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79화 (79/181)

§79화 19. 리옹 길드(7)

“감사하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일단 회의 개최까진 편히 쉬게. 때가 되면 부를 테니.”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한 듯 록펠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제가 리옹까지 온 이유는 길드에 가입하여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지. 자넨 아직 금세공업자도 아니었지?”

벤자민 길드장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록펠러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미소는 아니었다.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선 황실에서 내주는 특별허가증이 필요하지만, 그 특별허가증을 받기 위해선 리옹 길드라든지 아니면 블랙라벨 유니온에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우선 두 방코 연합 중 어느 곳이라도 속해 있어야 특별허가증이 나올 거야. 황실에서 자체적으로 심사를 하진 않으니까.”

벤자민이 이어 말했다.

“금세공업자가 무슨 대수라고 황실에서 직접 지시를 내리겠나? 안 그래도 지옥 간다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길드에 가입 좀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벤자민이 은근슬쩍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흠…… 그 정도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네만. 내가 볼 땐 자넨 아직 경험이 좀 미숙한 거 같은데?”

“금화세공은 자신 있습니다.”

“금화세공에는 자신이 있다라…… 일단은 기다려 보게. 회의 결과에 따라선 자넬 금세공업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록펠러의 귀엔 회의 때만 써먹고 버리겠단 소리로 들리고 있었다.

‘뻔히 보인다 이 녀석아.’

금세공업자.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도 결국 두 연합의 대표 중 하나가 승인해야만 될 수 있었다.

“자네가 내 지인이거나, 아니면 길드원의 자식이거나 했으면 곧바로 됐을 텐데. 그거 좀 아쉽게 됐군.”

말하는 벤자민의 머릿속엔 온통 록펠러에 대한 반감뿐이었다.

‘저런 녀석은 싹수부터 별로야. 이번 일이 잘 넘어가도 나중에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초반부터 그 싹을 짓밟아버려야 돼.’

금세공업자?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네놈은 이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거다.’

“아무튼 그 일에 대해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선 길드 회의에 집중해 주게. 금세공업자야 내가 책임지고 만들어줄 테니까.”

그 말이 거짓인 줄 알고 있는 록펠러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 벤자민 공만 믿고 길드 회의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보겠습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머물게 되면 심심할 테니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게. 자네가 있던 몬테펠트로 영지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아주 큰 곳이니, 머무는 동안 그리 심심하진 않을 걸세.”

“말씀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록펠러는 곧바로 길드 본부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 내려오자 노신사가 곧바로 말을 붙여왔다.

“벤자민 공과 대화는 어찌 됐나?”

록펠러는 벤자민 길드장과 합의 본 내용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록펠러의 이야기를 듣고 노신사도 나름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렇군. 벤자민 공이 지시한 대로 따르는 게 자네 신상에 좋을 걸세. 그분께선 리옹 길드의 수장이시자 위대한 리옹 가문의 일원이기도 하네. 촌뜨기인 자네가 겁 없이 붙어서 이길 사람은 절대 아니야.”

이후 길드 본부를 완전히 빠져나온 록펠러는 가게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리옹 방코라는 가게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리옹 길드라…….’

잠시 뒤 록펠러는 시선을 돌려 좁은 골목길을 훑어보았다.

게토 누오보 거리엔 정말 수많은 방코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나름 움직여야겠지.’

길드 회의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주.

길드장까지 목표하고 있는 록펠러가 가만히 보낼 시간이 아니었다.

우선 록펠러는 게토 누오보에서 장사하고 있는 다른 방코 업자들의 견해에 대해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자신이 했던 이자 사업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부분 긍정하고 있다면 길드 회의에서 내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지.’

록펠러는 근처에 있던 방코 하나를 찾아갔다.

“어서 오십쇼, 손님.”

평민치고는 아주 잘 빼입은 록펠러를 작은 귀족 정도로 오해한 어느 방코 업자가 살가운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찾아간 방코는 몇 평 남짓의 작은 가게였고, 가게 주인은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금화를 맡기거나 아니면 금화를 빌려 가기 위해 오셨습니까?”

“그게 아니라 뭐 좀 물어보려고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됐습니다.”

가게 주인은 강한 의문을 표했다.

“느닷없이 찾아와 뭘 물어보시려고.”

“혹시. 몬테펠트로 영지에 있는 작은 방코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카터 방코라고 하는데…….”

“카터 방코요?”

록펠러야 큰 기대를 안 하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아, 카터 방코라면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요즘 방코 업자들 사이에서 말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나 그 일로 완전 난리도 아니었죠.”

그가 입에서 침을 튀길 정도로 관심을 보이자 록펠러가 다시 물었다.

“어떤 일로 말입니까?”

“글쎄 그쪽 방코 업자가, 아니, 정확히는 그쪽에서 일하는 젊은 조수 하나가 일 하나를 주도해서 그쪽에 있는 영주를 잡아먹었다고 하지 뭡니까?”

“잡아먹었다고요?”

“네, 영주를 완전 빚쟁이로 만들어서 아예 자기 밑으로 쑤셔 넣었다고 하더군요.”

표현이 아주 적나라한 것이 록펠러 입장에선 듣기가 좋았다.

“쑤셔 넣었다라……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어디까지 알긴요. 딱 그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같이 힘없는 방코 업자가 감히 영주를 잡아먹을 수 있다니. 저는 처음 들었을 땐 그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쪽 이야기가 벌써 여기까지 퍼진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일개 방코 업자가 영주 하나를 잡아먹었다는데, 그 소문이 돌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거지요.”

이제까지 방코 업자는 힘없는 피지배자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그런 방코 업자 중 하나가 느닷없이 영주를 잡아먹었다고 하니, 그에 대한 소문이 안 퍼지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글쎄 새파랗게 어린 조수 녀석이, 그것도 갓 성년이 됐다는 놈이 겁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인 겁니다.”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말을 이어가던 가게 주인은 왠지 자신이 들었던 그 조수에 대한 소문과 지금 자기 앞에 찾아온 청년의 모습이 많이 겹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오신 겁니까?”

정체를 묻는 말에 록펠러는 잠시 고민했었다.

‘말해야 하나?’

2주 뒤 길드 회의가 개최된다면 자신의 정체야 곧바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자리서 밝힐 이유도 없으니 일단 방코 업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자신의 객관적인 평가부터 듣고자 했다.

“그냥 지나가는 행인입니다. 말씀하신 소문에 관심이 있어 우연히 이 가게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시군요. 생각보다 그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변방에 위치한 영지라지만 일개 방코 업자가 그쪽 영주를 잡아먹었으니 그 일이 궁금한 사람들은 여기로 찾아와 묻곤 합니다. 어찌 됐든 방코 업자 이야기고, 그런 이야기야 저희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니까요.”

그가 이어 말했다.

“이쪽도 나름 좁거든요. 몇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람들이죠. 뭐 다 같은 길드원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록펠러는 그에게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니요?”

“그 조수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해서 여쭙는 겁니다.”

“뭐 저야 대단하다고밖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죠.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쪽 방코야 이제 노났죠. 더 이상 눈치 볼 곳도 없으니, 갑자기 들이닥치는 도적 떼 정도가 아니라면 큰 문제야 있겠습니까? 저희 같은 업자들이야 그저 부러울 따름이죠.”

“그렇군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방코 업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또 그 일이 있었군요.”

“무슨 일 말입니까?”

“최근은 아니고 꽤 된 일인데…… 거기에 대해서도 말들이 참 많습니다.”

록펠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눈치를 챘지만, 일단 모르는 척 연기하기로 했다.

“그게 뭡니까?”

“음…… 이건 저희 쪽 내부 이야기인지라.”

“제게 말해주실 수 없는 겁니까?”

금화를 맡긴 이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이야기.

꽤나 민감한 것이라 여겼는지 방코 업자가 말을 아끼려 했다.

“이건 조금 민감한 이야기인지라 여기서 말하기가 좀 그렇군요. 저희 가게나 다른 가게 영업에 나름 지장을 줄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사안인지라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게 뭔지는 여기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저희 방코 업자들 생각도 반반입니다. 그게 맞다 틀리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죠.”

아무래도 이자 지급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록펠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그 일에 대해 주인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하,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제게 묻는 겁니까?”

그가 웃으며 되묻자 록펠러는 선한 미소로 받아쳐 주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자야 뭐……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냥 미친 짓이라고 하면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막상 결과는 또 좋아서요.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한 입장입니다.”

“그게 다입니까?”

이쯤 되자 가게 주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왜 그렇게 집요하게 묻는 겁니까? 누가 보내기라도 했습니까? 차림새를 보아하니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가 의심을 하자 록펠러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길드 회의에서 보게 된다면 자신의 정체야 드러날 게 뻔했으니까.

“제가 그쪽 조수입니다.”

“네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말씀하신 소문의 조수가 바로 접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네가 그…….”

검지까지 겨누며 놀란 그를 향해 록펠러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변방 영지에 있는 녀석이 여기까진 왜?”

“리옹엔 금세공업자가 되는 일로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길드장과는 이미 만났고, 제가 벌이고 있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기존 방코 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들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어…… 어, 그렇군. 자네가 그쪽 조수였어. 그 영주를 잡아먹었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횡설수설을 하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록펠러를 대우해 주기 시작했다.

소문의 조수에게 그도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우선 여기로 앉게. 차가 필요한가?”

길드장과 만났을 때는 차는커녕 첫 대면에서 삿대질이나 받았었다.

그런데 여기선 나름 대접을 받게 됐으니 록펠러도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아니야, 그럼 내가 미안하지. 홍차가 괜찮겠나? 아니면 허브티도 있어. 둘 다 맛은 괜찮아. 이 가게에선 최상급만 쓰거든.”

“그럼 허브티로 하겠습니다.”

잠시 후 허브티를 가져온 가게 주인은 록펠러와 편히 마주 안았다.

“자네가 그 소문의 조수였군.”

록펠러의 정체를 알게 된 가게 주인의 시선이 180도로 바뀌었다.

“네, 어쩌다 보니 리옹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길드장께선 저에 대한 불만이 많으시더군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격하게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럴 거야. 자네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일단 자신에게 호의적인 가게 주인을 너무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제가 벌인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쪽이나 아니면 다른 업자들도 여기 길드장과 같은 생각인지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나야 솔직히 반반이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모르겠거든. 거기다 영주까지 잡아먹은 전례가 있지 않았나? 그래서 더 모르겠어.”

록펠러가 저 혼자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영주를 잡아먹은 소문이 여기선 꽤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양이군. 하긴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당연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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