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8화 (108/181)

§108화 25. 라이얀 테페즈(2)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마석탱크의 개발자가 가격을 정할 수 없다니.

그리고 그 이유가 참으로 거슬렸다.

“지금 뭐라고 했나? 마석탱크의 지분을…… 그자에게 내줬다고?”

“네, 그렇습니다. 하여 제가 마석탱크를 개발한 것과는 별개로 마석탱크에 대한 권리는 현재 록펠러 공과 나눠 가진 상태입니다.”

“왜…….”

“솔직히 이 정도까지 마석탱크가 개선된 것도 록펠러 공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해서 저도 마석탱크의 권리가 일부 록펠러 공께 흘러간 것은 크게 불만이 없는 상태입니다.”

1황자의 눈치를 살살 보고 있던 프랑크 백작 역시 록펠러에게 미리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만약 1황자가 찾아온다면 마석탱크의 가격에 대해선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고 보니 록펠러 공께서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만약 전하께서 마석탱크에 관심을 보이신다면 저야 가격 협상이 서투를 것 같으니 방코에서 일하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가격을 협상을 해보겠다고요.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선 저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흥정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보단 방코에서 일하는 록펠러 공이 더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권리를 나눠가졌다면 흥정을 잘하는 쪽에서 가격을 정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였다.

하여 표정이 심히 좋지 않던 1황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록펠러라는 자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나기 전부터 날 이리도 흥분시키는 상대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군.’

“그 록펠러란 자는 지금 어딨나?”

어차피 만나볼 사람이었다.

프랑크 백작에게 미련을 버린 1황자가 이제 그 관심을 록펠러란 자에게 돌리자 평소 그를 잘 알고 있던 트리니티가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 다음에 만날 사람은 꽤나 곤혹을 치를 것만 같았다.

그의 불같은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테니까.

“록펠러 공께선 아마 게토 누오보에 계실 겁니다. 길드장이시니 아마도 길드 본부에 계시겠죠.”

귀족 계급으로 따지자면 록펠러의 위치가 프랑크 백작보다 낫긴 했으나, 프랑크 백작은 은연중에라도 그를 하대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에게 받는 도움이 크기도 했지만, 막상 돈줄을 쥐고 있다 보니 자신보다 그 위치가 낮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흥.”

바로 뒤돌아선 1황자가 공장 안을 떠나가자 같이 있던 트리니티 역시 그를 쫓아 공장 밖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민이었다는 그자는 대체 어떻게 길드장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관례적으로 리옹 길드의 수장은 오직 리옹 가문에서만 맡아왔었다.

교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길드의 입장과 리옹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리옹 가문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다른 귀족 가문 출신도 아니고 한낱 평민이 맡게 되었다.

그녀로선 당연히 의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 짚었을 수도 있겠는데?’

이곳 리옹에 오기 전 1황자는 그녀에게 대놓고 말했었다.

새 길드장이 평민이라 구워삶기 아주 쉬울 것 같다고.

그런데 오늘 이 자리까지 와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녀는 그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어려운 상대일지도 모르겠어.’

마석탱크 공장에서 나온 둘은 곧장 록펠러가 있다던 게토 누오보 지역으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트리니티가 마주 앉아 있던 1황자에게 말을 걸었다.

“본래 평민이었다고 했잖아.”

마차의 창밖을 보며 표정이 굳어 있던 1황자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시선을 주니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길드장 자리에 앉게 됐을까? 그 자린 본래 리옹 가문 출신만 앉는 자리라던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1황자의 표정은 여전히 안 좋았다.

만나러 가는 상대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1황자가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그냥 어쩌다 그 자리에 앉게 됐겠지.”

“그 자리. 내가 알기론 리옹 가문 출신만 앉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런 자리를 한낱 평민 출신이 차지하게 됐어. 무슨 느낌 같은 거 안 와?”

그러자 1황자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 봤자 뭐 있겠어?”

“아까 공장에서 나오면서 보좌관들에게 몇 가지 물어봤었어. 그런데 그자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아주 많더라?”

황자는 의미 없는 이야기라며 고개부터 저었다.

“의미 없다니까? 녀석은 한낱 방코 연합의 수장일 뿐이야. 그저 길드장일 뿐이라고. 그것도 평민 출신의.”

“난 좀 의문이었거든. 예전부터 리옹 가문만 앉을 수 있다던 자리를 평민이었던 자가 어떻게 앉을 수 있었을까?”

1황자는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몇 가지 재밌는 걸 알려주더라. 그자가 길드장이 되면서 길드에 속한 방코들의 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나 봐. 라이벌 관계에 있는 블랙라벨 유니온이 타격을 입을 정도로 일을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났던데? 그리고 베르키스 주교와의 관계도 엄청 좋다고 들었어. 방코 업자들 본래 교단 사람들하고 사이가 안 좋잖아. 같은 가문 사람 정도가 아니면 대개 싫어한다고 하던데 그 사람은 좀 예외래. 이상하지?”

“어차피 방코 업자들이야 교단 눈치를 봐야 하니 성금을 바치며 자연스레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지.”

“그런데 그걸 평민이 했다니까? 나는 지금 느낌이 안 좋아. 그냥 내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원하는 걸 못 얻어낼 것 같은데?”

그 말에 황자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너도 좀 이상한 거 같은데?”

1황자의 퉁명스러운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황자야. 그것도 한 개의 군단을 통솔하고 있는 군사령관이고. 그런 내가 그런 방코 업자를 상대로 원하는 걸 못 얻어낸다고?”

지금 리옹 밖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제국 병사들이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네가 더 이상한 거 같은데.”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솔직히 그렇잖아.”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그자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어차피 제 앞가림도 못 하는 한낱 고리대금업자일 뿐이야. 그런 자가 무슨 대단할 게 있다고.”

황자는 보란 듯이 고개를 저어주었다.

“그런 녀석이 날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어? 아니, 아무것도 못 해. 앞서 만났던 프랑크 백작처럼 날 향해 굽신거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 한다 이 말이야.”

가진 위치에다가 군대까지 거느리고 있는 자신의 오라버니를 보니 그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속에서 이는 불안한 느낌은 도저히 가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녀만의 감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둘은 록펠러가 있는 길드 본부 앞에 도착하게 됐다.

미리 찾아와 있던 리옹의 경비대가 안 그래도 좁은 골목에서 리옹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서 마차에서 내린 둘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록펠러와 그의 조수를 마주하게 됐다.

리카르도 이스마일.

과거 이스마일 가문이 이교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쇠락한 이후 가주인 그의 얼굴을 정확히 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천의 얼굴이란 이명답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거나 누군가를 죽이려고 할 때는 무조건 다른 얼굴로 위장했기에 록펠러와 함께 있던 그를 두 황족이 알아보는 일은 없었다.

설령 그들이 과거에 마주쳤더라도 리카르도의 얼굴은 지금과 다른 얼굴이었을 테니까.

“어서 오십시오, 전하. 찾아오신다고 하기에 미리 나와 있었습니다.”

록펠러와 그의 조수가 정중히 예를 보였음에도 1황자는 비웃음과 함께 곧장 길드 본부 안으로 향했다.

동시에 굽힌 허리를 세우는 록펠러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적안의 여인과 우연찮게 눈을 마주치게 됐다.

‘트리니티인가?’

칼날여왕.

주인공의 여러 히로인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제 오빠처럼 적발적안을 가졌으며, 역시나 비중 있던 인물만큼 외모 또한 당연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언젠간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이야.’

“트리니티 전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록펠러 로스메디치라고 합니다. 편히 록펠러라 불러주십시오.”

그녀는 소문과 다르게 매우 젊은 그를 보고선 조금 놀라워했다.

‘생각보다…… 어린데? 얘길 들었을 땐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이던 그녀가 이내 입을 꾹 닫고 말았다.

‘아니야. 어울려서 좋을 건 없겠지. 어차피 좋은 관계는 안 될 테니까.’

1황자가 록펠러를 안 좋게 봤기에 그녀도 1황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어찌 됐건 그녀는 1황자의 편이었으니까.

하여 그녀도 차가운 인상만 남긴 채 먼저 간 1황자를 쫓아 길드 본부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덩그러니 길드 본부 앞에 남겨진 록펠러가 옅게 웃어 보였다.

‘시작부터 아주 화려하군. 하긴 저 둘이 나를 살갑게 대할 이유는 없겠지. 애당초 협박하려고 찾아왔을 텐데.’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마석탱크의 가격은 오늘 이 자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보다 나한테 밉보이면 탱크 가격이 두세 배 정도 가볍게 뛸 수 있다는 걸 저들이 알기나 할까?’

아마 모르겠지.

피식 웃는 록펠러가 조수인 리카르도와 함께 길드 본부로 향하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카르도는 못 알아본 모양이군.’

천의 얼굴.

하지만 그 이명과 다르게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땐 위장하지 않은 본래의 얼굴이었다.

‘진짜 얼굴은 아무 위협도 없고, 편히 지낼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걱정이 전혀 없는 곳에서만 드러낸다고 하던데…… 위장한 얼굴이야 어찌 됐든 불편할 테니까.’

“저희도 들어가 보죠.”

자신의 가게이자 길드 본부로 들어선 록펠러는 자신의 조수와 함께 찾아온 두 황족을 극진히 대접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마련된 자리에서.

다소 거만하게 앉아 있던 1황자가 록펠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꼰 다리의 한쪽을 리듬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조수가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헛기침을 하는 록펠러가 운을 뗐다.

“큼! 이런 누추한 곳까지 두 전하께서 찾아오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부랴부랴 소식을 듣고 준비했으니 비록 준비한 건 없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작에 앞서.

비웃음을 머금은 1황자가 입을 열었다.

“이런 곳까지 우리가 찾아오진 않지. 여긴 지옥에나 떨어질 자들이 장사하는 곳이 아닌가?”

방코 업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하하, 그래서 제 마음 한곳은 항상 교회에 가 있습니다. 이 일이야 먹고 사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 항상 요한 님을 마음속에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죽으면 어디로 갈 것 같나? 지옥? 아니면 그보다 더한 지옥?”

록펠러가 대답 없이 웃어 보이자 1황자가 가볍게 끝낼 요량으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찾아온 이유야 대충 알겠지. 이전 길드장에게 대놓고 경고를 보냈었는데, 그걸 자네가 모를 리는 아마 없을 테고.”

1황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냥 쉽게 말하겠네. 나중에 지옥에 가든 말든, 그 장사를 계속 하고 싶다면 싱클레어 가문과 연을 끊게.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날 지지하게. 그럼 모든 게 좋을 걸세.”

말을 마친 1황자는 아주 느긋하게 돌아올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돌아올 답변이야 아주 뻔할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록펠러는 그가 예상한 답변 중, 가장 가능성이 낮았던 대답을 이 자리서 해주었다.

“전하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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