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95화 (95/181)

§95화 21. 길드 회의#2(10)

이스마일.

소설 속 3대 명가로 잘 알려진 이곳은 청부살인과 암살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두 방코 연합 중 하나인 블랙라벨 유니온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가주가 직접 찾아올 줄이야.’

과거 암살명가로 그 악명을 떨쳤던 이스마일은 검술과 마법으로 유명한 두 명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위세가 아주 대단했으나, 맹인교단이라 불리는 이교도와의 관계 때문에 교단과 연합한 두 명가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어 현재는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한 곳이 되어버렸다.

‘리카르도라면 전대 가주가 죽으면서 어린 나이에 가주가 되었지.’

지금 자신을 찾아온 인물이 암살명가의 가주라고 확신하는 록펠러가 표정을 감춘 채 말을 이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나쁘진 않군요.”

만약 그가 이스마일의 가주가 맞다면 자신은 왜 찾아왔을까?

록펠러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자 지급에 따른 피해를 블랙라벨 유니온이 입은 거겠지.’

금화 예치에 따른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리옹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그들 중엔 과거부터 블랙라벨 유니온과 거래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맡겨놓은 금화를 빼서 리옹에 있는 방코로 찾아오니 그게 문제가 되어 아마도 그들의 후원자인 이스마일 쪽에서 직접 나선 것으로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날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모르긴 해도 그쪽 가주가 맞다면 내가 생각하는 게 맞겠지.’

거기다 가주가 직접 움직였다.

이것은 그 일이 생각보다 민감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어찌 됐건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금화세공이나 다른 일에 대해선 알고 계십니까?”

리카르도 이스마일.

그는 금화세공과는 거리가 먼 암살명가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답게 재주가 아주 좋아 그 어떤 일이든 쉽게 배우고 따라 할 수 있었다.

금세공업자가 하는 일?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흉내 내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네.”

짧게 대답하는 그에게 록펠러가 다시 물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완벽하진 않지만, 크게 실망하실 정도는 아닐 겁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록펠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속아주는 척하자고. 어차피 진짜 조수가 될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닐 테니까.’

“우선 위쪽으로 가시죠. 차는 어떤 게 좋습니까?”

그 물음에 정체불명의 손님은 거짓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편하신 대로 주시면 됩니다.”

“그럼 허브티가 좋겠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쇼.”

어차피 그가 마시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록펠러는 예의상 차를 대접한 뒤 그와 마주 앉았다.

“자, 드시죠. 차는 식기 전에 마시는 게 좋습니다.”

역시나 록펠러가 예상했던 대로 그는 대접한 차를 마실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차에 독을 탔을 확률이야 희박하겠지만, 어찌 됐건 조심하는 것이다.

“차는 천천히 마시겠습니다.”

그런 상대에게 록펠러도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독살한 상대가 한둘이 아니겠지. 하긴 자기가 그렇게 쭉 해왔는데 남이 대접하는 차를 과연 마실 수 있을까?’

대신 형식적인 질문을 그에게 던져보았다.

“제가 이름을 안 여쭤봤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토마스 마르텔입니다. 평민이죠.”

“토마스라…… 이 일에 지원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까?”

“크게 없습니다. 돈이 필요했고, 사람을 구한다기에 여기 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큰 이유가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하면 이 일도 할 수 있는 거죠.”

이후 조수 채용에 따른 아주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둘에게 별 의미 없는 질문인지라 록펠러도 물어보는 데 있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먼저 치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상대였다.

“제가 듣기론 금화를 맡긴 사람에게 이자 수익을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지금 길드 강령으로 강제되어 리옹 길드에 속한 모든 방코가 이자 수익을 주기로 했습니다.”

록펠러의 답변에 상대가 살며시 눈가를 좁히며 말을 이었다.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잘못됐다고요? 어떤 식으로 말이죠?”

“그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야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결과가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묻는 겁니다.”

그 말에 록펠러가 고심하는 얼굴을 취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라…… 혹시 블랙라벨 유니온에 속한 방코 업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입니까?”

“네. 그쪽이 피해를 입었으니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잠시 고심하는 척 연기하던 록펠러가 선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어차피 세상은 서로 경쟁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좋은 쪽이 있다면 나쁜 쪽이야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겠죠. 이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록펠러의 답변을 들은 상대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져보았다.

“자연의 순리라 해도 피해를 입은 그들이 청부업자를 고용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정도에 따라선 그들이 이스마일 출신의 암살자를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블랙라벨 유니온이야 그들과 관계가 좋으니까요.”

지금 그가 한 말을 일종의 경고였다.

그들이 암살명가와 친분이 두터우니 조심하란 말.

하지만 록펠러는 전혀 굽힘이 없었다.

어차피 자기 뜻대로 될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위험한 말이로군요.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이권다툼이야 어린애들의 소꿉장난과 다르게 피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록펠러가 강조하듯 한쪽 검지를 세웠다.

“하지만 이미 변화의 흐름은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제가 어떻게 된다 해도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은 이미 그 결과가 나왔기에 절대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을 겁니다.”

록펠러가 다시 웃어 보였다.

“여기 길드원들이 돈맛을 봤는데, 과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전 힘들다고 봅니다.”

록펠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당장 흘러가는 분위기만 봐도 금화 예치에 따른 이자 지급의 효과가 실로 엄청났다.

제국에 있는 모든 금화가 거의 리옹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 효과를 본 길드원들이 예금 이자를 주지 않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또한 저희는 싱클레어 가문에서 후원해 주고 있는 입장입니다. 만약 제가 암살이라도 당한다면 싱클레어 가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리옹 방코에 속한 방코 업자들도 진상 조사를 요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스마일 가문이나 블랙라벨 유니온 쪽에선 의심을 받아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죠.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틀린 말은 없었기에 자신을 토마스라 소개한 청년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 말도 맞네요. 이곳과 당신은 싱클레어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쉽게 움직이진 못할 겁니다.”

“설령 움직인다 해도 나름의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러자 토마스란 청년이 표정을 어둡게 한 채 섬뜩한 말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이스마일은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상대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그래서 그들이 무서운 겁니다.”

록펠러 역시 수긍했는지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하여 저도 그들과 막연히 척을 질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자리는 이스마일 가주가 록펠러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의미로 마련된 자리였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록펠러도 이전부터 준비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당장 싱클레어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해서 그들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3대 명가 중 한 곳입니다. 그들에게 찍혀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죠. 이건 뭐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두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시죠?”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싸늘했다.

자칫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간 세상 하직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런 위협 속에서도 록펠러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에게 저를 해하지 못할 이유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모든 건 이해관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가문의 부흥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이스마일은 과거 이교도와 얽힌 문제로 그 위세가 예전보다 못한 곳이었다.

그러니 그 어떤 곳보다 가문의 부흥을 바라는 곳.

그런 곳에 록펠러가 절대 거부하지 못할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그들과 합심하여 2황자 전하를 밀어줄 생각입니다.”

크리스찬 이스마일.

제국 2황자인 그는 이스마일 가문 출신이었다.

토마스는 록펠러가 2황자를 밀어주겠다고 하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도 못 한 말이었기에 그러했다.

“싱클레어 가문이 버젓이 지켜보고 있는데 2황자 전하를 밀어주겠다고요?”

“네, 이건 저희들끼리의 비밀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그리할 생각입니다.”

토마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이유를 모르겠군요. 이스마일 눈치가 보인다고 해서 굳이 2황자 전하를 밀어줄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결과를 모른다면 절대 2황자를 밀어주는 멍청한 짓을 해서는 안 됐다.

왕관 전쟁의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1황자였고, 그게 아니라면 3황자 쪽으로 붙는 게 상식적으로 맞았으니까.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저 예상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특히나 주인공이 낀 자리는 더욱 그렇지.’

소설 속 주인공.

그 이름은 이한.

그는 2황자와 아주 절친한 관계였다.

그러니 그 모든 상황을 뒤엎고 결국 2황자가 왕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그쪽으로 붙는 거지. 그리고 이 일도 어쩌다 아다리가 잘 맞은 거고.’

“이한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었습니다. 남들은 무시해도 저는 그를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그가 있는 한 2황자 전하는 쉽게 지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왕관 전쟁에서 승리할지도 모르죠. 하여 싱클레어 가문이 모르게 2황자 전하를 몰래 도와줄 생각이 있습니다.”

토마스는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이한이란 자에 대해 알고 있다니 좀 의외네요.”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듣는 소문이 참 많습니다. 이한, 그는 아주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도 이한이란 자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이한이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저도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소문이라…….”

같은 핑계니 록펠러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식으로 그들의 위협을 피해갈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그들과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목숨이 하나인지라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자신을 토마스라 소개한 청년.

리카르도 이스마일은 오늘 이 자리서 그를 살릴지 죽일지 결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 벤자민이란 이전 길드장을 만났었는데, 여기서 만난 록펠러란 청년은 그가 했던 말과는 완전 상이한 사람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필요 없는 사람은 따로 있었군.’

자신만을 위해 거짓을 고한 자는 그 끝이 좋지 않았다.

특히나 이스마일과 엮인 자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이스마일은 여기저기 듣는 귀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이스마일은 그것을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록펠러가 헛웃음을 터뜨려주었다.

“제가 아직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어찌 알 수 있다는 겁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문의 그들이라면 아마 알고 있지 않을까요?”

“흠…… 그래도 연락은 취해봐야겠군요. 조수가 되기 위해 찾아왔다는 당신과 만나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 목숨보다 좋을 순 없으니까요.”

조수가 되기 위해 찾아왔다는 은발의 사내는 이후 록펠러와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누다 가게 밖으로 떠나갔다.

떠나간 이스마일 가주를 떠올리며 록펠러는 자리에 서서 눈가를 좁혔다.

‘리카르도 이스마일이라…… 그 유명한 암살명가의 가주를 여기서 볼 줄이야.’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걸 보니 자신은 이스마일 위협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망설임이 별로 없는 자들이었니까.

‘어쩌면 저자를 조수로 두는 게 좋을 수도 있겠어.’

왜냐?

“나야 저들 입장에선 무조건 살려야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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