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81화 (81/181)

§81화 19. 리옹 길드(9)

“대부분 길드원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군요.”

“왜? 길드장에 관심이라도 있나?”

록펠러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아직 금세공업자도 아닙니다.”

“하긴. 자넨 아직 금세공업자도 아니었지. 그래그래, 내가 잠시 뻘 생각을 했어.”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록펠러는 진심으로 길드장이 될 생각이 있었다.

영주의 자리야 쉽게 내줄 순 있었지만 길드장의 자리는 달랐던 것이다.

‘나름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거야. 내가 길드장이 된 순간, 길드에 속한 모든 방코가 지금보다 좀 더 진화된 형태로 발전하게 될 테니까.’

바로 은행이란 것으로.

“듣고 보니 길드장이란 건 길드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선출되는 것 같습니다.”

가게 주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지. 애당초 리옹 길드의 취지가 힘없는 방코 업자끼리 서로 힘을 합치자는 의미였으니까. 자네는 잘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한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방코 업자들은 여기 게토 누오보에서 거의 갇혀 지냈네. 그 당시엔 사람 취급도 못 받았었지.”

왜냐?

고리대금업을 하여 지옥에 갈 사람들이니 모두가 천대하며 핍박했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그런 인식이 조금 누그러든 것도 전부 다 주교 각하의 도움 때문이었다네. 사실 교회에서도 돈이란 게 필요했거든. 그런데 그 돈을 방코 업자들이 가지고 있으니 교회에서 호의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겠지. 웃긴 얘기겠지만 여기 주교 각하는 좀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이걸 필요로 하고 있다네.”

“돈을 말입니까?”

“그렇지. 교회도 다 돈이 있어야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걸세. 교회 내부의 정치 싸움도 알고 보면 전부 황금의 전쟁이거든.”

“황금의 전쟁이라…….”

“교황 성하께서도 요한 님의 뜻을 널리 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계시니, 보다 많은 성금을 내는 교구를 특별히 아끼시게 되지. 그 교구가 신앙심이 두텁다는 의미도 되니까. 어찌 됐든 성금을 많이 내는 교구를 교황 성하께서 아끼시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네. 그리고 그 교구의 주인을 교황 성하께서 특별히 챙겨주시기도 하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우연히 나눈 대화에서 록펠러는 나름 베르키스 주교를 꾀어낼 방도를 찾게 됐다.

‘예전에 여기 주교가 대주교라고 했었어. 그런데 지금은 주교지. 그 말인즉.’

록펠러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교황 성하와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아니면 이쪽 교구의 성금이 예전보다 작다는 소리가 되겠군.’

“그런데 예전엔 여기에 대주교 각하께서 계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왜 주교 각하가 계시는 겁니까?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소설 속에서도 나와 있지 않은 어느 도시의 이야기.

록펠러가 묻자 가게 주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돈이 문제겠지 뭐겠나? 사람이란 게 말이야. 하나를 주다 두 개를 주면 좋아라 하지만, 반대로 두 개를 주다 하나를 주면 엄청 싫어하거든. 리옹이 딱 그 꼴이라네.”

“자세히 듣고 싶군요.”

록펠러의 말에 가게 주인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리옹이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돈이 생기게 되니까 베르키스 사제장께서, 아, 그 당시엔 주교 각하가 아니라 사제장이셨네. 아무튼 그 당시 베르키스 사제장께서 욕심이 생기셨던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법황청에 성금만 많이 가져다주면 교황 성하나 법황청에서 많이 신경을 써줬거든. 그래서 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법황청에다 여기 성금을 많이 전달해 주었지.”

“그땐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서 아주 잘 나가셨나 보군요.”

“그랬었지. 한때는 교황 성하도 직접 찾아오고 또 대주교 각하 소리도 들었으니까.”

“그럼 언제부터 잘못된 겁니까?”

“잘못됐다기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너무 무리를 하셨던 거야. 분수에 맞지도 않은 성금을 계속 법황청으로 가져다 바치니, 이게 돈이 하늘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아까 하신 말씀대로 된 겁니까?”

“그렇게 된 거지. 처음엔 좋아라 하던 법황청에서도 여기 성금이 계속 줄어들게 되니 나름 불만이 생긴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어떤 곳보다 많은 성금을 내고 있는데.”

“그렇군요.”

“사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 성금에 불만이 생기니 법황청에선 여기 신앙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거야.”

“웃긴 얘기군요. 따지고 보면 그것도 적잖은 돈일 텐데.”

“그걸 어르고 달래기 위해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보려고 여기 벤자민 공에게 부탁을 했네만, 앞서 말했듯이 처음부터 무리였던지라 실패하고 말았지.”

이쯤에서 록펠러가 넘겨짚어 물어보았다.

“혹시…… 그 당시 두 분의 사이가 조금 틀어지지 않았습니까? 베르키스 주교 각하와 벤자민 공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그래도 같은 가문 사람인지라 각자의 사정 정도는 알고 있었지.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서도 무리다 싶었는지 결국 포기하고 말았네.”

“그렇군요. 그럼 그 결과가…….”

“뻔하지. 법황청에선 베르키스 주교 각하에게 대주교 자리까지 내줬다가 성금이 작아지자 여기가 방코 업자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베르키스 주교 각하의 위치를 한 단계 격하시켰지. 애석하게도 방코 업자들 때문에 대주교 자리까지 갔다가 그게 발목을 잡아 다시 주교 자리로 내려오신 거야.”

“세상일이라는 게 참.”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서 딱히 못 하신 건 없었는데, 그때 욕심을 너무 부리지만 않으셨더라도.”

“차근차근 올라가셨다면 결과가 더 좋아질 수도 있었겠군요.”

“근데 이건 내가 잘 모르는 거지만, 그 당시 베르키스 주교 각하와 교황 성하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긴 했었어. 교단 일이야 내가 자세히 모르는 거라 확실한 건 아니네만.”

록펠러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런 얘기도 있었습니까?”

“아무튼 이런저런 일로 지금의 주교 각하가 되신 거지. 다 돈이 문제야.”

대충 이야기가 끝나자 록펠러가 대화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대충 여기 방코 업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겠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록펠러가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혹시라도 말입니다.”

“뭘 말인가?”

“아까 하던 길드장 이야기인데. 만약 벤자민 공보다 더 좋은 후보가 나온다면 그 사람을 뽑으실 의향이 있으신 겁니까?”

“뭐…… 하지만 벤자민 공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겠나? 그야 리옹 가문 출신이고.”

가게 주인이 옅게 웃어 보였다.

“또 베르키스 주교 각하와도 각별한 사이니 벤자민 공보다 더 좋은 길드장은 현실적으로 없네. 나야 불만은 있어도 참고 있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

“만약에 말입니다.”

“당연히 뽑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네.”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궁금했던 건 다 물어봤나?”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중에 또 뵐 일이 있으면 좋겠군요.”

“나도 소문의 조수를 보게 돼서 반가운 마음뿐이라네. 언제든 놀러 오게나. 자네라면 환영이니까.”

대화를 마무리한 록펠러가 가게에서 떠나가자 가게 주인이 떠나가는 록펠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느낀 록펠러란 청년은 소문의 조수라는 것 외엔 잘 빼입은 어린 신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야심에 찬 청년으로 보였다.

‘여기 길드장에 관심이 있는 건가? 계속 물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 조수에 불과하니 내가 너무 넘겨짚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금화세공과 고리대금이 주요업무인 방코 업자들 사이에선 마치 혜성같이 등장한 존재.

변방의 영주라지만, 토끼 주제에 감히 호랑이를 잡아먹고 또 길드장만 독식하던 교회 재산을 가로채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니 대출 사업만 잘되면 교회에 이자 주는 사업도 나쁘진 않겠어. 어찌 됐든 이득이니까.’

결과만 봐도 무조건 저 청년의 승리였다.

하지만 여기 길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닌데, 지금 저 청년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 그리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길드장 입장에서 대놓고 자기 밥그릇을 빼앗겼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절대 가만히 안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가게 주인은 오히려 록펠러란 청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벤자민 공이 보통 사람이어야지. 성격은 또 불같아서 절대 곱게는 안 놔둘 거야. 어떤 식으로든 괴롭히겠지.’

당장 드는 생각은 길드에서 퇴출.

그리고 저 청년이 금세공업자가 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어쩌면 금세공업자가 되는 것도 힘들겠군. 길드장 밥그릇까지 가로챈 녀석을 길드장이 좋아라 하면서 금세공업자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이름도 모르는 가게 주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록펠러는 다른 가게로 찾아가 그곳 주인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몇몇 방코를 들러 여러 주인들과 이야기를 한 록펠러가 게토 누오보라 불리는 방코 거리 위에 섰다.

‘대충 느낌은 알겠어.’

여러 방코 업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록펠러도 나름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여기 사람들도 길드장에 대한 불만이 알게 모르게 많은 상태야. 길드장의 성격적인 부분이나 행실, 그리고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특히나 불만들이 많지. 하지만 불만이 많아도 뭐라 못 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그는 리옹 가문 출신이니까.’

저 혼자 고개를 주억이는 록펠러가 자리를 뜨며 생각했다.

‘일단 금세공업자가 되는 게 우선이겠지.’

지금 록펠러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바로 금세공업자가 되느냐 마느냐였다.

‘그게 선행되어야만 다음 단계도 나아갈 수 있는 거야.’

금세공업자가 될 가능성?

‘황실도 교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으니 금세공업자가 되는 일이야 그리 어렵진 않겠지.’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것보단 길드 회의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발언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 어차피 나에 대해 모르는 방코 업자는 없을 거고, 또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자라면.’

길드장의 가능성?

‘또 모르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