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0화 (100/181)

§100화 23. 마석탱크(3)

‘1황자라…….’

처가인 테페즈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라이얀 황자는 곧 다가올 왕관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황자였다.

그에게 대항할 상대라고는 테페즈 가문과 더불어 제국의 3대 명가로 알려진 싱클레어 가문에서 밀고 있는 3황자 칼만이었다.

‘당장 라이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건 싱클레어 가문을 후원자로 둔 칼만뿐이겠지.’

여기서 2황자 크리스찬 이스마일은 처가인 이스마일 가문의 몰락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지지 세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왕관 전쟁에 나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황자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번 왕관 전쟁에 참여할 황자 후보는 1황자와 3황자뿐이라고.

그리고 그 둘 중에 살아남는 오직 한 명이 황좌에 앉아 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이라 하였다.

‘크리스찬…….’

2황자야 이미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간 상태라 그의 참가 여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리카르도는 록펠러란 이가 진정으로 2황자를 후원할 생각이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들었다.

“곧 라이얀 전하께서 오신다면. 분명 목적이 있어 오시는 건데.”

그가 무엇을 물어볼지 알았던 록펠러는 미소 띤 얼굴로 화답해 주었다.

“물론 목적이야 뻔하겠죠. 싱클레어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저희 리옹 길드에 압박을 가할 생각일 겁니다. 다가올 왕관 전쟁에서 자신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으니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3황자 전하를 도와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겠죠.”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리카르도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듣자 하니 라이얀 황자는 불같은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테페즈 가문의 피를 이어받으셨죠.”

그렇기에 리카르도가 판단하기엔 록펠러란 자가 라이얀 황자의 그 불같은 성격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였다.

“제가 볼 땐 누구도 그 성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분과 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리카르도는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록펠러란 자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막상 상황이 닥치게 되면 태도가 돌변할 거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 리카르도를 보고 록펠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2황자 전하를 밀어주겠다는 날 의심하고 있나?’

리카르도는 이스마일 가문 출신이었다.

고로 2황자를 밀어주지 않는다면 그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확률이 대단히 높아 보였다.

마이너스 점수.

그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1황자가 너무 대단한 사람인지라 제 생각에 의문을 품으신 것 같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1황자 쪽과 어찌어찌 그 일이 잘 풀린다 해도 싱클레어 가문도 남아 있는데. 이 두 세력을 전부 무시하고 2황자를 전하를 밀어주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거 아닙니까? 막상 상황이 닥치게 되면 정말로 2황자 전하를 밀어줄 생각이 있는 건지 정말 의문이 드는군요.”

“걱정하시는 것과 다르게 제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록펠러가 자리에 서서 말을 이었다.

“바람이 조금 부는군요. 제가 신이 아닌지라 언제 비가 올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제법 잘 맞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촉이 좋다고 하죠.”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리카르도는 조용히 한 채로 그의 말을 더 들어보았다.

“그런 제 촉이 감히 말하건대. 곧 다가올 왕관 전쟁에서 무조건 2황자 전하만 밀라고 하는군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그런 촉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좀 엉뚱하시군요. 저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당신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리카르도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전부 1황자 아니면 3황자가 황좌에 오를 거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지 세력조차 불분명한 2황자 전하가 황좌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네, 아마도 힘들긴 하겠죠.”

“그런데도 2황자 전하를 미시려는 겁니까?”

“힘들긴 하겠지만 제 촉이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2황자 전하께선 왕관 전쟁에 나오실 거고. 그 전쟁에서 두 황자의 목을 치고 황좌에 오르실 것을요.”

“너무 막연하군요. 마석탱크도 그런 식으로 투자하신 겁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오히려 웃어 보였다.

“저와 내기하시겠습니까? 마석탱크의 일이 잘 풀릴지 안 풀릴지.”

“내기요?”

“제가 말했었죠. 비가 언제 내릴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촉이 좋아 맞힐 수 있다고요.”

“…….”

리카르도가 말을 아끼자 록펠러가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큰 내기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마석탱크 일이 잘 풀린다면 제 촉이 귀신같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난데없이 내기라니.

리카르도는 농담을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불같다는 테페즈 가문과 달리 이스마일 가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여느 암살자처럼 조용한 게 특징이었으니까.

“내기는 별로…….”

그리고 장난으로 한 약속이라도 무조건 지키는 게 이스마일 가문이 가진 철칙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리카르도는 록펠러와 장난으로도 내기하기가 싫었다.

단순히 장난이라도 내기의 승패에 따라선 그의 부탁은 무조건 들어줘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걸 록펠러가 모르고 있을까?

‘다 알고 있어서 하는 거지.’

“그냥 작은 내기일 뿐인데. 뭘 그리 겁부터 먹으십니까? 설마 제 촉을 못 믿는 겁니까?”

그의 촉이 귀신같다면 2황자는 언젠간 황좌에 오를 것이다.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이야기.

하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만약 이뤄질 수 있다면 리카르도는 이 자리서 한 장난스러운 약속이라도 무조건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찬이 황좌에 오를 수만 있다면 이런 내기쯤이야.’

“좋습니다. 그 내기 받아들이죠. 만약 마석탱크 일이 잘된다면 뭘 원하십니까?”

그의 승낙이 떨어짐과 동시에 록펠러의 입가가 짓궂게 휘었다.

이를 본 리카르도가 눈가를 살며시 좁혔을 때, 록펠러의 입에서 아까 말한 것과는 다른 아주 어려운 주문이 나오고 있었다.

‘날 죽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너무나 뜬금없겠지. 당신이 아직 정체를 밝힌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부탁을 할 이유도 없으니까. 고로 이게 맞는 거지.’

“제가 원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어차피 제 조수가 되실 테니 이것만큼은 꼭 지켜주십쇼.”

“그게 뭡니까?”

“절 배신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보기보다 의미 있는 주문이었다.

배신하지 말아 달라는 건 무조건 자기편에 서달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본다면 나중에 서로 이해관계가 틀어져도 배신을 할 수 없기에 자신이 그를 죽일 수도 없었다.

‘저 사람은 저게 얼마나 대단한 내용인지 알고나 있을까?’

내기의 내용은 아주 가벼웠으나 이를 두고 두 사람의 속내는 매우 복잡했다.

그만큼 중요한 내기였던 것이다.

“내기 조건치고는 좀 약하죠? 저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조수로 쓸 사람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다고 배신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록펠러가 은연중 웃어 보였다.

“그런가요?”

“만약 제가 이긴다면.”

이어지는 말은 제법 섬뜩했다.

“그 반대로 해드리죠.”

“하하, 그것참 좋네요. 대놓고 배신을 하겠다라…….”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록펠러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자칫 잘못하면 비명횡사할 수 있기에 그러했다.

‘뭐, 일이야 확실하긴 한데 뭔가 개쫄리는데?’

마석탱크와 관련된 일이 잘 풀리는 거야 록펠러 입장에선 아주 확실한 이야기였다.

이건 소설에서 나온 확정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선 한평생 이스마일의 위협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전에 암살을 당하느냐가 결정된다는 생각에 등골이 아주 오싹해졌다.

“그런데 그 말은 저보고 당신을 조수로 쓰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요?”

“어차피 작게 생각하신 내기 같은데,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웃자고 한 소립니다.”

리카르도가 웃어 보이자 록펠러도 어쩔 수 없이 웃어 보였다.

“그렇기야 하죠. 어차피 저도 큰 생각 없이 한 내기니까요.”

“그런 겁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런다고 제가 배신이라도 하겠습니까?”

“하하, 네, 그렇죠. 배신이야 안 하시겠죠.”

그렇게 둘은 다시 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물론 대화 주제는 곧 찾아올 1황자에 대한 것이었다.

리카르도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혹시 칼날여왕이라고 아십니까?”

칼날여왕, 트리니티 테페즈.

그녀 역시 나이트로드 이자벨라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이한과 엮이는 여러 히로인들 중 하나였다.

“칼날여왕이라…… 이름 한번 무섭군요. 네, 들어는 봤습니다. 테페즈 가문 출신으로 라이얀 황자와 함께 전장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와 함께 다니는 게 바로 1황자입니다. 계속 말하지만 1황자가 찾아왔을 때 감당하기 힘드실 겁니다.”

“그보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잘 알고 계신 겁니까? 칼날여왕이라면…… 군인이 아니고서야 일반인이 알기 힘들 텐데요?”

록펠러의 물음에 리카르도는 표정 변화 없이 대꾸해 주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듣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다 알고 있죠.”

록펠러가 자주 쓰는 팔방미인 같은 답변이었다.

‘대답하는 건 나와 비슷하군. 나도 여기저기서 듣는 게 많다고 둘러대는데.’

“그렇군요. 어쩐지 아시는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카르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칼날여왕도 라이얀 전하의 황위 계승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죠. 그들은 같은 가문 사람인 데다 피를 나눈 남매입니다. 어쩌면 그녀가 훗날 라이얀 전하와 국혼하여 황후 폐하가 될지도 모를 일이죠.”

근친혼.

가문의 힘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걸 원치 않는 귀족 가문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근친혼이 안 좋은 건 그들도 알고 있을 텐데요?”

“하지만 가문의 힘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근친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물론 근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이따금씩 외부의 피를 받기도 하죠. 물론 좋은 피만 골라 받습니다. 어중간한 피는 테페즈의 피를 이겨낼 수 없으니까요.”

칼날여왕이 황후가 된다?

록펠러는 대놓고 고개를 젓고 싶었다.

‘이미 다른 놈하고 눈이 맞게 되는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주인공이 왜 주인공이겠는가?

히로인 킬러라 해서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둘이 붙어 다닌다면 조만간 그 여자도 볼 수 있겠군. 메인 히로인을.’

“그렇군요.”

리카르도의 말이 이어졌다.

“그만큼 힘든 상황입니다. 1황자나 칼날여왕 그 누가 와도 당신은 힘들 겁니다. 그런다고 그들의 장단에 맞춰줬다간 싱클레어 가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죠. 혹시 나이트로드라고 아십니까? 어쩌면 그 무서운 마법사가 당신을 찾아올지도 모르겠군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록펠러가 고개를 주억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죠. 저희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놈들인데. 아마 찾아오는 쪽에서도, 그리고 기존에 저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쪽에서도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어 록펠러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이번 기회에 전부 다 바뀔 겁니다. 제가 길드장이 된 순간부터 저희 리옹 길드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님을 세상 모두에게 공표할 생각이거든요.”

이것은 록펠러가 길드장이 되면서 길드원들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첫 번째 희생양이 절 찾아온다는 그분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이어지는 말.

“저희에게 힘이 없다고요? 그 힘이란 거, 솔직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가만히 지켜보십쇼. 찾아오는 1황자가 감히 제 앞에서 으름장이나 제대로 놓을 수 있는지.”

리카르도는 그 말에 의문이 들었으나 록펠러는 계획이란 게 있었다.

‘조만간 그 녀석과 만나봐야겠군. 모시기 어려운 게스트지만 돈으론 못할 게 없으니까.’

“제가 단언하건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