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71화 (71/181)

§71화 18. 그대여, 빚에 먹히리 #3(4)

그게 문제였다.

록펠러가 쓸데없이 영주의 빚을 갚아주면서, 또한 영주 딸과 자신의 동생이 결혼하기를 원하는 이유가.

“그러니 저희가 이 땅을 담보 형식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국 법이 그러하니 저희가 쉽게 권리를 내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교인들 앞에서 이야기는 끝난 거 아닌가요?”

“그건 맞습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들어간다면 저희가 그 땅의 권리를 내세울 순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죠.”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저희가 이 땅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선 갑작스레 폐하를 찾아가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폐하나 다른 귀족들이 이를 좋게 여길까요? 방코에 진 빚 때문에 그 일이 생겼는데.”

방코에 진 빚 때문에 땅을 빼앗긴다?

이걸 다른 영주들이나 황제가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반발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하여 록펠러가 그 복잡한 과정이 싫어 이 일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확실히…… 좋아하진 않겠네요. 다른 영주들이야 이 일을 경계할 테고, 또 폐하께서는 굳이 귀찮게 다른 주인을 여기 앉히는 게 싫으실 테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을 담보로 잡은 저희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거야…… 신께서 지켜보셨으니까.”

“네 맞습니다. 이미 교인 앞에서 담보 서약을 맺었으니 영주님께서도 이 땅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제 말은 이 땅이 참 애매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누구 하나 이 땅의 권리를 제대로 내세울 수 없게 됐다는 소리죠.”

그 누구 하나 권리를 내세울 수 없는 땅.

사실 죽은 땅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물론 저희가 여러 수고를 거치면, 예를 들어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황실에 자금을 대준다거나 아니면 발언권이 강한 고위 관료나 반발하는 귀족들이야 돈으로 매수하게 되면, 여기 문제야 어차피 저희도 명분이란 게 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만.”

결국 모든 건 돈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돈이 문제인지라, 그렇게 하는 건 제가 볼 땐 좀 아닌 것 같고.”

대화가 이쯤 되자 스텔라도 록펠러가 바라는 게 진정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록펠러는 몬테펠트로 영지를 제 땅으로 만들면서 생기는 여러 번거로운 과정을 영주와의 합의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대가로 영주에겐 빚 청산을.

그리고 이에 대한 약속과 담보로 자신을 로스메디치 집안과 혼인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 록펠러가 바라는 것으로 보였다.

“하여, 저희들끼리 나름 합의하여 이 땅의 실질적인 권리는 저희가 가지되, 폐하께는 아직 보고하지 않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이런 구두계약이 다소 불안하니 그에 대한 약속으로 당신을 저희 집안의 식구로 맞아들이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주님도 자식이 하나니 나중에 딴소리는 못 하시겠죠.”

그의 말을 들어보니 스텔라도 자신이 나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됐다.

황제가 영주에게 하사한 땅이란 게 생각보다 복잡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가 얻는 건 뭐죠?”

“당연히 빚 청산입니다. 그 빚은 전부 저희가 책임질 겁니다. 대신 몬테펠트로 영지에 대한 실질적 권리는 저희가 전부 갖는 겁니다.”

뭔가 내키지 않았는지 그녀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제가 여기로 시집을 오려는 건 제 아버지를 위한 일이에요. 빚 청산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버지께 폐를 끼칠 순 없어요. 빚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라니…….”

그녀가 걱정하는 것.

록펠러도 모르지 않았다.

“물론 영주님께는 영주성과 그 일대 땅을 그대로 남겨드릴 겁니다. 영주로서의 체면이 있지, 그것마저 다 뺏기면 여기서 어찌 영주님 소리를 듣겠습니까? 적어도 영주님이 사시는 곳은 영주님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요?”

땅은 곧 영주.

영주가 곧 땅.

그 생각을 록펠러가 바꾼 것이다.

‘나도 여기서 영주가 될까 생각 좀 해봤어. 땅이야 귀찮지만 담보 형식으로 잡아놨으니 어느 정도 돈만 들이면 이 땅에 대한 권리도 황실로부터 충분히 사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럼 뭐가 문제였나?

‘하지만 영주가 됨으로서 얻게 되는 그 책임과 의무에 대해선 약간 회의적이더라고. 내가 바란 건 영주가 가진 힘이지 그 업무가 아니었거든.’

영주도 나름의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결국 이게 꺼려졌던 것이다.

“했던 말 그대롭니다. 영주님은 앞으로도 계속 이곳의 영주님으로 남으실 겁니다. 대신 이 땅의 권리는 저희가 가지고 있으니 세금 역시 당연히 저희가 걷게 되는 거겠죠.”

이해가 되질 않았는지 스텔라가 강하게 의문을 표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서로 잘 합의된다면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 제 아버지가 여기 세금을 걷지 않으면 대체 무슨 돈으로 영지를 운영하라는 건가요?”

“세금은 저희가 걷는 대신, 영지 운영에 필요한 모든 돈은 저희 카터 방코에서 전적으로 책임질 생각입니다. 시어 월급부터 시작해서 영지 보수, 방비에 쓰이는 모든 돈까지. 그리고 영주님 활동에 필요한 품위 유지비나 급여 같은 것도 전부 다 저희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즉, 영주에게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주되, 영지 재정은 따로 떼어내어 반쪽짜리 영주로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그 말은 아버지가 무엇을 해도 당신들과 합의를 봐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요?”

“정확히는 제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제가 그 일을 허락하지 않고는 그 어떤 재정 지원도 받으실 수 없을 겁니다.”

스텔라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록펠러가 여기선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사뭇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주었다.

“영주님 빚 문제는 생각 없이 차용증서를 남발한 영주님께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저희도 그 정도로 합의를 봐야 영주님이 진 빚을 전부 청산해 드릴 수 있는 겁니다. 그 외엔 다른 길이 없는 거죠.”

“…….”

스텔라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지금 록펠러가 한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아 아버지가 진 빚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달리 방법이…… 없어. 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있었다면 그녀도 고민하지 않고 여기서 거절했을 것이다.

그게 맞았으니까.

하지만 희생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순 없었다.

나름 고심 끝에 스텔라가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지위를 계속 인정해 주신다면, 저는 그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없어요. 그것 말고는 아버지 빚을 갚을 방도가 없으니까요.”

이쯤 되자 록펠러도 기분 좋게 미소를 드러낼 수 있었다.

“제 제안이 그렇게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영주님 입장에선 당연히 안 좋은 일이 되겠지만, 아가씨가 여기로 시집을 오게 되면 영주님도 나름 납득을 하시겠죠.”

이 일에 가장 반대할 사람을 염두에 두고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아마 반대하실 것 같지만,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 그러니 아버지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야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서로 이야기가 좋게 됐으니, 이제 배를 채워보죠. 계속 이야기만 했더니 배가 고프군요.”

말을 마치매 록펠러가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확고히 했다.

‘내가 바랐던 건 결국 권좌가 아니었던 거야.’

그런 권좌를 알게 모르게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

그들이야말로 록펠러가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내가 바랐던 건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힘과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지.’

힘과 자유.

그 모든 걸 가진 자를 대체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록펠러는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지. 어떻게 보면.’

록펠러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식사를 하려던 스텔라가 문득 궁금하던 것을 이 자리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빚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빚 문제.

영주가 진 빚은 한두 푼이 아니었다.

물론 카터 방코에서 가지고 있는 금화라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지만, 그 액수가 나름 적지 않았기에 그녀가 걱정을 내비치자 록펠러는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궁금하십니까?”

“네, 궁금하죠. 한두 푼이 아닐 텐데.”

록펠러는 자신이 설명하지 않기로 하고 근처에 있던 조슈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조슈아가 록펠러만 보고 있던 스텔라에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빚 문제는 사실 간단해요.”

조슈아가 입을 열자 스텔라의 시선이 자연스레 조슈아에게 향했다.

“어떻게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텐데요?”

“지금 문제가 되는 게 영지민들이 가지고 있는 Gold 차용증서잖아요? 담보로 발행됐던 게 전부 휴짓조각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렇죠.”

“그걸 다시 살리는 거예요. 그럼 모든 게 끝나게 되죠.”

“그걸…… 다시 살린다고요?”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조슈아가 록펠러처럼 웃어 보였다.

“정 궁금하시면 가만히 지켜보시면 돼요. 저희가 영주님 빚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 * *

저 멀리 영주성이 보이는 시장 광장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영지민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오늘 이날 영주의 빚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소리에 아침부터 찾아와 난리였는데 당사자들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차용증서 문제를 방코에서 해결해 준다니.”

“나도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 대체 어떻게 해결해 준다는 거야? 이거 이미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잖아?”

“그러게 말이야.”

“대체 뭔 수로?”

“일단 기다려 보자고. 여기서 중대 발표가 있다고 했으니까.”

“내가 진짜 그놈의 영주 새끼를 어떻게 해버렸어야 했는데!”

“영주는 무슨! 그 새끼가 영주야? 그냥 빚쟁이 새끼지.”

수런대는 인파들로 시장 안이 많이 어수선할 때.

시어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영주가 있었다.

초췌한 몰골의 영주가 등장함과 동시에 시장에 모여든 영지민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내며 고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빚쟁이 영주로 인해 하루아침에 거지 된 이들이 대다수였다.

우우우~

“어디서 기어 나와! 당장 성으로 안 꺼져!”

“누구 앞에서 영주 행세야! 너 같은 놈을 영주로 둔 적 없으니 썩 꺼져 버려!”

“저러다 객사라도 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성에서 기어 나온 거야!”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우리가 호구로 보여?”

“당장 돈이나 갚으라고!”

“이 차용증서에 써진 돈이나 갚아!”

매일 같이 성 밖에서 들려오는 듣기 싫은 고성이 이처럼 가까워졌으니, 영주도 머리가 지끈거려 당장에라도 말고삐를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오늘 이 자리가 자신이 구원받는 날이라 그러했다.

그렇게 도착한 시장 광장엔 미리 준비된 단상 같은 게 있었다.

영주가 기억하기론 예전에 저 자리에 올라 무지한 영지민에게 영지 밖에서 일어난 토템전쟁에 대해 알린 기억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영지민들은 자신을 위대한 영주라 칭송하며 눈조차 쉽게 마주치지 못했었는데, 지금 그런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지? 저런 것들에게 욕이나 처먹으면서 무시나 당하고.’

자신을 호위하는 시어 무리가 없었다면 오는 도중 성난 영지민들에게 붙잡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을 정도로 영지민의 심기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광장 중앙에 도착한 영주를 향해 오버시어가 목소리를 냈다.

“단상 위에 오르시죠. 곧 오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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