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89화 (89/181)

§89화 21. 길드 회의#2(5)

갑작스러운 주교의 태도에 벤자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여기까지 찾아와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벤자민이 모두를 향해 발언하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자 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뭐가 말인가?”

“아니, 미사도 끝났으면 볼일이야 없는 거 아닙니까?”

“할 말이 있어 나도 이 자리에 남았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남으셨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뭘 들었나? 귀가 멀쩡하다면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들었을 텐데?”

기가 찼는지 벤자민은 헛웃음을 쳤다.

‘진짜 뭐 하자는 거야?’

벤자민이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모두를 향해 발언하던 베르키스 주교가 말을 이었다.

“다들 내 덕분에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럼 내가 저 청년을 여기 길드원으로 만들어줘도 이의는 없겠지?”

길드원들이 저들끼리 술렁이고 있을 때.

표정을 와락 구긴 벤자민이 나섰다.

아무리 주교라지만 같은 가문 사람이었다.

그러니 벤자민 입장에선 그를 너무 어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불만이 있으면 따지면 그만.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남의 업장에 찾아와서 행패나 부리시고. 일 끝났으면 가시죠. 괜히 저희 일에 방해만 되십니다.”

그런 말에 쉽게 물러날 베르키스 주교가 아니었다.

“자네야말로 뭐 하는 짓인가? 지금 누구 덕분에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이 길드를 위해 해준 일도 벌써 잊어버렸나!”

“그거야 이제까지 충분히 보상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무슨 보상! 대체 무슨 보상을 해줬는데!”

“그걸 일일이 다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 이자 주는 일도 못 하겠다고 이런 자리까지 만들었나!”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서로 간의 언성이 높아지자 길드원들은 둘의 눈치를 보며 조용해졌다.

반면 베르키스 주교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벤자민이 사정없이 표정을 구기며 생각했다.

주교가 저렇게 나오는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다.

‘대충 알겠어. 그 일에 아직도 불만이 있었군.’

왜 지금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나 했더니, 이자 주는 사업을 철회하는 것에 대한 앙금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걸로 보였다.

“아무튼 이 일은 저희 쪽 일이니, 주교 각하께서는 더 이상 저희 일에 간섭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간섭을 왜 안 해! 자네가 그렇게 하면 나와 교회가 피해를 입는데! 자넨 신에게 그렇게 밉보이고 싶나!”

“신에게 밉보이는 게 아니라 정확히 주교 각하께 밉보이는 게 아닙니까?”

“신성모독일세!”

“하…… 신성모독은 무슨 신성모독입니까? 정 이 일에 불만이시면 제가 나중에 알아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자네가 대체 뭘 보상해 주겠다는 건가?”

“이제까지도 성금으로 다 보답해 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낸 성금은 다 잊으신 겁니까?”

“성금은 무슨! 그것도 성금이라고 주면서 생색을 내는 건가! 그리고 그렇게 생색을 낼 것이었으면 차라리 그때 날 도와주지 그랬어!”

“그때 일은 왜 또 꺼내고 그럽니까! 그리고 그때는 저도 힘들다고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힘들어서 더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또다시 둘의 언쟁이 격해지려 하자 자리에 서 있던 록펠러가 헛기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둘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성을 내던 베르키스 주교가 가까스로 화를 추스르며 벤자민과의 언쟁을 멈추었다.

“아무튼. 나도 할 도리는 해야겠으니 저 청년을 여기 길드원으로 받아주게.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돼?”

“글쎄 안 된다고요.”

“왜 안 되는지 말을 해보라니까?”

“저 청년은 일단 금세공업자도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두 눈에서 불이 일 것 같은 주교의 시선과 다른 변명거리가 없던 벤자민이 표정을 구긴 채 말을 이었다.

“아무튼 경험이 미숙하여 당장 길드원으로 받아들이는 건 힘듭니다.”

“이제 금세공업자인데 무슨 경험이 없다는 건가? 일도 그 정도 했으면 자격이나 경험 역시 충분히 있는 것이지.”

그러자 지켜보던 록펠러가 나섰다.

“벤자민 공. 절 길드원으로 받아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저번에 했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까?”

갑작스런 록펠러의 말에 벤자민이 당황했다.

‘저 새낀 뭐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서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록펠러의 필요성을 인지한 벤자민이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말았다.

곧 모두를 향해 증언해야 하는 록펠러에게 밉보인다면, 자신의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지. 그래, 뭐 길드원으로 받아주는 거야 일도 아니지. 다시 자르면 그만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은 길드원이야 나중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르면 그만.

그런 생각을 품고 벤자민이 원치 않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좋아. 오늘 이 시간부로 자넬 리옹 길드의 길드원으로 받아주겠네. 이런 경우가 거의 없긴 했지만. 저기 주교 각하께서 날 잡아먹을 듯이 벼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길드원을 받아들이고 마는 것도 길드장의 재량이었으나, 그래도 모두가 모인 자리니 벤자민은 의미 없는 물음을 모두에게 던져보았다.

“저 청년을 길드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이견이 있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말해보게. 그럼 저 청년을 길드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그 물음에 대해서는 길드원 전체가 침묵으로 긍정해 주었다.

그들 입장에선 굳이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 역시 길드장의 재량.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이제 됐습니까?”

벤자민이 묻자 베르키스 주교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주교가 조용해지자 이제 벤자민의 시선은 자연스레 록펠러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자네가 원하던 길드원이 됐네. 그럼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는 이 자리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여기 계신 모두와 신 앞에서 맹세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엔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약속드립니다.”

“그래, 마음에 드는군. 그럼 자네가 벌였던 일에 대해 말해보게나.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모두에게 말해보란 말이야.”

모든 자리가 준비되었다.

보호자 동의도 이미 받아놨으니 이제 남은 건 무능한 길드장을 끌어내리는 대수술뿐.

마음의 준비를 마친 록펠러가 모두를 향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여기 계신 모두가 저만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저희의 주된 수입원이 바로 금화 대출에 따른 이자 수익이라는 것을요. 물론 부수적으로 금화를 환전하는 일이나 금화 보관료를 받는 일. 그것 외에도 금화세공에 따른 수수료도 따로 챙기긴 합니다만. 결국 가장 큰 수입원이 금화 대출에 따른 이자 수익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실 겁니다.”

회의장에 모인 길드원들은 이견이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자리에 앉아 록펠러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록펠러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이 대출 사업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했나? 당연히 빌려줄 금화가 많아야 했습니다. 많은 금화를 빌려주어야 거기에 따른 이자 수익도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이쯤 되자 벤자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아직 록펠러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기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 생각하여 없는 인내심을 짜내어 조용히 더 들어보기로 했다.

‘아니야. 조금 더 들어보자고. 일단 이자를 주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으니까.’

벤자민이 쓸데없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을 때.

록펠러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길드장 퇴출을 위한 대수술을 차분히 진행해 나갔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꾀를 낸 게 금화를 맡긴 사람에게 이자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존에 해왔던 금화 보관료를 받을 수 없게 되지만, 대신 대출 사업을 더 키워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거란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록펠러의 말에 길드원 대다수가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이자 주는 사업을 했던 당사자이니 나름 믿음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습니다. 저희 방코는 이전보다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고, 저희가 이자 수익을 챙겨준 교회와는 이전보다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닌 게, 방금 전 저를 위해 길드장과 언쟁을 벌였던 주교 각하만 보셔도 충분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웅성거리는 길드원들과 맞물려 보다 못한 길드장이 끼어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겐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라고 했어. 자네가 거기서 할 말은 그게 아닐 텐데?”

그러자 록펠러가 검지를 펼쳐 잠시 길드장의 말을 막았다.

그리곤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자 주는 사업을 하게 되면 기존에 해왔던 금화 보관료를 받는 일은 아마 불가능해질 겁니다. 누구는 이자를 주고 누구는 보관료를 받게 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에 금화를 맡기겠습니까? 당연히 이자 주는 곳에 맡기게 될 겁니다. 이건 상식이니까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잠시 언성을 높였던 길드장은 진짜 없는 인내심까지 짜내어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들어봐야지. 설마 저기서 헛소리를 하겠어?’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이 일로 분명 피해자가 생길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 이자를 주는 방코가 생김으로 인해 기존에 해왔던 금화 보관료를 받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금화 보관료를 받는 방코에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럼 고객이 없는 방코는 당연히 큰 피해를 입게 되겠죠. 그래서 여러분께 간절히 청하옵건대.”

록펠러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부로 금화 보관료를 받아오던 구닥다리 사업 방식은 전부 철회하셨으면 합니다.”

뜻밖의 발언에 회의장 전체는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록펠러의 발언 전에 길드장이 했던 말과는 전혀 상반되는 증언을 했기에 그러했다.

“그것은 저희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족쇄일 뿐만 아니라, 계속 그런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제가 말했던 피해자가 되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록펠러가 말을 마치매 회의장 전체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고, 이와 맞물려 벤자민이 노발대발하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누가 그딴 소리를 하라고 했나!”

그런 길드장을 향해 록펠러는 전혀 굽힘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후로 저 무능한 길드장을! 저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서 당장 끌어내렸으면 합니다!”

“뭐, 뭐라고? 날 끌어내려? 네놈이 뭔데! 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저 길드장은 우물 안의 개구리입니다. 큰 그림은 전혀 보지 못한 채 당장의 이익만 좇는 우매하고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믿는 구석이라곤 오직 자신을 뒷받침해 줄 가문뿐! 그것 외에는 내세울 게 전혀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저런 자가 계속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리옹 길드의 발전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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