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97화 (97/181)

§97화 22. 고블린 달러(5)

그 말에 리카르도가 의문을 표했다.

“그 말은 없는 돈을 만들어서 프랑크 백작에게 준다는 소리로 들리고 있는데, 제 말이 맞는 겁니까?”

상대는 이스마일이라 불리는 제국 3대 명가 중 하나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제 옆에서 당분간 일을 도와줄 조수.

이미 길드 회의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던 것을 이제 와서 숨길 필요도 없으니 록펠러는 미소로 답해주었다.

“대충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말을 했던 겁니다.”

리카르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공에서 돈을 찍어내다니.

그것도 모두를 기만하면서 말이다.

‘내 생각이 맞았군. 없는 돈을 만들어서 프랑크 백작을 도와줄 생각이었어.’

“그러다 문제 같은 건 전혀 안 생기는 겁니까?”

리카르도의 금융 지식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록펠러가 벌이는 짓에 대한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그의 금융 지식이 부족했으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너털웃음부터 터뜨려주었다.

“하하하! 물론 있죠. 없는 돈을 찍어서 시중에다 뿌렸는데 문제가 안 생길 수 있겠습니까?”

“거기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겁니까?”

“궁금하십니까?”

“네, 조금은.”

잠시간 제 턱을 매만지던 록펠러가 웃으며 그가 궁금하던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화염전쟁 이후 제국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잘 기억해 보시면 아마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화염전쟁이 발발하자 제국 황실에선 부족한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바스타드 달란트를 만들어냈다.

황금만으론 자신들이 원하는 돈을 찍어낼 수 없으니 거기다 구리까지 섞어가며 거짓된 금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시장물가의 상승이었다.

“설마…… 시장물가가 오르는 겁니까?”

“쉽게 보면 그렇습니다. 화염전쟁이 발발하기 전 대장간에서 철검 하나가 구입하려면 달란트 1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화염전쟁이 끝나자 시중에 돌아다니는 바스타드 달란트로 인해 철검의 가격이 이전보다 더 상승하게 됐죠. 왜 그렇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자세히는 모릅니다.”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철검의 실질적인 가치는 순수한 달란트 1개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달란트에 구리가 섞이게 되면서 달란트의 가치가 철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려가게 된 겁니다. 그럼 둘의 가치가 동등해지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 변하겠습니까? 철검의 가치는 고정이었는데.”

“그거야 달란트가 더 필요해지겠죠. 만약 순수한 달란트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시장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른 겁니다. 바스타드 달란트를 찍어낸 만큼 시장 균형에 맞춰 물가 역시 덩달아 오른 것이죠.”

리카르도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대충 알겠네요.”

“쉽게 말해서 기존에 쓰고 있던 달란트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제 일에 대입해 보면 나중에 일이 어떻게 될지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리카르도가 속으로 생각했다.

‘물가가 엄청 오르겠군. 이자를 포함한 방코 업자들이 제국을 상대로 얼마나 기만했는지에 따라서.’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물음을 록펠러는 피하지 않았다.

“편하게 물어보십쇼.”

“계속 그런 식으로 가다간 시중에 고블린 달러가 너무 넘쳐나게 될 텐데. 그러면 이전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바스타드 달란트는 구리 함량이 30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블린 달러라는 것은…….”

그러자 록펠러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생겨도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겁니다. 애당초 발행될 수 있는 고블린 달러의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요.”

“한계라고요?”

“네, 한계가 있습니다.”

록펠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고블린 달러는 저희가 기존에 쓰고 있던 차용증서의 연장선입니다. 그런데 이 차용증서는 아무 종이에서 막 찍어낸 게 아니라 싱클레어 가문에서 만든 어떤 특수한 종이가 있어야 합니다.”

“아…… 그럼 한계가 있겠군요.”

“그 종이의 공급량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죠. 그래서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후 록펠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그 종이를 독점하는 게 바로 접니다. 애당초 차용증서에 쓰이는 모든 종이는 제가 독점적으로 싱클레어 가문과 거래하고 있죠. 길드장의 권한으로 말입니다.”

“그 말은 고블린 달러를…….”

“제가 독점하고 있다는 소립니다. 그래서 그쪽이 우려하시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방금 그런 걱정을 하셨죠? 저 같은 방코 업자들이 많아 마구잡이로 고블린 달러를 찍어내면 과연 어떻게 될까? 시장물가가 너무 폭등하진 않을까?”

“네…… 솔직히 그런 걱정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 건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애당초 제가 그 특수한 종이를 내줘야만 다른 방코에서도 고블린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 종이를 주지 않으면 그들은 고블린 달러를 찍어낼 수가 없죠. 이미 제가 독점하고 있으니까요.”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무서운 자였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고블린 달러의 공급량을 저 혼자 조절할 수 있다니.

“그렇게 해도 문제야 결국 생기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가 남발한 고블린 달러의 양만큼 문제야 당연히 생길 겁니다. 허공에서 가치를 찍어내어 실질적인 가치와 희석시켰는데 물가야 당연히 오르겠죠. 다만 제가 조절하고 있으니 그 문제야 당장 드러나지 않고 아주 서서히 나타날 겁니다.”

이어지는 말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정도 문제야 대중의 무지로 인해 별탈 없이 잘 지나갈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나중에 이런 생각하게 되겠죠. 물가는 왜 계속 올랐을까?”

록펠러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은 그들을 기만하는 저희에게 있는 겁니다.”

“그들을 기만하고도 괜찮은 겁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마석탱크의 개발은 모두를 위해서도 좋은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국 국경에서는 타 세력과의 마찰로 인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마석탱크가 전면 배치된다면 그 희생이야 당연히 줄어들겠죠.”

리카르도가 눈가를 살며시 좁히자 록펠러가 뒷말을 이어주었다.

“대의를 위해선 대중의 희생이야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는 겁니다. 화염전쟁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습니까? 만약 바스타드 달란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제국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고블린 달러가 아닌 금화로 도와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말하는 걸 보면 제가 고용한 조수가 맞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리카르도가 말을 아끼자 록펠러가 옅은 미소르 보이며 잠시 경직됐던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돈이란 건 말입니다. 절대 말라선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화 대신 고블린 달러로 프랑크 백작을 도와주려는 겁니다. 고블린 달러야 어떻게 쓰든 저희가 가진 돈은 마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금화는 아니죠. 금화는 쓰면 쓸수록 고갈되는 겁니다. 그런 건 아끼는 게 상책이죠.”

록펠러의 표정은 나름 진지했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게. 저와 함께 이 일을 하시려면 그쪽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바꾸셔야 합니다. 대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기만하며 저와 함께.”

그가 암살명가의 가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록펠러는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완벽히 연기해 주었다.

“그들 위에 군림할 것인지.”

지금 록펠러가 보인 모습을 보고 리카르도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자다.’

그 역시 제국의 3대 명가 중 하나로 불리는 이스마일의 가주였다.

군림이란 단어를 그 누구보다 갈망하는 자.

황좌에 앉은 황제나 다른 가주들이 오직 권좌와 힘으로써 대중 위에 군림하려 했다면.

이자는 한낱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었다.

리카르도는 지금 이 자리서 많은 걸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상대는 태어나 처음이군.’

그에게 있어 타인이란 그저 두 발로 서서 움직이는 고깃덩이에 불과했었다.

필요에 의해 죽이고, 필요에 의해 살리면 그만인 자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계속 살려두고 싶은 자가 나타났다.

그가 가진 생각이 너무 아름답고 강렬했기에.

“제가 실수한 것 같군요. 제 말이 실례가 되었다면 부디 정중히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달리 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중이 아닌 저희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달란 이 말입니다.”

“록펠러 공의 생각은 잘 알았습니다. 제가 많이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만. 저는 아직 정식 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록펠러 공이라니…….”

“단순히 시간의 문제일 뿐. 황실에선 머잖아 당신을 리옹 길드장으로 서임할 겁니다. 그리고 전 조수입니다. 길드장인 당신께 예를 보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뭔가 찝찝했지만 록펠러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 버렸다.

“그럼 편하신 대로 하십쇼. 그런데 좀 많이 어색하군요. 록펠러 공이라니…….”

“이제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리고 조수인 절 존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록펠러가 손사래를 쳤다.

“저는 이게 편하니 당분간 이렇게 하겠습니다.”

둘은 곧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문득 다른 의문이 든 리카르도가 록펠러를 찾아 물었다.

“아까 말하신 고블린 달러.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들이 싱클레어 가문에서 나온 종이가 아니라 그냥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들어 뿌린다면 이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록펠러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기에 대답에 앞서 고개부터 저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죠?”

“애당초 고블린 달러는 금화를 담보로 발행됐기에 어떤 방코 업자가 그것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발행했다간 돌아오는 고블린 달러로 인해 금화가 남아나질 않을 겁니다.”

“굳이 그 방코가 아니라 다른 방코에서 금화로 교환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위조된 차용증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야 각 방코마다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록펠러가 품에서 돋보기로 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싱클레어 가문에서 만든 특수감별용 아티팩트였다.

“이게 있으니 거짓된 고블린 달러는 굳이 금화로 바꿔줄 필요가 없죠.”

리카르도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제가 볼 땐 길드에 속한 방코 업자들이 위조된 고블린 달러를 만들 가능성은 적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팔푼이 같은 자들이 위조된 고블린 달러로 저희와 모두를 기만하려 하겠죠.”

“그건 문제가 되겠군요.”

위조된 고블린 달러는 록펠러가 고블린 달러를 처음 고안했을 때부터 줄곧 생각해오던 문제였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습니다.”

록펠러는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위조된 고블린 달러에 대한 해결책 역시 그곳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고블린 달러가 대중화된다면 블록체인이란 마법을 통해 위조 문제를 전부 해결할 생각입니다.”

“블록체인?”

“아마 처음 들으실 겁니다. 저도 그 개념만 알고 있을 뿐. 하지만 마법이 있으니 제가 생각하던 것을 구현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을 통한 고블린 달러의 완성.

그것은 록펠러가 원하는 궁극의 화폐였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다면. 고블린 달러를 발행함에 있어 더 이상 싱클레어 가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이 내준 종이보다 블록체인 마법으로 엮인 종이가 더 안전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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