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23. 마석탱크(4)
록펠러의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던 것일까?
‘무슨 생각이지?’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신 겁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보시면 됩니다. 제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말이죠.”
지켜보면 된다라…….
강한 의문이 들었으나 록펠러가 저리 자신 있게 말하니 리카르도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잠자코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 가문의 비호라도 있다면 모를까.
‘혹시 싱클레어 가문을 믿고 있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확신할 순 없었다.
지금 록펠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으므로.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어차피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니까.’
24. 가문의 탄생(1)
“……그놈이 길드장이 됐다고? 그것도 리옹 가문에서 줄곧 맡아오던 그 자리를 꿰찼다 이 말인가?”
몬테펠트로의 영주, 체스터는 뜻밖의 소식에 어안이 벙벙한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이건 말이 안 되잖아. 한낱 평민 새끼가 어떻게 리옹 길드의 수장이 됐다는 거야?’
“하…… 그게 말이 안 될 텐데? 그 자린 예전부터 리옹 가문에서 맡아오고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반면 소식을 전한 오버시어는 제법 담담한 눈치였다.
그도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영주와 마찬가지로 강한 의문을 품긴 했었다.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들었던 내용에 대해 의심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이곳 영주를 반쪽짜리로 만든 록펠러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땐, 왠지 모르게 그런 일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옹에서 건너온 그 소식이 잘못됐을 리도 없으니 이내 수긍하고 만 것이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영주님도…….”
이어질 말은 실례가 되기에 오버시어는 굳이 다음 말을 잇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대충 알았던 영주는 표정을 구긴 채 애꿎은 헛기침만 내뱉고 말았다.
“크흠!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군. 별로 납득은 안 되지만 이게 거짓일 리는 없으니.”
영주가 손에 든 서신을 흔들며 말하자 그와 독대하던 오버시어가 말을 이었다.
“뭐, 그쪽에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다 확실히 알기 위해선 리옹에 직접 찾아가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희에겐 무조건 좋은 일이 아닙니까?”
“좋은 일?”
영주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야?”
“아닐 건 또 뭡니까?”
“뭐?”
“솔직히 리옹 길드의 수장이 이곳 영지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그분이라면 오히려 더 좋은 일 아닙니까?”
“아니, 이 사람이.”
자신이 힘을 잃기 전에는 말대꾸조차 안 하던 사람이 자신이 반쪽짜리 영주가 되자 말대꾸하는 게 엄청 늘어났다.
하여 역정을 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자신은 이미 그에게 급여를 주는 사람이 아니니 그러기가 차마 망설여졌다.
‘빌어먹을. 힘이 없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러다 사이라도 틀어지면 내 말을 아예 안 들을 텐데…… 큭!’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버시어는 계속 제 할 말만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그분께 축하 메시지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축하 메시지?”
“네, 영주님은 그분께서 리옹 길드장이 되신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자신이 취한 행동이나 한 일들은 프락치 노릇을 하는 오버시어로 인해 전부 다 로스메디치 집안에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영주가 표정을 감춘 채 이내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보였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내 딸이 시집 간 곳인데 내가 그럴 리 있겠나? 그저 소식이 너무 급작스럽고 믿기지가 않아서 그랬던 거야.”
“그럼 당연히 축하 메시지를 보내셔야죠. 그분께서도 영주님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신다면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 앞에 있는 책상을 엎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을 반쪽짜리로 만들어버린 그놈이 이번에 잘됐다는 소식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얼어 죽을 축하 메시지야! 저주를 퍼부어도 모자랄 판국에.’
그리 생각했지만 그쪽 집안에 시집보낸 자신의 딸이 있어 가만히 있기도 뭐했다.
‘빌어먹을…… 어쩌다 그런 놈들하고 엮이게 됐는지.’
“크흠! 좀 있다가 문장관에게 그 일 좀 부탁해야겠군. 나야 글을 모르니.”
오버시어는 갑작스레 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리옹 길드장이면 예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황실에서 내려줬었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저흰 그분을 록펠러 공이라 칭해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뭐? 록펠러 공?”
영주 입장에선 그닥 내키진 않았으나, 리옹 길드의 수장이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애당초 록펠러를 높게 보고 있었던 오버시어야 별 감흥 없이 제 말을 이어나갔다.
“네, 자작의 위치에 오르셨으니 그만한 호칭으로 부르는 게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하…… 엊그제만 해도 평민이었는데. 이젠 자작이라고?”
“평민이긴 했지만 여기선 제법 위치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영주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무슨 위치! 그냥 돈놀이나 하는 방코 업자였지.”
“그건 아닙니다. 위치야 확실히 있으셨죠. 막말로 이곳 영지의 권리를 거의 다 가져가신 분인데, 그런 분이 위치가 없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 자네 말대로 위치야 있었지.”
꼴사나운 위치.
아니면 재수 없는 위치.
오버시어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잘 모르긴 해도 곧 황실에서 서임을 받으시겠군요. 한 방코 연합의 수장이시니 황실에서도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뭔가 내키지 않았는지 영주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평민이었는데…….’
예로부터 리옹 길드장에게 자작의 위치를 내리는 건 하나의 관례와도 같았다.
문제는 상대가 귀족 가문 출신도 아닌 그저 평민 나부랭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평민이었는데 갑자기 자작의 작위를 내려줄까?”
영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은 록펠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보단 애당초 귀족들의 생각이 그러했던 것이다.
‘이건 다 떠나서 별로 내키지가 않은데.’
평민의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
이것은 귀족들이 가장 꺼려하는 일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네. 물론 길드장 자리가 낮진 않겠지.”
그 말에 오버시어도 제법 공감하는 눈치였다.
평민인 자가 갑작스레 자작이 되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버시어는 나름 확신할 수 있었다.
길드장은 관례적으로 자작의 작위를 가져왔고, 설사 그 자리에 평민이 앉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옹 길드의 위치가 낮다면 영주님 말처럼 될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애당초 돈이 궁한 황실에서 한 길드 연합의 수장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오버시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방코 업자 대부분이 평민 출신입니다. 여기엔 귀족들이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장을 자작으로 임명한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제 생각은 영주님과 좀 다릅니다.”
오버시어 말도 일리가 있어 영주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낱 방코 업자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제국의 금화를 주무르고 있다면 그들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 말도 맞겠군. 하긴…… 그 자리가 쉬운 자리는 아니긴 하지. 그러니 황실에서도 마냥 무시할 순 없을 거야.”
그러면서 영주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능구렁이 같은 자식이 대체 무슨 수작을 벌여 그 자리에 앉았을까.
‘나를 끌어내린 것처럼 무슨 개수작을 했겠지. 정확히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영주에게 오버시어가 뜻밖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보다 축하드립니다.”
난데없는 축하에 영주가 의문을 표했다.
“뭘 말인가?”
“어떻게 보면 영주님께선 자작가와 연이 생기신 거 아닙니까?”
영주는 남작 신분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기사보다 약간 높은 위치.
하여 본래 영주 체스터의 목표도 자신보다 더 높은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뜻하지 않게 이뤄냈으니 이를 생각한 오버시어가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 것이다.
“…….”
말을 아끼는 영주에게 오버시어는 제 말을 이어나갔다.
“영주님의 가문보다 더 높은 가문에 아가씨를 시집보내는 게 영주님의 숙원이 아니었습니까?”
“…….”
“그걸 뜻하지 않게 이뤄내셨으니 이렇게 축하드리는 겁니다.”
책상 앞에 앉은 영주는 두 눈만 껌뻑였다.
오버시어의 말이 틀린 건 없었으나 뭔가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아마도 록펠러와 그의 집안이 갑작스레 자작 가문이 됐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모양.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래도 기분은 영 별로였다.
“별로 기쁘지 않으신가 봅니다?”
“뭐가 말인가?”
“표정이 그렇게 말하십니다.”
“아닐세. 그것 때문은 아니고 요즘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
반쪽짜리 영주의 기분이야 오버시어가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무시했다.
그러다 오버시어는 다른 게 생각나 영주를 불렀다.
“영주님. 그보다 요즘 뭔가 심상찮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려 하자 영주가 의문을 드러냈다.
“심상찮다고?”
“네, 앞전에 저와 함께 난장판이 된 영지를 둘러보셨잖습니까?”
대격변 이후 몬테펠트로 영지엔 이전과 다른 모습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변한 지형도 지형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설마 최근 들어 계속 나오고 있는 금광석에 대해 말하는 건가?”
“네, 영주님도 느낌이 묘하지 않습니까?
오버시어는 품에서 군데군데 반짝이는 돌덩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번에 또 발견한 금광석이었다.
“이런 게 최근 들어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 의심스러운 게…….”
영주는 오버시어가 무슨 말을 할지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여기에 금맥이 있다고?”
“네, 영주님께서는 그런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뭐 있을 수도 있겠지. 예전엔 여기서 드워프들이 금을 캤다고 하니까.”
애당초 영지의 권리가 다 넘어간 판국에 자신의 영지에서 금맥이 발견됐다고 해서 영주가 좋아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자신도 급여를 받고 영주 일을 하는 마당에 그런 일이 있어 뭐가 좋겠는가?
그 일을 좋아할 곳은 이 세상에 단 한 곳뿐이었다.
영지의 권리를 가져간 그곳.
로스메디치 집안.
아니, 이젠 가문이 될 그곳만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게 있어 봤자 나한테 득 될 건 없으니. 그리고 자네한테도 좋을 건 없어. 괜히 귀찮아질 뿐이네.”
그 말에 오버시어는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 일이 왜 안 좋습니까? 영지가 그 일로 부유해지면 여길 맡고 있는 저희의 위치도 덩달아 올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지의 중요성에 따라 해당 영지의 주인은 남작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높은 작위를 받을 수도 있었다.
“팔다리 다 잘린 내가 여기서 금맥이 나온다고 좋아할 거 같나?”
“잘하면 백작의 작위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건 명목상 이 영지의 주인이 아니십니까?”
“…….”
“금맥이 나온다고 해서 저희에게 나쁠 건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 되겠죠.”
그래도 영주는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자네가 잘 모르는 것 같군. 금싸라기 땅은 나 같은 영주가 차지하기엔 아주 벅찬 곳이라네.”
영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땅은 힘 있는 자가 맡아야만 안전할 수 있어. 아니면 자연히 다른 자에게 뺏기게 되어 있네.”
영지에서 금이 나온다?
적은 양의 금이라면 당연 좋은 일이 되겠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자넨 블러드 골드에 대해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