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82화 (82/181)

§82화 20. 길드 회의(2)

옅게 웃은 록펠러가 말했다.

“황실에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군요. 한 명도 아니고 한 집안 전체를 금세공업자로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 저라도 이상하게 여겼을 겁니다.”

“하하,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 그런 일에 굳이 내가 나서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래도 누구 부탁인데? 뭘 요청해도 황실에선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야.”

“그거야 당연하겠죠. 누구 부탁인데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어찌 됐든 결과야 좋게 나왔다.

이제야 한시름 놓게 된 록펠러가 지난 일주일 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말하기 위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저기 주교 각하. 아마 일주일 뒤면 벤자민 공의 주최로 길드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길드 회의?”

방코 업자들이 전부 모이는 길드 회의에 대해서 베르키스 주교가 모르진 않았다.

“갑자기 길드 회의까지 할 정도로 그쪽에 무슨 일이 있는 겐가?”

“주교 각하께선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겠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코 업자가 아니셔서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길드 회의라고 해봤자 별거 있겠는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를 향해 록펠러가 사뭇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 회의는 저희에게 꽤 중요한 회의입니다.”

“중요한 회의라고?”

“네, 거기서 새로운 강령을 정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무슨 강령?”

“바로 이자 지급 문제입니다. 금화 예치에 따른 이자 지급을 벤자민 공이 주체한 회의에서 전면 금지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베르키스 주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강령까지 만들어서 금지한다고?”

“네, 주교 각하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벤자민 공이 제가 벌이는 이자 사업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걸로 누가 수혜를 입고 있는 건데 그걸 자기 멋대로 금지한단 말인가?”

그가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치자 록펠러는 속에서 나름 흡족해했다.

‘저 반응이야 당연하겠지. 그 일로 가장 손해 볼 건 다름 아닌 교회일 테니까.’

“아무래도 벤자민 공께서는 교회 일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는 좀 다른 사람이죠.”

표정을 잔뜩 찌푸린 베르키스 주교가 물었다.

“그럼 자네가 벌이는 있는 이자 주는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당연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길드 강령까지 나온 마당에 저희같이 힘없는 변방의 방코 업자가 버틸 여력은 절대적으로 없습니다.”

“아니, 나와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 약속도 길드 강령이 내려지지 않았을 때 유효했던 겁니다. 제가 만약 주교 각하를 위해 그 일을 강제하게 된다면 아마 저희 방코는 길드에서 자동으로 퇴출됨은 물론, 저희 방코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낮아져 현재 벌이고 있는 모든 사업을 중단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와 약속까지 했는데. 자넨 나와의 약속을 이렇게 물릴 작정인가?”

도리어 자신에게 화를 내려는 베르키스 주교를 향해 록펠러는 차분한 어조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주교 각하. 장사가 전혀 안되는 방코인데, 주교 각하께서는 그런 곳에 교회 자금을 계속 묶어두고 싶진 않으시겠죠. 이건 신성시 여기는 교회 재산이기에 제가 먼저 걱정해 드리는 겁니다.”

“그건 안 되지. 그게 어떤 돈인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곳에서 맡긴 돈이라면 저도 욕심이 있으니 계속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교회의 재산이니 감히 그럴 순 없겠죠.”

“허허…….”

“주교 각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이건 제가 약속을 어겼다고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저도 어쩔 수 없게 된 겁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말했다.

“그럼 그 길드 강령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소린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

이걸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인지.

록펠러를 탓하기엔 그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길드에 속하지 않은 방코가 장사가 잘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베르키스 주교가 비난하는 대상은 다행스럽게도 옆에 있는 록펠러가 아닌 길드 강령까지 강행하려는 벤자민 길드장에게 향하게 됐다.

“내가 이제까지 그놈에게 해준 게 얼만데. 아무리 같은 가문 사람이라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까지 해서 막아야겠나?”

“이것은 온전히 제 생각이지만. 벤자민 공께선 그 일이 정말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생각하기엔 길드 강령만 막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걸 내가 나서서 막을 순 없겠나?”

“주교 각하께서 직접 말입니까?”

“자네도 못 막는 일인데 나라도 나서서 막아봐야지.”

그러자 록펠러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어주었다.

“주교 각하. 아무래도 그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리옹 길드에서 길드장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주교 각하의 힘 또한 대단하시지만, 길드장도 그런 주교 각하와 같은 가문 사람인데 길드장이 눈 하나 깜빡하겠습니까? 이건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할 게 뻔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누군데!”

“그리고 그렇게 가시면.”

록펠러가 속에서 쾌재를 내질렀다.

이는 지금까지 모든 대화가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갔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같은 가문 사람이라도 서로 얼굴을 붉히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진흙탕 싸움이 돼서 두 분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미간을 사정없이 구긴 베르키스 주교가 록펠러와 마주한 자리에서 너무 격분한 나머지 주먹 쥔 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거칠게 내려쳤다.

“내가 여태까지 그놈에게 해준 게 얼만데! 법황청에서 아무리 개지랄을 떨어도 그걸 다 막아준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그런데 그놈은 지 밥그릇만 챙기려고 나한테 이런단 말인가!”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은 모양인지 주먹 쥔 그의 손이 심히 떨리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 자리에 없는 벤자민 길드장을 노려보는 베르키스 주교가 말을 이었다.

“그런 놈이 대체 뭐가 좋아서 내가 이제까지 이러고 있었는지! 내칠 수 있을 때 빠르게 내쳤어야 했는데!”

은근슬쩍 베르키스 주교의 눈치를 보던 록펠러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저도 이곳에 머물며 참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리옹 길드가 이처럼 커왔던 것은 전부 주교 각하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시선을 주자 록펠러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벤자민 공은 그 은혜에 보답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 개 같은 놈이 아무리 같은 가문 사람이어도 그렇지!”

“주교 각하께서는 리옹 길드를 위해 변호까지 해주시고, 그러다 교단 눈 밖에 나서 대주교 자리까지 원치 않게 잃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나?”

“그냥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크흠!

헛기침을 한 베르키스 주교가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그게 아니고, 좀 복잡하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 그놈의 방코 업자가 내 가문 사람이라 변호 좀 해주려다가 사실상 그 꼴이 난 거지.”

록펠러가 그의 편을 들었다.

“그만큼 주교 각하께서 해준 게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도 벤자민 공이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 말은 하지 못하고 화만 삭이고 있는 베르키스 주교에게 록펠러가 은근슬쩍 제안을 해보았다.

“제가 볼 땐 주교 각하께서 굳이 그런 분과 계속 같이 가신다면. 결국 교황 성하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록펠러가 던진 말에 베르키스 주교가 강하게 반응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린가? 교황 성하라고?”

그의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판국이었지만.

록펠러는 나름 확신을 가지고 그를 꼬드기기 위해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네, 방금 했던 말 그대롭니다. 주교 각하께서 어디 부족하신 것도 없는데 교황 성하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습니까?”

너무 뜻밖의 말이었는지.

베르키스 주교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잠시간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크흠!

짧은 헛기침 뒤 베르키스 주교가 입을 열었다.

“교황 성하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하늘에서 정해준 사람만 감히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어.”

“하늘에서 정해주는 게 어딨습니까? 주변에서 밀어주면 그분께서 교황 성하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바로 하늘에서 정해준 사람입니다.”

오묘해진 베르키스 주교의 시선이 록펠러에게 향했다.

사뭇 진지한 록펠러의 얼굴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베르키스 주교가 다시 말했다.

“자네 같은 생각도 뭐…….”

하지만 이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베르키스 주교가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의 입장에선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야. 나는 힘들어. 당장 교단에서 맡은 직책도 낮은 데다가 또 교황 성하와 관계도 그렇게 좋지가 않네. 내가 그 자리까지 가려면 교황 성하의 안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러자 록펠러가 옅게 웃으며 운을 뗐다.

“세상일에 불가능은 또 어딨겠습니까? 안 되면 되게 만들면 되는 것이죠.”

“자네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럽네. 하지만 나이가 내 나이쯤 되고, 세상일에 어느 정도 초연하다 보면 자연스레 욕심 같은 것도 줄어들게 된다네.”

“하지만 주교 각하께서 이자 받는 일로 교회의 재산을 늘리려는 것 또한 어느 정도 욕심이 있어서 하시는 것 아닙니까?”

록펠러가 한 말은 베르키스 주교의 마음을 묘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거야…… 그런데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 순간 록펠러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참에 러닝메이트를 바꾸시죠.”

“러닝메이트?”

“네, 러닝메이트를 말입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의문을 표했다.

“무슨 러닝메이트를 말인가?”

“제가 하나 여쭙겠습니다. 주교 각하께서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 같은 게 없으십니까? 제가 볼 땐 주변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시면 교황 성하는 아니더라도 교단에서 좀 더 높은 직책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여쭙는 겁니다.”

지금 록펠러의 질문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느냐.

아니면 다른 꿈을 품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내가 자네를 내 러닝메이트로 만든다면 지금 처한 내 사정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보는가?”

이에 록펠러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어주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보단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저는 확실히 장담해 드릴 수 있습니다.”

“흠…….”

“같은 가문 사람이라고 해서 덕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대꾸하지 않는 베르키스 주교를 향해 록펠러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적어도 자신을 위한 사람도 아닌데. 주교 각하께서는 언제까지 피에 얽매여 있으실 겁니까? 이제 그 굴레를 벗어나셔서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어 하는 말은 록펠러가 이 자리서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던 말이었다.

“저는 충분히 주교 각하와 그곳까지 뛰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처럼 같은 가문 사람도 내팽개치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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