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9화 (109/181)

§109화 25. 라이얀 테페즈(3)

예상외의 답변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1황자가 두 눈을 깜빡이다 근처에 앉아 있던 자신의 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표정에 경악이 서리는 걸 보니 자신과 비슷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해 보였다.

한낱 토끼 따위가 감히 맹수 앞에서 당근이나 갉아먹는 그 가소로운 이빨을 세우다니.

너무 기가 막혀 1황자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간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대가 내 제안을 대놓고 거절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자 록펠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말을 받아쳐 주었다.

“네, 들은 그대로가 맞습니다. 제가 대놓고 거절해 드렸습니다.”

“하하…….”

어이가 없어 1황자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

그러는 것도 잠시.

기분이 상한 1황자의 표정에서 맹수의 포악함이 묻어나왔다.

“지금 미친 것이냐?”

상대가 무례하게 나왔기에 1황자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 감히!”

반면 1황자와 마찬가지로 잠시 어이를 상실했던 그의 누이는 감히 겁 없이 자신의 뜻을 밝힌 그가 마냥 신기해졌다.

저자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이런 상황 속에서도.

록펠러는 자신의 태도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야 무서울 게 없지.’

“지금 저보고 미쳤냐고 물으셨습니까?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전하께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게 그런 말을 하신 겁니까? 저희 리옹 길드는 오래 전부터 싱클레어 가문와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저희보고 대뜸 싱클레어 가문과 연을 끊으라니요.”

록펠러가 대놓고 실소를 터뜨려주었다.

“저야말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런 록펠러를 지그시 노려보던 1황자가 이내 피식 웃어 보였다.

‘미친 게 분명해.’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구나.”

그 말에 록펠러가 퉁명스럽게 반응을 보였다.

“무슨 상황이 파악이 말입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1황자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대와 길드 입장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1황자는 말하는 중간마다 어처구니없는 웃음 같은 걸 흘려주었다.

“그런데 이 도시 밖에 뭐가 있는지 아느냐?”

“도시 밖이라면 전하의 군대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잘도 알고 있구나. 그런데도 감히 내 앞에서 그 오만방자한 주둥아리를 털다니. 이게 미친 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냐?”

이에 질세라 록펠러가 바로 응수했다.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저희 뒤에 싱클레어 가문과 또 그들과 관계 깊은 3황자 전하가 계시는 걸 알면서도 제게 찾아와 그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신 겁니까?”

이제야 확신이 선 1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그는 미친 게 분명해 보였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군.”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상식을 벗어난 요구를 하시는 게 바로 전하십니다. 그런데도 제게 상식을 논하십니까?”

표정에 살기가 감도는 1황자가 근처에 앉아 있던 자신의 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냥 죽여?”

그러자 트리니티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나서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록펠러가 은근슬쩍 이한에게 받았던 펜던트를 챙기며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왕관 전쟁에서 사라질 녀석이니, 더 대담하게 맞서기로.

‘어디서 감히.’

“전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절 죽인다고요?”

뭐지? 저 녀석은 상황 파악이란 걸 못 하는 것인가?

할 말이 없어진 1황자가 록펠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그의 표정에선 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하늘 같으신 전하라지만 이건 너무나도 불쾌하군요. 저 역시 여러 이해관계가 있어 전하를 도와드리지 못한다고 말한 것인데, 그걸 가지고 절 죽이니 살리니 이 자리서 논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와 리옹 길드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까?”

그 모습을 보자 1황자는 더욱 어이를 상실했고, 그와 같이 있던 트리니티는 록펠러가 이리도 대범하게 나오는 배경이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알게 모르게 섞여 있었던 리카르도는 감히 황족 앞에서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제 말을 다하는 그가 참으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록펠러처럼 행동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

왕관 전쟁에서 누가 이길 줄 알고 감히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인가?

‘대단하다 못해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하군. 저런 자리에서 굽힘없이 저리 말할 수 있다는 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록펠러는 더 대담히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전하야말로 뭔가 대단히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서 진정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사람이 과연 누구라고 보십니까? 머잖아 왕관 전쟁에 참여해 황좌를 노리는 전하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그런 전하를 도와줄 수도, 아니면 방해할 수도 있는 저라고 보십니까?”

“건방지다 못해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1황자가 대뜸 차고 있던 칼자루에 손이 가려 하자, 이를 먼저 알아차린 록펠러가 이한에게 받았던 펜던트를 강하게 쥐었다.

‘그럴 줄 알았지. 천하의 라이얀 테페즈가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 있나.’

즉결 처형.

그것은 1황자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이야기였다.

1황자가 자신의 신분을 앞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를 그 자리에서 죽이는 일이었다.

“황족을 능멸한 죄는 가볍지 않다. 오직 죽음으로 갚을 수 있으니.”

말을 마친 황자가 대뜸 칼을 뽑으려 하자 그들 사이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한.

그가 록펠러의 부름을 받고 나타난 것이다.

“언제 부르나 했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불쑥 나타나자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두 황족이 놀랐다.

반면 그를 불러낸 록펠러는 은연중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이 소환시킨 이한을 향해 말했다.

“전하와 제 중간에 서지 마시고, 제가 있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찾아온 이한은 자리에 앉은 이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대충 알겠군. 왜 불렀는지.”

갑작스러운 이한의 등장에 1황자가 반응을 보였다.

“그대가…… 여긴 왜 온 것이냐?”

“왜 왔기는. 일이 있으니까 온 거지.”

초면이 아닌 모양인지 가볍게 대꾸한 이한이 록펠러 옆에 서자, 그를 알아본 트리니티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했고, 그사이 록펠러가 나섰다.

“전하께서 협박하실 줄 알았기에 미리 고용해 놨습니다. 설마 제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전하를 맞이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칼을 뽑으려다 이내 참아내는 1황자가 속으로 화를 삭였다.

이한……. 굉장히 골치 아픈 사내였다.

혁명군 토벌 당시, 혁명군에 고용됐던 그는 악몽 그 자체였다.

‘왜 저자가…….’

“미친 게 아니라 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그 말에 록펠러는 대놓고 웃어 보였다.

굳이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보니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사이 1황자의 시선이 이한에게 가 있었다.

“그대 덕분에 정말 많은 개고생을 했었지. 설마 이런 자리서 또 보게 될 줄이야.”

그러자 이한이 이죽이며 검지와 엄지를 비볐다.

“필요하면 돈만 줘. 나야 편을 가리지 않으니까.”

“…….”

그로 인해 혁명군 토벌에 있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체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부하들을 잃었는지 1황자는 치를 떨었다.

“부디 왕관 전쟁에선 보지 않았으면 하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다른 일로 바빠서 말이야. 왕관 전쟁은 너무 걱정하지 마. 관심도 없으니까.”

“바쁜 사람치고는 자주 보는 것 같은데?”

“이쪽 일은 좀 예외라서. 대가로 마석을 받기로 했거든.”

“마석이라…….”

잡을 수 있다면 이 자리서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함은 이전 혁명군 토벌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1황자는 굳이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한에게서 시선을 치운 1황자가 다시 록펠러에게 시선을 옮겼다.

“믿는 구석이 이한이란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이건 명심해야지.”

이어지는 말에는 나름 진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왕관 전쟁에서 내가 이긴다면, 그대와 길드가 설 자리는 아마 없어지겠지. 그때 가서 입장을 바꾼다고 해도 방코 장사는 그날로 못 하게 될 테니까.”

“또 말도 안 되게 협박하시는군요.”

이한을 굳이 신경 쓰지 않는 1황자는 오직 록펠러에게 집중했다.

“아니라고 보나? 내 뜻이 곧 제국의 뜻이 될 텐데.”

그러자 록펠러가 대놓고 웃어 보였다.

“전하께서는 생각이란 게 매우 짧으시군요.”

그 말에 1황자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칼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한이란 존재가 너무 거슬렸다.

“생각이 없는 건 오히려 그대 같은데?”

이한도 있겠다.

그리고 예정된 미래도 알고 있겠다.

더 이상 꺼릴 게 없어진 록펠러가 대담히 한쪽 다리를 꼬며 편히 앉더니, 이내 입가를 휘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설령 전하가 황좌에 오르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어차피 전쟁을 좋아하시니 돈이야 당연히 필요하실 거고. 그 돈은 분명 저희에게서 나올 테니까요.”

“흥, 그런다고 보나?”

“아니면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마련하실 생각입니까? 하늘에서 뽑아낼 겁니까? 아니면 땅에서 퍼낼 겁니까?”

“돈이야 뭐……. 알아서 마련하면 된다. 방법이야 많지. 세금을 올리면 되니까.”

“아, 세금을 올리시겠다? 새로 즉위하신 마당에 민심 흉흉해지게 세금을 올리신다라…….”

록펠러가 대놓고 비웃었다.

“어디 한번 해보십쇼. 저야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쟁광이라 불릴 정도로 전쟁을 아주 좋아하시는 전하께는 분명 문제가 될 겁니다. 세금 문제로 나라 안이 어지러운데, 맘 편히 바깥에서 싸울 수나 있겠습니까?”

뭐라 대꾸하지 못하는 1황자가 록펠러의 태도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떠나서 그대 행동이나 말투가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나?”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건방지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리 생각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희야 꿀릴 게 없으니까요.”

이어 꼰 다리를 풀고 상체를 앞으로 내민 록펠러가 황자와 똑바로 마주 보았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대답 없는 황자에게 록펠러는 다소 잔인한 말을 날려주었다.

“저희가 미는 쪽이 곧 차기 황제 폐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희야 꿀릴 게 없죠.”

한낱 방코 연합의 우두머리에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들끓는 화를 가까스로 참아내는 1황자가 록펠러를 노려보는 사이, 칼날여왕이라 불리는 그의 누이가 허공에서 뽑아낸 칼로 황족을 대놓고 능멸한 록펠러를 노렸다.

하지만.

허공에서 날아오던 그녀의 검은 그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한이 개입한 것이다.

“이봐, 민간인을 상대로 그렇게 힘을 쓰면 안 되지.”

이한이 보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반칙이라고.”

역시 이한이었다.

나름 만족해하는 록펠러가 1황자를 향해 말했다.

“참으로 안타깝군요. 애당초 전하께서는 저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절 협박하는 게 아니라.”

록펠러가 사람 좋은 미소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오히려 사정을 하셨어야죠. 그랬다면 제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렸을지 모릅니다. 어찌 됐건 전하께서는 왕관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매우 높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도 저희가 도와준다는 전제가 깔리는 게 순서겠지만 말입니다.”

1황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군까지 동원하는 나쁜 생각을 한 모양.

이를 눈치챈 록펠러가 그를 다스리기 위해 급히 당근을 내놓았다.

“하지만. 저도 전하와 그렇게 적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어찌 됐건 제가 말했던 건 전부 다 가정이고, 전하가 제게 경고하신 대로 될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요. 세상일을 한낱 피조물인 제가 어찌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군대까지 동원할 생각이었던 1황자는 마지막 인내심을 짜내어 그가 하는 마지막 말을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달콤해 보였다.

“그러니 전하의 바람대로 3황자는 지원하지 않겠습니다.”

뭐라고?

뜻밖의 말에 1황자와 그의 누이가 당황했다.

이제까지 그 문제로 말다툼을 했었는데, 그가 대뜸 3황자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대신 전하도 지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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