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5화 (105/181)

§105화 23. 마석탱크(7)

이런 당돌한 일반인을 보았나.

이한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에 자신을 찾는 광고지를 붙이더니 찾아온 자신에게 대뜸 제안이란 걸 했다.

그것도 아주 ‘건방지게’ 말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정상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한은 지금까지 제멋대로 살아왔고, 그 방식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무한서고라 불리는 무간지옥에서 탈출할 때부터 제멋대로 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상태였으니까.

“싫다면?”

“싫다고요?”

제멋대로인 주인공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에 대해 록펠러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제발 쉽게 쉽게 가자 이 친구야.’

“싫다라…….”

이한이 얄밉게 웃어 보였다.

“그보다 이건 어때? 보아하니 마석도 많이 가진 것 같은데. 내가 당신을 협박해서 그걸 그냥 가져가도 되잖아?”

제멋대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싫어하는 독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주인공은 그들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는 대리만족의 화신이었으니까.

물론 그 점은 록펠러도 마찬가지였다.

‘읽을 때야 좋았는데 막상 불러서 뭔가를 거래하자고 하니 좀 뭐 같은 사람이긴 하네.’

소설 속 여러 등장인물들이 주인공과 마주하며 느꼈던 기분들은 대부분 어땠을까?

제멋대로인 놈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속으로 울분을 삭였을 게 분명했다.

‘다 나 같은 기분이었겠지.’

“크흠!”

이한이란 자가 싫더라도 어떻게든 그를 구워삶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흘러갈 테니까.

“당신 입장에선 그런 방법도 있겠군요.”

이한은 아주 자연스럽게 검은 피가 묻어 있는 작은 칼을 꺼내 들었다.

“당신 말이야. 여기에 묻어 있는 피가 뭔지 알아?”

록펠러가 시선을 내려 그가 꺼낸 작은 칼을 쳐다보았다.

칼날에 말라붙은 게 검은 빛을 띠고 있었으나, 그게 무엇인지 자신이 어찌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게 뭡니까?”

“아라크네의 피야. 사람들은 대부분 이 몬스터의 독니에만 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야.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 거미의 피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죽게 되지. 한번 생각해 봐. 이 피에 중독되면 얼마나 버틸 거 같아?”

주인공, 아니, 깡패 비슷한 녀석이 은근히 자신을 겁주고 있었다.

피식 웃어 보이는 록펠러가 내색하지 않은 듯 대꾸했다.

“절 협박해서 마석을 가져간다라……. 쉽게 갈 길을 왜 자꾸 돌아가십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돌아간다고? 내가 볼 땐 이게 지름길인데?”

“지름길이요? 그럼 제가 소설 한번 써보죠.”

“소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이한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 한번 지껄여봐. 들어는 줄 테니.”

역시 주인공.

말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우선 절 위협하든, 아니면 고문을 하든. 마석 행방은 알 길이 없을 겁니다. 왜냐? 저도 마석을 조수를 통해 주문했지 아직 제 수중에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다 홧김에 절 죽인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마석을 얻기는커녕 절 죽였다는 죗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당신을 죽인 걸 누가 안다고.”

“그야 절 죽일 사람은 방금 전 제 조수를 따돌리고 찾아온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아니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나 말고 다른 녀석이 처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 말에 록펠러는 웃으며 고개부터 저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네, 불가능합니다. 왜냐고요? 방금 전 당신이 따돌린 사람이 누군지나 아십니까?”

그 말에 이한이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방금 전 따돌린 녀석은 자신이 여기까지 들어오기 전에 여러 수를 생각해 봤을 정도로 아주 성가신 녀석이었다.

“몰라. 하지만 보통내기는 아니던데?”

“맞습니다. 보통내기는 아니죠. 왜냐? 당신이 말한 암살 분야에서 거의 탑급 실력을 가진 자니까요.”

그 말을 듣고서 이한이 웃었다.

“탑급 실력? 이스마일의 가주라도 되나?”

“그 물음에 대해선 저도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저도 확실히 아는 건 아니라서. 하지만 비슷한 정도는 될 겁니다. 이건 제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잘 알 겁니다. 적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저보다 당신이 잘 알 테니까요.”

“흥.”

“그리고 당신은 그런 자를 대놓고 따돌렸는데, 그자가 과연 엉뚱한 녀석이 절 죽였다고 판단하겠습니까? 적어도 자신을 따돌릴 실력을 가진 녀석이 절 죽였다고 판단하겠죠. 그럼 후보는 딱 하나.”

“…….”

“소문의 당신밖에 없는 겁니다. 거기다 당신을 찾는 광고는 제가 낸 상태고요.”

말을 마친 록펠러가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소설은 이렇게 되는데, 이런데도 절 죽이실 겁니까?”

어차피 록펠러는 이한이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란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

제멋대로 행동하는 주인공을 독자들이 원하긴 했어도,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광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성격을 이한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피식 웃는 이한이 들이밀었던 칼을 치워내며 록펠러를 향해 말했다.

“그럴싸하군. 내가 볼 땐 별로 거짓말하는 것 같지가 않아.”

이한은 록펠러를 흥미롭게 쳐다보며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내가 말이야.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말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가 있거든?”

상대의 거짓말을 판가름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존재할까?

물론 일반인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것은 록펠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럼 전 합격인 겁니까?”

여전히 웃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위협도 안 되는 상대에게 경계심을 드러낼 필요도 없어서 이한 역시 마주 보며 웃어주었다.

“일단 합격이라 해주지.”

“후~ 합격이라. 목숨을 건진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군요.”

말을 마치매.

가게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한에게 속아 거리 밖으로 나갔던 리카르도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온 그의 조수를 생각하며 이한의 눈매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확실히 성가신 놈이야.’

“당신 조수가 눈치 빠르게 돌아온 모양이군.”

가게로 돌아온 리카르도는 재빠르게 2층으로 올라와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둘을 보게 됐다.

‘역시 아래서 본 건 가짜였나? 하마터면 속을 뻔했군.’

둘에게 아직 정체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여차하면 이한과 싸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빠르게 나서는 록펠러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분께서 좀 무례하게 찾아오시긴 했어도, 제가 찾던 그분이십니다. 우선 차를 대접하고 싶은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한을 노려보던 리카르도가 알았다는 듯이 1층으로 내려갔고, 그런 리카르도를 알게 모르게 경계하던 이한이 록펠러에게 한마디 하기 위해 쳐다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록펠러가 소리 없이 제 입술 위에 검지를 세운 것이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가 아니었나?’

조수의 정체를 대강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고 있는 길드장.

이한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한낱 일반인에 불과한 길드장이 암살자를 조수로 두고 있다니.

그것도 다 알고서 말이다.

“당신. 참 피곤하게 사는군.”

이한이 던진 말에 록펠러는 세웠던 검지를 치워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자리에 있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한은 처음으로 록펠러란 사내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는 사람이라 느낀 것이다.

“재밌는 사람이군. 난 이한이다. 그쪽은 이름이 뭐지?”

“전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로스메디치?”

“미리 말씀드리지만 평민은 아닙니다. 오늘부로 귀족이 됐거든요.”

“아……. 귀족.”

방코 연합의 길드장이 귀족이란 사실에 별로 놀라울 건 없었다.

하여 대충 넘기는 이한이 다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보다 나한테 제안할 내용이 뭐라고 했지? 마석을 챙겨줄 테니 보호 좀 해달라고?”

그 말에 록펠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그렇게 됩니다.”

“이유는?”

“머잖아 왕관 전쟁이 발발하게 될 겁니다. 이건 알고 계시겠죠?”

이한은 리카르도 이스마일과 친하진 않았지만, 2황자인 크리스찬 이스마일과는 제법 아는 사이였다.

그런 이유로 곧 다가올 왕관 전쟁에 대해선 전혀 무지하지 않았다.

“대충 알고 있지. 거기서 살아남는 단 한 명만 황좌에 오른다면서?”

“네, 맞습니다. 그 왕관 전쟁으로 인해 1황자 전하는 3황자 전하를 도우려는 저희를 견제하기 위해 이곳 리옹에 찾아올 예정입니다. 아마 혼자만 오시진 않으시겠죠. 소문의 1황자 전하야 항상 군대를 끌고 다니시니.”

“그래서?”

“1황자 전하께서 절 압박할 겁니다. 3황자 전하를 돕지 말라고 하면서요.”

왕관 전쟁.

사실 이한에겐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황제가 될 것도 아닌데 왜 관심을 두겠는가?

“귀찮은 일에 휘말린 모양이군.”

“네, 저도 원치 않지만. 소문의 1황자 전하께서 아주 대단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테페즈 가문의 피를 받아 아주 불같다고 하더군요.”

“그냥 수그리지 그래. 그럼 세상만사가 편할 거 아니야?”

“그럼 저희 리옹 길드와 인연이 깊은 싱클레어 가문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여기서 이한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보진 않기로 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더 깊게 들어가 봤자 내가 알 필요도 없고, 나야 마석만 챙기면 그만이니.”

“저도 당신께 크게 바라는 건 없습니다. 곧 찾아오실 1황자 전하께서 무력으로 절 찍어 누르려고 한다면 당신이 나서서 그걸 막아주시면 됩니다.”

“어째 하는 말이 평생 나보고 지켜달라는 소리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1황자 전하가 리옹에 찾아오는 그때만 절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래?”

“이후 일이야 어차피 저도 싱클레어 가문도 있고, 가진 돈도 많으니 어찌어찌 잘 헤쳐나갈 수 있으니까요. 다만 1황자 전하가 찾아오는 그때는 위험합니다. 1황자 전하와 관련된 소문이 소문인지라 저도 몸을 사려야 하거든요.”

“좋아.”

이해를 한 모양인지 이한이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록펠러가 오히려 긴장을 했을 때.

역시나 우려했던 말이 이한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다 좋다 이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하나 잘못 짚은 게 있어. 1황자든, 아니면 황제든, 그것도 아니면 세상 모두가 당신을 노려도 난 당신을 지켜낼 수가 있어. 이런 건 내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되는 줄 알아?”

“뭐가 문제가 되는 겁니까?”

“내 몸값이 말이야. 아주 아주 비싸거든. 내가 당신을 지켜주는 거야 정말 일도 아니지. 하지만 그 대가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 될 거다.”

어째 말하는 게 불안했다.

“초당 마석 1개.”

기어코 저 멍멍이 소리를 할 줄이야.

록펠러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초당 마석 1개라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초당 마석 1개는 록펠러에게도 무리인 몸값이었다.

‘꼴에 주인공이라고 가지가지 하는군.’

“초당 마석 1개라……. 이거 몸값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드래곤 유지비도 그것보단 쌀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이한은 고개부터 저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이 전설 속 드래곤의 코털을 뽑든, 아니면 황제의 목을 치든. 뭘 해도 살 수가 있어. 날 고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 대신 그 대가는 방금 말한 그대로야. 나는 그렇게 싸구려 인력이 아니거든.”

왜 주인공이겠는가?

저런 모습 때문에 주인공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주인공의 배짱에 주눅 들 자신이 아니었다.

배짱은 자신도 부릴 수 있었으니까.

“초당 마석 1개면 차라리 고블린방크에서 드래곤을 빌리겠습니다. 돈만 지불하면 그쪽에서 안 빌려줄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게 더 싸게 먹힐 것 같군요.”

어쭈 이놈 보소.

자기 대신 드래곤을 빌리겠다는 말에 이한이 피식 웃어 보였다.

‘드래곤을 빌려?’

잠시간 생각해 보던 이한이 앞서 했던 요구가 무리였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양보라는 걸 해주었다.

“좋아. 분당 1개로 하지. 더 이상 양보는 안 돼. 그리고 한 가지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자신감에 찬 이한의 말이 이어졌다.

“드래곤보다 내가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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