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21. 길드 회의#(2)
길드 회의 전날.
록펠러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길드 회의 이야기를 듣고 리옹에서 찾아온 카터였다.
노쇠해 버린 몸에 맞춰 편히 마차를 타고 온 카터는 마차에서 내린 뒤, 록펠러가 묵고 있다던 리옹의 작은 저택 문을 두드렸다.
다음 날 길드 회의가 열리는 터라 당연히 카터가 찾아올 줄 알았던 록펠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맞물려 저택 밖으로 나가 카터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카터 아저씨 오셨군요.”
“잘 지냈느냐?”
“네, 여기 온 뒤로 별일 없었습니다.”
“회의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찾아왔다. 소식은 조슈아에게 다 들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안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들어간 저택 안.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곳은 길드장인 벤자민이 록펠러를 잠시 리옹에 머물게 할 요량으로 내준 곳이었다.
개인의 수발을 드는 하인까지 있어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은 그곳에서 수수한 저택 안을 둘러보던 카터가 입을 뗐다.
“네 집보다 못하구나. 벤자민 공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알았다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내줬을 텐데.”
“이 정도도 충분합니다. 카터 아저씨,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응접실로 카터를 데리고 간 록펠러는 카터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기 또한 옆자리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카터가 작은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자 문제로 길드 회의까지 열고. 길드장도 참 문제야. 뭐가 옳고 그른지는 직접 해보면 알 것인데 그것도 안 해보고. 쯧쯧쯧.”
“그것보단 금화 보관료를 받지 않는 게 아쉬운 거겠죠.”
“그래도 네가 어떤 사람인데. 그놈은 널 몰라. 아무것도 모르지.”
록펠러는 대화가 깊어지기에 앞서 집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하인을 심부름시켜 밖으로 내보냈다.
하인이 저택 밖으로 나가자 카터가 말을 붙였다.
“조심하는 게냐?”
“네, 저래 보여도 제 사람은 아니니까요.”
“하긴…… 여기가 길드장이 내준 곳이라 했지?”
“네, 잠시 머물다 가라고 내준 곳입니다.”
“그래, 그럼 조심하는 게 맞겠구나.”
저 혼자 고개를 주억이던 카터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어떤 계획인 게냐? 길드장 생각에 감히 반기를 들진 않을 테고.”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카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길드장 생각에 반기를 들겠다는 게냐?”
카터가 알고 있기론 내일 있을 길드 회의에서 록펠러가 취할 행동은 딱 하나였다.
길드장 생각에 맞춰 동조하는 것.
그리고 예금 이자를 받았던 자신의 잘못을 모두의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네, 이번에 열릴 길드 회의에서 길드장을 내쫓을 겁니다.”
“뭐? 내쫓는다고?”
놀란 카터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게…… 가능한 소리냐?”
길드장과 리옹 가문의 연관성, 그리고 더 나아가 베르키스 주교와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카터에겐 지금 록펠러의 말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아주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고 있었다.
“네, 수술 전에 보호자 동의 정도는 미리 받아놨습니다. 지금 길드장이 퇴출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옅게 웃으며 대답한 록펠러에게 카터가 아직도 의문을 드리우자 록펠러는 그간 있었던 일을 카터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다 듣고 난 카터가 반응을 보였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나.”
카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등받이에 허리를 기댄 채 제 턱수염만 매만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말이다. 길드 회의 소식 말고도 길드장에게 따로 받은 편지가 있었어.”
그렇게 운을 뗀 카터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록펠러에게 건네주었다.
“그 내용이 대충 뭐냐면. 네가 소문과 다르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조수였다고 이번에 열릴 길드 회의에서 나보고 증언해 달라고 하더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 길드에서 제명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 가소롭게도 말이다.”
카터가 건넨 편지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던 록펠러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건 내일 있을 회의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길드장이 이런 식으로 날 모함하려 했다고 말이야.’
“길드장이 이런 것까지 보냈군요.”
카터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야 의심할 것도 없이 네 편이지. 네가 있어 지금까지 내가 득을 본 게 얼만데. 그깟 길드 퇴출이 무서워 그놈 편을 들겠냐는 말이다.”
카터가 건넨 편지를 챙긴 록펠러가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카터 아저씨. 절 너무 믿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믿지. 네가 그 눈꼴신 영주도 때려잡았는데, 여기 길드장 하나 못 잡을 거란 생각은 전혀 안 드는구나. 다 준비된 계획이 있겠지.”
록펠러는 요즘 들어 가게 일에서 손을 뗀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조슈아에게 듣기론 가게에 전혀 안 나오신다고 들었는데.”
“나야 일손을 진작 놓았지. 일을 안 해도 너희 형제가 알아서 돈을 벌어다 주는데 굳이 나서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느냐?”
록펠러가 대답 없이 고개만 주억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이야. 느긋하게 즐기고 있지. 요즘엔 이것저것 자잘한 취미 생활 좀 붙이는 중이다. 솔직히 여기 회의에도 안 나오려고 했어. 이제 일도 안 하는데 뭐하러 오겠느냐? 그냥 집구석에 박혀 쉬는 게 낫지.”
“그래도 오셨네요.”
그 말에 카터가 록펠러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이 귀찮은 곳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다. 널 도와주기 위해서야. 그놈의 길드장이 나한테 그딴 편지를 보냈길래 여기 와서 한마디 해주려고 왔다. 어디서 감히 일 잘하는 내 금쪽같은 조수를 모함하려 드냐고! 내가 진짜 한마디 크게 해주려고 찾아왔어.”
“절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니지. 감사한 건 나지. 나야 여기 일만 잘 풀리면 평생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던 록펠러가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내일 있을 회의에서 아저씨께서 증언해 주는 내용도 꽤 중요할 거 같습니다. 제가 먼저 선빵을 칠 테니, 아저씨께서 그다음으로 도와주세요.”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찾아온 길이었다.
“그 일은 너무 걱정 말거라. 하늘이 뒤집혀도 나야 네 편이니까.”
* * *
길드 회의 당일.
리옹에 위치한 게토 누오보에 때아닌 마차 떼가 들끓기 시작했다.
값비싼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서부터 마석으로 움직이는 신기한 마차까지.
여러 마차들이 길드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 앞에 장사진을 이루며 어지럽게 모여들었다.
마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부 다 리옹 길드 속한 방코 업자들로 길드장 주최로 열린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이들이 대다수였다.
“자네 왔군.”
“오, 크리스. 정말 오랜만이야.”
“1년 만인가? 오! 저기 라센도 있군. 라센! 여기야 여기! 이쪽으로 오게!”
길드에 속한 방코 업자들끼리는 제법 친분이 있어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서로 모여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네 혹시 그 소문에 대해 들었나? 그…… 금화 보관료 말고, 오히려 이자를 준다는 이야기 말이야.”
“아, 들었지. 이 회의도 그것 때문에 열린 거라면서.”
한 명이 운을 떼자 근처에 있던 방코 업자들이 부리나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에 대해 참 말들이 많아. 누군 맞는 거 같다. 누군 틀린 거 같다. 진짜 말들이 많지.”
“크리스, 자네 생각은 어떤데?”
“나야 잘 모르지.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니겠나?”
“듣자 하니 벤자민 공이 그걸 금지할 생각이라던데.”
“그걸 금지한다고?”
“그래, 길드 강령으로 해서 금지한다고 들었네. 여기 있는 누가 그렇게 장사를 해버리면 나머지는 손해 보는 게 아니겠나? 사람들 입장에선 금화 보관료를 받는 방코보단 오히려 이자 준다는 방코가 나을 테니까.”
“그거야 당연한 소린데…….”
“그냥 기존처럼 금화 보관료를 계속 받는 게 맞아. 남의 장사는 방해하지 말아야지. 거기다 그런 소문이 쫙 퍼져봐. 그때가 되면 금화 보관료는 이제 못 받는 거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거라고.”
그러자 어느 방코 업자가 이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화만 많이 예치할 수 있다면 이자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던데. 죄다 금화 보관료가 아까워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방코에 맡기질 않으니. 오히려 이자 조금 떼주고 대출 사업을 더 키우면 그게 더 이익일 거 같던데.”
“그건 맞아. 어지간해서는 금화 보관료 때문에 우리한테 금화를 맡기진 않지. 뭔가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집안에 놔두는 게 불안한 녀석들만 방코에 맡기는 거니까.”
오랜만에 만난 길드 소속 방코업자들은 이번에 있을 회의 안건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댔다.
“대체 뭐가 맞는 건지.”
“그거야 이 회의에서 결정 나겠지. 우리 생각이야 어찌 됐든 길드 강령을 어길 순 없는 거니까.”
“그렇긴 하지. 길드에서 퇴출되면서까지 장사할 배짱을 가진 놈은 없으니까.”
그들의 대화 내용 중에는 록펠러에 대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처음 고안해 냈던 게 무슨 방코의 조수였다면서?”
“아, 나도 그 얘긴 들었네. 그쪽 조수가 아주 영특하다고 하나 봐. 들어보니 소문이 하나가 아니야. 영주를 빚쟁이로 만들어서 영지까지 죄다 먹었다고 하더군.”
“나도 소문은 얼핏 들었는데 거기가 대체 어디야? 어디 영지길래 그런 일이 있었어?”
“거기가 아마…… 몬, 몬 어쩌구인데.”
“아, 몬테펠트로 영지일 거야.”
“아 맞아. 거기야.”
제국 변방에 위치한 영지.
너무 외지인 지라 간혹 그 영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몬테펠트로? 거기가 대체 어딘데? 난생처음 듣는데.”
“변방 지역이네. 나라에서도 거의 버린 땅이지.”
“아! 어쩐지 처음 듣는다 했어.”
“드워프도 버리고 간 땅일세. 누가 건드려도 황실에선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야.”
“그래도 명색이 영지인데, 가지고만 있어도 세금이야 꼬박꼬박 들어올 테고. 굳이 버릴 필요까지 있나?”
“그건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런 땅 하나 놔둬서 신경 쓰이고 또 관리하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오히려 그런 영지는 황실 입장에선 적자라고 생각할걸?”
“하긴…… 무슨 토벌 좀 해달라, 여기 일 좀 도와달라 영주가 계속 요청하면 황실에서도 확실히 짜증 나겠군. 별 시답잖은 곳에서 계속 도와달라고 난리니.”
모두가 고개를 주억이는 가운데 한 명이 다른 곳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아무튼 그런 땅이라 영주를 잡아먹은 게 아니겠나? 멀쩡한 땅이었으면 황실에서도 분명 말이 나왔을 거야. 거기도 우리 방코 업자를 좋게 보진 않으니까.”
“그래도 교단만 하겠나? 우리야 항상 교단 눈치를 보지, 이따금씩 돈 좀 빌려달라고 찾아오는 황실 눈치까지 보진 않잖나?”
“그래도 황실 눈치는 보지. 명색이 이 땅의 주인인데.”
“그래도 교단만큼은 아니지. 황실도 교단엔 안 돼. 교황이 무슨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쩔쩔매는 게 황제인데.”
“하긴 죽어서 천국은 가야 하니.”
“아니지. 교단 말을 잘 따라야 나라 안이 평온한 거야. 괜히 교단에 밉보였다가 말들이 나와봐. 민심만 불안해지는 거지. 황제도 그걸 아니까 교황 말에 고분고분한 거야.”
“듣고 보니 자네 말도 맞는 것 같군. 어, 어!”
말을 마친 방코 업자가 갑작스레 놀라더니 검지로 누군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저기 저 사람이야. 내가 알기론 저기 오는 저 젊은 청년이 소문의 그 조수라고.”
“아! 저기 카터랑 같이 오는 걸 보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 조수 같아.”
“그럼 저기 오는 말끔하게 생긴 녀석이 소문의 그 조수라고?”
“그런 모양이야.”
“나쁘지 않게 생겼군.”
주변 모두가 자신을 향해 쑥덕거리고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록펠러는 카터와 함께 길드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도 들어가지.”
“그래, 소문의 조수도 왔는데. 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좀 들어봐야겠어.”
“어서 가자고. 가서 좋은 자리에 앉아야지.”
록펠러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회의장 문밖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방코 업자들 역시 회의장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