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75화 (75/181)

§75화 19. 리옹 길드(3)

이건 소설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하여 록펠러는 그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설마 내가 이자를 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나?’

금화를 맡긴 사람에게 이자를 주는 개념은 이곳엔 아직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

‘한번 물어봐야겠어.’

“혹시…… 제가 이자를 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생각한 것을 물어보자 베르키스 주교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야 좋은 일이지만, 같은 가문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게 여기더군. 방코 업자가 금화 보관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이자를 주다니. 이게 무슨 사기 같은 게 아니냐면서 내게 찾아와 쓸데없이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조금 불안하긴 했네만,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굴러왔는데 무슨 사기겠나?”

베르키스 주교가 되물었다.

“자네가 한번 대답해 보게. 그게 사기인가?”

록펠러는 부정의 의미로 고개부터 저었다.

“사기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저희 방코가 교회 재산을 품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신에 대한 봉사입니다. 전부 다 교회와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 잘 보이기 위해 한 일인데, 그 일을 그렇게 매도하시면 제가 대단히 섭섭합니다.”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데 말이야. 여기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는 모양이야. 그것도 같은 가문 사람인데도 말이야.”

대화가 이리되니 록펠러도 머릿속이 다소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하던 그림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록펠러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리옹 가문에 속한 베르키스 주교와의 인맥을 통해 리옹 길드장과 안면을 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벌인 일로 인해 리옹 길드장이 자신을 다소 껄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은 리옹 길드장과 만나봐야겠지.’

“그럼 제가 리옹 길드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잘 해보겠습니다.”

베르키스 주교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자네가 가서 말을 잘 해보게. 내가 거기서 금화를 뺀 일 때문에 요즘 들어 사이가 소원해졌거든. 자네라면 그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베르키스 주교와 만남을 가진 록펠러는 그의 소개로 리옹 길드장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게 됐다.

특별상업지구인 리옹에서 가장 많은 방코들이 몰려 있는 거리.

게토 누오보(Ghetto Nuovo)라는 곳에서 록펠러는 다소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는 방코들을 보게 됐다.

제국 변방 지역에 위치한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방코는 단 한 군데에 불과했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리옹에선 그런 방코가 하나도 아닌 정말 수십 개가 한 군데 모여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4평도 안 되는 작은 가게 안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게토 누오보인가?’

게토 누오보에 대해선 소설 속에서 짧게 소개 된 바가 있었다.

사실 이곳은 신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일반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상업의 발달로 급전이 필요해진 사람들이 이곳에 자주 찾아오게 됐고, 그런 일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이곳은 자연스레 방코 업자들이 즐비한 방코 거리가 될 수 있었다.

‘여길 오게 되다니. 벌써부터 돈 냄새가 진동하는데?’

리옹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

게토 누오보에서 록펠러는 베르키스 주교가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게토 누오보 지역에 있던 리옹 길드 본부를 찾아가게 됐다.

‘여긴가?’

리옹 길드 본부라 하여 아주 대단한 건물이라 생각했건만.

생각과 다르게 찾아간 곳은 2층으로 된 작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건물 간판엔 리옹 방코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리옹 방코가 길드 본부로도 쓰이는 거 같은데?’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허름한 건물과 다르게 안쪽은 고급스럽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확실히 안쪽은 다르네. 뭔가 다 고급스러워 보여.’

록펠러가 안내자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멋스럽게 빼입은 노신사가 다가와 인자한 미소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교 각하께선 잘 계시지요?”

안내자가 나서서 노신사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하자, 노신사는 전과 달라진 시선으로 록펠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절대 곱지 않은 시선이었고, 경계의 눈초리 또한 있었다.

“자네가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온 사람인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걸 보니 거기 조수인 모양이군. 소문이야 많이 들었네.”

처음 맞아주었던 것과는 다르게 툭 쏘아붙이는 말투였다.

“네, 제가 카터 아저씨 밑에서 일하고 있는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대답하는 록펠러에게 눈가를 좁힌 노신사가 턱짓으로 이끌었다.

“따라오게. 안 그래도 자네를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니.”

그렇게 노신사의 안내를 받은 록펠러는 건물 2층까지 올라가게 됐다.

건물 2층은 방코 사무실로 보였는데, 그곳엔 중년의 귀족 하나가 책상을 두고 앉아 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귀족이 찾아온 손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누군가?”

그 물음에 노신사가 깍듯이 예를 갖추며 답해주었다.

“벤자민 공, 이자는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찾아온 방코 업자입니다. 저희가 아는 사람이 아닌 걸 보니 소문의 그 조수인 듯싶습니다.”

벤자민은 손바닥으로 책상부터 쳤다.

그러곤 검지로 록펠러에게 겨누었다.

“오호라! 네가 그 소문의 조수였구나. 그래, 네가 문제였어.”

뭔가 기분이 나빠지는 불쾌한 행동들이 계속 이어졌으나 록펠러는 내색하지 않고 우선 인사부터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찾아온 록펠러 로스메디치라 합니다. 편하게 록펠러라 불러주십쇼.”

인사하기가 무섭게 같이 있던 노신사가 주의를 주었다.

“저분은 이곳 리옹 가문의 일원이시자 리옹 길드의 수장이시며, 또한 자작의 지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평민답게 예를 갖추도록.”

록펠러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짧게 수그리자 노신사가 한발자국 물러나 조용히 섰다.

이와 맞물려 록펠러를 향해 삿대질을 이어가던 길드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야 모르고 있겠지만, 난 자네가 그렇게나 보고 싶었어. 어떤 상판때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했거든.”

불편한 분위기가 계속 지속됐으나 록펠러는 그에게 얻을 게 있었기에 함부로 나서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 록펠러를 노려보던 벤자민이 이내 씩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그래! 아주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 금화를 맡긴 자에게 이자를 지급한다니!”

벤자민 길드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신사를 손짓으로 내려 보냈다.

그리곤 록펠러와 단 둘이 자리한 자리에서 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솔직히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는 카터가 반쯤 미친 줄 알았네.”

록펠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이놈이 하도 변방에 처박혀 있다가 뇌가 썩어버렸나, 아니면 이제와 천국이라도 가려고 교인의 XX녕을 오지게 빨기로 했나. 대체 어떻게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을 하게 됐는지 참으로 이해가 안 됐거든. 아니, 금화 보관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세상에 이자를 지급해 준다고? 이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잖나? 자네가 한 번 답해보게.”

“네, 생각하신 것처럼 그게 상식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래, 상식적인 일은 아니야. 절대 아니지.”

록펠러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는지 벤자민의 표정은 심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아주 웃긴 일이 생기고 말았어. 지금까지 금화 보관료를 줘가면서 내게 금화를 맡겼던 베르키스 주교가, 아니, 같은 가문 사람도 내버리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찾아가 금화를 맡긴다지 뭐야?”

말을 마친 벤자민이 록펠러를 지그시 노려보았음에도 록펠러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런 록펠러의 대담함에 벤자민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이해는 해. 거기다 맡기면 이자를 주니까. 나야 이해를 못 하고 있지만, 어찌 됐건 금화를 맡긴 입장에서는 금화 보관료를 내는 것보단 이자를 받는 게 당연히 낫겠지.”

록펠러를 노려보는 시선에선 나름의 증오가 느껴졌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누가 피해를 본 줄 알고 있나?”

록펠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해주었다.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겠군. 자네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바람에 여기서 장사하는 내가 피해를 보게 됐어. 어떤 X도 모르는 놈이 이상하게 머리를 굴리는 바람에 이제까지 금화보관료를 따박따박 잘 받아오던 누가 여기서 손해를 보고 있다 이 말이야!”

말을 마친 벤자민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좋아. 나는 자네가 무슨 생각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잘 알지 못하네. 어쩌면 그게 실수일 수도 있겠지.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해왔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이어지는 말에는 나름의 가시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게 실수든 뭐든, 누군가 그 일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꽤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제야 벤자민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아랫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나?”

이제 발언권은 록펠러에게 넘어갔다.

그에게 대답을 하기 전 잠시 생각해 보던 록펠러는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걸 알게 됐다.

‘본의 아니게 주교와의 인연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 길드장과의 관계를 새롭게 써 내려갈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이 찾아왔군.’

만약 여기서 길드장의 편을 들어 기존에 해왔던 이자를 주는 사업을 철회하게 된다면 베르키스 주교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은 자명해 보였다.

여기 있는 길드장만큼이나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꽉 막혀 있는 곳이 바로 교단이란 곳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자 주는 사업을 철회하게 되면 베르키스 주교는 아마 내 신앙심을 물고 늘어질 거야. 안 봐도 뻔하지.’

두 선택 모두 너무 극단적이라 록펠러는 설득을 위해 일단 그를 회유해 보기로 했다.

“지금부턴 제가 답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우선 대답에 앞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묻고 싶은 게 있다고?”

“네.”

“말해보게.”

“벤자민 공께선 제가 했던 사업에 대해 부정적이신 겁니까?”

“부정적이냐고?”

벤자민 길드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 같은 걸 흘리고 말았다.

“자넨 금화 보관료를 받아야 할 일에 도리어 이자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지만 대출 이자와 예금 이자를 비교해 봤을 땐 그렇게 손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예금 이자를 미끼로 많은 자금을 모으게 되면, 그것으로 더 큰 대출 사업을 벌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록펠러와 같은 생각을 갖는 건 아니었다.

벤자민은 그 말에 대놓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우린 장사치야. 장사치라면 당연히 돈을 더 버는 쪽으로 생각을 해야지. 여기 일에 누가 따로 법을 정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 길드의 수장일세. 내 사업적인 관점에선 자네 생각은 절대 납득될 수 없는 일이야. 거기선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방코에 대한 신뢰를 높여 금화 보관료를 더 받아야 하네.”

“…….”

생각이 이리 다를 수 있다니.

하지만 록펠러는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여기 금융 수준이야 갓난아기 수준.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여기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는 해. 여기 사람들이야 아직 금융에 대해 무지하니까.’

“하지만 저처럼 하는 게 오히려 더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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