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21. 길드 회의#2(6)
록펠러의 외침에 회의장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혼돈의 도가니 속.
목에 핏대까지 세운 길드장은 자신을 욕보인 록펠러를 향해 삿대질과 함께 언성을 계속 높여나갔고, 이에 굴하지 않는 록펠러 역시 그런 길드장에 맞서 목청을 높였다.
“조용! 다들 조용히 하세요!”
“아직 회의 중입니다!”
“정숙하세요!”
길드장까지 회의 중재가 불가능해지자, 보다 못한 몇몇 길드원들이 나서서 시끄러운 회의장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다분히 노력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길드장의 목소리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서 누가 날 내쫓는다고! 아무도 없어! 그런데 이제 갓 금세공업자가 된 애송이 새끼가 감히 날 몰아내려 해?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시건방진 녀석이!”
“소보다 무능한 당신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를 위해 조속히 그 자리서 물러나 주시죠. 그게 모두를 위해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날 여기서 끌어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까? 없다는데 왜 자꾸 그딴 소리를 하냐 이 말이야!”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닌 길드장이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회의장에 앉아 있던 길드원들을 빠르게 훑었다.
“여기서 내가 이 자리를 지키는 데 불만 있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썩 나와 봐!”
그 외침에 섣부르게 나서는 길드원은 없었다.
애당초 벤자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리옹 가문의 눈치가 보였던지라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봐! 아무도 없잖나?”
여기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흥분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벤자민이 승리의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아무도 없다고! 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때.
그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가 벤자민의 말을 자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나는 찬성일세.”
모두는 놀란 눈치였다.
절대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인물이 저런 말을 했으니 당연했다.
“지금 뭐야? 주교 각하께서 찬성하셨어.”
“이봐. 둘은 같은 가문 사람이잖아? 이게 말이 돼?”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좀 이상한데.”
“아무리 감정이 있으셔도 그렇지. 말실수라도 이건 너무 나갔는데?”
“정말 찬성이신 건가?”
“모르겠어.”
웅성거리는 길드원들의 반응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리 길드장이 미워도 그렇지 같은 가문 사람을 저렇게 배척할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헷갈려 하는 몇몇은 베르키스 주교가 잠시 농담을 던졌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벤자민 길드장을 알게 모르게 노려보는 주교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고, 여기엔 농담 같은 게 섞일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왜들 그러나? 나는 교인이라 여기서 찬성표를 던지면 안 되는 겐가? 내가 이제까지 이 길드를 위해 해준 게 얼만데. 나 정도 됐으면 찬성표 하나 정도는 던질 수 있는 거지.”
그런 베르키스 주교를 향해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진 벤자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교 각하……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찬성하신다고요?”
“뭐라 하긴. 자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 찬성한다고 했네. 전부 다 들었으면서 왜 다시 묻는 겐가? 귀가 나쁜 겐가?”
“그걸…… 제정신으로 하신 소립니까? 절 쫓아내신다고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저를요?”
“뭐? 제정신?”
길드장이 한 말에 꼭지가 돈 베르키스 주교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같은 가문 사람이라고 나도 우습게 보이나! 아무리 같은 가문 사람이라도 그렇지 어디서 감히 그 더러운 주둥아리를 멋대로 놀리는 거야! 자네야말로 지금 제정신인가! 감히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내게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하다니!”
“그래도 이건 너무 나가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주교 각하께서 제게 그러실 수 있는 겁니까! 저희가 무슨 남도 아니고 어떻게 주교 각하께서 제게 그럴 수 있냐는 겁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자네야말로 나와 남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자네가 나와 남인가? 다른 가문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 이 말이야! 오히려 처음부터 잘못한 건 자네가 아니었나?”
“처음부터 제가 잘못했다고요? 대체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다 잘못했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회의가 왜 생겨난 건데! 나와 교회를 대체 어떻게 봤길래 이딴 회의까지 여냐 이 말이야! 교회에 이자를 주는 게 그렇게 싫었나! 그렇게도 교회 재산이 탐났어!”
“하…… 그거야 저희 일입니다. 교회에서 간섭하실 일이 전혀 아니란 이 말입니다.”
“그러니 찬성하는 걸세! 자넨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일세! 당장 그 자리서 내려오게!”
“그건 주교 각하께서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저희 길드원들이 알아서 정할 문제라고요!”
“누구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데 감히 내 앞에서 그딴 소리를 한다고? 신이 지켜보는 이 자리서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자넨 천벌이라도 받고 싶은 겐가!”
그제야 둘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같은 가문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렇게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다면 베르키스 주교가 벤자민 길드장을 내쫓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었다.
“아무튼 난 찬성일세! 저자를 당장 저 자리서 쫓아내게! 아니면 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다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아니면 여기서 장사를 못 한다는 건 자네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막무가내로 나오는 그를 비웃듯이.
대놓고 콧방귀를 뀌는 벤자민이 회의장에 앉아 있던 모두를 향해 발언했다.
“여기 주교 각하가 뭐라 해도 듣지 말게. 어차피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 그리고 이 자리가 끝난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록펠러가 나섰다.
“저 역시 찬성하는 바입니다.”
당당히 거수하는 록펠러와 맞물려 길드장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저 새끼가!’
“글쎄 아무도 없다니까! 여기서 날 내쫓을 사람은 아니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다.
이제까지 길드장에 불만을 품고 있던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거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뭐 하는 짓거리냐고!”
다시금 흥분하기 시작하는 길드장이 언성을 계속 높여갈수록.
그에게 등을 돌린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회의장 하늘을 향해 당당히 거수를 하였고, 그 수는 족히 과반을 넘어가게 됐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출에 가담하려는 길드원들을 보면서 처음엔 화를 내려던 벤자민도 차츰 허탈한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모든 걸 떠나서 자신이 이렇게까지밖에 안 되는 존재인지 지금까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너무 하잖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찾아와 살갑게 미소 지으며 입 발린 소리만 하던 자들이 이제 와선 자신이 퇴출되는 것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니!
과반수가 넘어가는 찬성표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넋만 놓고 있던 길드장에게 록펠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다수의 원칙대로 당신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모두의 앞에서 증명됐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하시죠. 다들 듣고 있으니.”
이건 잘못됐다고.
무언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자리에 앉은 길드원에게 하소연을 하려고 해봐도 느낌상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두 눈만 껌벅이던 길드장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두를 향해 낮은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보게들. 내 식대로 하는 게 맞아. 그게 맞는 거라고. 금화를 맡긴 사람에게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금화 보관료를 받는 게 맞다 이 말이야.”
차분하게 설명조로 얘기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그저 싸늘하기만 했다.
“대체 왜. 이제 금세공업자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파란 애송이가 한 말에 휘둘려 가지고는. 그건 아니라니까.”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애쓰는 그를 보면서.
록펠러는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안다고 그리 확신하시는 겁니까?”
“그럼 너 같은 애송이가 대체 뭘 안다고 확신하는 거야!”
“저요? 저는 이미 모두 앞에서 전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뭘 증명했다고!”
벤자민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선.
베르키스 주교를 배경으로 서 있는 록펠러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 봐오셨으면 그래도 묻는 겁니까? 제가 한 말이 틀린 게 하나 없군요. 당신은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길드의 발전, 그리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를 위해 조속히 길드장 자리에서 내려와 주십시오. 그 자리는 당신보다 더 발전적이고 좋은 사람에게 줘야 합니다.”
그 말에 벤자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결과가 모두의 앞에서 증명됐는데 자신이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여길 떠나면. 그럼 교회의 후광은 더 이상 없어지는 건데. 그래도 자네들은 날 내쫓겠다는 말인가? 교회의 후광이 없으면 방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가 나섰다.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게. 벤자민이 나간다고 해서 내가 이 길드에 해를 끼치는 일은 아마 없을 걸세.”
베르키스 주교가 강조하듯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물론 내 사람이 여기 길드장 자리를 계속 맡아준다면 말이지.”
나름 의미심장한 말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벤자민이 베르키스 주교를 향해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그의 검지는 록펠러를 향해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저기 저 새파란 애송이에게 여길 맡긴다 이 말씀입니까?”
그 물음에 베르키스 주교가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적어도 자네보다는 나은 사람일 텐데.”
“저 녀석은 이제까지 금세공업자도 아니었고, 그런 금세공업자 밑에서 조수 일만 해오던 완전 애송이 중에 애송이입니다! 주교 각하께서는 대체 뭘 믿고 저런 애송이에게 이 자리를 맡긴다는 겁니까?”
“그거야 저 청년이 이제부터 차근히 증명할 걸세. 나야 이미 믿음이 있는 상태고. 천천히 지켜볼 생각이야.”
“하…….”
대놓고 한숨 쉬는 벤자민이 자리에 앉아 있던 길드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들도 그리 생각하나?”
물론 그가 퇴출되는 것에 찬성표를 들지 않은 길드원들도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중립 입장을 취했을 뿐.
나머지 역시 그에게 불만이 있는 상태였다.
“다들 아무 말도 없군. 자네들은 내가 이 자리서 물러나는 게 좋은 모양이야. 내가 지금까지 해준 게 얼만데.”
그러자 한 길드원이 목소리를 냈다.
“길드장께서 저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습니까? 해준 거라곤 혼자서 교회 재산을 다 관리하시면서 보관료만 챙기셨지요. 저희에게 언제 교회 재산을 허락해 준 적이 있었습니까?”
그는 대놓고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있어 도움 됐던 일은 리옹 가문과 교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길드장이란 자리를 이용해 자기 밥그릇만 챙기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듣고 있던 대다수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러나는 게 맞다고?”
벤자민의 물음에 또 다른 길드원이 목소리를 내주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길드장 자리는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그 자리는 저기 저 청년이 말했던 것처럼 길드나 저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앉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본인에게 물어보십쇼.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