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76화 (76/181)

§76화 19. 리옹 길드(4)

그 말에 벤자민은 코웃음부터 쳤다.

그의 딴에선 이해가 전혀 안 됐던 것이다.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자네가 뭔데?”

자격증을 가진 방코 업자도 아니며, 그런 방코 업자 밑에 속해 있는 어린 애송이 조수에 대한 불신과 못미더움.

그리고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 것에 대한 분노.

그러한 것들이 한데 뭉쳐 록펠러에 대한 강한 비호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러니 록펠러가 무슨 말을 하던 그의 귀엔 들리지 않을 수밖에.

“내가 한마디 해주지. 자넨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굉장히 언짢은 발언이었으나 록펠러는 여전히 내색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저 이상하게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새파란 애송이일 뿐이지. 이 바닥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어쩔 텐가?”

록펠러는 다소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제가 한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이자를 챙겨주는 게 나중에 더 큰 돈놀이를 할 수 있게 되는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벤자민은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였다.

“자네, 방금 내가 한 말을 귓구멍으로 못 들었나? 자넨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금 자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지난 일들은 그저 우연일 뿐이었어.”

“…….”

눈가를 살며시 좁힌 록펠러가 생각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을 거라고.

“그럼…… 원하시는 게 뭡니까?”

벤자민 길드장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원하는 거? 간단하네. 지금 자네가 벌이고 있는 사업. 그 금화를 예치시키면 그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지급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를 당장 그만두게.”

벤자민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그게 카터 생각인 줄로만 알았어. 그래서 카터에게 편지를 보냈었지. 그랬더니 이런 답장이 오더군.”

벤자민은 책상 서랍에서 예전에 카터와 주고받았던 서신을 꺼내 책상 위로 거칠게 내려놓았다.

“알고 보니 카터의 생각이 아니라 어느 겁 없는 애송이가 주제도 모르고 설친 거였어. 감히 내가 이 자리에 떡하니 지키고 있는데! 아무리 교회 재산이 탐나도 그렇지. 그렇다고 이자를 미끼로 그런 짓을 벌이면 쓰나? 그건 너무 몰상식한 행동이었어.”

벤자민이 대놓고 고개를 저었다.

록펠러와 그가 벌인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곳 리옹에서 가장 크게 대부업을 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리옹 길드에 속한 모든 방코 업자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네. 그런 내가 감히 말하건대.”

벤자민은 또다시 검지를 세워 록펠러를 겨눴다.

“자네 생각은 완전히 틀렸네. 틀려도 너무 틀렸어. 그런 식으로는 절대 돈을 벌지 못하네. 오히려 시장의 혼란만 부추길 뿐이야. 세상에 금화 보관료 대신 이자를 지급하다니. 이런 정신 나간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게 된 건지 모르겠군.”

록펠러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저렇게나 앞뒤 꽉꽉 막힌 자가 저런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니.

‘리옹 길드장이면 제국의 금화를 좌지우지하는 두 개의 세력 수장 중 하나일 텐데. 저렇게나 융통성 없고 앞뒤 꽉꽉 막힌 자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니.’

록펠러가 생각하기를.

이곳의 금융 수준이 이토록 미개한 것은 저렇게나 수준 낮은 길드장이 어울리지도 않은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군.’

어떻게 저런 자가 저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까?

‘출신의 힘이겠지. 다른 곳도 아니고 리옹 가문 출신이니까.’

“제가 만약 그 사업을 물리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록펠러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물리지 않겠다고? 호, 배짱도 좋군. 그렇게 되면 아주 간단하네. 자네 카터 방코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네. 쉽게 말해서 퇴출이지.”

리옹 길드로부터 퇴출당한다는 것은 카터 방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소리와 같았다.

하여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 중에 하나였다.

‘저게 싫다면 블랙라벨 유니온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블랙라벨 유니온 대표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그쪽 대표도 앞뒤가 꽉꽉 막힌 리옹 길드장과 같은 생각일 수도 있었다.

금화를 맡긴 고객에게 소정의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현 시점의 방코 업자들에겐 다소 특이한 발상이었으니까.

‘그쪽도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데, 그쪽으로 찾아가는 건 내가 볼 땐 좀 아닌 것 같고.’

또한 록펠러는 리옹 길드장에게 잘 보여 황실에서 내주는 특별허가증이 필요한 상태였다.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선 말이다.

‘골치 아파졌군.’

“퇴출이라…… 그렇군요.”

리옹 길드장은 확신하는 투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으로 알고 있네. 세상에 어떤 방코 업자가 길드에 속하지 않고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겠나? 물론 길드에 속하지 않고 장사를 계속할 순 있겠지. 대신 변방에 위치한 별 볼 일 없는 방코로 영원히 남게 될 걸세. 길드에서 퇴출당한 방코를 사람들이 신뢰하진 않을 테니까.”

록펠러가 생각했다.

‘둘 중에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야.’

확실한 것은.

주어진 답안지가 없었기에 이 자리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여기서 길드장 뜻대로 하자니 베르키스 주교의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벤자민 공께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여기서 바로 답변을 드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여 제게 생각할 시간을 좀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에 벤자민은 또다시 코웃음을 쳤다.

“지금 뭐라고 했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한 소린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는 것인데, 여기서 시간을 달라니.”

기가 찼지만 그의 입장에선 현재 록펠러가 벌이고 있는 사업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일로 인해 교회 자금이 빠져나가 그에 대한 금화 보관료를 받지 못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최대한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이거 안 될 사람이군. 이리도 꽉꽉 막힌 사람일 줄이야. 내가 사람을 아주 잘못 본 모양이야.”

록펠러가 바로 말을 붙였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곧바로 돌아와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왠지 베르키스 주교와 대화를 원하는 듯싶었다.

“지금 그 말은 베르키스 주교 각하와 얘기라도 해보려는 건가?”

“맞습니다. 그냥 물리기엔 주교 각하의 눈치가 보여서 그렇습니다. 저도 제 마음대로 그 사업을 물리고 싶은데, 교회라는 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잖습니까? 일단 가서 주교 각하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설득이 안 된다면? 내가 볼 땐 전혀 안 될 거 같은데. 그 양반, 생각보다 앞뒤가 꽉꽉 막혀 있어서 설득이 쉽지 않아.”

누가 누구보고 하는 소린지.

“일단 대화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쇼.”

애당초 생각할 시간조차 안 주려고 했건만.

저리 말하니 벤자민도 나름의 인내심을 짜내어보기로 했다.

“좋네. 지금부터 딱 3시간을 주지. 만약 이 시간 안에 답변을 주지 않으면 그땐 자네 방코는 더 이상 리옹 길드에 속할 수 없네. 명심하게. 길드에 속하지 않은 방코는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는다는 것을. 그러니 서둘러야 할 것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길드 본부 밖으로 나온 록펠러는 눈가를 가느다랗게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야 대충 벌었는데…….’

이대로 베르키스 주교를 찾아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이후 교회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록펠러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베르키스 주교도 그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금화 보관료를 주는 것보단 이자를 받는 게 훨씬 좋을 테니까. 결국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해.’

여기서 하나를 택한다는 것은 자신이 버린 나머지와의 관계가 심히 훼손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둘 중에 어느 것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거야. 어쩌면 둘 중에 한 곳과 전쟁을 벌일지도 모르겠군.’

어찌 됐든.

록펠러는 베르키스 주교를 다시 찾아가 앞서 나눴던 대화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했다.

빠르게 돌아간 리옹 대성당에서 록펠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베르키스 주교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주교와 단둘이 독대하는 자리에서.

록펠러가 운을 뗐다.

“처음 만났을 때 주교 각하께서 걱정하셨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벤자민과 만나고 온 겐가?”

“네, 리옹 길드장과 만나고 온 길입니다.”

“흠…… 자네가 어떤 말을 할지 대충 알겠군.”

금화를 맡기면 이자를 받는 일이 혹시 사기가 아니냐며 가장 많이 호들갑을 떨었던 인물이 바로 벤자민 길드장이었다.

“같은 식구라지만, 돈을 너무 밝혀. 밝혀도 적당히 밝혀야지.”

베르키스 주교가 말을 이었다.

“아니, 같은 가문 사람이 잘되면 당연히 좋은 것인데. 그놈은 교회 재산이 줄어드는 걸 은근히 원하는 눈치야. 나야 교인으로서 당연히 교회 재산을 지키려는데, 놈은 어떻게든 뺏어가려고 하니 사이가 좋을 수 있나?”

“저 역시 마음 같아서는 교회 재산을 제 것처럼 지키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벤자민이 자네 같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아니야. 그놈은 오직 돈밖에 몰라. 어떻게 해서든 교회 재산을 지 방코에 앉혀 놓고 금화 보관료나 뜯을 생각이나 하고 있지. 내가 진짜 같은 가문 사람만 아니었어도 그놈을 지옥에나 보내 버릴 텐데.”

베르키스 주교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나는 말이야. 그놈이 싫어. 아무리 같은 가문 사람이라도 그렇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록펠러는 맞장구 대신 선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그놈이 뭐라고 지껄였나? 뭐 뻔하겠지만 한번 들어보지.”

“제게 교회에 이자 주는 사업을 당장 철회하라고 하더군요.”

“뭐라? 그놈이 그렇게 말했다고?”

이쯤 되자 록펠러는 어느 편에 설지 대강 느낌이 왔다.

‘어쨌든 내가 가야 할 길은 투쟁의 연속이겠지.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거야. 기존에 있는 수많은 기득권층을 눌러야 할 테니까.’

“네,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하여 제 나름대로 고민 중입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언성을 높였다.

“무슨 고민! 자넨 교회 재산을 품으면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저보고 그 사업을 철회하지 않으면 리옹 길드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더군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 리옹 길드의 후광이 필요한 입장인지라 그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허허!”

베르키스 주교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라도 교회 편에 서서 교회의 재산을 지켜야지! 그깟 길드장이 한 말이 무서워 나와 교회에 밉보일 생각인가?”

“하지만 그쪽에서 너무 세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리옹 길드에서의 퇴출은 사실상 방코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최후통첩과 비슷한 겁니다.”

“어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대도! 그 누가 뭐라 해도 교회 재산은 무조건 자네가 지켜야 하네. 이건 신께서 자네에게 주신 하명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오직 자네만 그 생각을 하고 교회에 제안하지 않았나? 신의 힘으로 교회의 재산을 불려주겠다고 말이야.”

베르키스 주교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죽어서 천국 가려면 무조건 교회 재산은 자네가 품고 있어야 하네. 그깟 방코 길드장이 뭐라 해도 듣질 말았어야지. 그런 것에 자네가 일일이 휘둘리면 쓰겠나?”

록펠러가 앞서 생각했던 대로 베르키스 주교 또한 양보가 없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잘 알고 있었기에 록펠러는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래, 정했다. 이쪽에 붙는 걸로.’

“그럼 교회 재산은 제가 품을 테니, 주교 각하께서 저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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