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2화 (102/181)

§102화 23. 마석탱크(5)

“블러드 골드라면…….”

“피로 적셔진 금이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어느 작은 영지에 금맥이 발견됐어. 그때 당시만 해도 그쪽 영주는 아주 좋아라 했지. 자기 땅에서 금이 나왔으니 마냥 좋아했던 거야.”

영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 영주는 몰랐던 게지. 처음엔 좋았어. 당장 영지의 재정 문제가 나아졌고, 금맥이 발견됐다는 것만으로도 여기저기서 금화를 대출받기가 쉬워졌거든. 하지만 그 소문이 사방팔방으로 퍼지자 별 이상한 놈까지 찾아와 영지에서 나는 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야.”

오버시어는 이어질 이야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블러드 골드라면 저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습니다. 그게 그런 이름이었군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걸세. 왜 블러드란 이름이 붙었겠는가?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영주가 이어 말했다.

“그 영지에 때아닌 피바람이 불었어. 느닷없이 그 영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놈들이 나타났거든. 예전에 그 땅이 금싸라기 땅이 아니었을 땐 관심조차 안 주던 놈들이 거기서 금맥이 발견됐다고 하니까 갑자기 나타나 내 땅의 권리를 찾겠다고 난리를 친 거지.”

영주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도를 넘어선 부는 오히려 재앙이라네.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차라리 내주는 게 좋아.”

그 말에 오버시어가 의문을 표했다.

“그냥 내준다고요?”

“자네도 그 이야기는 알고 있지 않나? 도적 떼를 만났을 때.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걸 내주고 바로 도망치는 게 낫다고.”

헛기침과 함께 상체를 바짝 세운 오버시어가 허리춤에 차 있던 검벨트를 만지작거렸다.

“저라면 맞서 싸우겠습니다.”

“그야 자네는 그 정도 실력이 되니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칼도 못 쓰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나?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살 길을 모색하겠나, 아니면 가진 걸 뺏기지 않기 위해 성난 도적 떼와 겁 없이 싸우겠나?”

“그런 가정이라면…… 오히려 내주고 도망치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도적 떼도 보통이 아닐 테니.”

영주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괜히 까불었다간 제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할 수가 있어.”

대격변 이후 계속 발견되는 금광석에 대해선 영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하는 말은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여기에 금맥이 살아 있든 없든, 이 일이 외부로 알려져 봤자 좋을 게 하나 없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영지민 입단속 좀 하게.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야. 그리고 그 잘난 로스메디치 집안에 여기 일 좀 알리고. 길드장 정도가 됐으면 여기에 용병부대를 주둔시키는 것도 쉽겠지. 어차피 여기 일이야 나만 신경 쓸 건 아니니까.”

오버시어가 우려를 표했다.

“입단속이야 하겠지만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겁니다. 동네 아이들까지 금광석을 줍겠다고 난리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단속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이 땅의 자랑스러운 주인이신 그들이 제대로 대처하기 전까진 우리가 움직여 줘야지.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급여나 받는 우리가 뭘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잖나?”

“일단 최대한 조치를 취해보겠습니다.”

영주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딱 질색이었다.

“우리에게 그만한 힘이 있었다면 여기 일도 당연히 좋은 일이 됐겠지. 하지만 힘이 없어. 뭘 가졌든 그것을 지킬 힘이.”

당장 여기 일에 눈독 들일 하이에나들이야 제국에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자들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은 본래 주인이 드워프였어. 다른 영주들이야 예전과 다르게 황실 눈치가 보이니 쉽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드워프들은 아니야. 나는 솔직히 그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다른 건 몰라도 황금하고 맥주엔 아주 환장을 하는 종족이니까.”

드워프 이야기가 나오자 오버시어도 말을 붙였다.

“그 말엔 공감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드워프가 황금하고 맥주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잖습니까? 아마 그들이 이 땅을 원한다면…….”

이어질 말은 영주가 대신해 주었다.

“전쟁까지 불사하겠지.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황금이란 문제가 끼게 되면 그들도 달라질 테니까.”

“황실에서 도와줄까요?”

그 물음에 있어서는 영주는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예전에 토템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여기 일이야 거들떠도 안 봤지만, 여기서 나오는 황금 때문에 드워프와 트러블이 생긴다면 황실에선 어떻게든 도와줄 걸세.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하긴 금이 나오는데 황실에서 마냥 지켜보진 않겠죠.”

“금싸라기 땅을 왜 버리나? 우리야 힘이 없지만 황실은 아니지.”

대화를 마친 영주가 오버시어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무튼 로스메디치 집안에 알리게. 나와 계속 이야기를 해봤자 어차피 돈이란 건 그쪽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나저나 드워프와 전쟁을 하게 된다면 엄청난 돈이 들겠군요.”

그 말에 영주가 피식 웃었다.

“그걸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없잖나? 어차피 돈 문제야 그들이 다 책임진다고 했으니까.”

그 말에 오버시어는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게 영주와 대화를 마친 오버시어는 해당 소식을 영지 안에 있던 조슈아에게 알려주었고, 그 소식은 곧바로 록펠러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가게에서 일을 보고 있던 록펠러는 자신에게 온 두 통의 편지를 확인하게 됐다.

하나는 영주가 보냈으며 또 다른 편지는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동생이 보낸 편지였다.

두 편지 모두 길드장이 된 자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최근에 발견된 금광석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영주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피식 웃고 있던 록펠러에게 조수인 리카르도가 찾아와 말을 붙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가 고개를 들어 리카르도를 쳐다보았다.

“좋은 일까지는 아니고, 뭐랄까…… 그냥 웃기다고 할까?”

“누가 보낸 겁니까?”

“몬테펠트로 영주가 보낸 겁니다. 길드장이 된 걸 축하한다고 적혀 있군요.”

몬테펠트로 영지와 관련된 일은 리카르도 역시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반쪽짜리로 만든 장본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낼 정도면 사이가 영 나쁘진 않은가 봅니다.”

그 말에 록펠러가 옅게 웃었다.

“그래도 나름 관계를 맺고 있어서. 제 동생이 그쪽 딸과 결혼을 했거든요.”

“결혼이라…….”

“저야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둘째가 워낙 그 여자를 좋아해서. 그리고 따져보니 저한테도 그게 이득일 것 같더군요.”

소문에 대해 대충 알고 있던 리카르도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잘만 하면 그쪽 영주가 되셨을 텐데, 그건 왜 마다하신 겁니까? 소문이야 대충 들었습니다. 영주를 빚더미에 앉히고 영지의 권리를 가져오셨다지요?”

그 물음에 록펠러는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그럴 뻔했었죠. 아마 제가 원했다면 그쪽 영주까지 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이야 제가 바라는 일은 아니라서.”

“영주라면 지배 계급인데…… 그걸 마다하신 겁니까?”

“사실 제가 그 자리를 원했어도 이렇게 되는 게 아마 최선이었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황실에서 평민이었던 자를 영주 자리에 앉히진 않겠죠.”

그 말에 있어서 리카르도는 부정보단 긍정의 느낌이었다.

‘하긴.’

“그럼 황실에서 반대할 걸 아셨기에 그 자리를 포기하신 겁니까?”

록펠러는 살며시 고개를 주억였다.

“일단은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어차피 영주가 되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서. 그래서 그냥 하던 사람에게 내주고 대신 그 고삐를 잡기로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돈줄을 쥐고 있죠. 영지의 재정은 전부 저희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닌 조슈아가 관리하고 있겠군요.”

돈줄로 한 영지의 지배자를 쥐락펴락하다니.

리카르도는 나름 느끼는 게 있었다.

‘힘이 아니라 돈으로 영주를 굴복시킨 건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군.’

록펠러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이건 좀 문제네요.”

리카르도가 관심을 보이자 록펠러는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이 편지를 찾아 쥐도 새도 모르게 읽어보겠지. 그럴 바엔 속 시원하게 밝히고 차라리 저자의 신뢰를 얻는 게 나아.’

상대는 암살명가의 가주.

마음만 먹으면 황제가 전날 침소에서 한 이야기까지 알 수 있는 자였다.

“최근에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다량의 금광석이 발견됐다고 하더군요.”

금에 대한 이야기.

리카르도 역시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 소문이야 듣긴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캐지도 않은 금광석이 대격변 이후 흘러나올 정도면 그 땅이 아직 죽진 않은 모양입니다.”

반짝이는 금.

그것을 마다할 이가 과연 있을까?

모든 탐욕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것.

“예로부터 금은 해님의 딸, 은은 달님의 눈물이라 했습니다.”

그 이야기.

리카르도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해님의 딸이라……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게 제가 실질적으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땅에서 나온다는 것은 나름 기쁜 일이긴 합니다만.”

말을 하는 록펠러의 표정이 마냥 밝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리카르도가 의문을 표했다.

“그쪽 권리를 대부분 가지고 계실 텐데.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시군요. 따로 이유가 있는 겁니까?”

록펠러도 편지 쓴 영주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직 확실한 게 아닙니다. 그 땅이 예전에 드워프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즈락 골드마인이라고 해서 대륙에서 손꼽히는 금광지대였죠. 지금이야 뭐…… 예전의 명성이 무색해질 정도로 버려진 땅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 거 아닙니까?”

“가능성이야 있겠죠. 하지만 진짜 금이 나오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록펠러가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그걸 지킬 힘이 없다면 어차피 제 땅에서 나와도 제 게 아닌 겁니다.”

그 말에 대해선 리카르도 역시 공감했다.

‘지킬 힘이 없다면 저자의 것이 아니긴 하지.’

“공감합니다. 만약 테페즈 가문이나 싱클레어 가문에서 그쪽 일을 알게 된다면 뭔가 재미없게 되겠군요.”

여기서 이스마일 가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

이에 대해선 록펠러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팔다리 다 잘린 가문이 당장 위세가 좋은 두 가문을 제치고 나설 순 없는 법이지.’

그런 이유로.

‘편히 말한 것도 있고. 어차피 알아도 이자는 관심을 둘 수 없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확실한 것도 아닌지라 괜히 설레발쳤다가 실망하게 되면 그것 나름대로 문제인지라. 그리고…….”

금맥을 노리는 자들?

테페즈? 싱클레어? 아니면 황실?

아니, 진짜는 따로 있었다.

“가장 걱정되는 게 바로 드워프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땅은 예전에 드워프가 버리고 간 땅입니다.”

“예전엔 거기가 드워프의 영토였다는 건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에 넘겨준 적은 없죠. 그냥 버리고 간 땅을 제국이 차지한 거니까요.”

이어질 말이야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맥주만큼이나 황금에 환장하는 종족이 또 드워프인지라.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우게 되면 자연스레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야 쉽게 포기를 안 할 테고, 그들도 그들의 피에 각인된 저주스러운 탐욕 때문에 어떻게든 물고 늘어질 겁니다.”

만약 편지의 내용대로 몬테펠트로 영지가 죽지 않았다면 리카르도는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드워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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