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99화 (99/181)

§99화 23. 마석탱크(2)

프랑크 백작은 너무나 기뻐서 그 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갓 완성된 마석탱크가 털썩 주저앉는 걸 보고도 대뜸 1만 달란트를 투자하겠다니!

자신이 만든 작품을 그저 애물단지 취급하는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암, 있고 말고요! 믿고 맡겨만 주십쇼. 제가 어떻게든 완성시켜 보겠습니다.”

프랑크 백작이 보인 모습에 록펠러는 나름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돈이 궁하긴 궁했던 모양이군. 저리 좋아할 줄은.’

“돈 걱정이야 하지 마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절 찾아오시면 됩니다.”

환한 표정의 프랑크 백작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 정도만 도와주셔도 정말 충분합니다. 나머진 제가 다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좋군요. 아주 좋습니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고철 덩어리를 위해 1만 달란트라는 거금을 투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록펠러가 원하는 것 또한 명확했다.

“그럼 마석탱크에 대한 지분을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지분이라니요?”

“저도 나름 투자자가 아닙니까? 제가 1만 달란트나 드리는데 저도 가져오는 게 있어야죠. 설마 제가 빌려준 돈에다 이자만 받을 줄 아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도 나름 저 마석탱크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이렇게 투자하려는 겁니다.”

하는 말과 다르게 록펠러는 선하게 웃고 있었다.

사람 좋은 인상.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지분을 달라는 건 대체…….”

이제까지 투자를 받으면서 대놓고 지분을 달라고 한 사람은 록펠러가 처음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말 없이 그저 빌려준 돈의 몇 배만 돌려주면 그만이었는데, 세상에 지분을 달라니.

“지분은…… 제가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크 백작이 곤란한 표정과 함께 록펠러의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

‘몇 배로 되갚아 주면 되는데 무슨 지분까지 달라는 거야.’

“대신 빌려주신 돈은 몇 배로 불려서 갚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넘어갈 록펠러가 아니었다.

자신은 마석탱크의 주인이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곧 찾아올 1황자를 위해서도 마석탱크에 대한 지분은 꼭 필요하지.’

미치광이 전쟁광에겐 마석탱크만큼이나 절실한 게 없었다.

고로 그것을 가져야만 곧 찾아올 1황자에게 굽히지 않고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석탱크만 쥐고 있어도 1황자가 날 어쩌진 못할 거다. 그 사람에겐 마석탱크는 무조건 필요하니까.’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여기서 투자할 금액은 무려 1만 달란트입니다. 1만 달란트가 어디 개집 이름도 아니고, 그 정도 투자를 했으면 지분 정도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분은…….”

지분을 내준다는 것은 자신이 피땀 흘려 완성시킨 마석탱크의 결실을 그와 나눠 가진다는 말이나 똑같았다.

자신이 만든 마석탱크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프랑크 백작은 지분을 달라는 록펠러의 제안이 여전히 내키기가 않았다.

‘지분은 절대 안 되는데…….’

“지분은 절대 안 됩니다. 왜 지분을 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확고했다.

“저도 지분 정도는 가져야 1만 달란트나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아니라면 마석탱크에 대한 투자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실랑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리카르도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한쪽은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준다면서 생색을 내고 있고, 또 다른 쪽은 잘 굴러가지도 않는 고철 덩어리를 가지고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이러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있겠는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군.’

반면 욕심이 앞섰던 프랑크 백작은 록펠러의 제안이 여전히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좋다 말았어.’

“하…….”

절로 한숨이 나오는 프랑크 백작이 좋았던 표정을 지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완성시킬 수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분을 내주는 건 이성이 말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내줬던 록펠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도 결정이 어려우신 겁니까? 만약 결정을 내리신다면 언제든 절 찾아오시면 됩니다. 저야 아쉬울 게 없으니까요.”

모두가 투자하길 꺼려 하는 마석탱크를 두고 록펠러는 여유로 맞받아칠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 말고는 마석탱크에 대뜸 투자할 미친놈은 없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선.

‘하나 있지. 라이얀 테페즈.’

본래 소설 이야기에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석탱크가 제 모습을 갖추는 건 전부 다 미치광이 전쟁광이라 불리는 1황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1황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석탱크는 영원히 애물단지 고철덩어리로 남았을 터.

‘하지만 내가 먼저 선수를 쳤으니 마석탱크가 1황자 도움으로 완성되는 일은 아마 없겠지.’

생각을 마친 록펠러가 미련 없이 떠나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곧바로 등을 돌렸다.

지켜보고 있던 리카르도 역시 그런 록펠러를 따라 나서려는 순간.

몇 발자국 앞서 걷던 록펠러가 돌연 뒤돌아서 아직도 갈등하고 있던 그에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제가 보기엔 당신은 남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킬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군요.”

그 말을 듣고 프랑크 백작이 록펠러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록펠러가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저 같으면 어떻게든 완성시킨 다음 그들에게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말하겠죠. 틀린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었다고.”

“…….”

이래도 대답이 없는 프랑크 백작을 두고 록펠러는 속마음과 다르게 여전히 미련 없는 모습으로 등을 돌렸다.

‘내가 잘못 찔렀나?’

그렇게 떠나가려는 찰나.

록펠러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프랑크 백작이었다.

“저, 저기.”

공장을 떠나가려던 록펠러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부르셨습니까?”

“지분은…… 얼마나 원하시는 겁니까?”

입가가 휘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 록펠러가 그 물음에 감흥 없이 답해주었다.

“지분이라…… 1만 달란트나 투자할 정도면 적어도 절반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반씩이나요? 절반은 좀…….”

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록펠러는 이 자리서 진정한 돈지랄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지분의 절반을 주시면. 여기 공장도 크게 만들어드리죠. 그리고 이후에 필요한 돈이 있다면 1만 달란트가 됐든, 2만 달란트가 됐든.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그저 제가 바란 건 마석탱크의 완성입니다.”

“나중에 돈이 더 필요해도 빌려주시겠다는 말입니까?”

이제야 대놓고 웃을 수 있는 록펠러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네, 물론입니다. 저야 가진 게 돈뿐인데 그것 하나 못해드리겠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테니, 백작 각하께선 어떻게든 마석탱크를 완성시켜 주십쇼. 제가 바라는 건 그것뿐입니다.”

저 말을 듣지 않았다면 프랑크 백작도 달리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만 달란트 외에 추가적으로 공장에 대한 지원과 이후 더 큰 자금이 필요했을 때 선뜻 도와준다는 록펠러의 말에 프랑크 백작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너무 좋은 조건인데. 도저히 거절할 용기가…….’

저 제안만 수락한다면 마석탱크의 완성이야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몇 주 안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고심을 하고 있자.

록펠러는 최대한 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여유로운 모습만 그에게 보일 뿐이었다.

“결정을 내리신다면 언제든 절 찾아오십쇼. 저야 언제든 게토 누오보에 있으니까요. 아, 상호명이 바뀌었으니 뱅크 오브 로스메디치로 오시면 됩니다. 가게 이름이 방코가 아닌 건 앞으로 저희가 나아갈 방향이 뱅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등을 보이려는 찰나.

프랑크 백작이 떠나려는 록펠러를 불렀다.

“저, 저기! 지분을 드리겠습니다.”

애당초 투자가 없다면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게 바로 마석탱크였다.

그러니 프랑크 백작도 어쩔 수 없이 록펠러에게 지분을 주면서 자신의 자식 같은 작품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절반을 드릴 테니 부디 마석탱크가 완성될 수 있도록 부디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다시 가게로 향하는 길.

리카르도는 앞서 있었던 일로 느끼는 게 참 많았다.

사실상 록펠러란 사람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마석탱크에 대한 권리를 절반이나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한 푼도 안 들였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준 돈은 역시나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금화가 아닌 고블린 달러였다.

“이, 이게 뭡니까?”

리카르도는 아직도 고블린 달러를 받고 당황하던 프랑크 백작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뭐긴요. 제가 빌려드리는 돈입니다.”

“이게 돈이라고요? 저는 달란트를 예상했었는데…….”

“아, 그걸 가지고 제 가게나 다른 방코에 가시면 1만 달란트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달란트를 보증하는 증서니까요.”

그제야 프랑크 백작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사이.

차용증서의 형태가 많이 바뀐 것이다.

“뭔가 했더니 차용증서로군요. 제가 밖을 잘 안 돌아다녀서 그런데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이건 마치…… 차용증서가 아니라 돈처럼 보이는 군요.”

“최근에 만들어진 겁니다. 단순히 차용증서가 아니라 그걸 개량시켜 사람들이 화폐처럼 쓸 수 있게 만들어놨죠.”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왜 이렇게 주시는 겁니까? 저는 금화를 예상했는데요.”

고지식한 프랑크 백작의 입장에선 오직 금화로 된 달란트만이 진정한 돈이었다.

물론 주변에서 차용증서를 돈처럼 쓰고 있었기에 거부감이 다소 적긴 했으나, 자신이 원하던 방향이 아닌지라 프랑크 백작은 선뜻 내키지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확고했다.

“하하, 제가 이 자리서 1만 달란트나 되는 무거운 돈을 들고 다닐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게 더 편하니 그렇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마 사용하시다 보면 앞으론 달란트 같은 건 거들떠도 안 보게 될 겁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다르게 생각해 보니 록펠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1만 달란트면 수레 싣고 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종이 묶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니.

‘기발하긴 하군.’

“오히려 이게 맞겠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 같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록펠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문제요? 거기서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저희 리옹 길드의 신용이야 모두가 다 인정하는 것인데. 모쪼록 마석탱크 완성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곧 좋은 소식이 닿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리카르도는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신기해.’

그런 리카르도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던 록펠러가 불쑥 말을 던졌다.

“아까 일로 느끼신 게 참 많으신가 봅니다. 말이 없으시니.”

“아닙니다. 어차피 예상하던 일이라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야 더 많이 있을 겁니다. 저희야 없는 돈을 빌려주고, 그들은 그 돈으로 살 것이며. 또한 그것으로 인해 저흰 더욱 살찌게 되겠죠.”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보십쇼.”

“마석탱크는 나름 확신이 있어서 투자하신 겁니까? 남들은 마석탱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블린 달러로 투자하셨어도 그 사람이 방코에 온다면 그 양만큼의 금화는 무조건 내줘야 합니다. 결국 그 말은 마석탱크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도와줬다는 말인데…… 저는 이게 궁금합니다. 마석탱크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있으셨던 겁니까?”

의도야 어찌 됐든 록펠러는 옅은 미소와 함께 답해줄 수 있었다.

“마석탱크에 대한 확신이 있든 없든. 결국 1황자 전하를 구슬리려면 꼭 필요한 일인지라 그렇게 한 겁니다. 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곧 다가올 왕관 전쟁으로 인해 1황자 전하께서 절 찾아올 확률이 아주 높은 상태입니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마석탱크에 대한 제 영향력을 어느 정도 키워놓는 게 맞는 겁니다.”

그 말에 리카르도가 살며시 눈가를 좁혔다.

설마 거기까지 내다봤을 줄이야.

“그럼 마석탱크에 대한 확신은 없이 오직 1황자 전하를 상대하기 위해 프랑크 백작에게 투자하신 겁니까?”

“대충 그렇습니다. 어차피 저야 남아도는 게 돈인데.”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확신이 있었다고 굳이 말할 필요까지야.’

“그 정도 투자야 전혀 아쉬울 게 없죠. 안 그렇습니까?”

그 물음에 리카르도는 침묵으로 긍정해 주었다.

‘하긴 그런 포석이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석탱크에 대한 투자도 이해가 되는군.’

그러다 리카르도는 록펠러가 말했던 1황자에 대해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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