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88화 (88/181)

§88화 21. 길드 회의#(4)

과연 영주도 잡아먹었다던 방코의 조수였다.

감히 저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다니.

술렁이는 회의장 속에서 길드원들이 숙덕이기 시작했다.

“저기 저 청년 말이야. 생각하는 게 우리랑 영 다른데?”

“괜히 영주를 잡아먹었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우리가 그 정도 힘이 있긴 하지. 우리가 미는 게 황제가 아니고 뭐냔 말이야?”

“1황자가 암만 잘났어도 돈 없으면 왕관 전쟁은 못 이겨. 막말로 우리가 두 황자 중 하나만 제대로 밀어준다면 그자가 차기 황제 폐하지 뭐겠어?”

이 순간에도 록펠러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일은 1황자 전하가 저희를 우습게 안 결과입니다. 얼마나 만만한 집단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따위 식으로 저흴 무시했겠습니까? 저희가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또 그렇게 계속 행동해왔다면! 1황자 전하가 저희에게 취할 태도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겁니다.”

록펠러의 말은 리옹 길드가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리옹 길드를 그렇게 이끌어온 길드 수장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조용! 조용히!”

전보다 표정이 굳은 길드장이 소란스러워진 회의장을 조용히 시킨 뒤, 자신을 쳐다보는 록펠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새끼가 대체 뭘 안다고 저따위로 지껄이는지.’

“자넨 말이야. 그때도 느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친구로군.”

굳었던 표정은 잠시.

벤자민은 선한 인상을 억지로 드리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좀 이따 증언할 때 필요해. 그때까진 참아야지.’

“다 이해하네. 경험이 많이 부족하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하지만 말일세.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그런 배짱을 부렸다간 우리가 아작 날 수도 있지. 어디서 감히 방코 업자 따위가 그따위로 설치냐면서 아주 험한 꼴을 볼 수도 있다네.”

하지만 모두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록펠러의 말에 강하게 공감한 몇몇 길드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길드장에게 고성을 이어나갔다.

“맞는 말인데 왜 그래!”

“맞아! 전부 다 맞잖아! 우리가 얼마나 호구 같았으면 그쪽에서 그따위로 나오냐는 말이야!”

“이참에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녀석들인지 확실히 보여주자고!”

“옳소!”

다시 술렁이는 회의장.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반발하는 목소리는 길드장 입장에선 아주 듣기 싫은 소음이었다.

“조용! 조용히!”

다시금 회의장을 조용히 시킨 벤자민이 아직까지도 발언권을 쥐고 서 있던 록펠러를 찾았다.

‘아니, 이 길드에 계속 붙어 있을 생각이라면 나한테 말을 그따위로 하면 안 되지. 대체 무슨 생각이야. 설설 길 생각은 없는 건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자네가 보기엔 내가 이제까지 길드 운영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런 자리에서 그렇다고 말할 배짱 있는 길드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제법 제력이 있거나 아니면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운 몇몇 길드원을 제외하고선 감히 벤자민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는 달랐다.

‘그 자리에 당신은 전혀 안 어울려.’

“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길드가 취한 태도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변화.

그 한마디에 또다시 회의장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벤자민의 표정은 다시금 썩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록펠러의 말을 조용히 곱씹던 길드장이 내리깐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내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모양이군. 말을 그따위로 할 줄이야. 하하…….”

마지막엔 어처구니없는 웃음까지 흘리는 그에게 록펠러는 잠시 태도를 바꾸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1황자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기에 잠시 화가 나서 뻘소리를 해본 것뿐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이런 생각에 너무 휘둘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휘둘릴 게 있나? 어차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느 애송이가 지껄인 말인데.”

록펠러를 노려보는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확실히 거슬리고 맘에 안 드는 놈이야.’

금세공업자?

길드원?

‘어림도 없는 소리지. 영원히 이 업계에서 퇴출시켜 주마. 내가 가진 힘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으니.’

“자네에게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지. 사실 이번 회의는 다음 안건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자 반발하는 길드원이 있었다.

“아직 첫 번째 안건이 제대로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안건을 논하는 겁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결정할 내용인지라 제 재량껏 넘어가는 겁니다. 어차피 여러분들도 좋은 의견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찾아봐야죠! 아니면 앞서 저 청년이 말한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좋은 의견이 있었다면 당연히 수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회의 안건으로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혹시나 좋은 의견이 있을까 여러분에게 물어본 것이지, 결론적으론 제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벤자민이 이어 말했다.

“만약 좋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절 찾아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더 이상 첫 번째 안건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자 벤자민은 이후 안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안건입니다. 사실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 이번 길드 회의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소문이야 익히 들으셨을 겁니다. 저기 있는 저 청년이 감히 엉뚱한 생각을 했다지요.”

벤자민이 가리키는 곳엔 록펠러란 청년이 앉아 있었다.

“저기 저 청년은 사실 금세공업자도, 여기 길드원도 아닙니다. 그저 카터가 고용한 젊은 조수일 뿐이지요.”

록펠러가 베르키스 주교의 도움으로 금세공업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벤자민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그런데 다소 엉뚱한 발상을 해서 저희 생태계를 크게 교란시켰습니다.”

소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길드원들은 조용한 상태에서 벤자민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금화 보관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그것을 받지 않고 오히려 이자까지 주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피해를 본 업자들도 몇몇 있을 겁니다.”

당연히 자기 이야기였다.

길드원들도 대충 알고 있었으나 여기서 토를 달진 않았다.

“그래서 길드장인 제가 저자를 불러 긴히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벌였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었죠. 그랬더니 저 청년이 그러더군요. 당장 교회 재산에 눈이 멀어 그릇된 판단을 했었다고. 전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제게 이실직고했습니다.”

그러자 회의장 전체가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문의 조수가 길드장을 찾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희의장에 앉은 길드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정말 그랬다고?”

“허허……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다니.”

“해보니까 이상하다고 느꼈겠지. 이자를 주는 것보단 금화 보관료를 받는 게 맞으니까.”

록펠러와 계속 눈을 마주치던 벤자민이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한 소리 아니겠습니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고객들에게 이자 줄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저기 금세공업자도 아니고, 경험도 미숙한 조수가 대체 뭘 안다고 그런 짓을 저질렀겠습니까? 그냥 멋도 모르고 해본 것이겠죠. 그리고 후회를 했고요.”

알게 모르게 록펠러를 비웃는 벤자민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이 자리서. 저 청년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직접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이어 그가 강조하듯 검지까지 펼쳤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로 길드 강령을 발표해 금화 예치에 따른 이자 지급은 전면 금지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은 저희에게 득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서로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모자라 이제까지 잘만 해오던 금화 보관료 사업을 전면 철회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벤자민이 록펠러를 가리키자 모두의 이목이 록펠러에게 집중되었다.

“그럼 저 청년이 하는 말이나 들어보시죠.”

전체를 향한 말을 마치매, 벤자민은 록펠러가 혹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에게 이 말까지 전해주었다.

“지금이야 경험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우리와 잘 어울리려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깊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자네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 자리를 만들어줬으니, 편한 마음으로 속 시원히 말해보게. 자네가 그때 뭘 잘못했고, 어떤 잘못된 판단을 했었는지 전부 고하란 말이야.”

이후 발언권을 얻게 된 록펠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현재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카터 방코에서 몇 년째 조수로 일하고 있으며, 또 황실에서 인정받은 금세공업자입니다.”

그 말에 회의장이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금세공업자는 아니라면서?”

“그러게. 나도 금세공업자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냥 자격도 없는 조수 아니었어?”

“글쎄. 그게 아닌 모양인데?”

“그럼 그새 금세공업자가 됐다고?”

“말이 안 되잖아. 여기 있는 모두가 알다시피 금세공업자가 되려면 길드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니까.”

“길드장이 모를 리가…….”

길드장 말로는 금세공업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제 입으로 금세공업자라고 했으니 난리가 난 것이다.

소란스러운 회의장 안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건 벤자민도 마찬가지였다.

‘뭔 개소리야? 난 금세공업자로 만들어준 적이 없는데.’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금세공업자라니. 자넨 아직 자격도 없을 텐데?”

그 말에 록펠러가 술렁이는 회의장을 향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선 제국에서 유명한 두 방코 연합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결국 황실에서 직접 금세공업자를 선별하여 임명하기 귀찮아 두 대표에게 위임한 일에 불과합니다. 말인즉,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선 황실의 승인만 있어도 된다는 소립니다.”

또다시 술렁이는 회의장에서 벤자민이 록펠러를 향해 물었다.

“자네가 뭔데 길드장인 나까지 무시하고 황실의 승인을 받았다는 말인가?”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록펠러란 청년은 그저 보잘것없는 평민 집안 출신의 방코 조수였다.

그런 자가 황실과 무슨 연이 있어 방코 연합조차 무시하고 금세공업자가 됐는지 의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 순간 뜻하지 않게 끼어든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회의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제 차례만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날세. 내가 금세공업자로 만들어줬네.”

조용히 있던 베르키스 주교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자 회의장은 술렁임을 넘어 더욱더 소란스러워졌다.

“주교…… 각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주교 각하께서 저기 록펠러란 청년을 금세공업자로 만들어주셨다고요?”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벤자민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물었고, 이에 베르키스 주교는 감흥 없는 투로 대꾸해 주었다.

“이자 주는 일로 교회 재산을 불려주고 있는데 나야 못 할 거 없지 않겠나?”

분위기가 이상했다.

지금 이 자리는 방코의 고객에게 이자 주는 사업이 아주 잘못됐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주교의 태도가 아주 상반되니 모두에게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그게 무슨…….”

“누구는 요한 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교회 재산까지 품고 이를 불려주려고 하는데, 교인의 입장에서 나름 보답해 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나? 하여 황실에 직접 서신을 넣었네. 저기 저 청년과 그쪽 집안사람들을 전부 금세공업자로 만들어달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 벤자민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벤자민에게 아직도 불만이 남아있던 베르키스 주교는 자신의 힘과 지위를 이용해 벤자민을 더 골탕 먹이기로 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이것까지 해주는 게 좋겠군. 아까부터 조용히 지켜보니 저 청년을 같은 길드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꾸만 배척하려고 들던데. 그래, 여기서 내 힘이 어떤지 보고 싶군. 이 시간부로 저 청년을 여기 길드원으로 받아주게.”

베르키스 주교의 시선이 모두에게 향했다.

“이 말에 이의 있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말해보게. 신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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