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80화 (80/181)

§80화 19. 리옹 길드(8)

“그렇군요.”

록펠러와 마주한 가게 주인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여기 업자들도 의견이 분분해. 고객이 금화를 맡겼으면 당연히 금화 보관료를 받아 수익을 챙겨야 하는데, 거기서 이자를 왜 내주냐고 성을 내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자기들도 한번 시도해 볼까 하는 사람들도 있네.”

만약 어느 방코 업자라도 이자 주는 일을 시도해 본다면 방코에 쌓이는 금화에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그럴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금화 보관료나 받아먹는 방코보단 이자를 주는 방코를 더 선호하게 되니, 그런 방코에만 금화가 쌓이는 것이다.

거기다 이제까지 금화 보관료가 아까워 제 나름대로 금화를 보관했던 이들까지 전부 방코에 금화를 맡기게 되니, 금화야 당연히 쌓이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방코 업자들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군요.”

“그보다 자네는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내가 볼 땐 그냥 우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네가…….”

영주까지 잡아먹은 범상치 않은 방코 조수였다.

동물로 따지자면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먹은 꼴이나 마찬가지.

머잖아 금세공업자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일단 조수밖에 안 되는 사람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은 그의 눈엔 아주 대단해 보였다.

“이쪽 일에 천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네. 어디든 천재는 존재하니까.”

“하하, 천재까진 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방코 조수일 뿐입니다.”

천재는 무슨.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서 써먹었을 뿐인데.

록펠러에겐 시답잖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그 일로 여기 길드장이 아주 노발대발 난리도 아니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길드 본부가 바로 옆에 있잖나?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지. 듣다가 내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봤지만 길드장께서 성격 좀 있으시더군요.”

“그 일로 베르키스 주교 각하가 맡겨 놓은 금화가 전부 빠져나갔으니 길드장 입장에선 펄펄 날뛰는 거야 다 이해되는 일이지. 나라도 화가 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지 돈인가? 맡긴 금화야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인데.”

그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길드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좀 쌤통이었지. 지금까지 교회 자금은 같은 가문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놈 혼자 독식하고 있는 게 왠지 눈꼴시었거든.”

“저도 이해합니다. 그럼 기존에 있던 교회 자금들은 전부 리옹 방코에서 관리했던 겁니까?”

“정확히는 벤자민 혼자 다 해 처먹었었지. 교회 자금이면 얼마야. 거기서 매달 꼬박꼬박 금화 보관료나 뜯어먹었으니 이것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나? 교회에서도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적잖으니 같은 가문 사람에게 금화를 맡겼던 주교 각하께서도 은근히 불만이셨을 거야.”

“다 피 같은 돈인데 당연하죠.”

“그래서 여기 방코 업자들도 은근히 불만이었어. 그 많은 교회 자금을 그놈 혼자 다 해 처먹고 있었으니까.”

“저라도 불만이 있을 거 같습니다. 본디 욕심이 많으면 배탈이 나는 법이죠.”

“하여 그 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갔다고 했을 땐 솔직히 십 년 묵은 체증이 쫙 내려가는 느낌이었네. 시원했지.”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록펠러가 우연히 만난 가게 주인 역시 일반적인 사람이 갖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이번에 무언가를 물어보는 이는 록펠러가 아닌 마주한 가게 주인이었다.

“그런 식으로 이자를 주고도 남는 게 있나? 그만큼 대출 장사가 잘되는 건가?”

그 물음에 록펠러는 우선 미소부터 지었다.

“대출 이자와 예금 이자의 차이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그 당시엔 교회에 잘 보이기 위해 3%의 높은 이자를 제의했던 것이고, 일반적으로 1% 이자만 내줘도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전부 금화를 맡기기 위해 난리일 겁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수많은 방코 업자들 중에서 그 누가 금화 보관료를 안 받을 생각을 했겠나? 나름 혁신적인 생각이었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고.”

가게 주인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록펠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곳과 달리 저희 영지엔 방코는 오직 하나뿐이고, 또 간접적으로 영주님 지위를 이어받아 대출 사업은 늘 순항 중에 있습니다.”

“대출은 누구에게 해주고 있나?”

“대출해 주는 대상은 저희 영지민과 근처 영지에 위치한 귀족들까지, 그들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금화를 대출해 준 상태입니다.”

록펠러가 할 말이 많은지 잠시 숨을 고르다 나머지 말도 이어주었다.

“또 최근엔 저희 쪽에 큰 자연재해가 발생해 너 나 할 거 없이 금화 대출에 목말라 있는 상태입니다. 저희 역시 그들이 빚에 깔려 죽지 않을 만큼 돈을 빌려주면서 은근히 수익을 늘려나가고 있죠.”

“그래, 최근에 아주 난리였지. 지진이 하도 일어나서 지형이 바뀌었다면서?”

“네, 안 좋은 일이었지만 영주님과 영지민들의 대처가 좋아 인명피해는 최대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허허…… 아무튼 듣고 보니 자네 사업은 잘 진행되는 것 같군.”

“더군다나 교회 자금까지 예치시켜 알게 모르게 교회의 비호까지 받고 있으니, 나날로 그 사업이 번창하는 중입니다.”

막상 소문의 당사자와 만나게 되니.

그 소문에 반신반의했던 가게 주인 역시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 부러우이.”

“부러우시면 저처럼 한번 시도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록펠러가 은근슬쩍 자신이 하는 방식을 권하자 이름조차 모르는 가게 주인은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록펠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길드장의 존재였다.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네. 그쪽에선 몰라도 여기선 길드장의 눈치를 필연적으로 봐야 하거든. 몇몇 업자가 자네처럼 하려다 길드장 눈 밖에 나서 아주 크게 곤욕을 치렀었네. 길드장이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을 하는 게 맞냐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자네가 그걸 봤어야 하는데.”

록펠러가 지금까지 쭉 대화하며 느낀 것은 길드장이 생각보다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여기 길드장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으시겠습니다.”

“불만이야 당연히 많지. 그 일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록펠러가 의문을 드러냈다.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드는 길드장인데, 여기 방코 업자들이나 길드원들은 그런 길드장을 내쫓을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겁니까?”

“길드장을 내쫓는다고? 허…….”

쉬운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그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놈의 길드장 좀 내쫓고 싶네. 고집도 더럽게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는 데다가 잘 되는 사업은 죄다 지 혼자 해 처먹으니 여기 방코 업자들도 불만이 많지. 하지만 불만이 많아도 어쩔 수가 없어. 내쫓을 수가 없는 거지.”

록펠러는 대충 감이야 잡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가 리옹 가문 출신이잖나?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리옹 가문엔 베르키스 주교 각하가 계시네. 우리가 그놈 눈치를 보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교회 눈치는 봐야 하네. 지옥에나 떨어져야 하는 우리 방코 업자들이 이렇게나 편히 장사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교회에서 알게 모르게 눈감아 주기 때문이야. 그게 아니었으면 절대 장사를 할 수 없네.”

리옹 길드에 속한 길드원들의 불만이 은근히 많으면서도 여태까지 별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전부 이곳에 있는 교회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랜 예전부터 리옹 가문이 여기 방코 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이곳이 제국 상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됐네. 사실 리옹이란 도시는 예전부터 그리 대단한 도시는 아니었어. 하지만 여러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당장 뭘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나? 그 돈을 생각보다 쉽게 빌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니, 어쩌다 보니 이곳이 상업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된 거지.”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리옹 가문에선 그런 방코 업자와 교회 사람이 같이 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 것이지. 방코 업자야 돈을 벌고 교회 사람이야 알게 모르게 돈이 필요하니, 교회에서 방코 업자가 하는 일을 은근슬쩍 눈감아주면서 서로 커가게 된 것이지.”

그가 반문했다.

“그렇게 리옹이 커왔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길드장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감히 리옹 가문에 반기를 들 수 있겠나? 리옹 가문이야말로 이 도시의 실질적인 주인인데.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록펠러는 대답 대신 고개만 주억였다.

“그건 그렇고. 성금도 많이 내시겠군요.”

“성금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성금을 내지 않으면 장사 자체를 못 해요. 그건 당연한 소리라네.”

성금도 따지고 보면 원치 않은 지출과 마찬가지였다.

방코 업자들이 성금을 의무적으로 내지 않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하는 것처럼 여기 방코 업자들도 교회 자금을 품고 그걸 이자 형식으로 불려준다면 교회에서도 무작정 성금만 원하진 않을 거야. 그런 식으로 되면 교회에서도 자기들 재산을 불려주는 방코 업자들을 마냥 홀대하진 못할 테니까.’

록펠러가 이어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방코 업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은근히 의지하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성금이란 게 강압적인 형식에서 조금은 벗어날 순 있을 거야.’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충 대화가 됐다고 생각한 록펠러가 이번 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선 길드장에 관한 거였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길드장의 위치가 생각보다 확고부동하겠군. 가장 큰 문제는 그자가 이곳의 실세인 리옹 가문이라는 거야.’

그렇다고 방도가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이자 문제로 주교 각하와 관계도 소원해졌고, 반대로 나와의 관계는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승부수는 띄워볼 만해. 일단 주교 각하가 날 지지해 준다면 벤자민 길드장이 그 자리를 계속 차지하진 못할 거야. 길드원들도 리옹 가문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교회의 눈치를 계속 봤던 거니까.’

“이건 별개의 질문인데. 제가 알기론 길드장 선출은 길드 회의를 통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록펠러가 카터에게 들었던 내용을 언급하자 가게 주인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줬다.

“그렇긴 하지. 그게 길드 초창기 때부터 쭉 내려오던 오랜 전통이었으니까. 그 당시 리옹 가문의 힘이 세기도 했고, 또 교회의 지원도 받을 수 있어서 방코 업자들이 한데 모여 투표로 리옹 길드장을 선출했었네. 그리고 그 전통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고.”

“몇 년마다 한 번씩 선출하는 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딱히 정해진 건 없네. 그냥 길드원의 뜻이 모아지면 자연스레 길드장을 선출하는 형태니까. 그걸 떠나서 애당초 리옹 가문 출신만 길드장이 될 수 있는데 그 누가 길드장 투표에 관심을 갖겠나?”

“지금까지 리옹 가문 출신 말고 길드장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까?”

“하하, 단 한 명도 없었네. 나도 그게 의문이군. 과연 그런 사람이 나오기나 할까? 아마 힘들겠지.”

그가 생각하기엔 그런 일은 힘들 것으로 보였다.

왜냐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리옹의 주교 역시 대대로 리옹 가문에서 맡아왔던 만큼,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방코 업자들이 리옹 가문 출신 외에 다른 가문 출신을 길드장으로 앉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