 배짱이었다.
적진 한복판에서 대놓고 장사를 하겠다니.
그것도 이스마일 측과 만나기도 전에 말이다.
“이스마일 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겁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나름 확신을 가지고 답해주었다.
“어차피 그 결과야 정해져 있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이 다르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텐데요? 그들을 예측한다는 건…… 오만 같은 겁니다.”
그러자 록펠러가 진하게 웃어 보였다.
“제가 촉이 좋다고 했었죠? 그 촉이 말하고 있는데. 이스마일 쪽은 아마 가만히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냥 제 느낌이니 무시하셔도 됩니다. 말하신 대로 그쪽에서 다르게 나올 수도 있죠. 하지만 전 제 느낌을 믿습니다.”
“…….”
조용한 리카르도를 향해 록펠러가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조만간 블랙라벨에서 가게를 열어야 하니, 먼저 블랙라벨로 가셔서 빈 가게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