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19. 리옹 길드(2)
대화를 마친 오버시어가 떠나가자 록펠러는 곧장 조슈아를 찾아가 무언가를 불쑥 던졌다.
“조슈아.”
록펠러가 던진 것을 가까스로 받아낸 조슈아가 의문을 표했다.
“이게 뭐야?”
“금광석. 일 좀 서둘러야겠다.”
조슈아가 시선을 내려 받아낸 금광석을 살펴봤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금이 박혀 있었다.
“이게 금광석이라고? 드워프들이 광산 가서 채굴하는 그 금광석 말하는 거지?”
“맞아. 정확히는 합금석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은하고 섞인 금은광일수도 있고. 아무튼 금이 포함된 광석이야.”
자세히 보니 광석 틈에 반짝이는 게 보이고 있었다.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야? 록펠러 형이 직접 캐왔을 리는 없잖아?”
“내가 그걸 어디서 캐왔겠어? 오버시어가 가져온 거야. 정확히는 마을 아이들이 물줄기 근처에서 놀다가 우연히 주운 걸 가져왔다고 하더라.”
조슈아가 의문을 표했다.
“그게 가능해? 이건…… 금광석이잖아? 이게 왜 물줄기 근처에 있었던 거야?”
“요 며칠 사이에 지진으로 꽤 시끄러웠잖아? 그때 흘러나왔겠지.”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아이들이 놀다가 주웠을 정도면 점차 이 근방에서 금광석이 발견되는 횟수가 증가하게 될 거야. 그럼 사람들은 의문을 표하겠지. 여기가 예전에 아즈락 골드마인이었으니까 이곳에 다시 금맥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되겠지.”
자연스레 엄지손톱을 깨문 조슈아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거 큰일이네. 여기서 금맥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그땐 안 좋게 되는 거 아니야? 그 사실은 아직까지 우리만 알고 있던 거잖아?”
“더 이상 그렇게 되긴 힘들 거야.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나름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배고픈 들짐승마냥 이 땅에 눈독을 들이겠지.”
“여기 영주는? 영주도 그때 되면 다른 말을 할까? 여기가 원래 자기 땅이었다고 하면서.”
“아니, 여기 영주는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록펠러는 나름 확신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앤드류와 스텔라가 정략결혼도 한 마당에 반쯤 포기한 듯싶으니까. 그리고 이 땅의 권리는 당연히 우리가 가지고 있고. 설사 욕심이 생겨도 승산이 없으니 쉽게 포기하겠지.”
“하지만 아직 이 땅에 대한 권리는 황실에서 인정해 준 게 아니잖아?”
“인정받는 거야 쉽지. 가서 돈만 꽂아주면 되는 일인데.”
“하기야.”
“그게 귀찮아서 여기 영주와 합의를 본 거고. 설령 그게 문제가 돼도 영주는 이 땅의 권리를 내세우진 못해. 이미 교인들 앞에서 약속했으니까.”
“그럼…… 누가 문제라는 거야?”
록펠러가 사뭇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황제 폐하나 인근 지역에 위치한 영주들이지. 이 땅이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니까 그들도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억지로 내세우면서 냅다 덤벼들 게 뻔해. 뭐라도 얻어먹겠다는 심보겠지.”
“하…….”
작게 한숨 쉰 조슈아가 말했다.
“하지만 여긴 우리 땅이잖아? 권리야 당연히 우리한테 있으니까.”
“그건 맞아. 하지만 이 땅의 권리를 확실히 내세우려면 우리가 그만한 자격을 빨리 갖추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어중간한 녀석들은 다 떨쳐 버릴 테니까.”
그 자격이란 게 뭘까?
조슈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우리가 귀족 가문 정도는 되어야겠네. 적어도 여러 귀족 가문에 영향력을 끼치는…….”
“당연히 그래야 되겠지. 그러니까 빨리 서둘러야 돼. 우린, 아직 집안 이름으로 된 방코조차 없잖아?”
“그래서 록펠러 형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우리 집안 이름으로 된 방코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리옹으로 가려고.”
금세공업자가 되는 일에 대해선 조슈아도 카터에게 들은 게 있었다.
“리옹에 가서, 레오가 아니라 리옹 길드장을 만나려는 거지?”
“리옹에 간 김에 레오도 볼 거야. 하지만 진짜 목적은 리옹 길드장과 만나는 거지. 그렇게 해야만 가장 무난하게 금세공업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단순히 금화세공만 익혔다고 해서 금세공업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금세공업자도 나름 파벌이라는 게 있었다.
제국에선 크게 두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하나는 리옹에 위치한 리옹 길드였고, 또 다른 곳은 항구도시 블랙라벨에 위치한 블랙라벨 유니온이란 것이었다.
이 두 개의 파벌 중 하나에 속해야만 금세공업자가 될 수 있었는데, 만약 두 파벌에 속하지 않는다면 황실에선 그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아 금세공업자가 될 수 없었다.
“황실에서 금세공업자를 직접 선별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니 두 파벌 중 무조건 하나랑 친분이 있어야 하지.”
이에 대해선 조슈아도 잘 알고 있었다.
카터에게 심심하면 들었던 내용이었으니까.
“금세공업자가 되려면 금화세공보다 리옹 길드나 블랙라벨 유니온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카터 아저씨한테 많이 들었었어.”
말하는 도중 무언가가 생각난 조슈아가 우려를 표했다.
“그보다 그 얘기 들었어? 카터 아저씨가 말해줬는데, 거기 리옹 길드장이 꽤 깐깐하다고 하던데. 자기 입맛에 맞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쪽 사람이 되기 힘들다고 들었어.”
록펠러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것 때문에 금세공업자가 되는 걸 계속 미뤄왔으니까.
“일단은 만나봐야겠지. 내일 떠날 테니 이곳은 잠시 너한테 맡겨놓을 게.”
조슈아도 록펠러만큼이나 일은 잘 하고 있었다.
“알겠어. 이쪽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까.”
“지진 피해로 인해 여기 사람들이 대출하러 올 거야. 그때 얘기했던 것처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지. 이자는 낮게, 대신 신용은 확실하게 살필 것.”
“확실히 잘 알고 있네.”
“그리고 나가는 돈은 무조건 여기 차용증서로 대신할 것.”
이게 가장 중요했다.
록펠러는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가장 중요해. 어떤 일이든 금화 대신 차용증서를 내줘. 그래야 우리한테 유리한 거야.”
‘진짜 돈’은 지키되, ‘가짜 돈(차용증서)’을 빌려주어 이자를 챙긴다.
그게 록펠러가 차용증서를 고집하는 이유였다.
그럼 없는 돈으로 장사한 꼴이 되니, 방코 입장에선 대출 이자가 1%든, 3%든 무조건 이득인 셈이었고, 또한 차용증서는 무한으로 발행될 수 있으니 방코에서 가진 금화 이상으로 대출이 가능했다.
‘은행이 가진 기적의 논리지.’
“알고 있지?”
조슈아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히 알고 있지. 그래야 우리한테 이득이잖아.”
“그리고 요새 쪽 보수도 미리 해둬. 나중에 보수하게 되면 돈이 더 크게 들어가니까.”
미래 일을 알고 있는 록펠러는 드워프가 어느 시점에서 쳐들어올지 알고 있었다.
“내부의 적도 중요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내부의 적보단 외부의 적이니까.”
“그건 드워프 때문인 거지?”
“맞아. 본래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드워프였거든.”
“알겠어. 그럼 요새 쪽에 드는 수리비도 차용증서로 대신할게.”
그런 조슈아에게 록펠러는 환히 웃어 보였다.
“그래, 너무 어렵지 않으니까 너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 * *
리옹으로 바삐 떠난 록펠러는 길잡이와 함께 며칠 뒤 제국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도시 중 하나인 리옹에 도착하게 됐다.
리옹은 제국 변방에 위치한 몬테펠트로 영지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대도시였고,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리옹에 도착하게 된 록펠러는 가장 먼저 대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먼 타지에 나가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동생 레오와 피터 사제장을 통해 알게 된 베르키스 주교가 있는 곳이라 그러했다.
‘리옹 길드장을 만나기 이전에 베르키스 주교 각하부터 만나는 게 순서겠지.’
리옹 길드장 역시 리옹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베르키스 주교 또한 리옹 가문의 사람.
그런 이유로 록펠러가 리옹 길드장을 만나보기 이전에 베르키스 주교와의 만남을 꾀했던 것이다.
도착한 리옹 대성당.
철갑을 두른 듯, 건물 전체가 금속으로 뒤덮여 있었고, 또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은 첨탑이 꽤나 인상적인 곳이었다.
규모로만 본다면 몬테펠트로 영지에 있는 작은 교회 건물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정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예전엔 여기서 대주교도 나왔다고 했었나?’
현재는 주교.
교단 내에서 리옹의 입지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교단 내부의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그것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안내원을 대동한 록펠러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자신의 동생인 레오부터 찾았다.
레오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레오는 사제로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애가 아닌, 어엿한 사제가 된 레오를 보자마자 록펠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레오야!”
“록펠러 형님!”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기색으로 록펠러를 부둥켜안은 레오가 소식도 없이 찾아온 록펠러에게 의문을 표했다.
“록펠러 형님께서 리옹까진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무슨 일이긴. 우리 레오를 보러 왔지. 설마 교인이 됐다고 벌써부터 우리가 남남이 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요한 님 품에 들어갔어도 항상 저는 로스메디치 집안의 사람입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어서 보기 좋구나.”
그렇게 레오와 만나게 된 록펠러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마치고 곧바로 베르키스 주교와 만남을 청했다.
원체 좋은 관계였다 보니 베르키스 주교가 찾아온 록펠러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만남은 곧 성사되었다.
잠시 후 베르키스 주교와 단둘이 독대하게 된 록펠러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불쑥 찾아오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난 오히려 기뻤다네.”
“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슬슬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보다 어쩐 일로 찾아왔는가? 설마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베르키스 주교가 약간 걱정하는 기색으로 물어오자 록펠러는 단번에 고개부터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이 아니라 이곳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볼일이라고? 무슨 볼일인데?”
“그게 리옹 길드에 가입하고자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습니다.”
“리옹 길드?”
“네, 여기 계신 리옹 길드장과 한번 만나보려 합니다.”
록펠러의 생각과 다르게 베르키스 주교의 표정이 막상 좋지는 않았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자네가 여기 벤자민과 만나러 왔다고? 흠…….”
“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번엔 록펠러가 걱정스레 물어보자 베르키스 주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하는 말과 다르게 뭔가 있는 모양.
“실례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는지 제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별건 아니고. 자네와 있었던 일 때문에 여기 길드랑 사이가 좀 안 좋게 됐어.”
그 말에 록펠러가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집안일이야. 자네가 몰라도 되는 부분이라네.”
“그래도 집안사람이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래 봤자 남보다 가까울 뿐이니까.”
아리송한 말에 록펠러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