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25. 라이얀 테페즈(1)
황실을 상징하는 불사조 문양의 마차 안에서 적발적안의 사내가 불만 가득한 투로 중얼거렸다.
“리옹이라…….”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으며, 앉은 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정말로 재미없는 곳에 왔군.”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곳은 이런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피와 살점이 난무하고 병사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자신에게 전율마저 안겨다 주는 전쟁터였다.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는지.”
1황자가 투덜거리자 그와 마주 앉아 있던 적발의 여인이 그간의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는 거야. 본인이 원해서 온 거 아니었어?”
그 말에 1황자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원해서 왔다는 거야. 알잖아? 내가 이런 분위기를 정말 싫어하는 거.”
그의 시선이 자신을 환호하기 위해 찾아온 리옹 사람들에게 고정되었다.
전부 다 재미없는 자들이었다.
“차라리 여기가 반란군 소굴이 됐으면 좋겠군. 그럼 찾아온 김에 다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다시 재밌어질 텐데.”
트리니티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대꾸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그런 누이야 내버려 두고 1황자는 자신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석탱크라…….”
그의 기억 속에 자리한 마석탱크는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제국의 신병기였다.
마석을 소모하여 철갑으로 무장한 전차가 움직였으며, 또한 마석포의 위력이 정말 가공할 만했다.
문제는 아직 개발단계라 전장에서 맘껏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위력은 상당했었는데. 수많은 포문을 가진 전열함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석포의 위력이 상당해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그런 1황자의 말에 트리니티가 반응을 보였다.
“그거 고물이잖아.”
1황자와 다르게 트리니티 입장에서는 마석탱크는 그저 허울만 좋은 신병기였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던데. 그런 고물에 왜 관심을 갖는 거야?”
1황자는 대놓고 혀를 찼다.
“쯧쯧, 완성만 되면 제국의 최강 병기가 될 거다. 철갑으로 무장한 전차야.”
평화에 찌들어 흥미를 잃었던 1황자의 눈에서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 전차가 전장을 누빈다고 생각해 봐. 벌써부터 가슴이 뛰지 않아?”
마차 안이었지만, 1황자의 머릿속은 어느새 화약 냄새가 지독하게 피어오르는 전장으로 가 있었다.
“마석포 한 방에 적의 부대가 비명 속으로 사라져가. 그저 포격만 했을 뿐인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동까지 가능하단 말이야.”
“느리잖아.”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제대로 움직였을 땐 그렇게 느리지도 않았어.”
당시 1황자에게 보였던 마석탱크는 운이 좋았던 것인지 중간에 퍼지지도 않고 꽤나 의미 있는 거리를 이동했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던 그는 오늘 기필코 마석탱크의 개발자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듣자 하니 최근에 자금 문제로 프랑크 백작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던데.”
아마 록펠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세상 모두가 전쟁광이라 치켜세우는 어느 미치광이에 의해 만들어졌을 게 뻔했다.
“내가 도와준다면 분명 좋게 써먹을 수가 있을 거야.”
하지만 마석탱크가 워낙 고물인지라 트리니티는 말을 아꼈다.
그런 트리니티를 두고 1황자는 팔짱을 낀 채로 다시 눈을 감았다.
“도착하면 불러. 그때까지 어떻게든 참고 있을 테니까.”
이 환호에 찌든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에겐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1황자에게 시선을 주던 트리니티는 이내 뭔가 탐탁지 않았는지 저 혼자 고개를 저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둘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황자가 그토록 원하던 곳에 이미 도착한 뒤였다.
모두의 환대 속에서. 마차에서 내린 1황자가 소식을 듣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프랑크 백작과 만날 수 있었다.
“그대가 마석탱크의 개발자인가?”
록펠러가 찾아갔을 때와 다르게 프랑크 백작은 1황자 전하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귀족답게 옷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네, 전하. 프랑크 발렌입니다.”
“백작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마석탱크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황실로부터 백작의 지위를 받았습니다.”
“본래는 남작이었다고 들었는데.”
“네, 그것도 맞습니다.”
1황자 입장에선 상대가 남작이든, 백작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 휘하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변경백 정도가 아니라면 어차피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자신보다 아랫사람이었으니까.
“그보다 마석탱크를 보고 싶은데. 마석탱크의 개발은 잘 돼가고 있나?”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가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신형 탱크를 전하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신형이라고? 그래, 개선될 게 많긴 했지.”
1황자는 프랑크 백작의 안내를 받으며 생각보다 큰 마석탱크 공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마석탱크를 생산하는 공장의 규모가 아주 컸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자금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1황자는 자신이 들었던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의 이야기가 진행되자 의문을 품었다.
“그런 것치고는 공장은 아주 잘 돌아가고 있군. 일하는 인력도 상당히 많고 말이야.”
그런 1황자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공장 안을 훑던 트리니티가 말을 붙였다.
“여기 사정이 어려운 거 맞아? 내가 볼 땐 반대로 아주 좋아 보이는데.”
자금 사정이 안 좋았다면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애당초 제국군에서 마석탱크를 사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무슨 수익이 있어 공장 안이 이렇게 활발하게 돌아가겠는가?
그렇기에 1황자가 곧 의문을 표했다.
“들었던 것과 다른 걸 보니, 그사이 새로운 투자자가 생긴 모양이군.”
그 물음에 지체할 프랑크 백작이 아니었다.
“네, 뜻하지 않게 새 투자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물이라 불리며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는 마석탱크를 자신과 같은 혜안으로 보는 자가 있었다니.
1황자는 내심 놀라는 한편, 이런 곳에 대뜸 투자한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숨기지 말고 말해보게. 여기다 누가 투자했나?”
그저 신분만 백작일 뿐인 그가 황실의 일원을 상대로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있을까?
그는 숨길 것도 없이 바로 고하였다.
“록펠러 공께서 제게 투자해 주셨습니다.”
“록펠러 공?”
호칭에 공을 붙인다는 것은 자작 신분의 귀족을 뜻하고 있었다.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물론 제국 귀족이 한둘이 아닌지라 자신이 모를 수도 있겠지만, 1황자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다.
“좀 많이 낯선 것 같은데. 그자의 출신 가문이 어딘가?”
“로스메디치입니다.”
“로스메디치?”
1황자가 바로 표정을 구겼다.
정말 처음 듣는 귀족 가문이었다.
그자의 이름이야 처음 들을 순 있겠지만, 제국에 속한 귀족 가문을 황실 사람인 자신이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정말 처음 듣는데. 넌 들어본 적 있어?”
1황자가 자신의 누이에게 시선을 주며 묻자 그녀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로스메디치? 아니, 나도 처음 듣는데.”
그러다 우연인지 그녀는 이후 만나게 될 길드장을 떠올리게 됐다.
‘잠깐. 록펠러 로스메디치면 바로 그 사람이잖아?’
“아, 이번에 길드장이 됐다는 그 사람 아닌가? 그 평민 출신의 길드장 있잖아. 우리가 이다음에 만날 사람.”
누이의 말을 듣고 1황자의 표정이 빠르게 썩어들어갔다.
평민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귀족 자리를 꿰찼으면서,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같은 혜안으로 마석탱크에 투자를 했다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군.’
“누군가 했더니 이번에 평민 출신으로 길드장이 됐다던 그자였나?”
구긴 표정은 그대로.
1황자는 필터 없이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평민 주제에 너무 나대는군.”
“이제 평민은 아니지 않아?”
“그래도 근본은 평민이다. 아직 우리와 섞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안 그런가, 프랑크 백작?”
프랑크 백작은 1황자의 기세에 눌려 그저 굽실거릴 뿐이었다.
“네, 전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그럼에도 1황자는 제 안에 있는 더러운 기분이 쉽게 씻기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뭔가 기분이 계속 더러운데…… 왜 기분이 더러운 거지?’
마석탱크에 대한 투자를 엄한 녀석에게 먼저 뺏겼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일까?
아니면 그자의 출신 성분에 대한 반감이었을까?
어찌 됐건 1황자는 좋지 못한 표정으로 프랑크 백작의 안내를 받으며 이번에 새로 개발됐다던 마석탱크를 보게 됐다.
‘이번 건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군. 느낌이지만 제대로 움직일 거 같아.’
웅장한 크기의 마석탱크는 이전에 만들어졌던 마석탱크와 달리 굉음까지 뿜어내며 언제라도 달려갈 기세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마석탱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공장 안을 가득 메웠을 때, 재빠르게 말을 꺼내는 프랑크 백작이 있었다.
“몇 가지만 더 손본다면 이전에 만들어진 마석탱크와 달리 그 어떤 전장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먼저 관심을 보인 건 1황자가 아닌 그의 누이였다.
“제대로 움직이긴 해?”
“물론입니다! 이번 건 오직 기동력만 생각하고 개선시켰습니다. 절대 이전에 봤던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저기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요. 저도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곧이어 프랑크 백작이 지시를 내리자 그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던 탱크 운전수가 곧바로 마석탱크를 움직여보았다.
확실히 이전의 마석탱크보다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또한 튼튼해 보였다.
“잘 움직이는데?”
유심히 지켜보던 그녀의 평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프랑크 백작이 나섰다.
“보십쇼! 이제 움직이는 걸로는 제 아이를 깎아내릴 순 없습니다.”
소문과 다르게 잘 움직이는 마석탱크를 두고 1황자는 제법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군.’
마석탱크가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포격이라면 적의 병력 따윈 한순간에 지워버릴 수가 있었다.
“언제부터 군에 납품할 수 있겠나?”
“전하께서 오늘 주문만 넣어주신다면 곧바로 생산이 가능합니다.”
“포격은 이전의 마석탱크와 동일하나?”
“네,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정확도가 더 상승했습니다.”
만족감에 젖은 1황자가 잠시 몸을 돌려 넓은 공장 안을 훑어보았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제 일만 기다리는 일꾼들이 보였다.
‘여러 명이 한 대를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군.’
“저들은 각자 맡은 분야가 있나?”
그 물음에 프랑크 백작이 번개같이 답해주었다.
“네, 저것 역시 록펠러 공이 제안했던 것인데. 저런 식으로 일을 분업화시키니 이전보다 생산 능력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마음에 드는 그 끝에는 항상 록펠러란 자가 있었다.
1황자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감춘 채 프랑크 백작을 향해 말했다.
“추가적으로 투자받을 생각은 없나?”
“투자요? 저흰 이제 투자가 아니라 주문을 받아야 합니다. 이미 생산 능력을 갖췄고, 필요한 건 전하의 주문뿐입니다.”
“그래?”
뭔가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마석탱크가 거의 완성되어 양산단계라고 하니 1황자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훌륭하군. 자네가 제국을 위해 아주 큰 일을 해주었어.”
“아닙니다 전하.”
“그래서 마석탱크의 가격은 어떻게 정했나? 제국을 위한 일이니 가격은 나름 합리적이었으면 좋겠는데.”
드디어 첫 주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게……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록펠러 공과 상의해 볼 문제라서요.”
“그는 단순히 돈만 지원해 준 투자자일 뿐인데, 자네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겠나?”
“그게…… 단순히 투자만 한 게 아니라 제게 마석탱크에 대한 지분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래서 마석탱크와 관련된 일은 저 혼자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