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91화 (91/181)

§91화 21. 길드 회의#2(7)

교회를 계속 들먹이고 싶었으나 베르키스 주교가 록펠러를 지지하고 있기에 벤자민도 더 이상 교회를 들먹일 수 없게 됐다.

모두의 시선이 따갑다 못해 살갗을 후벼 판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벤자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말대로 자신이 이 자리서 내세울 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됐군.”

그래도 불만이 다 죽은 건 아니었다.

설령 자신이 이 자리서 물러나더라도 저 록펠러란 청년이 자신이 남긴 자리를 차지하는 건 끝내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 내가 여기서 나가는 건 좋아. 다 좋다고. 자네들이 한 말처럼 나도 가문의 후광을 가져온 것 외엔 자네들에게 딱히 해준 게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자네들도 이걸 알아야 돼. 진정 저 어린 애송이가 이 길드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벤자민이 던진 물음에 길드원들이 다시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록펠러와 관련된 믿기지 않은 소문들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길드장의 자리를 맡는 건 다소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사실상 길드원이 됐던 것도 오늘이었고, 방코의 어린 조수로 있다가 금세공업자가 된 것도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술렁이는 길드원 중에서 한 길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말함과 동시에 그의 시선이 회의장을 가볍게 훑었고, 그의 말에 공감한 다수의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그가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 방코 조수가 영주를 잡아먹었다. 또 교회 자금을 끌어들여 대출 사업을 크게 키웠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기 어려운 소문이야 익히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보다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린 사람을 길드장 자리에 앉힐 순 없습니다. 저 청년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변방에 위치한 어느 방코의 조수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희들에게 주는 신뢰가 대단히 부족하죠.”

공감한 대다수가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이며 긍정의 기색을 보이자 이를 흘겨보던 벤자민이 속으로 만족감을 머금었다.

자신을 내쫓더라도 길드장 자리가 다시 공석이 된다면 이번 퇴출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어차피 길드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으니 말이다.

‘새파란 놈을 대체 뭘 믿고 길드장 자리에 앉히겠어. 이건 다 마찬가지일 거야.’

록펠러에 대한 여론이 안 좋게 흘러가자.

이때까지 모든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카터가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모두를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카터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바로 변방에 위치한 작은 방코에서 여기 록펠러란 청년과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일어난 이유는 록펠러란 청년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가까이 지냈던 제가 한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됐습니다.”

소문의 조수와 함께 일했다는 방코 업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동시에 그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벤자민이 표정을 구겼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혹시?

‘맞아. 경고장을 날렸었지. 저놈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라고 했어. 아니면 길드에서 잘라 버린다고 했으니까.’

그렇기에 벤자민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제발 그렇게 돼야 할 텐데.’

하지만 그것은 그만의 바람이었다.

카터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말이 길어 봤자 좋을 건 없을 테니. 제가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카터가 곧바로 뒷말을 이어주었다.

“제가 단언하건대.”

카터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강한 믿음을 주고 있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서 아마 록펠러보다 더 뛰어난 장사 수완을 가진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겁니다.”

카터의 시선이 근처에 있던 록펠러에게 닿았다.

그 어린 것이 벌써 여기까지 커서 길드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니.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인 카터는 계속해서 발언했다.

“저 아이는 들어올 때부터 천재였습니다. 제 밑에 있었다지만 일은 전부 다 저 아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진행하였고, 그 결과 영주는 저희를 간섭할 수 없게 됐으며 가게 수입은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곳의 주인인 저 역시 아주 부유해졌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고. 내 생애 이자만 받고 편히 살 줄은 몰랐지요.”

그의 말에 굳이 토를 다는 길드원들은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카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 것처럼. 여러분 역시 핍박받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저를 믿고 한번 맡겨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와 얘기했을 때도 오직 결과로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요.”

결과로 판단하라는 말에 길드원들은 다시 한번 저들끼리 떠들며 회의장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길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록펠러를 찾았다.

“정말 결과로 보여줄 생각인가?”

그 물음에 록펠러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답해주었다.

“네, 물론입니다. 절 믿고 길드장 자리를 내주신다면. 오로지 결과로만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어린 후보자가 결과로 보답하겠다는 말에 반신반의 하는 길드원들이 또다시 회의장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길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혼란스럽던 회의장을 향해 모두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길드장 자리는 저기 계신 베르키스 주교 각하와 친분도 있어야 하니 그 후보자가 극히 제한된 상태입니다. 보아하니 당장 벤자민 공을 대신할 후보자는 저기 저 청년밖에 없는 것 같으니. 우선 저 청년을 믿고 한번 맡겨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대다수의 길드원들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록펠러란 청년이 다른 길드원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금세공업자로 살아온 경험도 적어 보였지만 그에 반해 뒤따르는 소문들이 심상찮았던 게 그들이 긍정하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베르키스 주교와의 친분도 두터우니 록펠러란 청년이 설령 못 미덥더라도 한 번 정도 기회는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벤자민 공이 더 이상 길드장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관계로. 제가 나서서 새 후보자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록펠러란 청년이 길드장 자리에 앉는 걸 찬성하시는 분께선 조용히 거수하여 주십시오. 정해진 회칙대로 새 길드장은 과반이 넘는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숨죽이는 와중에 하나둘씩 거수하기 시작했다.

베르키스 주교와 카터가 가장 먼저 거수를 하였고, 뒤따라 록펠러를 지지하는 길드원들이 주변 눈치를 보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하에 조용히 거수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늘어가는 찬성표에.

이를 지켜보던 벤자민은 막판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생각보다 록펠러란 청년을 지지하는 길드원들이 많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벤자민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반면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록펠러는 저도 모르게 얼굴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카터 아저씨가 받았던 편지는 굳이 꺼낼 필요조차 없었어.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이야.’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곧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젊고 남다른 인상을 주는 새 길드장이 선출됨과 동시에 이를 지켜보던 베르키스 주교가 가장 먼저 박수를 쳐주었고, 뒤이어 회의장을 차지하고 있던 길드원들도 그런 주교와 맞춰 새 길드장을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었다.

요란한 박수갈채 속에서.

록펠러가 사명감과 함께 목소리를 내주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른 것을 단순히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지금까지 저희는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앞서 제가 한탄했던 것처럼 저희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남에게 굽신거리며 살아왔습니다. 제 힘을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강자 앞에서 휘둘리는 약자들일 뿐이었죠.”

록펠러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이전 길드장인 벤자민에게 향해 있었다.

“이걸 빨리 돌렸다면 지금보다 더 좋았을 텐데.”

원망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느껴졌지만 벤자민은 대놓고 코웃음이나 쳐주었다.

그런 벤자민에게서 시선을 치운 록펠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중요한 건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입니다. 오늘 이후로 저희는.”

록펠러의 시선이 베르키스 주교에게 닿았다.

“신과 교회, 그리고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하여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록펠러가 검지를 세웠다.

“그런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선 우선 저희가 가진 힘을 지금보다 더 크게 키워야 합니다.”

록펠러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공감하는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오늘 이후로 새로운 길드 강령을 강제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길드원 모두가 동참해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모두는 그저 귀만 열어둔 채 록펠러의 다음 말을 기다려 주었다.

그사이 잠시 숨을 고른 록펠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까지 금화 보관료를 주던 사업을 전면 철폐하고, 금화 예치에 따른 소정의 이자를 지급하는 길드 강령을 강제하려 합니다. 이것은 리옹 길드에 속한 모든 방코에 강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지켜보던 몇몇 길드원들이 저들끼리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예금 이자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록펠러가 말을 잇기 전.

한 길드원이 거수하여 록펠러의 관심을 끌었다.

“제가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해주십쇼.”

록펠러가 손으로 가리키자 자리에서 일어난 어느 길드원이 록펠러가 강제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금화 보관료를 받아오며 잘만 살아왔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철폐하라니. 그것도 길드 강령이면 빠져나갈 길이 아예 없는 거 아닌가?”

“물론 이 일에 불만이야 있을 겁니다. 멀쩡하게 해오던 하나의 사업을 완전히 접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건 아셔야 합니다. 작은 걸 포기하면서 얻게 되는 큰 게 있다는 것을요.”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제가 방금 전 새 길드장으로 선출되면서 여러분께 하나 약속드린 게 있습니다. 바로 결과로 보답해 드린다고 했었죠. 그리고 그 결과를 끌어내려면 어쩔 수 없이 제 말을 따르셔야 합니다.”

“만약 자네가 틀렸다면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겠나?”

“감당할 자신 말입니까? 물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선 저를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될 겁니다.”

록펠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하는 겁니다. 만약 이 일이 잘못된다면 이 자리서 깔끔하게 물러날 생각이니 우선 저를 믿고 제가 새롭게 발표한 길드 강령대로 따라주십쇼.”

“그걸 강제한다면 새로운 피해자가 생기지 않겠나?”

어느 길드원의 돌발적인 물음에 록펠러는 당황하지 않고 맞섰다.

“새로운 피해자는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저희는 아닙니다. 왜냐? 저흰 전부 길드 강령대로 금화 보관료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누가 피해자란 말인가? 나는 우리들 중 누군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피해자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틀렸습니다. 피해자는 저희가 아니라 저희와 마찬가지로 방코 연합을 결성한 블랙라벨 유니온이 될 것입니다.”

록펠러는 모두를 향해 은연중 미소를 지어보였다.

“두고 보십쇼. 블랙라벨 유니온에 속한 방코에서 금화가 남게 될지. 오늘 이후로 그들의 금화는 저희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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