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62화 (62/181)

§62화 16. 그대여, 빚에 먹히리(3)

잠시 후.

아무런 성과도 없이 가게 밖으로 나온 오버시어를 향해 농성 중이던 영지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걱정 어린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오버시어를 둘러싸며 급한 마음에 질문세례를 던지기 시작했다.

“안쪽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얘기는 잘 된 겁니까?”

“해결은 된 거겠죠? 이걸로 금화를 교환할 수 있는 겁니까?”

“대답 좀 해보세요! 왜 말이 없으십니까, 사람 걱정되게…….”

“제발 아니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귀가 따가워질 정도로 질문세례가 이어지자 오버시어가 자리에 멈춰 섰고, 이를 본 영지민들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가 이 자리서 할 수 있는 말은 그 무엇도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전해줘야 할까?

이상적인 대답 같은 건 이 자리서 존재하지도 않았다.

“…….”

그저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그에게 영지민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오버시어인 그에게 해결책까지 요구하는 그림이 그려지던 그때.

갑작스레 카터 방코의 문이 열리며 가게의 진정한 실세인 록펠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록펠러의 등장에 모두의 관심은 이제 오버시어가 아닌 록펠러에게 향하게 됐고, 안전을 생각하여 사제들 틈에 껴 있던 록펠러는 오버시어에게 몰려 있던 영지민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자, 모두 진정해 주세요. 오늘 이 소란이 있게 된 배경에 대해 전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아우성치는 영지민들은 쉽게 진정이 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아우성만 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그들도 나름 이성적인 납득이 필요했기에 어느 한 영지민의 주도로 모두는 잠시간 조용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가게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영지민들이 조용해지자 록펠러가 상황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부 오버시어에게 설명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차례 설명을 마친 록펠러가 말했다.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것처럼 여러분이 가지고 오신 Gold 차용증서는 저희 카터 방코가 달란트로 교환해줄 의무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그 말에 몇몇 영지민들이 흥분하여 소리쳤고,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록펠러가 다시 말을 이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차용증서를 저희 카터 방코가 받고 있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저희 카터 방코에서 직접 보증하고 있는 IOU 차용증서는 지금도 달란트로 교환이 가능하니! IOU 차용증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게 확인을 받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셔서 달란트로 교환해 가시면 됩니다.”

그 말이 이어지자 자신이 들고 있던 차용증서를 확인하던 대다수의 영지민들이 탄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주가 보증하는 Gold 차용증서가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하여 IOU 차용증서를 버리고 Gold 차용증서로 바꾼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을 순 없었다.

“난 IOU야! 그때 귀찮아서 안 바꿨다고!”

그들 중엔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어느 차용증서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IOU 차용증서를 계속 들고 있었던 영지민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난 살았어! 난 살았다고!”

몇몇 극소수의 영지민이 소리치자 대다수는 부러움의 시선을 주었고, 록펠러 역시 그들을 향해 사람 좋은 인상을 지어 보였다.

“네, 여기서 IOU 차용증서를 가지신 분들은 지금 저희 가게로 들어오셔서 필요하신 만큼 달란트로 교환해 가시면 됩니다.”

저 혼자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적잖이 흥분해 있던 극소수의 영지민들은 주변 눈치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저 혼자 기뻐하였다.

“역시 그때 안 바꾸길 잘했어! 내 금화는 안전하다고!”

싸늘한 시선만 주는 영지민들을 뚫고 나와 록펠러 앞에 선 그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IOU 차용증서를 당당하게 펼쳐 보이자 이를 본 록펠러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네, 가게 안으로 가시죠. 안쪽으로 가시면 제 동생 조슈아가 필요하신 만큼 달란트로 교환해 줄 겁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그가 가게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고, 이와 맞물려 록펠러의 목소리가 농성 중이던 영지민들에게 향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저희 카터 방코는 오늘 이날까지도 절대 여러분과의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영주로 인해 비롯된바.

록펠러는 카터 방코의 신뢰와 신용이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굳건히 살아 있음을 모두에게 어필하였다.

“저희는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여러분의 금화를 지킬 것이며, 이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IOU 차용증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록펠러의 말에 딴죽을 거는 영지민이야 물론 있었다.

“그럼 이 Gold 차용증서는! 이제까지 잘 교환해 줬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 말에 록펠러의 표정이 식으며 그를 향해 반문했다.

“앞서 설명은 다 해드렸습니다. 그 차용증서는 저희가 책임질 의무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비난의 화살은 자신과 카터 방코가 아닌 오로지 그를 향해야만 했다.

영주란 탈을 쓴 악덕 채무자가 말이다.

“오늘 밤 있었던 이 불미스러운 사태는 전부 영주님께서 자초하신 것으로, 저희와 완전 무관함을 이 자리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영지민이 소리쳤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하란 소리야! 이대로 나가 죽으라는 소리야!”

“우리 금화는 어떻게 할 건데!”

그들의 아우성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록펠러가 곧바로 받아쳐 주었다.

“여러분의 금화는 제게 대신 책임져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져오신 Gold 차용증서는 사실 휴짓조각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거기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영주님이 써주신 차용증서로 직접 교환이 가능하니, 정 금화가 필요하시다면 저희 가게에서 영주님이 써주신 차용증서를 가지고 영주님께 직접 찾아가 금화를 요구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한숨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어떻게 영주님에게 찾아가서 우리 금화를 달라고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영지민을 향해 록펠러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모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소수였다면 당연히 힘이 없겠지만, 지금은 다수입니다! 이 세상에 영지민 전부를 이길 영주님은 단연코 없습니다. 제가 영주님의 차용증서를 드릴 테니 가서 따지십시오! 가서 여러분의 금화를 받아오십시오! 설마 이렇게 여러분의 금화를 잃으실 겁니까?”

그 말에 의기소침하던 영지민의 낯빛이 빠르게 바뀌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자기와 같은 이유로 찾아온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 가서 따지자고! 나만 이렇게 된 게 아니잖아?”

“맞아! 여기 오버시어님도 당했고, 우리만 이런 게 아니야.”

“가서 따지자고!”

“그래 맞아! 가서 따지자고!”

벼랑 끝.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영지민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전부 의기투합하여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현실로 바꾸려고 난리 치기 시작했다.

그런 영지민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오버시어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난리도 아니군. 여기 소문이 여기저기 다 퍼지게 되면 그땐 영지 전체가 뒤집히겠어.’

보통의 경우라면 오버시어인 그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만 했다.

흥분한 영지민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을 알게 모르게 선동하고 있는 록펠러란 청년을 잡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피해자가 됐으니, 절대 그럴 수 없게 됐다.

오히려 그도 자신 혼자서 영주에게 따지는 것보단 이렇게 다수의 영지민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잘됐지. 이래야 영주님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실 테니까.’

크흠!

헛기침과 함께 몸을 튼 오버시어가 영주성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영지민들의 관심은 아직까지도 록펠러에게 있었고, 다만 오버시어와 같은 이유로 카터 방코에 찾아왔던 몇몇 시어들만 오버시어 뒤로 빠르게 붙으며 말을 붙였다.

“정말 난리도 아닙니다.”

“저러다 진짜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 누구 하나 흥분한 영지민들을 막을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앞서가는 오버시어와 마찬가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저 정도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가면 영주님께서도 마냥 배짱을 부리진 못할 겁니다.”

“부디 잘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큰일은 영지의 안정이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이게 다 휴짓조각이 된다 치면…….”

자신의 손에 들린 Gold 차용증서가 휴짓조각이 되면서 생기는 큰일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말에 오버시어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네. 그랬다간 영지가 아니라 영주성부터 뒤집힐 테니까.”

자신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어들이 Gold 차용증서를 급여 형태로 받아오고 있었다.

영지 내에선 마치 돈처럼 쓰여서 굳이 금화로 교환하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된다?

‘우리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되지.’

“여기서 그 차용증서가 없는 사람이 있나? 영지민은 몰라도 우리 시어들은 절대 만만하게 보면 안 되지.”

그 말에 어느 시어가 반색했다.

“그럼 저희 시어들은 다 같이 움직이는 겁니까?”

“같이 움직여서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지. 영지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우리부터 살고 봐야 하니까.”

누구든 제 밥그릇이 중요한 법이었다.

시어들도 오버시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 모습이었다.

“물론이죠.”

“우선 저희 금화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죠.”

나름 결단을 내린 오버시어가 말했다.

“어차피 우리들이야 다 같은 생각일 테니 이참에 우르르 몰려가는 게 좋겠군.”

한낱 종이 쪼가리에 묶인 자신의 금화를 지키기 위해 오버시어는 자신을 따르는 시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소 인원만 놔두고 전부 영주성으로 불러 모으게. 우리가 살길은 우리가 찾아야지.”

“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어들이 동료 시어들을 찾아 움직였고, 그사이 영주성 앞에 당도한 오버시어는 영주성과 인접한 마을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늘어가는 횃불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부 난리도 아니군. 하긴 당연하겠지. 지금 내 돈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잠이 오겠어?’

오버시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Gold 차용증서와 카터 방코에서 가져온 영주의 차용증서를 꽉 쥐었다.

‘금화가 있으셔야 할 텐데.’

제발…… 제발!

하지만 내면에서 이는 불안한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영주와 영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그였다.

‘너무 없진 않으실 거야. 그래도 한 영지의 주인인데.’

그도 영주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차용증서를 써서 방코에서 돈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선 모르지 않고 있었다.

그게 너무 남발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절대 오늘 같은 일은 예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

카터 방코에서 이제껏 아무런 문제 없이 Gold 차용증서를 달란트와 교환해 줬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큭! 미리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 후회하면 무엇하리?

어찌 됐든 오늘 밤 영주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영지민? 그들이야 어찌 됐든 우선 자신과 시어들의 금화가 우선시되어야 했으므로.

‘꼭 그래야만 돼. 아니면 그 자리에 오래 못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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